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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32화

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32화: 고대의 전설

[LOCATION: ORBITAL SANCTUARY - CELESTIAL ARK / MAIN COMMAND BRIDGE]

[TIME: UNKNOWN / STRATOSPHERE ORBITAL SUNRISE]

치이이이잉-!

천공 첨탑 전송 제어기에서 솟구쳐 오른 황금빛 양자 광채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눈을 사정없이 찌르던 눈부신 광선이 거두어지자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붉은 성채의 석조 양식이 아닌 완전히 다른 차원의 광경이었다.

"이곳이... 천공의 문 너머에 존재한다는 궤도 성소란 말인가?"

리아가 떨리는 음성으로 낮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녀의 옥빛 눈동자가 경탄과 아득함으로 사정없이 흔들렸다.

일행이 발을 디딘 곳은 성층권 상공 최외곽 궤도에 조용히 떠 있는 고대 인류 최후의 성소 '천공의 공중 방주(CELESTIAL ARK)' 메인 브릿지 회랑이었다. 거대한 이중 차원 강화 유리 외벽 너머로 칠흑 같은 우주 고요와 함께 태양빛을 받아 푸르게 빛나는 행성의 압도적인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이럴 수가... 대지가 끝없이 펼쳐진 평면이 아니라 둥근 구형의 알처럼 공중에 떠 있다니..."

리아는 지팡이를 쥔 손을 부르르 떨며 투명 장벽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루미나르 왕국 마도학회 천문서 어디에도 기록된 적 없는 웅장하고 신비로운 행성의 자태였다. 사방을 둘러싼 무수한 별빛과 칠흑의 허공 속에서 푸른 오로라를 띠며 자전하는 세계의 모습은 기사도 소설이나 학회의 전설을 아득히 뛰어넘는 충격이었다.

이안은 발키리 프레임의 바이저 HUD를 가동하여 주변 대기 성분과 환경 수치를 신속하게 스캔했다.

"기압 1.01기압. 산소 농도 21%. 인공중력 모듈 가동 중. 대기 재호흡 필드 정상 작동. 성층권 외우주 궤도지만 내부 환경은 지상과 완벽하게 동일하다."

이안의 차분하고 냉철한 음성에 리아가 깊은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숨이 막혀 죽을 줄 알았는데 정말로 공기가 통하는군요. 마도학회 원로님들이 이 모습을 직접 보셨다면 필시 신들의 거처라 부르며 엎드렸을 것입니다."

크르르르...

이안의 옆에 서 있던 검은 용 니드호그가 낮게 울부짖으며 퀀텀 나노 입자로 이루어진 날개를 유연하게 접어 올렸다. 협소한 방주 내부 통로에 맞춰 자신의 덩치를 능동적으로 수축시키며 경계 태세를 갖춘 것이었다. 정화된 수호룡의 강철 비늘 표면에서도 방주와 동기화된 청백색 퀀텀 회로가 은은하게 조응하며 빛나고 있었다.

"이곳은 궤도 전술 관제 성소 'CELESTIAL ARK' 메인 브릿지 회랑입니다. LEVEL-5 권한을 가진 단말의 진입을 감지하여 차원 방호막 및 생명 유지 장치가 자동 개방되었습니다."

A-09가 은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홀로그램 광선이 메인 브릿지 중앙 통로를 향해 길게 뻗어 나갔다.


[LOCATION: ORBITAL SANCTUARY - AKASHIC RECORD CORE]

[TIME: UNKNOWN / ORBITAL MORNING]

위잉-! 투웅-!

A-09를 선두로 회랑을 지나 중앙 아카식 기록 보관소 코어 (AKASHIC RECORD CORE)에 들어서자 직경 백 미터가 넘는 거대한 원형 구체 구조물이 웅장한 위용을 드러냈다. 수천만 년의 세월 동안 침묵하던 백색 초합금 표면 위로 청백색 퀀텀 회로가 일제히 살아나며 몽환적인 전자기음을 토해냈다.

[BIOMETRIC IDENTIFICATION CONFIRMED: SUBJECT A-09]

[ACCESS CLEARANCE: LEVEL-5 ADMINISTRATOR]

[UNSEALING ARCHIVAL DATA NODES...]

성소의 중앙 컴퓨터 음성과 함께 원형 구체 중심부의 차단 격리막이 사방으로 스르륵 갈라졌다.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온 수천 개 이상의 양자 홀로그램 데이터 노드들이 공중에 흩날리며 환상적인 문자열과 고대 기하학 도식을 그려냈다.

"이, 이것은...!"

리아가 옥빛 마법 서신을 펼쳐 들며 공중에 떠오른 고대 문자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기하학 문양들은 왕국 마도학회 최상위 금서에만 부분적으로 적혀 있던 고대 영언(靈言)의 근원 문자입니다! 단순한 마법진이 아니라 공간의 수식과 입자 운동을 통제하는 거대한 공식이었어요!"

"마법이라고 부르던 것의 본질이다."

이안이 서늘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고대 인류가 개발한 퀀텀 나노 입자 제어 공학과 공간 왜곡 수식이 수천만 년의 세월을 거치며 현지 문명에 마법이라는 이름으로 왜곡되어 전승된 것이지."

이안은 발키리 프레임의 데이터 콘솔을 아카식 인덱스에 접속시켰다. 아르카디아 개척선의 성간 항해 일지와 방주 아카이브의 궤도 정밀 좌표가 100% 완벽하게 일치했다.

"역시... 탐사대 항해 컴퓨터가 지목했던 이 행성의 정체는 미지의 외계 행성이 아니었어."

이안의 눈빛이 더욱 깊고 묵직해졌다. 이곳은 인류가 새로 찾아낸 별이 아니라, 시공간 왜곡 속에서 수천만 년의 시간이 흘러버린 인류의 고향, 먼 미래의 지구였다. 고대의 마법도, 하늘을 나는 수호룡도, 봉인된 유적도 모두 이 행성에 새겨진 인류 문명의 흔적이었던 셈이다.


[LOCATION: ORBITAL SANCTUARY - HOLOGRAM CHRONO-HALL]

[TIME: UNKNOWN / ORBITAL MORNING]

파아아앗-!

아카식 코어 중앙 홀의 조명이 낮게 가라앉으며 사방의 투명 외벽이 거대한 3차원 입체 상영관으로 변모했다. 공중에 펼쳐진 황금빛 퀀텀 홀로그램 속에서 잊혀진 문명의 역사가 한 편의 신화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

"고대의 기록... '아카식 전설(The Ancient Legend)' 재생을 개시합니다."

A-09의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홀로그램 영상이 찬란했던 고대 인류 문명의 아침을 보여주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반중력 도시들과 별과 별 사이를 오가던 고대 우주 함대들의 웅장한 자태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당시의 인류는 별의 에너지 시스템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은하계 끝까지 문명을 확장하던 초고도 거대로봇과 함대 문명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장면은 참혹한 파멸이었다.

아공간의 대균열 속에서 기어나온 피빛 아포칼립스 물질 '심연(Sub-space corruption)'이 대륙과 바다를 까맣게 삼켜버렸다. 문명 전체를 차갑게 부수어 나가는 심연의 오염 앞에서 강철 도시들이 차례대로 무너져 내렸다. 멸망의 위기에 몰린 고대 인류의 과학자들은 행성의 완전한 사멸을 막기 위해 궁극의 자율 판단 인공지능 '세라프(SERAPH)'와 4대 수호체 AI를 창조했다.

[PROJECT SEPHIROTH: ENACTING PLANETARY DEFENSE PROTOCOL]

고대 인류는 행성 대기권 전역에 퀀텀 나노 입자망을 뿌려 심연의 확산을 봉인했고 최후의 생존자들을 지상 요새와 지하 방주로 대피시켰다.

시간이 흘렀다. 수백만 년, 수천만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참혹한 전쟁의 기억은 대지 위에서 감쪽같이 잊혀졌다. 지상에서 다시 번성하기 시작한 인류의 후손들은 고대 인류의 초고도 기계 문명 유산을 잊어버리고 공중에 감돌던 퀀텀 나노 입자를 '마력'이라 불렀으며 궤도에서 대륙을 지키는 인공지능 세라프를 '신의 목소리'로 숭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신화 속 전설이... 모두 고대 인류가 우리 후손들을 살리기 위해 남겨둔 피눈물 나는 유산이었다니..."

리아는 가슴을 움켜쥐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평생 탐구해 온 마도학의 뿌리가, 그리고 왕국에서 신성시하던 신들의 전설이 실은 멸망을 이겨내려 했던 조상들의 과학과 희생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안 역시 묵직한 침묵 속에서 발키리 프레임의 대검 자루를 꽉 쥐었다. 초장거리 개척선 아르카디아 부대가 이 먼 외우주까지 도달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인류의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 궤도 성소 '세라프'가 아르카디아를 이 먼 미래의 고향으로 차원 인도한 것이었다.


[LOCATION: QUANTUM TRANSMISSION CHAMBER]

[TIME: UNKNOWN / EMERGENCY ORBITAL ALARM]

삐이이이-! 삐이이이-!

전설의 서사가 끝난 순간, 궤도 방주 메인 통제반 전체가 붉은 경고등으로 물들었다. 경쾌하던 전자기음 대신 날카로운 자폭 프로토콜 비상음이 성소 전체에 울려 퍼졌다.

[CRITICAL ALERT: SUB-SURFACE ABYSS CORE RESONANCE DETECTED]

[EARTH CORE SANCTUARY - DEEP LAYER BREAKTHROUGH]

A-09가 황급히 콘솔을 조작하며 전술 데이터를 스캔했다.

"이안 경! 지상 붉은 성채 밑바닥으로 봉인했던 S급 심연의 군주는 단독 개체가 아닙니다! 지구 심층 코어 성소(EARTH CORE SANCTUARY)에 매설된 고대 아공간 멸망 병기의 동력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뭐라고?"

이안의 눈매가 날카롭게 찢어졌다.

지상의 대균열 속으로 밀려 내려간 심연의 군주가 방치될 경우 지구 심층 코어의 아공간 반응로를 침식하여 행성 자체가 내부에 쌓인 반물질 마기로 폭발할 위기였다.

"궤도 성소 메인 컴퓨터가 다음 전송 좌표를 해제했습니다. 지구 심층 코어로 진입하기 위한 유일한 통로... 대륙 미지의 오지에 위치한 '기계와 마법의 경계 유적' 및 '고대 전송 관문'의 위치가 개방되었습니다!"

A-09의 손끝에서 황금빛 차원 전송 좌표 스크롤이 이안의 전술 바이저로 전송되었다.

이안은 어깨의 발키리 프레임 장갑을 재정렬하며 성검 퀀텀 마스터 모듈을 다잡았다.

"진실을 알았으니 멈출 수 없다. 지상의 루미나르 기사단이 외곽을 지키는 동안, 우리는 기계와 마법의 경계 유적으로 내려간다."

리아가 눈물을 닦아내며 결연하게 지팡이를 세웠다.

"네, 이안 님! 고대 조상들이 남겨준 이 세계를, 우리들의 신화를 제 손으로 지켜내겠어요!"

크아아앙-!

수호룡 니드호그가 웅장한 포효를 지르며 퀀텀 전송 원형 데크 중앙으로 몸을 던졌다. 이안, 리아, A-09, 니드호그가 새로운 차원 전송 광채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며 궤도 성소의 은빛 문이 닫히고 대륙의 심층부를 향한 새로운 투쟁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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