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

13화: 사직서가 남긴 온도
월요일 오전 9시.
평소 같았으면 지옥 철에 몸을 구겨 넣고 식은땀을 흘리며 출근 카드 리더기에 목을 맸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도윤은 강남의 고급 백화점에서 맞춘 300만 원짜리 맞춤 수트를 빼입고, 은은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회사 로비에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가벼운 서류 봉투 하나만이 들려 있었다.
로비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동기 준식이가 턱이 빠질 듯한 표정으로 도윤을 쳐다보았다.
“야…… 한도윤! 너 주말에 단톡방에 올린 거 장난 아니었지? 김 부장님 주말 내내 카톡방에서 너 찾으면서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어. 근데 옷이 왜 그래? 무슨 회장님처럼 입고 왔냐?”
도윤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준식의 어깨를 토닥였다.
“진짜 사직서 내러 왔지. 그동안 고마웠다, 준식아.”
“설마…… 진짜 퇴사하는 거야? 너 한길정밀로 엄청나게 벌었다는 게 소문이 아니라 진짜였어?”
준식의 눈에 선망과 질투, 그리고 경악이 뒤섞인 채 요동쳤다.
이미 소문은 퍼질 대로 퍼져 있었다. 도윤이 주식으로 수십억을 벌어 퇴사한다는 찌라시가 주말 사이 사내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던 터였다.
12층 마케팅 본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웅성거리던 모든 대화가 물 끼얹은 듯 뚝 끊겼다.
모든 팀원의 시선이 도윤의 고급 수트와 여유로운 걸음걸이에 집중되었다.
“한도윤! 너 미쳤어?! 주말에 그게 무슨 무례한 짓이야!”
자리에 앉아 씩씩대던 김 부장이 결재판을 책상에 내팽개치며 소리를 질렀다.
도윤의 사직 톡을 본 이후 주말 내내 혈압이 올라 잠도 못 잤다는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도윤은 조용히 다가가 사직서가 든 봉투를 김 부장의 책상 위에 살포시 올려두었다.
“정식 사직서입니다. 그동안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장님.”
도윤의 목소리는 조용하면서도 힘이 실려 있었다.
“감사해? 너 진짜 주식 푼돈 좀 만졌다고 눈에 뵈는 게 없지? 직장이 장난이야? 주식으로 번 돈 그거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거야! 평생 든든한 직장 잃고 길바닥에서 후회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김 부장은 어떻게든 도윤의 멘탈을 흔들기 위해 악담을 쏟아냈다.
하지만 도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62억 자산가의 여유는 얄팍한 악담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성벽과 같았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길바닥으로 나앉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부장님도 부디 건강하십시오.”
도윤은 인사를 마치고 인사팀으로 향했다.
인사팀장 역시 이미 윗선에서 보고를 받았는지, 평소와 달리 아주 공손한 태도로 도윤의 사직서 수리 절차를 빠르게 진행해 주었다.
회사 로비로 다시 내려온 도윤은 사원증을 안내 데스크에 반납했다.
철컥, 하고 사원증이 반납함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직장인의 사슬이 마법처럼 풀려나가는 듯한 강렬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끝났다. 드디어 자유다.”
도윤은 로비 대형 TV 화면에 대동개발 김대동 회장이 횡령 및 주가조작 혐의로 금융감독원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했다는 뉴스를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상태창이 경고했던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도윤의 시야에 찬란한 푸른색 레이더망이 격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새로 얻은 ‘세력 포지션 해킹 레이더’의 첫 구동이었다.
웅―
[경고: 대형 기관 공매도 세력 감지!]
[종목명: 대성메디컬 (KOSDAQ 099830)]
[현재가: 8,400원 (연일 하한가 폭락 중)]
[주체: 외국계 헤지펀드 ‘블랙스톤 글로벌’ (한국계 펀드매니저 제임스 강 주도)]
[세력 포지션: 숏 포지션(공매도) 누적 물량 350만 주]
[세력 평단가: 12,000원]
[작전 내용:
블랙스톤 글로벌은 대성메디컬의 췌장암 치료제 ‘판도라-Y’의 임상 특허가 허위라는 가짜 악재 리포트를 뉴욕과 서울 금융 시장에 동시에 배포하여 의도적으로 주가를 폭락시키고 있음.
이들의 최종 목표는 대성메디컬의 주가를 2,000원 이하로 고사시켜 회사를 강제 상장폐지 시키고, 자신들의 숏 포지션 청산(숏 커버링)을 통해 백억 대 차익을 챙기는 것임.]
[핵심 비밀 정보:
블랙스톤 글로벌의 악재 리포트는 100% 조작된 허위 사실입니다.
대성메디컬의 ‘판도라-Y’는 실제로 임상 2상을 완벽하게 성공했으며, 4일 뒤인 금요일 오전 10시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 암 연구소의 공식 학술지를 통해 최종 성공 논문이 전 세계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도윤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외국계 거대 헤지펀드 블랙스톤 글로벌.
그들이 350만 주라는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공매도를 때려 누르고 있는 판이었다.
주식 시장에서 공매도는 빌린 주식을 먼저 파는 기법이기에, 주가가 떨어져야 이익을 본다.
반대로 주가가 폭등하면, 그들은 폭등한 가격에 주식을 되사서 갚아야 하므로 무한대의 손실을 보게 된다.
이른바 ‘숏 스퀴즈’의 기회였다.
[메인 퀘스트: 공매도 세력을 단죄하라]
[퀘스트 내용:
블랙스톤 글로벌이 췌장암 치료제 가짜 뉴스로 주가를 누르는 월요일부터 목요일 사이, 대성메디컬의 주식을 바닥에서 쓸어 담으십시오.
금요일 오전 임상 성공 공시가 뜨는 순간, 폭발적인 상승과 함께 외인들의 숏 스퀴즈 투매를 유도하여 그들의 자금을 전부 갈취하십시오.]
[목표 달성 조건: 대성메디컬 주식 40만 주 이상 매집 완료 (평단가 8,500원 이하)]
[성공 보상:
- 경험치 600 exp
- 칭호: 외인 사냥꾼 (외국계 자본 매매 패턴 100% 추적 기능 제공)]
[실패 페널티: 외인의 추가 공매도 폭탄으로 인한 자산 동결 및 폭락 충격]
“외인 놈들이 사기 리포트를 써서 한국 바이오 기업을 죽이고 개미들을 털어먹고 있었군.”
도윤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갔다.
그동안 기관과 외국인들의 놀이터였던 공매도 판.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 폭탄만 맞으면 속수무책으로 눈물을 흘리며 손절해야만 했다.
하지만 정보의 비대칭이 무너진 지금, 칼자루는 개미 한도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62억 원의 현금 실탄. 그리고 300%의 레버리지 우대.”
도윤은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 잡았다.
여의도 한복판에 위치한 자신의 새로운 아지트, 서초동 꼬마 빌딩 최상층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전장으로 향하는 전사의 비장함과 사냥꾼의 짜릿한 탐욕이 가득 차 있었다.
외국계 헤지펀드의 거대 자금을 털어먹기 위한 한도윤의 두 번째 위대한 머니 게임의 서막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