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3화: 하늘을 나는 괴수
하늘을 뒤덮은 백색의 구름이 거대한 칼날에 잘려 나가듯 양 갈래로 갈라졌다.
그 벌어진 틈새로 내리쬐는 태양빛을 받으며, 번뜩이는 칠흑빛 비늘을 지닌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길이 삼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괴수였다.
그것은 아르카디아호의 센서에 포착되었던 황금빛 비행체보다는 작았지만, 지상에 서 있는 인간들에게는 그 자체로 거대한 산이나 다름없었다. 박쥐처럼 넓게 뻗은 날개깃은 가죽이 아니라 날카로운 강철 깃털로 덮여 있는 듯 금속성 광택을 뿜어냈다. 뱀을 닮은 긴 목 끝에 달린 머리에는, 푸른 불꽃처럼 타오르는 두 개의 눈동자가 이안 일행을 똑바로 쏘아보고 있었다.
크샤아아아아아아-!
괴수의 포효가 하늘과 대지를 뒤흔들었다.
단순히 소리의 크기를 넘어, 공간 자체를 진동시키는 기묘한 위압감이 전술 슈트의 차폐막마저 뚫고 들어와 대원들의 가슴을 짓눌렀다.
"포메이션 델타! 휴대용 역장 방벽 가동해!"
이안이 헬멧 내부의 무전기를 통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상황의 급박함 속에서도 놀라울 만큼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현태와 민우가 신속하게 등 뒤의 금속 백팩을 지면에 내던졌다.
지면에 박힌 두 개의 장치가 기동하며, 공기가 찌릿하게 굴절되는 반투명한 에너지 장벽을 형성했다. 아르카디아호의 과학 기술이 만들어낸 전술 물리 장벽이었다.
그와 동시에 괴수가 공중에서 날개를 접고 수직으로 강하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가속도였다. 괴수의 입이 크게 벌어지며,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은은한 푸른빛이 차올랐다.
[경고. 초고온 열에너지 및 미상의 입자 반응 감지. 회피하거나 방어력을 극대화하십시오.]
슈트의 AI 경고와 함께 괴수가 입을 열었다.
그것은 단순한 화염이 아니었다. 번개와 불꽃이 기묘하게 뒤섞인, 푸른 빛깔의 파괴적인 에너지가 광선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아아아앙!
푸른 에너지가 이안 일행의 전술 장벽에 부딪히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주변의 거대한 침엽수들이 단숨에 숯덩이로 변해 주저앉았다. 장벽을 유지하던 전술 장치의 과열 게이지가 순식간에 80%를 넘어섰다. 공기 중으로 타는 듯한 오존 냄새와 뜨거운 열기가 밀려들었다.
"장벽 출력을 최대치로 고정해! 버텨야 한다!"
이안은 레일 라이플을 들어 올리며 괴수의 궤적을 쫓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마법 같은 화염.
그것은 열역학적 에너지 방출이 맞았지만, 그 생성 과정은 물리적 연료의 연소가 아니었다. 대기 중에 떠돌던 푸른 미립자들이 괴수의 호흡을 거치며 연쇄적인 붕괴를 일으킨 결과물이었다.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체적인 핵분열에 가까운 초자연적 현상이었다.
스스스스-
괴수가 공중에서 날개를 크게 펄럭이며 지면 스치듯 활공했다.
장벽에 가로막힌 화염에 분노했는지, 놈은 이번에는 쇠날 같은 발톱을 앞세워 직접 지면의 방어선을 낚아채려 했다.
"사격 개시! 놈의 날개 관절을 노려라!"
이안의 사격 신호와 함께 세 자루의 레일 라이플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타다다당-!
초전도 코일을 통과한 초속 2,400미터의 텅스텐 탄환들이 허공을 가르며 괴수의 몸체를 향해 쇄도했다. 음속의 몇 배를 넘어서는 초고속 탄환들이었다.
하지만 탄환이 괴수의 비늘에 닿기 직전, 허공에서 푸른빛의 물결무늬가 일렁였다.
파아아앙!
기묘한 마찰음과 함께 텅스텐 탄환들이 허공에서 찌그러지며 운동 에너지를 상실했다.
괴수의 피부를 감싸고 있는 미지의 에너지 장벽 때문이었다. 그것은 아르카디아호의 전술 장벽과 매우 유사한 형태의 방어막이었으나, 훨씬 더 유기적이고 밀도가 높았다.
"방어막이라고? 유기체 생명체가 전자기 장벽을 스스로 두르고 있는 건가?"
민우가 경악하며 외쳤다.
"아니, 전자기 장벽이 아니다. 마찰력이 비정상적으로 왜곡되고 있어. 물리 법칙 자체를 비틀어 방어하고 있는 거다!"
이안의 바이저는 그 순간에도 냉철하게 괴수의 방어막 메커니즘을 해독해 나가고 있었다.
괴수의 방어막은 모든 타격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수십 발의 레일건 탄환이 연속으로 때려 박히자, 결국 일렁이던 푸른 물결무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방어막을 뚫고 들어간 몇 발의 탄환이 놈의 날개뼈 부근에 깊숙이 박혔다.
키에에엑!
괴수가 고통 섞인 비명을 질렀다.
상처 부위에서 형광색으로 빛나는 자줏빛 피가 지면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피가 닿은 흙바닥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검게 타들어 갔다.
분노한 괴수가 이안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거대한 그림자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날카로운 발톱이 공기를 가르며 이안의 목을 노렸다.
슈우우웅!
이안은 슈트의 등 뒤에 장착된 소형 분사 부스터를 순간적으로 폭발시켰다.
그의 신형 슈트가 지면을 미끄러지듯 뒤로 빠르게 사출되었다. 간발의 차이로 괴수의 발톱이 이안이 서 있던 자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지면의 단단한 암반이 두부처럼 으스러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이안은 뒤로 미끄러지는 와중에도 레일 라이플의 하부에 장착된 플라즈마 유탄 발사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슝- 콰아아앙!
괴수의 부러진 날개 관절 부근에서 청백색의 플라즈마 폭발이 일어났다.
초고온의 열에너지가 괴수의 단단한 비늘을 녹여버렸고, 마침내 괴수는 비틀거리며 지면에 큰 궤적을 그리며 곤두박질쳤다.
"드론, 2번 구역에 소모성 미끼 방출해!"
지아가 콘솔을 조작하자 정찰 드론 두 기가 괴수의 눈앞에서 자폭용 고주파 음파를 내뿜었다.
방어막이 깨지고 큰 상처를 입은 괴수는 머리를 흔들며 고통스러워했다. 놈은 지상의 적들이 자신보다 훨씬 작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뼈아픈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극도로 위험한 존재임을 깨달은 듯했다.
파득!
괴수는 거대한 날개를 다시 펼쳤다.
상처 입은 날개에서 자줏빛 피를 흩뿌리며, 놈은 지면을 차고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구름 장막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숲은 다시 고요해졌다.
그러나 그 침묵은 이전의 고요함과는 달랐다. 불타버린 나무들의 연기와 가쁜 호흡을 내쉬는 대원들의 소리만이 조용히 숲에 울려 퍼졌다.
"부상자 보고해."
이안이 총구를 거두며 말했다.
"민우의 슈트 좌측 견갑부에 가벼운 타격흔이 있습니다. 뼈는 무사합니다. 그 외에는 전원 경미한 찰과상뿐입니다."
"다행이군. 괴수의 피와 흘린 파편들 전부 수집해라. 아르카디아호에 분석을 의뢰하겠다."
이안은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린 뒤, 괴수가 떨어지며 으스러뜨린 지면으로 걸어갔다.
단단한 암반이 통째로 뜯겨 나간 그 거대한 구덩이 속을 바라보던 이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부서진 바위와 흙더미 사이로, 햇빛을 받아 반사되는 차가운 은색 금속의 광택이 보였다.
"이건..."
이안은 허리를 숙여 흙을 걷어냈다.
그것은 바위가 아니었다.
오랜 세월 동안 흙과 나무뿌리에 덮여 숨겨져 있던, 극도로 매끄럽게 가공된 금속판이었다. 슈트의 센서가 그 금속의 조성을 분석하더니 놀라운 결과를 내놓았다.
[경고. 탐지된 물질은 크롬-티타늄 합금 구조물입니다. 인공적 가공 흔적 감지. 아르카디아호의 선체 재질과 94%의 유사성을 보입니다.]
이안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단순한 외계 행성의 토착 문명이나 자연적인 유적이 아니었다.
이 숲속 깊은 지하에, 그들이 타고 온 우주선과 유사한 종류의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의 흔적이 묻혀 있는 것이다.
금속판의 표면에는 흙먼지에 가려진 채, 아주 미세하게 각인된 기하학적 문자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안은 숨을 죽인 채 그 문자를 쓸어내렸다.
별의 끝에 도착한 그들이 마주한 것은, 단순한 판타지 세계가 아닌 거대한 진실의 입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