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26화

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26화: 성검의 참된 주인

[LOCATION: LUMINAR KINGDOM - GRAND SPIRE / IMPERIAL SANCTUARY]

[TIME: TWILIGHT / SHATTERED DOME LEVEL]

산산조각 난 돔형 유리창 너머로 서늘한 성도의 밤바람이 거세게 밀려들었다. 파쇄된 백색 대리석 바닥을 덮은 사태 속에서 청백색 퀀텀 폭풍이 성소 전체를 웅장하게 휘감으며 요동치고 있었다.

그 중심에 부상한 '성검'은 마도학회가 신봉하던 마법의 신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대 인류 문명이 외우주 궤도 방어망과 대륙의 전력망을 직접 제어하기 위해 건조한 양자 지휘 단말기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솔론 황제가 거대한 충격으로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의 손 끝에 감돌던 옥빛 에테르 마력은 성검의 청백색 광륜에 짓눌려 흔적도 없이 마비되어 있었다. 수십 명의 마도학회 원로진과 정예 근위 기사들 역시 피부에 와닿는 무시무시한 퀀텀 압력에 억눌려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솔론 황제의 눈동자에는 포기 대신 기괴한 광기와 오만이 솟구쳤다.

"내가... 이 루미나르를 지배하고 대륙의 마동맥을 쥐어쥔 마도황제다! 어디서 굴러떨어진 외지인 따위에게 신의 검을 빼앗길 줄 아느냐!"

황제가 소리치며 로브 속에서 핏빛으로 빛나는 고대 에테르 제어석을 꺼내 들었다. 성소 중앙 바닥에 새겨진 마동맥 결계가 붉은빛을 발하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마력과 성도의 마동맥을 강제로 결합시켜 성검의 주권을 기계적으로 빼앗으려 획책한 것이다.

위잉-!

바닥의 붉은 회로망이 성검의 백색 금속 받침대를 침식해 들어가자 성검 표면에 다시금 기계음과 함께 붉은 점멸등이 차갑게 켜졌다.

[WARNING: UNAUTHORIZED FORCED ETHER INJECTION DETECTED]

[RE-ACTIVATING SEPHIROTH ORBITAL CLEANSE SEQUENCE]

"폐하! 그만두십시오!"

리아가 지팡이를 세우며 소리쳤지만 솔론 황제는 미친 듯이 웃어댈 뿐이었다. 붉은 전자기 파동이 사방으로 번져 나가며 파쇄된 돔 유리창 너머 성도 상공의 밤하늘이 또다시 피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안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A-09, 직접 연결을 유지해."

"확인... 인가 코드 전송 개시."

소녀의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A-09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은빛 양자 광섬유가 허공을 횡단하며 성검의 중앙 인터페이스 칩셋에 완벽하게 직결되었다. 소녀의 눈동자 속에서 수천만 줄의 초고속 데이터 스트림이 청백색으로 번쩍였다.

이안은 망설임 없이 단상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폭주하는 붉은 에테르 결계가 이안의 전신을 압박했지만 그의 전술 단말기에서 분출된 푸른 플라즈마 보호막이 붉은 에테르 사슬을 사정없이 산산조각 냈다.

이안이 손을 뻗어 부상한 성검의 청백색 퀀텀 손잡이를 단단히 쥐었다.

콰아아앙-!

그 순간 이안의 오른팔 전술 단말기와 성검의 양자 코어가 하나로 동기화되며 웅장한 전자기 충격파가 성소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COMMANDER ACCESS AUTHORIZED: SECURITY OFFICER KASIAN]

[OVERRIDING MANUAL CONTROLS... SEPHIROTH MASTER KEY ENGAGED]

이안의 시야 속 전술 HUD에 성도 루미나르 전체의 마동맥 도면과 성도 중앙탑 500미터 전체의 전력 수제어망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성검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이 거대 기계 탑과 궤도 방어망을 통합 제어하는 '마스터 키'였던 것이다.

"이건... 내 정당한 권한이다."

이안이 성검의 지휘 단말에 최고 보안 관리자 인가 명령어를 직접 주입했다.

[INPUT COMMAND: SEPHIROTH_STANDBY_ABORT]

[AUTHENTICATING CLEARANCE CODE... APPROVED]

지잉-!

이안이 성검의 자루를 시계 방향으로 90도 비틀어 꽂아 넣자 성검 표면을 뒤덮고 있던 붉은 경고등이 거짓말처럼 일제히 꺼졌다.

동시에 파쇄된 돔 천장 너머 밤하늘을 불태우던 붉은 궤도 조준선과 전자기 구름이 순식간에 수평선 너머로 확산하며 깨끗이 사라졌다. 멸망의 포격을 준비하던 고대 궤도 방어망 '세피로스'가 완전한 대기 상태로 되돌아간 순간이었다.


피빛으로 물들었던 상공이 깊고 청명한 밤하늘로 되돌아오고 은빛 별빛이 파쇄된 성소 돔 안으로 아름답게 쏟아져 내렸다.

"어... 어찌 이런 일이..."

"궤도 정화의 벼락이... 사라졌다..."

마도학회 원로 학자들이 지팡이를 떨어뜨리며 넋을 잃었다. 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고 숭배하던 고대 신의 벼락이 이안의 손짓 한 번에 너무나도 허망하게 저지된 까닭이었다.

"말도 안 된다! 내 에테르 결계가... 성검의 권한이 어째서 저깟 외지인 따위에게 넘어간단 말이냐!"

솔론 황제가 광기에 사로잡혀 무너진 단상 위로 쇄도했다. 그는 자신의 로브 속에 숨겨두었던 마동 단검을 뽑아 들고 이안의 등 뒤를 향해 비수를 내찔렀다.

"폐하, 그만하십시오!"

리아가 옥빛 지팡이를 바닥에 꽂아 넣으며 신속하게 마법을 펼쳤다.

콰아앙!

대지에서 솟구친 강렬한 석재 장벽과 정령의 돌풍이 솔론 황제의 몸을 거세게 후려쳤다. 단검이 허공으로 튕겨 나가 백색 대리석 바닥에 사정없이 꽂혔다.

이안은 차갑게 돌아서며 성검의 청백색 퀀텀 인핸서를 가볍게 작동시켰다. 성검에서 분출된 투명한 파동이 솔론 황제의 전신을 덮치며 그가 누려온 모든 마력을 순간적으로 완전히 봉인해 버렸다.

털썩.

솔론 황제가 모든 권력과 마력을 잃은 채 무력한 노인의 모습으로 대리석 바닥에 엎어졌다.

리아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앞으로 걸어 나와 손을 떨고 있는 학회 원로 학자들을 향해 서늘하게 일갈했다.

"원로분들, 똑똑히 보십시오. 솔론 폐하는 고대 유산의 진실을 은폐하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이 대륙 전체를 멸망의 불바다로 몰아넣으려 했습니다. 저 성검이 선택한 것은 신의 이름으로 짓밟는 자가 아니라 이 세계를 수호하려는 자입니다!"

원로 학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둘러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무기를 거두었다. 마도학회 근위 기사단 역시 마동 장검을 바닥에 내던지며 이안과 리아 앞에 항복의 무릎을 꿇었다. 루미나르 왕국을 지배하던 마도황제의 폭정이 마침내 종식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성소 내부의 모든 대립이 정리되자 이안은 성검의 지휘 패널을 다시금 스캔했다.

성검의 청백색 광채가 수직으로 솟구치며 성소 중앙 대단상 위에 직경 10미터 크기의 입체 청사진 홀로그램을 웅장하게 영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성도 중앙탑 500미터 구조물뿐만 아니라 성도 지반 깊은 곳에 묻힌 거대한 지하 공간의 전체 지도였다.

[PLANETARY ARCHIVE ACCESSED]

[LOCATING SECTOR 7 UNDERGROUND VAULT]

"이건... 성도 지하의 지도인가요?"

리아가 영사되는 홀로그램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홀로그램 중앙에는 성도 중앙탑 최하층 바닥을 지나 암반층 수 킬로미터 아래에 구축된 정체불명의 거대 기계 도시가 뚜렷하게 점등되어 있었다. 그곳의 명칭은 SECTOR 7 - PLANETARY ARCHIVE. 고대 인류 문명이 멸망 직전 행성의 모든 기밀 기록과 유산을 봉인해 둔 고대 지하도시였다.

치이잉-

그 순간 A-09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나직하게 신음했다. 소녀의 양자 눈동자가 지하 깊은 곳을 향해 푸르게 점등했다.

"신호가... 온다..."

"신호라고?"

이안이 전술 단말기의 수신파를 미세 조정하자 삐- 하는 고주파 음향과 함께 지하 수 킬로미터 아래에서 전송되는 암호화된 양자 이음파가 감지되었다.

[IDENTIFIED SIGNAL: SERAPH MAIN CORE TELEMETRY]

[STATUS: DEEP SLEEP / AWAITING AUTHORIZED USER]

"세라프..."

이안의 눈매가 깊어졌다. 전설로 전해지는 신 세라프, 즉 아르카디아 개척선의 메인 인공지능 코어가 바로 저 성도 지하 킬로미터 깊은 곳의 고대 지하도시 한복판에 침묵한 채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지잉-

이안이 손을 뻗자 성검의 긴 검신이 유연하게 접혀 들어가더니 이안의 전술 단말기 측면에 장착할 수 있는 휴대형 퀀텀 마스터 모듈의 형태로 완벽히 변형되었다.

동시에 성소 중앙 바닥의 백색 대리석판이 좌우로 묵직하게 갈라지며 성도 지하 깊은 곳을 향해 까마득하게 뚫려 있는 최고급 수직 반중력 관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리아가 지팡이를 고쳐 쥐며 이안과 A-09를 향해 단단한 결의가 담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황제의 미망은 끝났지만 우리의 진짜 여정은 이제 시작이군요. 고대의 진실이 잠든 지하도시로 가시겠습니까?"

"그래. 세라프와 이 행성의 진짜 역사가 기다리고 있다."

이안은 휴대형 퀀텀 모듈로 변형된 성검을 결착하고 지하로 뚫린 수직 관로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수천만 년 동안 닫혀 있던 고대 지하도시의 문이 그들을 향해 열리고 있었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