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37화: 철의 군대
[LOCATION: SILVERWALL TEMPLE - GENETIC ARCHIVE ALTAR]
[TIME: NIGHT / SUBTERRANEAN BREACH]
쿠구구구구-!
실버월 고대 사원 중앙 유전자 아카이브 성소 전체가 비명 같은 금속 마찰음과 함께 거칠게 흔들렸다. 원형 제단 바닥에 매설되어 있던 초합금 장갑판들이 차례로 찢겨 나가며 기계 오버로드 경고음이 가혹하게 울려 퍼졌다.
[WARNING: SUBTERRANEAN SILO HATCH OPENED]
[PROJECT IRON MECHA ARMY - DEPLOYING VANGUARD UNITS]
"성소 바닥 지하 격납고 문이 강제로 열리고 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고대 퀀텀 마력 반응이 솟구쳐 오르고 있어요!"
리아가 옥빛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찍으며 소리쳤다.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 전개된 오로라 빛 정령 방벽이 바닥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적 열기를 겨우 막아섰다.
콰아앙-!
파쇄된 초합금 암반 구멍 사이로 핏빛 렌즈를 일제히 점등한 철갑 기계 병기들이 쇄도해 나왔다. 높이 3미터에 달하는 자율 살상 병기 '아이언 뱅가드(IRON VANGUARD)' 선봉대였다. 놈들의 양손에는 고주파 퀀텀 칼날이 장착되어 있었고 흉부 융합로에서 방출되는 주황색 플라즈마 열기가 성소 공기를 순식간에 달구었다.
- 적성 생체 반응 탐지. 제3차 문명 재건령 미승인 객체. 즉시 멸균 절차를 시작한다.
기계 합성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무수한 퀀텀 레이저 탄환들이 성소 전체로 사방 분사되었다.
"A-09, 유전자 캡슐 제단을 백업 보호해라! 리아는 후방에서 오로라 쉴드를 유지해!"
이안은 고함을 지르며 어깨의 에테르 바스터 포문을 가동했다.
투콰콰콰쾅-!
발키리 프레임에서 분출된 고전압 플라즈마 탄환들이 공중으로 솟구치던 선봉기 3대의 장갑을 꿰뚫었다. 파쇄된 철갑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와중에도 뒤따르던 아이언 뱅가드 기병들은 쉬지 않고 이안의 머리 위로 고주파 칼날을 내리쳤다.
쿠웅-!
이안은 발키리 부스터를 순식간에 역분사하여 칼날을 비껴낸 뒤 대검을 쥐고 선봉기의 흉부 핵 코어를 베어 넘겼다.
서걱-!
황금빛 퀀텀 아크가 뿜어져 나오며 기계 병기의 관절을 끊어놓자 녀석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산산조각이 났다.
크아아아앙-!
사원 천장 회랑 틈새를 부수고 들어온 검은 용 니드호그가 웅장한 포효와 함께 성소 바닥을 향해 초고열 나노 드래곤 브레스를 분사했다. 쏟아져 내린 청백색 드래곤 파이어가 바닥 구멍에서 끊임없이 기어 나오던 기계 선봉대 십여 대를 순식간에 쇳물로 용융시켜 버렸다.
"통로가 확보되었다! 지상 계곡으로 철수하며 전열을 정비한다!"
이안은 퀀텀 대검을 거두고 A-09와 리아를 이끌고 사원 출구로 쾌속 돌진했다.
[LOCATION: SILVERMIST VALLEY - STRATEGIC OVERLOOK]
[TIME: NIGHT / CONTINENTAL EMERGENCY]
치이이이익-!
실버미스트 수림 외곽이 바라보이는 전략적 절벽 전망대에 다다르자 A-09의 은빛 눈동자 속에서 궤도 릴레이 중계 홀로그램이 사방으로 펼쳐졌다.
[ORBITAL RELAY SYNC COMPLETE]
[ESTABLISHING TACTICAL LINK - RED FORTRESS COMMAND]
지지직-!
공중에 떠오른 입체 영상 속에서 붉은 성채 관제소를 지키던 카엘 기사단장과 벨트란 고위마도사의 긴박한 얼굴이 떴다.
"이안 님! 무사하셨군요! 지금 대륙 전역에서 유래 없는 천지개벽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카엘 기사단장이 검자루를 잡은 손을 덜덜 떨며 긴급 보고를 전했다.
"왕국 동부 암석 지대와 중앙 평원 지하 깊은 곳에서 정체불명의 고대 기계 기지들이 차례로 지상을 뚫고 올라왔습니다! 핏빛 빛을 발하는 기계 군세가 왕국 경계선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원 지하뿐만 아니라 대륙 전역에 봉인되어 있던 철갑 군세가 일제히 각성한 거다."
이안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벨트란 고위마도사가 고서적 문언 데이터 패널을 띄우며 떨리는 음성으로 덧붙였다.
"고대 인류의 전쟁 기록에 따르면 이 병기들은 '아이언 하이브(IRON HIVE)'라 불리는 완전 자율 살상 메인 코어의 통제를 받는 군대입니다. 중앙 지휘 코어의 신호를 차단하지 못하면 수십만 대의 철갑 병기가 온 대륙을 초토화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지휘 코어의 신호 원점을 찾아야 한다. A-09, 대륙 데이터망 스캔 결과를 보고해라."
이안의 질문에 A-09가 단조롭지만 명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륙 동북쪽 지하 3천 미터 지점에 위치한 '아이언 포트리스(IRON FORTRESS)' 메인 반응로에서 총지휘 파동이 송출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지상 전선을 형성한 선봉 지휘기의 모듈을 확보해야만 요새의 방벽 해제 코드를 추출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림 외곽 계곡으로 쏟아지는 선봉 지휘기를 물리쳐야겠군. 카엘 기사단장, 수림 계곡 입구에 방어선을 구축해라. 우리가 곧 합류하겠다!"
"알겠습니다! 루미나르 기사단 전원, 계곡 입구로 출격한다!"
카엘의 결연한 음성과 함께 원격 통신 회로가 닫혔다.
[LOCATION: SILVERMIST VALLEY - FRONT LINE]
[TIME: DAWN / MASSIVE MECHA CLASH]
콰구구구구-!
새벽녘의 실버미스트 계곡 입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고대 정령 안개가 걷힌 숲 너머로 수천 대의 철갑 병기들이 지축을 울리며 밀려들고 있었다.
진형 앞쪽에는 높이 5미터에 달하는 중장형 철갑 기병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뒤쪽 포병대에서는 주황색 고주파 레이저 캐논이 연속 분사되며 산맥 전체를 폭파하고 있었다.
콰콰콰콰쾅-!
"전원 방어 전계! 마도 방호 벽을 구축하라!"
카엘 기사단장의 호령에 맞춰 루미나르 기사단의 은빛 방패와 마도사들의 마력 장막이 겹쳐지며 전면 사격을 겨우 받아냈다. 그러나 쏟아지는 철갑 병기들의 입체 포격 속에서 방어선은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하늘을 가르는 거대한 창공의 포효와 함께 은빛 제트 부스터 화염이 새벽하늘을 물들였다.
쿠아아아앙-!
검은 용 니드호그가 상공에서 수직 강하하며 철갑 기병대의 대열 한가운데로 퀀텀 드래곤 파이어를 퍼부었다. 초고열 나노 입자 화염이 대지를 덮치자 단단했던 기계 기병 수십 대가 붉은 용암처럼 녹아내렸다.
"지금이다! 전선에 돌입한다!"
이안은 발키리 전술 프레임의 부스터를 최대 출력으로 점화하며 계곡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파아앙-!
공중에서 강하한 이안이 퀀텀 아크 대검을 허공에 크게 들이쳤다.
쿠웅- 서걱-!
황금빛 참격 파동이 전방 30미터를 휩쓸며 적 포병대의 레이저 포신들을 일제히 두 토막 내버렸다.
"리아, 오른쪽 측면 포격을 마비시켜!"
"네! 정령 공명 펄스 전개!"
리아가 옥빛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리며 천상의 마력 펄스를 사방으로 방출했다. 오로라 입자가 철갑 병기들의 센서 노드에 파고들자 녀석들의 핏빛 렌즈가 깜빡이며 일시적인 과부하 교란에 빠졌다.
이안은 둔화된 적진 한가운데로 거침없이 침투하며 퀀텀 대검의 칼날을 연속으로 휘둘렀다. 쇠붙이가 잘려 나가는 비명과 함께 철갑 기병들의 장갑판이 연달아 터져 나갔다.
[LOCATION: SILVERMIST VALLEY - SUBTERRANEAN GATE]
[TIME: DAWN / COMMAND CORE RECOVERY]
콰아아아앙-!
전선 중앙 지하 암반이 완전히 붕괴하며 수림 계곡 전체를 압도하는 거대 철갑 기체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 10미터에 달하는 중장형 살상 병기 '아이언 타이탄 커맨더(IRON TITAN COMMANDER)'였다. 녀석의 어깨에는 4연장 퀀텀 중력포가 탑재되어 있었고 흉부에는 대륙 지휘 회로와 연동된 청빛 마스터 코어가 불길하게 빛나고 있었다.
- 지휘 통제권 방어 프로토콜 가동. 침입자 중점 제거 명령 수행.
아이언 타이탄 커맨더가 어깨의 중력포를 이안 일행을 향해 조준했다.
위잉- 콰아아앙-!
공기를 왜곡시키는 묵직한 중력 탄환이 발사되어 계곡 바닥을 쇄도했다. 충격파만으로 바위에 거대한 구덩이가 파이고 주변 기사단의 방패가 산산조각 났다.
"크윽... 중력장 왜곡 사격인가!"
이안은 발키리 부스터의 측면 노즐을 순간 제트 분사하여 중력 탄환의 궤적을 아슬아슬하게 비껴냈다. 충격 여파로 전술 프레임의 측면 장갑이 과부하 경고를 울렸지만 이안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놈의 흉부 반응로 코어가 지휘 신호의 중심이다. 단번에 뚫는다!"
이안은 퀀텀 아크 대검의 전술 한계 출력 레버를 당겼다. 대검의 칼날 전면에 황금빛 퀀텀 에너지가 극상으로 압축되며 고주파 진동음을 뿜어냈다.
[OVERDRIVE MODE ACTIVATED - QUANTUM GENESIS STRIKE]
카아아앙-!
이안이 대지 바닥을 차고 올라선 순간 아이언 타이탄 커맨더가 흉부에서 아공간 마력 칼날을 전개해 내리쳤다. 이안은 공중에서 부스터를 역사선으로 튕겨 녀석의 아공간 칼날을 비껴낸 뒤 커맨더의 흉부 코어를 향해 대검을 직선으로 찔러 넣었다.
푸확-!
황금빛 퀀텀 파동이 타이탄의 중장갑을 뚫고 들어가 흉부 마스터 반응로의 회로를 유린했다.
콰콰콰콰쾅-!
거대한 철갑 타이탄의 내부에서 연속 폭발이 일어났다. 핏빛 렌즈의 빛이 꺼지며 10미터 크기의 기계 거구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지휘기를 잃은 주변의 선봉 철갑 병기들 역시 동작을 정지하며 일시 동결 상태에 빠졌다.
"지금입니다, 이안 님!"
A-09가 신속히 달려와 쓰러진 타이탄 커맨더의 흉부 틈새로 손을 밀어 넣었다. 은발 소녀의 손끝에서 은빛 전송 코드가 점멸하며 타이탄의 메인 지휘 코어 모듈을 안전하게 추출해 냈다.
[COMMAND CORE MODULE EXTRACTED]
[TARGET COORDINATES CONFIRMED: SUBTERRANEAN IRON FORTRESS]
"대륙 지하 3천 미터 깊은 곳에 은폐된 메인 반응로 '아이언 포트리스'의 정확한 진입 좌표와 보안 인가 코드를 확보했습니다."
A-09가 추출한 코어 모듈을 이안에게 들어 보이며 보고했다.
이안은 퀀텀 대검의 열기를 식히며 멀리 대륙 중앙을 바라보았다. 비록 선봉 기병대를 제압하고 지휘 모듈을 얻었지만 대륙 지하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수십만 대의 기계 군세가 메인 반응로의 각성 신호를 받으며 태동하고 있었다.
"선봉대를 꺾었다고 끝이 아니다. 대륙이 온통 잿더미로 변하기 전에 지하 요새 본체로 돌입해 메인 하이브 코어를 파괴한다."
이안은 결의에 찬 눈빛으로 퀀텀 대검을 들쳐 메었다. 참혹한 전운이 짙게 깔린 새벽 하늘 아래 다가올 지하 요새 전면전을 향한 새로운 결전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