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주식은 무조건 오른다

4화: 상한가의 냄새
대묵바이오 2,230원.
강진호는 업무 문서 뒤에 숨긴 HTS 창을 보았다. 숫자는 한 호가씩 움직였지만, 그 아래에서는 전혀 다른 속도로 돈이 이동하고 있었다.
오전 내내 위를 막고 있던 매도벽이 얇아졌다. 처음에는 1만 주 단위로 버티던 물량이 몇 천 주로 줄었고, 그마저도 누군가가 조용히 긁어 갔다.
겁먹은 개인이 던지는 물량은 거의 끝났다.
이제는 누가 먼저 문을 열어젖히느냐의 문제였다.
"강진호 씨."
박태성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떨어졌다.
강진호는 HTS 창을 내리고 자금 대용표를 앞으로 올렸다. 손끝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게, 일부러 펜을 집었다.
"네, 대리님."
"아까 말한 거 잊지 않았지?"
박태성이 그의 모니터를 흘깃 보았다.
"회사 PC로 딴짓하는 거, 생각보다 잘 잡힌다."
"명심하고 있습니다."
화면에는 계열사 명단, 결제 기준일, 매출채권 회수 예정월만 떠 있었다. 겉으로는 문제없었다. 그러나 박태성의 시선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오늘 야근이다. 신입이라고 봐주는 거 없어."
"알겠습니다."
"대답은 좋네."
박태성은 짧게 웃고 돌아섰다. 웃음이라기보다 줄을 당겨 보는 손놀림에 가까웠다.
강진호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목줄이 풀린 게 아니었다. 줄을 쥔 사람이 힘을 확인한 것뿐이었다.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대묵바이오 현재가 2,260원]
증권사 알림이었다.
강진호는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지금 고개를 숙이면 박태성의 눈에 걸린다. 그는 자금 대용표의 빈칸에 작은 점 하나를 찍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음 줄로 넘어갔다.
대묵바이오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사무실에 묘한 소란이 번진 건 오후 2시 40분을 넘긴 뒤였다.
"야, 대묵바이오 봤냐?"
건너편 대리가 모니터를 보며 웃었다.
"그거 또 작전주 아니야? 아침에 게시판 난리던데."
"바이오주는 원래 그래. 뉴스 없이 날아가고, 뉴스 뜨면 끝나는 거지."
"따라붙는 애들이 제일 불쌍하다. 꼭 마지막에 설거지당하더라."
몇 사람이 같이 웃었다.
강진호는 펜으로 숫자를 적었다.
금갑물산 매출채권 회수 예정월.
부가세 환급 예정액 반영 시점.
손은 업무를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대묵바이오의 호가창이 펼쳐져 있었다. 2,300원대 초반. 그다음은 2,400원. 그리고 상한가.
김미나가 낮게 물었다.
"진호 씨,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아까부터 손이 차 보여요. 점심도 못 먹었잖아요."
강진호는 그제야 자신이 펜을 너무 세게 쥐고 있다는 걸 알았다. 손등에 힘줄이 올라와 있었다.
"야근할 자료가 많아서요."
"은행 다녀온 뒤로 계속 그래요."
김미나의 목소리는 더 낮아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배려한 음성이었다.
"혹시 돈 문제면 혼자 끌어안지 말아요. 첫날부터 이러면 버티기 힘들어요."
돈 문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상상하는 종류의 돈 문제가 아닐 뿐이었다.
강진호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정리되면 괜찮아집니다."
"뭐가요?"
"자료요."
김미나는 더 묻지 못했다. 그래도 시선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오전의 은행 봉투와 카드 문제라는 변명을 기억하고 있었다.
강진호는 그녀에게 웃어 보이지 않았다. 어설픈 안심은 더 큰 의심을 만든다.
그때 박태성이 다시 다가왔다.
"강진호 씨."
"네."
"금갑건설 단기운영자금, 이 빈칸은 왜 비워 뒀어?"
사무실의 웃음이 조금 줄었다.
박태성은 일부러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신입이 모르는 걸 드러내게 만들려는 질문이었다. 동시에 강진호가 어디까지 보는지 확인하려는 시험이기도 했다.
강진호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빈칸은 알고 있었다.
훗날 이승준 라인이 편법 승계 자금을 돌리는 통로의 첫 흔적. 장부에 남은 아주 작은 숨구멍. 금갑그룹이라는 괴물이 피를 빨아들이기 시작하는 입구.
하지만 지금 말하면 안 된다.
그는 2006년의 신입 강진호였다. 신입이 볼 수 있는 만큼만 봐야 했다.
"기준일이 다릅니다."
"기준일?"
"다른 항목은 월말 잔액 기준인데, 이 줄만 중간 정산 기준으로 보입니다. 확인 없이 임의로 맞추면 오히려 숫자가 틀어질 것 같습니다."
박태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걸 왜 표시 안 했지?"
"확인 가능한 오류와 확인이 필요한 공백은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누군가의 웃음이 끊겼다. 김미나도 숨을 삼켰다. 첫날 신입이 대리 앞에서 저렇게 말하는 건, 보통 무모함이나 건방짐으로 끝났다.
강진호는 눈을 내리지 않았다.
박태성은 한동안 그를 보았다.
"말은 잘하네."
"숫자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숫자 탓이라."
박태성은 종이를 내려놓았다.
"좋아. 그건 퇴근 전까지 확인 메모 달아. 그리고 금갑물산 회수 예정월도 다시 봐. 한 달 밀린 게 단순 오기인지, 자금팀 요청인지 구분해서."
"알겠습니다."
박태성이 물러났다.
그 순간 휴대전화가 또 울렸다.
강진호는 이번에도 보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2,430원.
상한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오후 2시 52분.
강진호는 물을 뜨러 가는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컵을 들고 비상계단 쪽으로 걸었다. 등 뒤에서 김미나의 시선이 따라붙었지만, 이번에는 멈출 수 없었다.
비상계단 문이 닫히자 사무실 소음이 잘렸다.
그는 가방에서 개인 노트북을 꺼냈다. 무선 모뎀 불빛이 깜박였다. 접속창이 열리는 몇 초가 지나치게 길었다.
대묵바이오.
현재가 2,480원.
매도 1호가에 남은 물량이 녹고 있었다. 2,500원 위로는 거의 비어 있었다. 누군가 마지막까지 누르려 했지만, 이미 매수세가 더 컸다.
계단 아래에서 직원 둘이 담배를 피우며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대묵바이오 상한가 간다는데?"
"그걸 누가 사. 그런 건 꼭 고점에서 터져."
"그래도 오늘 아침에 산 놈은 돈 벌었겠네."
강진호는 노트북 화면만 보았다.
오늘 아침에 산 놈.
그 말이 귓속에서 차갑게 굴렀다. 그는 오늘 아침에 산 정도가 아니었다. 전 재산, 카드 현금서비스, 미수까지 밀어 넣었다.
호가창이 한 번 크게 흔들렸다.
2,520원.
2,560원.
2,600원.
매도 잔량이 사라졌다.
그리고 붉은 글자가 화면 위에 박혔다.
[상한가]
순간 매수 잔량이 쌓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만 주였다. 곧 수십만 주로 불어났다.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가격. 팔고 싶으면 언제든 팔 수 있는 가격.
그게 더 위험했다.
강진호의 계좌 평가금액도 함께 뛰었다. 몇 시간 전까지 목을 조르던 미수금 숫자 옆에 미실현 수익이 붉게 붙었다.
평가손익은 이미 사회초년생 한 달 월급을 훌쩍 넘겼다.
몇 시간 만에.
사람들이 한 달 동안 상사의 눈치를 보고, 야근을 하고, 지하철 막차에 몸을 밀어 넣어 받는 돈이 화면 안에서 숫자 몇 줄로 생겨났다.
이래서 시장은 위험했다.
한 번 맛보면 노동의 속도를 견디기 힘들어진다. 숫자가 돈을 낳는 광경을 본 사람은, 자기 시간을 팔아 버는 돈을 예전처럼 대하지 못한다.
강진호는 웃지 않았다.
여기서 웃으면 마음이 풀린다. 마음이 풀리면 손이 빨라진다. 손이 빨라지면 너무 이르게 판다.
아직 여섯 번 남았다.
문제는 결제였다.
미수로 산 물량은 결제일 전까지 그를 압박한다. 상한가가 이어지면 해결된다. 하지만 하루라도 흔들리면 반대매매가 칼처럼 들어온다.
첫 상한가는 승리가 아니었다.
승리처럼 보이는 시작이었다.
강진호는 노트북을 닫았다.
확인은 끝났다.
이제 이 승리를 들키지 않아야 했다.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분위기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대묵바이오 이야기가 더 커졌다. 누군가는 게시판을 읽어 주었고, 누군가는 작전 냄새가 난다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사면 죽는 거야."
"상한가 따라붙는 애들이 제일 불쌍하지."
"아침에 샀으면 몰라도."
강진호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아침에 샀으면 몰라도.
그 말에 손끝이 미세하게 식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자금 대용표를 열었다. 금갑건설 빈칸에는 짧은 메모를 달았다.
정산 기준일 상이 가능성. 자금팀 원자료 확인 필요.
진실의 껍질만 남긴 문장.
그 안에 숨은 비자금 통로는 아직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박태성이 그의 뒤에 섰다.
"대묵바이오 난리라는데."
강진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렇습니까?"
"주식 안 한다더니 관심도 없나 보네."
"업무 중이라 확인 못 했습니다."
박태성의 입가가 비틀렸다.
"신입치고는 재미없게 사네."
"먼저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말은 순하게 했다. 그러나 박태성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강진호 책상 위의 서류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이거 오늘 끝내. 퇴근 생각하지 말고."
"네."
"그리고 내일부터는 네가 자금팀 원자료 가져와."
강진호의 눈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박태성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왜. 싫어?"
"아닙니다."
"직접 받아서 맞춰. 신입이면 발로 뛰어야지. 자금팀 애들이 뭐라 하는지도 듣고."
그건 단순한 심부름이 아니었다.
쓸 만한 놈이니 옆에 두고 보겠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어디까지 아는지, 누구와 접촉하는지 확인하겠다는 통제였다.
강진호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박태성이 돌아서자 휴대전화가 다시 진동했다.
[대묵바이오 상한가 안착. 매수잔량 급증]
강진호는 메시지를 지우고 업무 파일을 열었다.
사무실 창밖으로 2006년의 저녁빛이 내려앉고 있었다. 첫 출근일의 야근. 비어 있는 위장. 목을 조르는 미수금. 그리고 계좌에 찍힌 첫 상한가.
주변은 비웃었다.
박태성은 감시했다.
김미나는 걱정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알고 있었다.
오늘 대묵바이오를 비웃은 사람들은 내일 아침, 같은 종목의 매수 버튼 앞에서 손을 떨게 된다.
그때도 그는 팔지 않을 것이다.
팔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아직 팔 때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강진호는 금갑물산 회수 예정월 옆에 붉은 펜으로 작은 표시를 남겼다.
한 번의 상한가로는 금갑그룹을 무너뜨릴 수 없다.
그러나 한 번의 상한가는 모든 사냥의 시작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그의 전쟁 자금은 이제 막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