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6화: 숲의 왕
숲의 공기는 차가웠고, 비현실적일 정도로 무거웠다.
머나먼 외우주를 항해한 끝에 도달한 이 이름 없는 행성은 겉보기에 지구의 울창한 침엽수림을 빼닮아 있었다. 그러나 그 크기와 깊이는 인류의 모성(母星)에 존재하던 그 어떤 대자연과도 궤를 달리했다.
하늘을 가릴 듯 솟아오른 거목들은 수백 미터에 달했고, 그 둥치는 웬만한 고층 빌딩보다도 굵었다. 거대한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조차 미세한 푸른빛을 머금고 있어, 숲 전체가 거대한 심해 깊은 곳에 가라앉은 유적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팀장님, 신호의 발신지가 임계 영역에 도달했습니다. 정북방향, 약 250미터 앞입니다."
보안대원 박민우가 헬멧의 HUD(전방표시장치)를 터치하며 조용히 보고했다. 그들의 몸을 감싸고 있는 블랙 탄소 나노 강화 슈트는 숲속의 다습한 공기와 미지의 유기 포자들을 걸러내며 미세한 구동음을 내고 있었다.
강이안은 오른손에 쥔 고출력 레이저 카빈의 그립을 꽉 쥐었다. 슈트 내부의 환경 제어 장치가 작동하고 있음에도, 등덜미로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하린, 궤도상의 아르카디아와의 통신 상태는 어떤가?"
이안이 헬멧 내부의 통신 채널을 활성화하며 물었다.
[여전히 엉망이에요. 행성 전체를 뒤덮고 있는 전자기적 간섭이 이 숲에서 유독 강해지고 있어요. 지상 500미터 이상으로 안테나를 쏘아 올리지 않는 한 함선과의 다이렉트 링크는 불가능해요. 조심하세요, 이안 팀장님. 그 구역의 에너지 흐름이 비정상적으로 요동치고 있어요.]
수석 항법사 윤하린의 목소리가 붉은색 노이즈 스펙트럼과 함께 지직거리며 간신히 들려왔다.
이안은 턱 끝으로 수신 확인 버튼을 눌렀다. 그들이 아르카디아의 탐사 셔틀을 타고 이 지옥 같은 밀림에 강하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행성 궤도에 진입한 직후 탐지된 의문의 전자기 신호.
그것은 놀랍게도 22세기 초반 지구 연방군이 사용하던 초장거리 SOS 구조 프로토콜의 변조 패턴과 완벽히 일치했다. 수천만 년의 시공간을 건너온 이 미지의 별에, 자신들보다 먼저 도달한 인류의 흔적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과거의 선발대인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문명의 덫인가.
사락, 사각.
발밑에서 젖은 흙과 부서진 나뭇가지들이 비명을 질렀다. 이안을 선두로 한 세 명의 보안팀원들은 철저히 간격을 유지한 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전진했다. 숲의 종심(縱深)으로 파고들수록 식생은 기묘하게 변화했다. 거대한 나무의 표면에는 마치 기하학적 회로 기판을 연상시키는 선명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고, 그 틈새로 희미한 은빛 수액이 맥동하듯 흐르고 있었다.
"이건 자연물이라고 보기 힘든데..."
대원 한 명이 카빈에 장착된 스캐너를 들이대려던 찰나였다.
주변의 소음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시에 사라졌다.
바람에 흔들리던 나뭇잎 소리도, 나뭇가지 사이를 바쁘게 뛰어다니던 이름 모를 생명체들의 날갯짓 소리조차도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숲을 채우고 있던 공기가 일순간 굳어버린 듯한, 숨이 막힐 것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최상위 포식자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선 침입자를 인지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경계해."
이안의 나직한 명령과 함께 대원들이 서로의 등 뒤를 지키며 총구를 사방으로 겨누었다.
슈트 내부의 생체 센서가 요란하게 경고음을 울리기도 전에, 군인으로서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었던 이안의 신경망이 먼저 반응했다. 머리 위의 거대한 나뭇잎들이 찢겨 나가며 엄청난 질량의 무언가가 수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전원 회피-!"
쾅!
대지가 굉음과 함께 주저앉았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수십 미터에 달하는 흙먼지와 돌바위 파편들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이안은 강화 슈트의 다리 부분에 내장된 마이크로 스러스트를 가동해 뒤쪽으로 기동했다.
공중에서 균형을 잡고 착지한 이안의 시야 속으로, 먼지구름을 헤치며 나타난 괴수의 윤곽이 잡혔다.
"크어어어어어어어-!"
숲의 모든 나무를 뒤흔드는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 음압만으로 슈트의 외부 마이크 센서가 과부하를 일으켜 삐 소리를 냈다.
그것은 거대한 늑대의 형상을 한 야수였다.
어깨높이만 최소 8미터, 몸길이는 15미터에 이르는 압도적인 질량. 밤바다보다 짙은 칠흑빛의 가죽 위로 피처럼 붉은 빛을 내뿜는 룬 문자들이 사슬처럼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특히 녀석의 이마에 박힌 세 개의 눈은 핏빛 안광을 뿜어내며 이안 일행을 꿰뚫어 보았다.
이 영역의 지배자이자, 숲의 신으로 군림해 온 괴수였다.
"미친, 저 크기는 뭐야?!"
보안대원 민우가 비명을 지르며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슈우우웅-!
레이저 카빈에서 방출된 순백의 열선이 대기를 가르며 늑대 괴수의 눈가로 쇄도했다. 금속 장갑판조차 단숨에 관통하는 가공할 화력이었다.
그러나 늑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치이이이익-!
레이저가 야수의 피부에 닿기 직전, 몸을 덮고 있던 붉은 룬 문자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하며 반투명한 붉은색 장벽을 전개했다. 레이저의 고열 에너지는 그 붉은 베일 위에서 물을 맞은 불씨처럼 허무하게 산화하여 흩어졌다.
"광학 병기가 전혀 안 통합니다! 물리 장벽이 아니라 에너지 극성 자체를 상쇄시키고 있어요!"
민우가 조작 패널을 다급히 두드리며 외쳤다.
"동요하지 마! 확산 유탄 아머 가동, 측면으로 산개한다!"
이안은 빠르게 분석했다. 저 장벽이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상쇄시키는 원리라면, 물리적인 충격력으로 과부하를 걸어야 했다.
이안이 허리춤의 발사 장치를 가동하자 두 발의 플라즈마 유탄이 호선을 그리며 늑대의 발밑으로 날아갔다.
쿠콰콰쾅-!
거대한 불길과 파편이 야수를 덮쳤다. 폭발의 충격으로 녀석의 붉은 장벽이 크게 흔들렸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안은 슈트의 출력 제한을 해제한 뒤 늑대의 왼쪽 측면으로 돌진했다. 레이저 카빈의 총구를 아래로 꺾고, 슈트 팔뚝에 장착된 초진동 단분자 블레이드를 작동시켰다. 초당 수만 번 진동하는 칼날이 푸른빛을 띠며 회전했다.
서걱!
이안이 늑대의 발목을 스치며 지나갔다. 단분자 칼날이 녀석의 가죽에 닿는 순간, 불꽃과 함께 기분 나쁜 마찰음이 고막을 찔렀다. 룬 문자가 새겨진 가죽은 일반적인 금속보다 단단했다. 간신히 가느다란 상처를 내고 피 한 방울을 흘리게 했을 뿐이었다.
"크릉...!"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벌레 같은 존재에게 분노한 늑대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로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키이이이잉!
대기를 찢으며 날아오는 것은 단순한 발톱이 아니었다. 붉은색 마나가 날카로운 진공의 칼날이 되어 공간 자체를 베어내고 있었다.
"큭, 충격 흡수막 전개!"
이안은 칼날을 맞닥뜨리기 직전 슈트의 척추부에 내장된 압축 그래핀 전자기 실드를 가동했다.
콰아아앙!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이안의 몸이 대포알처럼 날아가 거대한 나무 둥치에 처박혔다.
쿠웅!
"커헉!"
강화 슈트 내부의 충격 흡수용 젤이 온몸을 압박했음에도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격통이 밀려왔다. 슈트의 흉부 장갑판에 선명한 세 줄기의 균열이 가 있었다. 만약 맨몸이었다면 형체도 남지 않고 으스러졌을 공격이었다.
"팀장님!"
남은 대원들이 엄호 사격을 가하며 분투했지만, 늑대는 장벽을 두른 채 끈질기게 이안을 향해 다가왔다. 녀석의 벌어진 주둥이 사이로 붉은 화염의 구체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숲의 왕이라는 이명에 걸맞게, 침입자를 완전히 흔적도 없이 소멸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긴 마도 포격이었다.
포탄이 발사되기 직전, 숨이 멎을 듯한 열기가 숲을 채웠다.
이안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카빈을 고쳐 잡으며 이빨을 악물었다. 피할 수 없다. 슈트의 에너지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기동성은 상실되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하늘의 붉은 불꽃이여, 내 부름에 응해 인과를 불태워라!"
숲의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맑고 투명하면서도 힘 있는 여성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쿠구구구둥-!
하늘을 가리고 있던 울창한 잎사귀들이 불타오르며, 수십 개의 거대한 화염 창이 유성처럼 늑대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콰콰콰콰쾅!
마치 대규모 폭격이 시작된 것처럼 숲속이 붉은 화염과 폭풍으로 뒤덮였다. 늑대가 전개했던 붉은 룬 장벽이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끝내 균열을 일으키며 산산조각 나 깨져 나갔다. 순수한 원소의 마력을 극한으로 응축해 떨어뜨린 대마법의 위력이었다.
"캬아아악!"
늑대가 처음으로 비명을 지르며 뒤로 크게 물러섰다.
그 화염의 장막을 뚫고, 은빛 대검을 든 한 사내가 번개처럼 허공을 가르며 하강했다.
"어디서 굴러 들어온 짐승 놈이 감히 날뛰느냐!"
사내의 대검 끝에서 푸른빛의 검기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와 늑대의 등허리를 내리쳤다.
스콰아아아!
두꺼운 늑대의 가죽이 찢어지며 검붉은 피가 허공으로 튀었다. 늑대는 고통에 울부짖으며 옆으로 굴렀다.
이안은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자신들의 앞에 내려선 인물들을 바라보았다.
정교하게 가공된 가죽 갑옷 위에 푸른색 망토를 걸치고 투박하지만 날카로운 검을 쥔 청년 전사. 그리고 그 뒤에서 화려한 룬 무늬가 수놓아진 하얀 로브를 입고, 붉은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쥐고 서 있는 아름다운 은발의 소녀.
"당신들... 괜찮은가?"
지팡이를 든 소녀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깊고 신비로운 에메랄드빛이었고, 이안 일행의 기괴한 검은 장갑복을 바라보며 미미한 호기심을 빛내고 있었다.
그것은 공상 과학 소설 속에서나 보던 마법사와 검사의 모습이었다.
우주의 끝에서, 현대 문명의 방랑자들은 마침내 이 별의 찬란한 중세 판타지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들의 눈앞에서 숲의 왕이 다시 한번 눈을 부릅뜨며 대지를 짓눌렀고, 검과 마법, 그리고 레이저가 교차하는 첫 번째 전장이 서서히 막을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