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33화: 기계와 마법의 경계
[LOCATION: FRONTIER RUINS - BOUNDARY OF MACHINE AND MAGIC / ENTRANCE]
[TIME: UNKNOWN / DEEP VALLEY DAWN]
화아아아아-!
성층권 상공 궤도 방주에서 쏘아 올려진 청백색 차원 전송 광채가 대륙 동쪽 오지의 험준한 산곡 골짜기에 내려앉았다. 눈을 가리던 기하학적 양자 빛무리가 흩어지자 서늘하고 습한 야생의 공기가 피부를 감쌌다.
"이곳이... 궤도 성소에서 가리키던 대륙 오지의 유적인가요?"
리아가 지팡이를 꼭 쥐며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행이 발을 디딘 곳은 자욱한 잿빛 안개로 둘러싸인 거대한 암석 절벽 아래였다. 고대 초합금으로 주조된 기하학적 정밀 금속 기둥들과 현지 왕국에서도 보기 힘든 이질적인 룬 문자가 각인된 고대 석주들이 엉켜 있었다. 웅장한 아치형 문 위로는 수천만 년의 세월을 견뎌낸 푸른 퀀텀 회로와 기이한 마력 입자가 실타래처럼 엉켜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이안은 발키리 프레임의 바이저 HUD를 가동하여 지형 데이터를 측정했다.
"주변 대기 중 퀀텀 나노 입자 밀도 매우 높음. 고대 인류의 퀀텀 방격 장치와 이 대지 고유의 마도 결계가 불규칙하게 얽혀 있다. 내부 전자기파 결계로 인해 장거리 통신은 차단된 상태다."
"웅장하면서도 기이한 분위기로군요. 마법진의 흐름과 고대 기계의 공명이 서로를 거부하면서도 어거지로 연결되어 있어요."
리아가 옥빛 지팡이 끝을 살짝 들어 올려 공기 중에 감도는 입자를 스캔하며 읊조렸다. 궤도 방주에서 문명의 진실을 확인한 후 그녀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미신적인 두려움이 없었다. 신화가 과학의 유산임을 깨달은 학자 특유의 깊은 탐구심과 결의만이 깃들어 있었다.
크르르르...
이안의 그림자 옆에 서 있던 검은 용 니드호그가 퀀텀 나노 날개를 넓게 펼치며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전방 50미터. 자동 자율 방어 체계 가동. 오염된 하이브리드 파수기 군집 접근 중이다."
이안의 차분한 경고와 함께 잿빛 안개 속에서 붉은 전자기안을 빛내는 수십 마리의 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대 초합금 뼈대에 마수의 날카로운 이빨과 붉은 룬 마법진이 융합된 형태의 하이브리드 기계 마수들이었다.
"전원 전투 배치! 니드호그, 좌측 외곽 측면을 차단해라!"
키아아아앙-!
이안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니드호그가 입을 크게 벌려 청백색 퀀텀 입자 포효를 뿜어냈다. 선두에서 뛰어오르던 기계 마수 셋이 전자기 폭발과 함께 고철 조각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LOCATION: FRONTIER RUINS - CENTRAL COURTYARD]
[TIME: UNKNOWN / MORNING]
투웅! 파아아앙!
이안은 발키리 프레임의 부스터를 제트 분사하며 공중으로 솟구쳤다. 어깨의 에테르 바스터 포문에서 뿜어져 나온 차가운 플라즈마 빔이 접근하던 날개 달린 경비 수호체의 동력 코어를 정밀하게 관통했다.
쿠웅!
고철 덩어리로 변한 수호체가 바닥으로 추락하자 일행은 유적 중앙 정원의 거대한 이중 통제 문 앞에 도달했다.
"이 문이 유적 최심부의 고대 전송 관문으로 통하는 통로입니다. 하지만 인류의 퀀텀 보안 코드와 마도학회의 원형 결계가 이중으로 꼬여 있어 정상적인 제어 명령이 거부되고 있습니다."
A-09가 은빛 손끝을 문 중앙의 콘솔 노드에 접속시키며 무미건조하게 보고했다. 문 표면에는 백색 퀀텀 회로와 붉은색 마법진이 서로의 에너지를 갉아먹으며 맹렬한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었다.
"내가 마도 결계의 입자 흐름을 조율하겠어요! A-09 님은 고대 인류의 퀀텀 해제 인덱스에 집중해 주세요!"
리아가 지팡이를 바닥에 굳건히 찍어 내렸다. 그녀의 입술에서 맑은 주문이 흘러나오자 지팡이 끝에서 오로라빛 퀀텀 공명 파동이 피어올랐다.
위잉-! 위잉-!
리아의 섬세한 마력 조율이 시작되자 문 표면에서 격렬하게 날뛰던 붉은 마법진의 스파크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입자 파동이 고르게 정렬되자 A-09의 은빛 눈동자 속에서 퀀텀 코드 해제 작업이 폭풍처럼 진행되었다.
"마도 결계 노드 안정화 확인. LEVEL-5 관리자 권한 바이패스 코드 입력. 잠금장치를 해제합니다."
스스스스-!
수천만 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이중 초합금 문이 사방으로 스르륵 갈라지며 내부의 거대한 지하 통로를 드러냈다.
"성공이에요! 결계가 열렸어요!"
리아가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안은 대검의 자루를 더욱 굳게 쥐며 차가운 바이저 너머로 통로 깊은 곳을 노려보았다.
"방심하지 마라. 문 안쪽에서 나오는 파동은 단순한 고대 기계의 에너지가 아니다."
이안의 서늘한 목소리대로 깊은 통로 내부에서 차갑고 기분 나쁜 피빛 마기가 역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LOCATION: FRONTIER RUINS - ANCIENT TRANSMISSION CHAMBER]
[TIME: UNKNOWN / MORNING]
쿠쿠쿠쿠쿠-!
유적 최심부에 들어선 일행의 눈앞에 아파트 10층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원형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중에 떠 있는 웅장한 고대 전송 관문(ANCIENT TRANSMISSION GATE)은 행성 지하 심층부와 차원 축으로 직접 연결되는 초고공 전송 장치였다.
그러나 관문의 상태는 참혹했다.
지하 암반 균열 사이에서 뻗어 나온 핏빛 검은 덩굴 모양의 심연 마기(Sub-space corruption)가 관문의 초합금 프레임을 온통 옭아매고 있었다. 붉은 마기가 퀀텀 동력 코어를 침식할 때마다 관문 전체가 비명을 지르며 붉은 비상 경고등을 뿜어냈다.
[WARNING: SUB-SPACE CORRUPTION LEVEL ELEVATED]
[ANCIENT TRANSMISSION GATE - CRITICAL SYSTEM FAILURE]
"지하 깊은 곳에 봉인된 심연의 군주가 이 전송 관문의 동력망을 식량으로 삼아 침식하고 있군요! 이대로 두면 전송 관제가 완전히 붕괴되어 지심 코어로 갈 수 있는 길이 영원히 막혀버립니다!"
리아가 가슴을 졸이며 외쳤다.
"관문 프레임에 침식한 심연의 물질을 즉시 정화해야 한다. 니드호그, 퀀텀 출력 전개!"
크아아아앙-!
니드호그가 웅장하게 포효하며 등 뒤의 퀀텀 입자 날개를 10미터 이상 펼쳐 올렸다. 드래곤의 강철 몸체 전체에서 빛나는 청백색 나노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성검 모듈, 레벨 4 퀀텀 아크 출력 개방."
이안이 대검을 높이 쳐들자 검신에 각인된 차원 동기화 룬이 궤도 성소의 에너지와 공명하며 거대한 양자 광파를 형성했다.
"하압-!"
이안이 대검을 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찍음과 동시에 니드호그가 관문을 향해 초고열의 퀀텀 브레스를 분사했다.
콰아아아아앙-!
청백색의 퀀텀 멸균 광채가 관문 프레임을 사정없이 덮쳤다. 관문을 옭아매고 있던 핏빛 심연 덩굴들이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검은 연기와 함께 산산조각으로 타들어 갔다. 붉게 물들었던 경고등이 꺼지고 맑은 은빛 차원 막이 관문 중앙에 다시 피어올랐다.
[LOCATION: ANCIENT TRANSMISSION GATE - TRANSPORT DECK]
[TIME: UNKNOWN / EMERGENCY TRANSMISSION READY]
스아아아아-!
정화된 고대 전송 관문 중앙에서 황금빛 차원 승강 필드가 뿜어져 나오며 바닥의 퀀텀 데크가 천천히 가동하기 시작했다.
[GATE CLEARANCE CONFIRMED: EARTH CORE SANCTUARY DIRECT LINK]
[INITIATING DIMENSIONAL DESCENT PROTOCOL...]
A-09가 콘솔을 조작하며 차가운 음성으로 알렸다.
"지심 코어 성소(EARTH CORE SANCTUARY)로 향하는 직통 전송 승강기가 개방되었습니다. 행성 중심부의 고대 인류 아공간 반응로 좌표와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구구-!
지하 깊은 곳에서 대지 전체를 흔드는 웅장하고 거친 진동이 솟구쳐 올랐다. 유적의 천장에서 바위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리고 전송 관제 스크린에 불길한 핏빛 노이즈가 사정없이 번져나갔다.
- 불완전한 핏줄의 후손들아... 감히 파멸의 요람에 발을 디디려 하는가...
전송 네트워크의 차원 입자망을 타고 기분 나쁜 환청과도 같은 묵직한 심연의 텔레파시 음성이 성소 전체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지하 심층부에 사슬로 묶여 있던 S급 심연의 군주가 내지르는 섬뜩한 영혼의 울부짖음이었다.
"지심 코어에 잠든 반물질 반응로가 심연의 침식으로 인해 임계 폭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습니다. 남은 시간은 얼마 없습니다."
A-09가 전술 스크린의 붉은 타이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리아가 떨리는 숨을 내쉬었지만 이안의 곁으로 한 걸음 바짝 다가서며 지팡이를 굳건히 잡았다.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고대 조상들이 인류를 위해 남겨준 이 푸른 행성을 파멸하게 둘 순 없어요. 이안 님, 같이 가요!"
이안은 서늘한 눈빛으로 발키리 프레임의 대검을 재정렬하며 전송 승강기 중앙으로 발을 내딛었다.
"지구 심층 코어의 반응로를 정화하고 심연의 군주를 완전히 멸각한다. 전원, 강하 준비!"
쿠아아아앙-!
황금빛 양자 광선이 일행을 감싸 쥐며 고대 전송 관문의 승강 데크가 행성의 칠흑 같은 심연 밑바닥을 향해 쾌속으로 강하하기 시작했다. 대륙의 경계를 넘어 행성의 진정한 심장부로 향하는 최종 결전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