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40화: 거인의 눈물
[LOCATION: SUBTERRANEAN IRON FORTRESS - MAIN HIVE REACTOR CORE]
[TIME: MORNING / REACTOR CONTROL SEQUENCE]
쿠구구구구-!
높이 50미터에 달하는 육중한 초합금 아이리스 관제문이 천천히 회전하며 열리자 둔탁한 기계 마찰음과 함께 강렬한 붉은 플라즈마 열압력이 방성실 전체로 쏟아져 나왔다.
내부는 지상의 그 어떤 대성당이나 지하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득히 넓고 광활했다. 거대 암공 중앙에는 직경 백 미터가 넘는 거대한 구형 퀀텀 동력로 '티탄의 심장'이 공중에 떠오른 채 핏빛 에너지를 이글거리며 번쩍이고 있었다.
동력로 하단에서는 수십 가닥의 초합금 파이프라인을 따라 눈부신 주홍빛 액상 퀀텀 입자들이 지하 사방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CRITICAL ALERT: UNAUTHORIZED SYSTEM OVERRIDE ATTEMPT]
[ALL DEFENSE PROTOCOLS ENGAGED - HIVE OVERSEER ACTIVATION]
쿠웅-!
이안 일행이 중앙 단단으로 통하는 공중 초합금 통로에 발을 내딛자마자 붉은 반응로 중앙에서 둔중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형 동력로 상부 패널이 사선으로 분열되며 10미터 크기의 칠흑색 기계 오버시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에 핏빛 전술 라인이 얽혀 있는 하이브 오버시어(HIVE OVERSEER)는 양팔 대신 네 개의 거대한 초고열 플라즈마 포신을 비스듬히 세우고 있었다.
"치명적 인가 침해 감지. 반응로 순결성 보존을 위해 침입자 분해 프로토콜을 집행한다."
기계음이 공진하며 네 개의 포신 끝에서 핏빛 광선 편대가 일제히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앙-!
공중 통로의 상판이 이리저리 찢겨 나가며 고열 플라즈마 화염이 사방으로 솟구쳤다.
"이안 님, 전방의 플라즈마 열압력이 너무 높습니다!"
리아가 옥빛 지팡이를 단단히 쥐고 에메랄드빛 정령 환원 결계를 전개했다.
파아앗-!
지하 깊은 곳에 억눌려 있던 고대 환경 조절 입자들이 리아의 마력과 호응하여 투명한 보호막을 형성했다. 쇄도하던 핏빛 플라즈마 탄환들이 에메랄드빛 보호막에 부딪히며 소멸음과 함께 청백색 정령 이슬로 환원되어 산산이 부서졌다.
"A-09! 중앙 제어 단단까지의 거리는?"
이안이 퀀텀 아크 대검을 그러잡으며 발키리 프레임의 제트 부스터를 점화했다.
"직선거리 120미터입니다. 하지만 오버시어의 주 위상 결계가 제어 단단을 이중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A-09가 은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답했다.
"우리가 길을 연다. 단단에 도착하는 즉시 원형 제어 코드를 주입해!"
[LOCATION: TITAN'S HEART - CENTRAL PODIUM]
[TIME: MORNING / CLASH WITH THE HIVE OVERSEER]
파아앙-!
이안의 몸이 황금빛 전술 입자를 흩날리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오버시어가 반응로의 동력을 직접 끌어써 네 개의 포신을 다시 이안에게 집중시켰다. 핏빛 레이저 줄기 수십 개가 허공을 교차하며 그물의 형상으로 이안을 압박했다.
"그렇게 두지 않는다!"
리아가 지팡이를 세게 그어 내리며 주문을 외쳤다.
"오로라 서큘레이션 - 고대 정령 열압 압착!"
콰르르릉-!
공중에 흩어져 있던 에메랄드빛 입자들이 폭발적인 냉각 소용돌이로 변하며 오버시어의 네 포신 표면을 감쌌다. 급격한 온도 격차로 인해 포신 금속 장갑에 균열이 생기며 주홍빛 열기가 사방으로 새어 나왔다.
[WARNING: CANNON MODULE OVERHEAT DETECTED]
오버시어의 공격 축이 순간적으로 흐트러진 그 찰나를 이안은 놓치지 않았다.
"발키리 프레임 - 풀 오버드라이브!"
위잉- 콰아아아앙-!
이안의 등 뒤에서 3단 전술 부스터가 한계치를 넘어 폭발했다. 이안은 번개와도 같은 속도로 오버시어의 정면으로 쇄도했다. 황금빛 전술 입자로 둘러싸인 퀀텀 대검이 거신의 중앙 유기 장갑을 사선으로 베어 넘겼다.
서걱- 콰지직-!
오버시어의 흉부 코어가 비명을 지르며 반토막으로 갈라졌다. 거대한 칠흑색 기계 거신이 사방으로 청백색 스파크를 뿜어내며 중앙 용암 암공 아래로 추락했다.
콰아아아앙-!
오버시어가 파괴됨과 동시에 중앙 제어 단단을 둘러싸고 있던 핏빛 보호막이 허물어지며 차가운 퀀텀 콘솔 단말이 모습을 드러냈다.
[LOCATION: ANCIENT CORE NODE - ROOT CONSOLE]
[TIME: MORNING / OVERRIDE & REBOOT]
"지금이다, A-09!"
이안과 리아가 제어 단단 위로 가볍게 착지했다.
A-09가 망설임 없이 콘솔 중심부에 다가가 자신의 생체 단말을 접속시켰다. 이안 역시 가슴 장갑 보관함에서 청백색으로 빛나는 '아르카디아 원형 제어 코드' 크리스탈 조각을 꺼내 중앙 인가 홈에 밀어 넣었다.
쿠구구구구-!
[PROJECT ARCADIA MASTER OVERRIDE KEY DETECTED]
[AUTHENTICATING USER: SECURITY OFFICER KASIAN / SUBJECT A-09]
[AUTHORIZATION LEVEL 0: ROOT EXECUTION GRANTED]
성소 내부 전체를 흔들던 핏빛 경고음이 순간 뚝 멈췄다.
중앙 콘솔 표면에서 솟구쳐 나온 청백색 퀀텀 빛줄기가 허공으로 뻗어 나가며 구형 동력로 '티탄의 심장'을 감싸기 시작했다. 허공에 고대 인류의 정밀한 글자와 중앙 제어 시스템 음성이 울려 퍼졌다.
[SYSTEM LOG: EARTH-FINAL MAIN REACTOR UNIFIED CORE]
[NOTICE: OVERRIDDEN AGGRESSIVE PURGE PROTOCOL]
[STANDBY MODE ENGAGED - RECOVERING ORIGINAL ECOLOGICAL HARMONY]
웅- 웅- 웅-
동력로 중심부에서 불길하게 박동하던 핏빛 붉은 불빛이 점차 온화하고 영롱한 푸른빛과 옥빛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동력로 하단 파이프라인에서 쏟아지던 주홍빛 플라즈마 폭포도 투명하고 맑은 옥색 입자의 줄기로 변하여 지하 깊은 암공으로 흘러내렸다.
그 모습은 마치 수천만 년 동안 어둠 속에서 대지를 지켜온 거대한 거신이 마침내 안도의 눈물을 흘리는 듯한 경이로운 장관이었다.
"이건... 기계의 파괴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대지를 살리는 생명의 파동이에요."
리아가 손을 내밀어 허공을 감싸는 옥빛 정령 입자들을 바라보며 벅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A-09가 홀로그램 창에 떠오른 고대 기록 데이터를 읽어 내려갔다.
"이 메인 반응로는 대륙을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대멸망 당시 황폐해진 지구의 지각을 유지하고 훗날 돌아올 인류 생존자들에게 깨끗한 대기와 환경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설계된 인류 문명의 유산이었습니다."
A-09의 은빛 눈동자에 희미한 온기가 감돌았다.
"수천만 년의 세월 동안 세라프 AI 통제망의 왜곡으로 공격 프로토콜이 오작동하고 있었지만 본래의 역할은 이 대지를 품는 방주였던 것입니다."
[LOCATION: SUBTERRANEAN HIVE CORE - DORMANT CHAMBER]
[TIME: MORNING / TEARS OF THE GIANT]
위잉- 웅-
지하 3,000미터 기계 도시 '아이언 포트리스' 전역을 가득 채우고 있던 센티널 메카들과 자율 살상 드론들의 붉은 안구 센서가 일제히 차분한 푸른색으로 바뀌며 침묵에 빠져들었다.
지상 루미나르 왕국 전선과 붉은 성채 산맥을 메우고 있던 수만 대의 철갑 기병과 공성 거신들 역시 동작을 멈추고 제자리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전선의 철의 군대가... 모두 멈췄습니다!"
붉은 성채 관제소에서 지하 마력 반응을 모니터링하던 벨트란 고위마도사의 감격 어린 전음이 통신기를 통해 울려 퍼졌다.
"루미나르 왕국과 대륙 전역이 구원받았습니다! 카시안 님, 리아 양, 해냈군요!"
이안은 퀀텀 아크 대검을 집어넣고 천천히 숨을 고르며 구형 동력로 아래로 떨어지는 옥색 빛의 폭포를 바라보았다.
'거인의 눈물.'
고대 인류가 이 땅에 남긴 슬프고도 위대한 사랑의 증거였다. 대륙을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철의 군세 재앙은 마침내 완벽히 정지되었으며 2부에 걸쳐 이어진 신화 대륙의 거대한 시련은 평화의 결말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삐이이이-!
완전히 안정화된 메인 콘솔 중앙에서 차가운 청색 빔 입자 하나가 천장을 뚫고 하늘 높이 쏘아 올려졌다.
[ALERT: LONG-RANGE QUANTUM TRANSMISSION ENGAGED]
[DESTINATION: EARTH-ORBITAL MOON BASE 'SELENA']
[DATA SYNC: HUMAN GENOME RECOVERY PROTOCOL COMPLETED]
이안의 눈매가 날카롭게 좁아졌다.
"이 신호는... 어디로 향하는 거지?"
A-09가 허공에 떠오른 차분한 좌표 홀로그램을 올려다보며 나지막하게 답했다.
"지상 위 하늘... 먼 옛날 인류가 달이라 부르던 외궤도 베이스 '셀레나'입니다. 지하 제어 반응로가 봉인되면서 상위 관제망에 인류 씨앗의 완전 회환 프로토콜이 송출되었습니다."
리아와 이안은 일제히 고개를 들어 옥빛 정령 빛과 청백색 퀀텀 전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지심 성소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대륙의 재앙은 막아냈지만 행성 아르카디아, 아니 수천만 년 후의 지구 문명이 간직한 진정한 신화의 베일은 이제 막 3부를 향해 열리고 있었다.
이안은 가슴 장갑을 단단히 잡으며 눈앞의 푸른빛 동력로를 향해 강렬한 눈빛을 내던졌다.
"인류의 옛 고향... 달의 진실을 향해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다."
거인의 눈물이 조용히 흩날리는 지심 성소 속에서 승리자들의 비장한 맹세가 차분하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