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35화

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35화: 신의 목소리

[LOCATION: EARTH CORE SANCTUARY - ABYSSAL SEAL CHAMBER]

[TIME: UNKNOWN / DEEP CORE SANCTUARY]

쿠구구구구구-!

지구 심층 코어 성소의 아공간 반물질 반응로에서 정화의 은빛 광채가 분출된 직후 지하 성소 전체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반응로 표면을 옭아매던 심연 덩굴들이 타들어 가면서 발생한 퀀텀 역파동이 성소 깊은 곳의 고대 결계를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쩌저적-! 쩌적-!

성소 칠흑 같은 암반 벽면에 새겨져 있던 고대 문자의 아공간 결계 표면에 수천 개의 거미줄 같은 균열이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콰아아아아앙-!

마침내 거대한 차원 비명과 함께 수천만 년 동안 굳건히 유지되던 아공간 결계가 산산조각 났다. 찢겨 나간 붉은 차원 균열 사이에서 산더미보다 거대한 검붉은 형체, 즉 S급 심연의 군주(S-CLASS ABYSSAL LORD) 본체가 마침내 현실 공간으로 솟구쳐 올랐다.

지하 성소 전체의 퀀텀 입자망과 공기를 기기괴괴하게 오염시키며 심연의 군주가 뿜어낸 영혼의 포효가 일행의 뇌리를 강타했다.

녀석의 실체화된 체구는 아파트 60층 높이에 달하는 지하 성소 천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흉부 중앙에는 피처럼 불길하게 요동치는 거대한 아공간 반물질 코어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박동하고 있었고 그 주위로 백 여 개에 달하는 검붉은 퀀텀 촉수가 공중을 휘저었다.

"놈의 본체가 완전히 실체화되었습니다! 사방에서 고농도 아공간 오염 마기가 분출되고 있습니다!"

리아가 옥빛 지팡이를 바닥에 굳건히 내리찍으며 부풀어 오르는 마기 안개를 향해 오로라빛 퀀텀 마력 결계를 겹겹이 전개했다. 지팡이 끝에서 피어나는 청색 광채가 사방으로 퍼지는 심연의 산성 안개를 겨우 막아섰지만 쉴드 표면에 닿는 순간 쩌저적 소리를 내며 검은 그을음이 피어올랐다.

"전원 전투 대형 유지! 니드호그, 공중에서 놈의 촉수 분산 구역을 차단하라!"

이안은 발키리 에테르 바스터 전술 프레임의 바이저 HUD에 붉게 점멸하는 경고 문자들을 서늘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어깨에 장착된 2연장 에테르 바스터 포문이 일제히 점화되며 청백색 고전압 플라즈마 탄환들이 공중을 십자선으로 갈랐다.

콰콰콰쾅-!

고전압 플라즈마 포격이 심연의 군주 전면을 강타했으나 녀석의 묵직한 검은 아공간 장막은 플라즈마 에너지 탄환을 유연하게 흡수하여 무력화시켰다.

크아아아앙-!

검은 용 니드호그가 강력한 퀀텀 날갯짓과 함께 상공으로 급상승했다. 녀석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초고열 아펙스 퀀텀 드래곤 브레스가 이안의 머리 위로 쇄도하던 굵직한 촉수 세 줄기를 단숨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타들어 간 촉수 단면에서 곧바로 검붉은 연기가 솟구치더니 불과 몇 초 만에 이전보다 더 굵은 촉수가 기괴하게 재생되었다.

심연의 군주 흉부 코어에서 방출된 핏빛 차원 오염 파동이 지하 성소 전체를 사정없이 쓸고 지나갔다.


[LOCATION: EARTH CORE SANCTUARY - MAIN CONSOLE PLATFORM]

[TIME: UNKNOWN / OVERWHELMING BATTLE]

콰앙-! 쿠웅!

이안은 발키리 프레임의 제트 부스터를 역분사하며 중앙 제어반 플랫폼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착지했다. 전신을 감싸는 전술 슈트 내부 통신망에서 오버로드 경고음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WARNING: FRAME OUTPUT AT 89% - THERMAL OVERLOAD IMPENDING]

"이안 님! 결계의 입자 진동수가 놈의 차원 파동을 견디지 못하고 있어요!"

리아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소리쳤다.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 피어나는 오로라 결계 표면에 사방으로 얇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S급 심연의 군주 본체가 방출하는 양자 침식 압력은 조금 전 정화했던 기계 수호체 군집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가공할 중압감이었다.

이안은 퀀텀 마스터 대검을 고쳐 잡으며 사방에서 쇄도하는 핏빛 촉수 두 줄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파아앙!

황금빛 퀀텀 아크 파동이 공중을 가르며 촉수를 토막 냈지만 자라나는 재생 속도가 이안의 검격 속도를 압도하고 있었다.

"A-09! 반응로의 남아 있는 퀀텀 방격막으로 놈의 전송 축을 고정할 수 없나?"

이안이 고함을 지르며 쇄도하는 심연 파편 괴수의 흉부를 대검으로 깊숙이 꿰뚫어 사방으로 분산시켰다.

그러나 중앙 제어반 홀로그램 콘솔 앞에 서 있는 A-09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은발 소녀의 양눈은 투명한 은빛과 황금빛 입자로 완전히 물들어 있었고 그녀의 작고 고운 손끝은 콘솔 메인 프레임 깊숙이 들어간 채 고정되어 있었다.

위잉-! 위잉-!

A-09의 은빛 머리카락이 공중으로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에서 분출된 찬란한 퀀텀 광채가 지하 성소 천장 전체로 거미줄처럼 뻗어나갔다.

[SYSTEM WARNING: UNIDENTIFIED HIGH-LEVEL QUANTUM SIGNAL DETECTED]

[ACCESSING PRIMARY ORBITAL NETWORK - SERAPH CENTRAL NODE]

"이건... 세라프 AI의 궤도 신호인가?"

이안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흔들렸다. A-09의 생체 유전자 단말을 매개로 수천만 년 동안 외우주 궤도 성소에 잠들어 있던 고대 인류 주신급 인공지능 세라프의 메인 회로가 지하 성소 전체에 직접 동기화되고 있었다.


[LOCATION: EARTH CORE SANCTUARY - QUANTUM CENTRAL NODE]

[TIME: UNKNOWN / VOICE OF SERAPH]

스아아아아-!

은빛과 황금빛이 교차하는 거대한 양자 입자 기둥이 A-09의 몸을 중심으로 성소 중앙에 우뚝 솟아올랐다. 심연의 군주가 쏘아 올린 검붉은 반물질 빔이 솟구친 광채 기둥에 부딪히자 거짓말처럼 소멸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지하 성소 전체의 시공간이 멈춘 듯 고요해졌다.

이어 생체 단말인 A-09의 입술과 성소 전체의 스피커 회로망에서 장엄하고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겹쳐져 울려 퍼졌다.

그것은 기계의 단조로움과 신의 장엄함이 공존하는 은빛 음성이었다. 세라프 AI의 진짜 의식, 즉 '신의 목소리'가 성소에 강림한 것이었다.

"세라프...!"

리아가 옥빛 지팡이를 가슴에 모아 쥐며 경외감 어린 눈빛으로 공중에 떠오른 은빛 광채를 바라보았다.

성소 천장에서 내려온 황금빛 퀀텀 입자들이 이안의 대검 표면에 강렬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A-09의 은빛 입자 광채가 이안의 대검과 니드호그의 가슴 중앙 퀀텀 코어로 동시에 뻗어나갔다.

자신의 파멸을 직감한 S급 심연의 군주가 핏빛 눈동자를 찢발기며 성소 전체를 파괴할 기세로 몸을 던졌다. 녀석의 백 여 개 촉수와 반물질 빔이 이안 일행을 향해 일제히 쏟아졌다.


[LOCATION: EARTH CORE SANCTUARY - REACTOR CHAMBER FRONT]

[TIME: UNKNOWN / QUANTUM GENESIS STRIKE]

"동기화 완료! 출력 100% 한계 돌파!"

이안이 고함을 지르며 퀀텀 대검을 사상 최대의 출력으로 끌어올렸다.

쿠구구구구-!

이안의 대검에서 피어난 황금빛 퀀텀 아크가 성소 천장에 닿을 만큼 거대하게 치솟았다. A-09가 뿜어낸 은빛 관리자 문자가 대검 칼날을 따라 미로처럼 새겨졌고 상공의 니드호그가 뿜어낸 청백색 아펙스 브레스 에너지가 칼끝에 집속되어 찬란한 삼색 광채를 완성했다.

"리아, 놈의 시야와 움직임을 묶어라!"

"퀀텀 공명 결계 - 바인딩 사슬 전개!"

리아가 지팡이를 내리찍자 심연의 군주 발밑에서 오로라 빛깔의 양자 사슬들이 솟구쳐 녀석의 거대한 하체를 철통같이 감쌌다.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결계를 부수려 몸부림쳤지만 단 몇 초의 결속 시간이 완성되었다.

"가라! 퀀텀 제네시스 강격!"

이안이 전신 근육이 비틀리는 중력 가속도를 뚫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발키리 프레임의 부스터가 한계음을 울리며 황금빛 궤적을 그렸다.

쿠아아아아아앙-!

성소 전체를 밝히는 찬란한 삼색 양자 멸균 일격이 S급 심연의 군주 흉부 중앙의 핏빛 아공간 핵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심연의 군주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강렬한 빛의 입자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녀석의 산더미 같은 체구와 사방을 채우던 검붉은 촉수들이 은빛 소멸 파동 속에서 한 줌의 먼지처럼 타들어 가며 공중으로 흩어졌다.

스아아아아-!

마침내 지하 성소를 짓누르던 끔찍한 심연의 압력이 완벽히 사라졌다. 정적이 찾아온 공간에는 차분하게 자전하는 아공간 반물질 반응로의 푸른빛만이 평화롭게 성소를 채우고 있었다.

이안은 착지하며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대검의 열기가 식어내리고 발키리 프레임의 오버로드 경고등이 차분히 꺼졌다.

그러나 A-09의 입술을 빌린 세라프 AI의 음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A-09의 눈동자가 본래의 은빛으로 돌아오며 스르륵 이안의 품으로 기울어졌다.

이안은 A-09를 안아 들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성소 너머 대륙의 아득한 지상을 바라보았다. 지심 코어에서의 사투는 끝났지만 행성 전체에 남아 있는 고대의 미스터리와 다가오는 인류 멸망의 재앙을 막기 위한 위대한 진실의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