← 작품으로
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19화

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

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

19화: 벼랑 끝의 회장님

가온그룹 본사 28층 회장실.
평소 같으면 대기업 회장의 위엄이 가득했을 공간이었으나, 지금의 회장실은 초조함과 절망으로 가득 찬 가스실과 같았다.
가온그룹 이학수 회장(62세)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담배 필터를 짓씹으며 소파에 기대어 있었다.

금융위원회로부터 통보받은 자본 확충 명령 데드라인은 바로 내일 오후 6시.
그때까지 300억 원의 긴급 유동성을 증권사 계좌에 꽂아 넣지 못하면 가온증권은 즉시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영업정지는 사실상 증권업 라이선스 박탈과 법정관리, 그리고 대주주 일가의 구속으로 이어지는 파멸의 길이었다.

“회장님, 안티그라비티 파트너스의 한도윤 대표가 도착했습니다.”

비서의 보고와 함께 회장실 문이 열렸다.
도윤과 그의 뒤를 따르는 서은우 변호사가 들어섰다.
이 회장은 도윤의 앳된 얼굴을 보자 미간을 찌푸렸으나,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처지라 체면을 차릴 겨를이 없었다.

“어서 오십시오, 한 대표. 전화로 말씀하신 300억 원 조달 건은 진짜 준비가 된 겁니까?”
이 회장이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도윤은 묵묵히 서류 가방에서 빳빳한 수표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중앙에 내려놓았다.

[신안은행 발행 수표: 30,000,000,000원 (삼백억 원 정)]

도윤의 기존 현금 자산 119억 원 중 100억 원에, 서초동 빌딩을 추가 담보로 신안은행에서 융통한 200억 원의 레버리지를 결합해 만든 초대형 수표였다.
수표에 찍힌 ‘30,000,000,000’이라는 숫자를 보는 순간, 이 회장의 동공이 흔들렸다.
사채 시장의 맹수들에게도 거절당했던 생명수가 바로 눈앞에 놓인 것이다.

“진짜…… 300억이군. 조건이 뭡니까? 금리는 원하는 대로 맞춰 주겠소. 연 15%? 아니, 20%라도 좋소!”
이 회장이 다급하게 수표를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서은우 변호사가 그 손길을 가로막듯 두툼한 합의서 뭉치를 테이블에 턱 올려놓았다.

“단순 대출이 아닙니다. 안티그라비티 파트너스가 가온증권이 발행하는 300억 원 규모의 무기명 사모 전환사채(CB)를 인수하는 형태입니다. 그리고 조건은 세 가지입니다.”
서은우의 냉철한 목소리가 회장실에 울려 퍼졌다.

“첫째, 이 회장님이 보유하신 가온증권 경영권 지분 22%(약 2,640만 주)를 본 채권의 담보로 안티그라비티에 제공합니다.
둘째, 만약 3개월 이내에 본사채 300억 원을 전액 상환하지 못할 경우, 담보로 잡힌 지분 22%는 주당 1,000원(현재가 1,500원)의 가격으로 안티그라비티에 전량 귀속됩니다.
셋째, 경영진의 중대한 배임, 횡령 등 형사 처벌 사유가 발생하거나 회사의 존립을 흔드는 중대한 도덕적 해이가 법적으로 적발될 경우, 상환 기한과 무관하게 담보 지분은 그 즉시 안티그라비티로 강제 이전 처리됩니다.”

계약서의 내용을 들은 이 회장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이, 이건 완전히 날강도 짓이잖아! 3개월 안에 못 갚으면 시총 1,200억짜리 증권사의 경영권을 통째로 300억에 먹겠다는 거 아니요! 게다가 횡령이나 배임이 터지면 즉시 지분을 뺏어가다니!”

이 회장이 격분하며 서류를 내던지려 했다.
하지만 도윤은 팔짱을 낀 채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회장님. 당장 내일 오후 6시가 지나면 가온증권은 공중분해 됩니다. 면허가 취소되면 회장님이 쥐고 계신 지분 22%는 쓰레기 휴지 조각이 되는 겁니다. 휴지 조각이라도 쥐고 감옥에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단돈 300억이라도 건질 수 있는 밧줄을 잡으시겠습니까?”

도윤의 촌철살인 같은 질문에 이 회장은 숨을 쉴 수 없었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계약서가 아무리 독소 조항으로 가득 차 있어도, 당장 내일 부도가 나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 회장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굴렸다.
‘일단 300억을 받아 영업정지를 막아놓고, 3개월 동안 그룹의 다른 알짜 계열사 지분이나 부동산을 처분해서 300억을 갚아버리면 그만이다. 독소 조항은 실행되지 않으면 그저 종이 쪼가리일 뿐이니까.’

하지만 이학수 회장은 자신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상태창의 살벌한 메시지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었다.

[세력 정보 및 리스크 해킹 완료]
[내일 오전 10시, 금융감독원 자본시장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 가온증권 본사에 전격 압수수색을 단행할 예정입니다.
혐의는 이학수 회장이 지난달 계열사 지원을 위해 가온증권의 고객 예탁금 50억 원을 무단 횡령 및 배임한 사건입니다.
배임 혐의가 입증되어 이 회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순간, 계약서 제3조 4항(도덕적 해이 및 형사 처벌 즉시 귀속 조항)이 발동되어 가온증권의 지분 22%는 상환 기한과 관계없이 내일 즉시 안티그라비티 파트너스로 강제 귀속됩니다.]

도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3개월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내일 오전 10시 압수수색이 터지는 순간, 가온증권은 아무런 피도 흘리지 않고 통째로 안티그라비티의 소유가 될 판이었다.

“……알겠소. 도장을 찍지.”

결국 이 회장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 마지막 장에 인감도장을 찍었다.
서명과 날인이 완료되자, 도윤은 300억 원짜리 수표를 이 회장의 앞으로 가볍게 밀어주었다.
수표를 낚아채듯 가져가는 이 회장의 얼굴에는 안도의 한숨이 서렸으나, 도윤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사냥을 끝낸 포식자의 그것이었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회장님.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도윤은 서 변호사와 함께 회장실을 나왔다.
복도를 걸어 내려가며 서은우가 걱정스러운 듯 나직하게 속삭였다.
“대표님, 정말 괜찮을까요? 이 회장이 3개월 안에 자금을 마련해서 300억을 갚아버리면 저희는 겨우 이자 몇 푼 받고 물러나야 합니다.”
도윤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여유롭게 대답했다.
“서 변호사님, 내일 오전 10시에 뉴스 채널 고정해 두십시오. 아주 재미있는 불꽃놀이가 터질 테니까요.”

안티그라비티 파트너스의 첫 번째 대형 포획물이 벼랑 끝에서 완전히 덫에 걸려들었다.
사냥꾼 한도윤의 위대한 머니 게임은 이제 여의도 제도권 금융의 심장부를 직격하려 하고 있었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