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주식은 무조건 오른다

8화: 숫자를 읽는 여자
강진호는 회사 자료를 가방에 넣지 않았다.
금갑건설 단기운영자금 표도, 금갑유통 매출채권 회수 예정표도 재무기획팀 책상 안에 남아 있어야 했다. 회사 밖으로 한 장이라도 들고 나가는 순간, 그건 분석이 아니라 약점이 된다.
대신 그는 신문 경제면을 접었다.
분기보고서 출력본 몇 장, 증권사 데일리 리포트, 부동산 PF 기사 스크랩.
누구나 볼 수 있는 숫자였다.
하지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숫자는 아니었다.
"오늘도 점심 밖에서 먹어요?"
김미나가 그의 책상 옆에 섰다.
강진호는 서류 모서리를 맞췄다.
"잠깐 들를 데가 있습니다."
"은행은 아니죠?"
"아닙니다."
"그럼 증권사예요?"
말이 크지 않았는데도 박태성의 시선이 움직였다.
사무실에서는 작은 단어 하나가 발자국처럼 남는다.
강진호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개인 서류 때문에요."
박태성이 지나가다 멈췄다.
"강진호 씨."
"네."
"개인 일은 근무 시간에 티 내지 마."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제 표시하라고 한 날짜 대조표, 오후까지 올려."
"점심 전에 1차 정리해 두겠습니다."
박태성은 대답이 마음에 드는 듯, 아니면 더 캐물을 이유를 못 찾은 듯 지나갔다.
김미나가 낮게 말했다.
"미안해요. 괜히 말 꺼냈나 봐요."
"괜찮습니다."
"점심은 먹겠습니다."
"그 말 어제도 했어요."
"오늘은 지키겠습니다."
김미나는 믿지 않는 얼굴로 돌아섰다.
강진호는 가방을 닫았다.
오늘 필요한 건 종목 추천이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 미래를 현재의 숫자로 다시 계산할 사람.
그리고 입을 다물 줄 아는 사람.
증권사 지점 4층 세미나실은 작았다.
접이식 의자 서른 개, 앞쪽 빔프로젝터 하나, 벽에 붙은 종이 현수막.
하반기 건설주 전망과 부동산 금융 점검
제목은 평범했다.
평범해서 좋았다.
강진호는 뒷줄 끝에 앉았다.
첫 발표자는 호황을 말했다.
수도권 분양가 상승, 해외 수주 기대감, 저평가된 건설주.
화면 속 표에는 위로 향한 화살표가 많았다. 앞줄의 남자는 종목명 옆에 동그라미를 쳤다.
강진호는 펜을 들지 않았다.
그런 말은 시장 전체가 이미 하고 있었다.
"다음은 서유리 애널리스트입니다."
두 번째 발표자가 앞으로 나왔다.
짧은 단발.
얇은 회색 재킷.
발표 자료보다 손에 쥔 계산기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여자였다.
그녀는 첫 장부터 제목을 뒤집었다.
건설업 호황에서 먼저 봐야 할 것: 이익이 아니라 현금
세미나실에 작은 웅성거림이 퍼졌다.
서유리는 웃지 않았다.
"분양이 잘된다는 말과 돈이 바로 들어온다는 말은 다릅니다. 수주가 늘었다는 말과 부도 위험이 줄었다는 말도 다릅니다."
강진호의 눈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화면이 바뀌었다.
PF 잔액 증가, 단기차입금 만기 집중, 미분양 통계의 작은 반등, 매출채권 회전일수 확대.
서유리는 숫자를 부풀리지 않았다. 차갑게 줄였다.
"건설사는 현금이 막히면 먼저 날짜를 만집니다. 받을 돈은 앞당기고, 줄 돈은 뒤로 미룹니다. 한 번이면 운전자금 관리입니다. 두 번이면 습관입니다. 여러 계열사에서 같은 방향으로 반복되면 구조입니다."
강진호의 펜 끝이 종이에 닿았다.
금갑유통 매출채권. 금갑건설 단기운영자금. 6월 말 회수. 7월 초 지급 조정.
서유리는 금갑 내부 자료를 모른다.
그런데 같은 문 앞까지 와 있었다.
"대부분은 손익계산서의 이익을 먼저 봅니다. 하지만 위험은 현금흐름표에서 먼저 움직입니다. 장부상 이익이 남아도, 만기가 몰리고 회수가 늦어지면 회사는 돈을 빌려 시간을 삽니다."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강진호는 노트에 한 줄을 적었다.
현재 자료만으로 접근 가능.
그 한 줄이면 충분했다.
미래를 맞히는 사람은 필요 없다.
현재를 틀리지 않게 읽는 사람이 필요하다.
세미나가 끝나자 사람들은 앞쪽으로 몰렸다.
"그래서 어디가 제일 좋습니까?"
"대형사는 안전하죠?"
"목표가 좀 찍어 주시면 안 됩니까?"
서유리는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회사별로 봐야 합니다."
"현금흐름표를 확인하세요."
"목표가는 드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실망한 얼굴로 흩어졌다. 그들이 원한 건 숫자를 대신 읽어 주는 이름이었다.
강진호는 마지막까지 기다렸다.
서유리가 노트북을 닫는 순간, 그가 앞으로 다가갔다.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서유리가 고개를 들었다.
"세미나 내용이면요."
"계열사 매출채권 회수 시점을 앞당기고, 같은 구간에 다른 계열사의 단기운영자금 지급을 뒤로 미루는 회사가 있다면 어떻게 보십니까?"
서유리의 손이 멈췄다.
"가정입니까?"
"가정입니다."
"두 자료의 기준일은요?"
"월말과 다음 달 초입니다."
"요청 부서가 같습니까?"
강진호는 답하지 않았다.
서유리의 눈이 아주 조금 좁아졌다.
"가정치고는 날짜가 구체적이네요."
"일반적인 판단을 듣고 싶습니다."
"일반적인 질문도 아니고요."
그녀는 노트북을 가방에 넣었다.
"한 번이면 자금 일정 조정입니다. 두 번이면 습관이고, 세 번이면 구조입니다. 특히 계열사 간 받을 돈과 줄 돈을 같은 방향으로 만진다면, 누군가 특정 날짜의 현금 잔고를 관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게 위험입니까?"
"바로 위험은 아닙니다. 시장은 그런 회사를 오히려 더 오래 좋게 볼 때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자금이 도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언제부터 위험이 됩니까?"
"만기가 짧아질 때요. 짧은 돈으로 긴 사업을 버티기 시작하면, 회사가 아니라 시간이 회사를 끌고 갑니다."
정확했다.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보았다.
서유리는 그 침묵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상대가 어떤 단어를 삼키는지 보는 얼굴이었다.
"공매도 대상으로 본다면요?"
그제야 서유리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
"2006년에 개인이요?"
"가능 여부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방향만 맞고 시간이 틀리면 먼저 죽습니다."
강진호의 입가가 움직이지 않았다.
정답이었다.
"시간을 맞추려면 뭘 봐야 합니까?"
"사람이요."
"사람?"
"숫자가 흔들리기 전에 담당자가 흔들립니다. 자료 수정이 잦아지고, 설명 문구가 길어지고, 특정 날짜 전후로 계열사 거래가 몰립니다. 표는 나중에 늦게 고쳐집니다. 사람은 먼저 겁을 먹고요."
강진호는 그 말에 잠깐 멈췄다.
서유리는 금갑을 모르지만, 금갑 안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세미나실 밖 복도 자판기 앞에 섰다.
강진호가 캔커피 두 개를 뽑아 하나를 내밀었다.
서유리는 바로 받지 않았다.
"이걸로 리서치 비용 대신하려는 건 아니죠?"
"질문 값입니다."
"질문을 한 사람은 강진호 씨인데요."
강진호는 캔을 그대로 들고 있었다.
"대답이 쓸 만했습니다."
"평가받으러 온 건 아닌데요."
"저도 추천받으러 온 건 아닙니다."
서유리는 그제야 캔을 받았다.
"회사원이죠?"
"네."
"어느 회사인지는 말 안 할 거고요."
"지금은 그렇습니다."
"그럼 저도 선을 긋죠. 내부 정보는 안 봅니다. 리포트 보조 일도 하고, 따로 독립 리서치 준비도 하는데, 내부 정보 한 번 잘못 물면 끝입니다."
"내부 정보가 아닙니다."
"방금 질문은 내부 자료 냄새가 났어요."
강진호는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은 질문을 늘린다.
"공개 자료만으로 같은 결론이 나오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서유리가 캔커피를 손안에서 굴렸다.
"보통 사람들은 답을 사러 옵니다. 강진호 씨는 답을 줄 사람을 시험하러 온 것 같네요."
눈치가 빠르다.
빠른 사람은 쓸모 있다.
동시에 위험하다.
강진호는 출력물 세 묶음을 꺼내지 않았다. 복도에는 사람이 오갔다.
"메일로 공개 공시 세 묶음을 보내겠습니다."
"일을 맡기는 겁니까?"
"세 회사 중 현금흐름과 만기 구조가 먼저 흔들릴 회사를 하나만 골라 주십시오."
"대가는요?"
"맞히면 다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서유리는 어이없다는 듯 그를 보았다.
"그게 대가예요?"
"서유리 씨는 돈보다 질문이 궁금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순간, 그녀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강진호는 물러서지 않았다.
서유리는 잠시 그를 보다가 가방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정식 회사 로고는 없었다.
이름, 메일 주소, 휴대전화 번호만 있었다.
서유리 / 리서치 애널리스트
"공개 자료만 보내세요. 회사명 지우지 말고요. 지우면 더 수상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맞힌다는 표현은 싫습니다."
"그럼 뭐라고 합니까?"
"검증한다고 하죠. 숫자는 점쟁이 놀이가 아니니까."
강진호는 명함을 받았다.
종이 한 장이었다.
하지만 대묵바이오의 첫 매수 버튼보다 무거웠다.
자취방으로 돌아온 강진호는 컴퓨터를 켰다.
회사 자료는 쓰지 않는다.
금갑 내부 날짜도 쓰지 않는다.
그는 공개 공시 사이트에서 세 회사의 분기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내려받았다.
금갑건설, 태운건설, 서린산업.
셋 다 2006년 현재 시장에서 나쁘게 보이지 않는 회사들이었다.
오히려 리포트는 좋았다.
수주 증가, 분양 호조, 저평가.
강진호는 파일을 메일에 첨부했다.
본문은 짧았다.
공개 자료 기준으로 현금흐름, 단기차입금 만기, 매출채권 회전일수, 계열사 거래 비중을 비교해 주십시오.
가장 먼저 유동성 압박이 드러날 회사를 하나만 골라 주시면 됩니다.
그는 마지막 줄을 쓰기 전 멈췄다.
금갑건설이라고 답하면 된다.
그러면 서유리는 쓸 수 있다.
틀리면?
버리면 된다.
잔인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복수는 친절한 사람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확한 사람과 해야 하는 일이다.
강진호는 메일을 보냈다.
전송 완료 문구가 뜨자 방 안이 조용해졌다.
그는 명함을 책상 위에 놓았다. 아직 동료도, 조력자도 아니다.
휴대전화가 울린 것은 그로부터 12분 뒤였다.
모르는 번호.
강진호는 받았다.
"강진호 씨?"
서유리였다.
"네."
"메일 봤어요."
"빠르군요."
"파일명부터 이상해서요. 금갑건설을 섞어 놨네요."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밤에 다 보긴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지금도 말할 수 있어요."
"무엇입니까?"
"이 세 회사 중 하나는 숫자보다 사람이 먼저 흔들렸을 겁니다."
강진호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왜 그렇게 봅니까?"
"표를 깔끔하게 만들려고 손댄 흔적이 보여요. 이상하게 정확한 날짜, 이상하게 짧아진 만기, 이상하게 길어진 설명. 겁먹은 사람이 숫자를 만지면 이런 모양이 나옵니다."
방 안의 형광등이 희게 흔들렸다.
서유리는 아직 금갑 내부를 모른다.
그런데 문고리의 위치를 보고 있었다.
"내일까지 보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강진호 씨."
"네."
"이거 단순 투자 질문 아니죠?"
강진호는 창밖을 보았다.
2006년의 밤은 아직 평온했다.
평온해서 더 위험했다.
"아직은 투자 질문입니다."
서유리는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럼 내일은 아직이 아닌 부분을 물어보죠."
전화가 끊겼다.
강진호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함을 다시 보았다.
외부 분석 동선.
그 한 줄이 사람의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금갑건설의 첫 균열을 함께 볼 눈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