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

18화: 안티그라비티 파트너스
119억 원의 현금 실탄을 쥔 도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세련된 법인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개인 자산가로서 주식을 굴리는 것에는 세금과 공시, 그리고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데 제도적 한계가 명확했다.
특히 외국계 헤지펀드나 대기업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합법적으로 자금을 끌어모으고 굴릴 수 있는 ‘방패’가 필요했다.
서초동 꼬마 빌딩 3층에 새롭게 달린 현판의 이름은 ‘안티그라비티 파트너스(Antigravity Partners)’.
중력을 거스르고 끝없이 솟구치겠다는 도윤의 의지를 담은 사모펀드(PEF) 및 M&A 전문 투자회사였다.
법인 설립 절차를 마친 도윤은 곧바로 인재 영입에 착수했다.
투자 시장에서 무법자처럼 날뛰기 위해서는 법적인 방패를 들어줄 초엘리트 법률 전문가가 필수적이었다.
도윤이 선택한 인물은 국내 최대 로펌 ‘태평양’에서 적대적 M&A 부문 에이스로 명성을 날리던 서은우 변호사(31세)였다.
“연봉 3억 원에 인센티브 별도, 그리고 안티그라비티 파트너스의 파트너 변호사 지위입니다. 어떻습니까, 서 변호사님?”
고급 호텔 라운지에서 마주 앉은 서은우는 눈앞의 새파랗게 젊은 대표 한도윤을 미심쩍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태평양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녀였다. 아무리 파격적인 연봉을 제안했다 한들, 설립된 지 일주일도 안 된 신생 1인 투자회사로 이직하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다.
다만 서은우에게도 갈증은 있었다. 로펌의 이름 뒤에 숨어 재벌들의 뒤처리만 맡는 대신, 판 자체를 설계하는 쪽에 서보고 싶다는 오래된 욕망이었다. 문제는 그 판이 합법의 경계 안에 머물 수 있느냐였다.
“한 대표님. 제안은 감사하지만, 신생 PEF가 여의도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습니다. 안티그라비티의 자본금 규모와 현재 확보된 LP(출자자) 리스트를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서은우가 냉철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윤은 말없이 태블릿 PC를 켜서 자신의 신안은행 기업 계좌 잔고를 띄워 그녀의 앞에 밀어 놓았다.
[안티그라비티 파트너스 계좌 잔액: 11,950,000,000원]
서은우의 냉정하던 눈동자가 순간 심하게 흔들렸다.
“119억…… 그것도 대출이나 투자 유치금이 아니라 순수 현금 자산이군요.”
“LP 같은 귀찮은 놈들의 간섭은 받지 않습니다. 제 개인 자금만으로 운용하는 프라이빗 PEF입니다. 앞으로 이 자금은 1000억, 1조로 불어날 겁니다. 서 변호사님은 그저 제가 합법적으로 기업들을 사냥할 수 있게 법적 테두리만 든든하게 쳐주시면 됩니다.”
도윤의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자신감이 실려 있었다.
서은우는 침을 삼켰다. 이 청년의 눈빛은 단순히 돈 많은 졸부의 그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먹잇감을 노리는 진짜 사냥꾼의 눈빛이었다.
그녀는 태블릿의 잔고보다 도윤이 먼저 꺼낸 말, '합법적인 테두리'라는 표현을 다시 곱씹었다. 위험한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위험을 통제할 법률가가 곁에 없다면, 이 청년은 언젠가 더 큰 사고를 칠 사람이기도 했다.
“……좋습니다. 내일부터 안티그라비티로 출근하죠. 그래서, 우리의 첫 번째 사냥감은 어디입니까?”
도윤은 미소를 지으며 파일 하나를 꺼내 던졌다.
[인수 검토 보고서: 가온증권 (KOSDAQ 012240)]
보고서의 이름을 본 서은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가온증권이요?! 미쳤습니까, 대표님? 가온증권은 지금 부실 대출과 배임 혐의로 시가총액이 1,200억까지 주저앉은 데다, 일주일 안에 유동성 자금 300억 원을 조달하지 못하면 금융위원회로부터 영업정지를 당해 면허가 취소될 위기입니다! 완전히 침몰하는 타이타닉호라고요!”
확실히 그랬다. 가온증권은 여의도에서도 ‘상장폐지 1순위’로 꼽히는 썩어가는 동아줄이었다.
하지만 도윤은 눈을 지그시 감고 상태창의 정밀 분석 레이더를 띄워 이미 진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인수 대상 분석: 가온증권 (KOSDAQ 012240)]
- 대주주 지분: 가온그룹 이학수 회장 일가 (22%)
- 위기 상황: 이 회장은 영업정지를 막기 위해 300억 원의 긴급 자금이 절실함. 사채 시장을 돌아다니고 있으나 아무도 침몰하는 배에 돈을 빌려주지 않음.
[숨겨진 핵심 정보]
가온증권이 보유한 최대 부실 채권인 ‘영종도 복합 리조트 개발 사업 대출 채권(800억 원 규모)’은 현재 시장에서 회수 불능인 똥값 채권으로 분류되어 있음.
그러나 미국 최대의 카지노 그룹 ‘라스베이거스 샌즈’가 영종도 개발 사업권을 1조 2천억 원에 인수하기로 국토교통부 및 인천공항공사와 비밀 협상을 최종 타결했음.
발표 예정일은 2주일 뒤인 금요일 오전 9시.
발표 즉시 가온증권은 800억 원의 부실 채권을 연체 이자까지 포함해 100% 현금으로 회수하게 됨. 가온증권의 실제 기업 가치는 순식간에 3,000억 원 이상으로 폭등할 것임.
[퀘스트 목표: 가온증권을 집어삼켜라]
[퀘스트 내용:
영종도 채권 회수 기밀을 철저히 숨긴 채, 똥줄이 탄 이학수 회장에게 접근하십시오.
안티그라비티의 자금 중 300억 원(대출 대행 및 신용 레버리지 활용)을 유동성 자금으로 대여해 주는 조건으로, 그의 대주주 지분 22%를 담보로 잡고 ‘영업정지 처분 시 경영권 및 지분 전량을 안티그라비티에 주당 1,000원에 강제 매각한다’는 조항의 이면 계약을 체결하십시오.]
[성공 보상:
- 경험치 800 exp
- 가온증권 경영권 확보 (금융 라이선스 획득)
- 주가 폭등으로 인한 자산 평가액 600억 돌파]
[실패 페널티: 투자 자금 300억 회수 불능 및 법인 파산 리스크]
도윤은 태블릿 화면을 끄며 턱을 괴었다.
“서 변호사님. 영종도 리조트 채권이 진짜 쓰레기 채권일까요? 만약 그게 100% 회수되는 황금 알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죠.”
“예? 그게 무슨…… 그 리조트 시행사는 이미 부도나서 법정관리에 들어갔는데요?”
서은우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도윤은 윙크를 해 보였다.
“세상에는 로펌의 정보망보다 더 빠른 정보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서 변호사님은 제가 말하는 조항대로 계약서 양식만 아주 꼼꼼하게 다듬어 주시면 됩니다. 내일 오전, 가온그룹 이학수 회장을 만나러 갈 겁니다.”
서은우는 도윤의 묘한 자신감에 눌려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가온증권이라는 거대한 고래를 사냥하기 위한 안티그라비티 파트너스의 첫 번째 덫이 설계되기 시작했다.
개미 한도윤이 증권사 회장의 목덜미를 낚아채기 위해 여의도 한복판으로 침투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