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주식은 무조건 오른다

2화: 첫 매수
모니터 오른쪽 아래 시계가 오전 9시 1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강진호는 마우스를 쥔 손에서 힘을 뺐다. 대양바이오의 호가창은 지나칠 만큼 조용했다. 매수 잔량은 얇고, 매도 잔량은 위쪽에 두껍게 쌓여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올라갈 힘이 없는 종목.
하지만 강진호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겁주기용 매도벽.'
진짜 물량은 이미 잠겨 있었다. 위에 쌓인 숫자는 가격을 누르기 위한 가짜 압박에 가까웠다. 20년 뒤의 기억이 아니어도, 금강그룹의 온갖 인수전과 주가 관리 작전을 뒤처리했던 강진호라면 알아볼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강진호 씨."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날아왔다.
강진호는 HTS 창을 업무 문서 뒤로 밀어 넣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재무기획팀장 박태식.
이름보다 먼저 몸이 기억하는 인간이었다. 첫 출근 첫날부터 신입을 몰아붙이고, 실수를 일부러 회의석상에서 밟아 버리던 남자. 나중에는 이승준의 편에 붙어 금강그룹 내부 자금 이동을 처리하던 실무 창구이기도 했다.
"네, 팀장님."
"첫날부터 화면이 바쁘네. 주식이라도 하나?"
사무실 공기가 순간 얇아졌다. 주변 파티션 너머로 몇몇 시선이 붙었다.
강진호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룹웨어 접속 확인 중이었습니다."
거짓말은 짧을수록 좋다. 길어지는 순간 변명이 된다.
박태식은 믿지 않는 눈으로 그를 훑었다. 그러나 첫날 아침부터 신입의 모니터를 뒤지는 건 그에게도 모양이 나쁘다고 판단했는지, 들고 있던 두꺼운 종이철을 강진호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쿵.
"그럼 접속 확인은 됐겠네. 점심 전까지 작년 계열사별 현금 흐름 정리해."
"점심 전까지 말씀이십니까?"
"왜. 못 하겠어?"
박태식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숫자 안 맞는 데 표시하고, 이유까지 달아. 금강은 학교가 아니야. 월급 받으러 왔으면 값을 해야지."
사무실 어딘가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예전의 강진호는 그 웃음소리에 얼굴부터 달아올랐다. 첫날부터 찍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고개를 숙이고, 질문도 제대로 못 한 채 종이 더미에 파묻혔다.
이번에는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강진호는 종이철을 받아 들었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감촉이 낯설지 않았다. 이 장부들, 이 항목들, 이 회사의 더러운 피가 흐르는 길.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첫 장을 넘긴 지 3분 만에 이상한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금강건설 단기대여금.
금액 자체는 크지 않았다. 신입사원이 봤다면 그냥 지나쳤을 숫자였다. 그러나 계열사 간 현금 흐름에서 특정 날짜만 비어 있었고, 그 빈칸은 훗날 금강그룹 편법 승계와 비자금 통로로 자라나는 작은 구멍이었다.
'너희는 이때부터 시작했군.'
강진호는 펜을 들었다가 멈췄다.
지금 그걸 표시하면 안 된다. 2006년의 신입 강진호가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눈에 띄는 순간 박태식은 그를 쓸 만한 도구가 아니라 위험한 놈으로 볼 것이다.
강진호는 붉은 펜으로 다른 곳을 표시했다.
부가세 환급 예정액 오기.
내부거래 중복 반영.
금강물산 매출채권 회수 시점 오류.
누구나 제대로 들여다보면 찾을 수 있지만, 아무도 귀찮아서 넘기는 것들. 신입이 발견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 하지만 박태식의 눈에는 충분히 박힐 만한 정확도.
그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았다. 숫자는 이미 머릿속에서 맞물렸다. 20년 동안 금강의 장부를 만졌던 손은 어떤 항목을 먼저 봐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진호 씨."
옆자리 김미나가 몸을 조금 기울였다.
"괜찮아? 첫날부터 저걸 다 하라는 건 좀 심한데."
"괜찮아."
"정말? 나도 조금 봐줄게. 팀장님 원래 신입한테 저래."
미나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섞여 있었다. 강진호는 잠깐 그녀를 바라봤다. 20년 전의 김미나. 아직 금강그룹이 어떤 괴물인지 모르고, 자신이 어떤 늪에 들어왔는지도 모르는 얼굴.
그녀에게 빚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오전 안에 끝낼 수 있어."
"오전 안에?"
김미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너 회계 전공 아니잖아."
"군대에서 숫자 많이 봤어."
"그게 말이 돼?"
강진호는 대답 대신 다음 장을 넘겼다. 김미나는 더 묻지 못하고 자기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지만, 힐끗거리는 눈길은 사라지지 않았다.
좋은 반응은 아니었다. 그러나 감수해야 했다.
너무 못해도 밟힌다.
너무 잘해도 의심받는다.
그 사이에서 줄을 타야 했다.
오전 11시 27분.
강진호는 정리한 자료를 들고 박태식의 책상 앞에 섰다.
"팀장님. 확인 끝났습니다."
박태식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벌써?"
"세 군데 오류가 있었습니다. 부가세 환급 예정액, 내부거래 중복 반영, 금강물산 매출채권 회수 시점입니다. 근거 페이지는 포스트잇으로 표시했습니다."
박태식은 종이철을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
처음엔 비웃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한 장씩 넘길수록 입매가 굳었다. 강진호가 표시한 부분은 전부 맞았다. 틀릴 수가 없었다.
"누가 도와줬어?"
"아닙니다."
"신입이 첫날부터 이걸 봤다고?"
"숫자가 맞지 않으면 티가 납니다."
강진호는 일부러 한 박자 늦게 덧붙였다.
"다만 전체 구조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박태식의 눈빛이 조금 풀렸다. 건방지게 모든 걸 아는 척하는 신입이 아니라, 감은 있지만 아직 자기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신입.
그렇게 보여야 했다.
"점심 먹고 다시 와."
"네."
"따로 줄 일이 있어. 신입치고 눈은 괜찮네."
칭찬이 아니었다. 목줄을 걸기 전 품질을 확인하는 말이었다.
강진호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자리로 돌아오는 길, 그의 입가가 아주 얇게 올라갔다.
금강건설 단기대여금의 빈칸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언젠가 이승준의 목을 조를 올가미. 아직은 땅속에 묻어 둘 시간이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
돈을 만든다.
점심시간이 되자 직원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김미나가 가방을 들고 강진호의 책상 앞에 섰다.
"구내식당 갈 거지?"
"잠깐 통화 좀 하고 갈게."
"첫날부터 밥 굶으면 진짜 찍혀."
"금방 갈게."
강진호는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엘리베이터 쪽이 아니라 비상계단 옆 휴게 공간으로 향했다. 오래된 자동판매기가 낮게 웅웅거렸고, 창밖으로는 2006년의 서울이 내려다보였다.
아직 낡고, 아직 느리고, 아직 많은 것이 싸던 도시.
그는 가방에서 낡은 개인 노트북을 꺼냈다. 회사 보안망에 개인 HTS를 띄우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무선 모뎀을 연결하자 답답한 속도로 접속 창이 떴다.
대양바이오.
현재가 2,180원.
거래량은 전일보다 조금 늘었지만, 아직 시장 전체의 관심을 받기 전이었다. 게시판은 오히려 악성 글로 가득했다.
임상은 무슨, 또 증자하려고 소문 뿌린다.
바이오주는 믿을 게 못 된다.
고점에 물린 사람들 탈출용 재료다.
강진호는 게시글을 빠르게 넘겼다. 공포는 때로 가장 값싼 매수 신호였다. 특히 누군가 의도적으로 가격을 누를 때는 더 그랬다.
그는 거래원 창을 확인했다.
특정 창구가 오전 내내 같은 방식으로 물량을 받아내고 있었다. 위로는 매도벽을 세우고, 아래로는 조용히 받친다. 가격은 못 오르게 막으면서 던지는 물량은 전부 삼킨다.
전형적인 매집의 마지막 단계.
'6월 셋째 주 화요일, 장 마감 후.'
기억은 선명했다.
대양바이오는 폐암 치료제 임상 2상 중간 결과를 발표한다. 결과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의 기대였다. 발표 다음 날부터 7거래일 연속 상한가. 뒤늦게 뛰어든 개인들은 고점에서 물렸고, 먼저 들어간 자들은 조용히 빠져나갔다.
그때 강진호는 그저 구경만 했다.
야근하느라, 돈이 없어서, 겁이 나서.
이번에는 아니다.
그는 계좌 잔고를 확인했다.
예수금 15,023,440원.
입사 축하금과 대학 시절 모은 돈 전부. 수수료와 세금을 감안하면 살 수 있는 주식 수는 많지 않았다. 대략 6,800주 남짓.
상한가가 일곱 번 이어지면 몇 배는 된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인생이 바뀌는 돈일 수 있다.
하지만 금강그룹을 무너뜨리기에는 먼지 같은 액수였다.
"작군."
강진호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첫 수익은 필요하다. 그러나 첫 수익만으로는 부족하다. 불씨를 산불로 만들려면 바람이 필요했다.
레버리지.
그 단어가 머릿속에 박혔다.
하지만 오늘은 아직 검증의 날이다. 과거와 현재가 같은 궤도로 움직이는지 확인해야 했다. 작은 변수 하나가 모든 계산을 망칠 수도 있었다.
강진호는 매수 창에 수량을 입력했다.
6,800주.
지정가 2,180원.
손가락이 엔터키 위에서 잠시 멈췄다.
옥상 난간 너머의 밤비가 떠올랐다. 이승준의 차가운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넌 끝까지 충직한 개로 남았어야지.
강진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주인은 기다리지 않는다."
엔터키가 눌렸다.
주문은 한 번에 체결되지 않았다.
2,180원에 일부만 체결되고, 나머지는 호가 아래에 걸렸다. 곧 누군가 2,170원까지 가격을 밀어 버렸다. 화면에 파란 숫자가 번졌다.
전 재산을 넣은 지 1분도 되지 않아 손실이 찍혔다.
보통 사람이라면 손이 떨릴 순간이었다. 그러나 강진호는 주가가 아니라 아래 호가를 보았다.
밀린 가격 아래에서 물량이 사라지고 있었다.
누군가 받아먹고 있다.
'맞다.'
기억과 현재가 맞물렸다. 세력은 아직 올릴 생각이 없다. 점심시간의 얇은 거래를 이용해 마지막 투매를 유도하는 중이다. 겁먹은 개인이 던지는 물량을 받아낸 뒤, 오후장부터 천천히 잠글 것이다.
강진호는 미체결 주문을 취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2,170원에 남은 현금을 맞춰 추가 주문을 걸었다.
몇 초 뒤 체결음이 났다.
계좌 평가금액은 벌써 원금보다 조금 낮아져 있었다. 하지만 체결 내역은 선명했다.
대양바이오 6,905주.
평균단가 2,176원.
첫 탄환이 장전됐다.
"강진호 씨!"
계단 아래에서 김미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팀장님이 찾으셔. 너 밥도 안 먹고 뭐 해?"
강진호는 노트북 화면을 닫았다.
"금방 갈게."
그는 가방을 챙기며 주머니 속 통장을 만졌다. 가진 돈은 거의 사라졌다. 남은 것은 점심값과 교통비 정도. 정상적인 신입사원이라면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상적인 신입사원이 아니었다.
대양바이오가 터지는 순간, 더 큰 돈을 끌어와야 한다. 신용, 미수, 카드론, 단기 대출. 위험한 줄 몰라서가 아니었다. 위험이 언제 폭발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밟을 수 있는 길이었다.
박태식은 회의실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진호 씨. 밥은 먹었나?"
"아직입니다."
"그럼 잘됐네."
박태식이 얇은 파일을 내밀었다. 표지에는 계열사 자금 운용 현황이라고 적혀 있었다.
"밥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게 있어."
강진호는 파일을 받아 들었다.
종이의 무게가 손바닥에 묵직하게 얹혔다. 금강그룹의 피가 흐르는 통로. 언젠가 자신이 뜯어낼 혈관의 가장 바깥쪽이었다.
그 순간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체결 완료]
강진호는 고개를 숙인 채 아주 작게 웃었다.
첫 출근.
첫 감시.
첫 매수.
그리고 첫 번째 반역은 이미 시작됐다.
문제는 하나뿐이었다.
돈이 너무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