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25화: 잊혀진 고대 전쟁
[LOCATION: LUMINAR KINGDOM - GRAND SPIRE / IMPERIAL SANCTUARY]
[TIME: DUSK / CLOUD DOME LEVEL]
수직 관로를 따라 폭발적인 속도로 치솟던 반중력 승강 플랫폼이 마침내 성도 중앙탑 최고 상층부를 둘러싼 짙은 구름 장막을 거침없이 찢어발겼다.
콰아아앙-!
투명한 강화 발광 유리에 부딪히는 사나운 전자기풍 소리가 정적을 깨뜨리며 솟구쳐 올랐다. 직경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제어 승강대가 마침내 중앙탑 최상층 '마도황제의 성소' 중앙 도크 바닥에 둔탁한 금속음과 함께 수평으로 결합했다.
"플랫폼 고정 장치 작동 완료... 상층부 에테르 기압이 급격히 안정됩니다."
이안은 레일거너의 조준선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가볍게 신음하는 승강대 난간 너머로 주변 지형을 빠르게 스캔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성도 중앙탑 500미터 정상부 위에 조성된 거대한 백색 돔 형태의 사원 공간이었다. 바닥은 흠 하나 없이 닦인 투명한 백색 대리석으로 덮여 있었고 돔형 천장은 성도 루미나르 전체를 내려다보는 노을빛 석양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광경과는 달리 그들을 맞아준 것은 차가운 억압감이었다.
"거신의 보조 융합로를 멈추고 제어반을 강제 정지시킨 불청객들이 바로 너희였단 말인가."
성소 중앙, 옥빛 에테르 기둥이 솟구치는 백색 금속 대단상 위에서 묵직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곳에는 은백색과 금빛으로 장식된 마도 로브를 입은 노인이 꽂꽂이 서 있었다. 루미나르 왕국의 절대 군주이자 마도학회의 으뜸 거장인 마도황제 솔론이었다. 그의 좌우로는 십여 명의 고위 마도학회 원로들과 묵빛 강화 중갑을 입은 정예 근위 기사단이 사방에서 마도 지팡이와 대검을 꼬나쥔 채 이안 일행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리아가 지팡이를 고쳐 쥐며 나직하게 이빨을 깨물었다.
"마도황제 솔론 폐하... 정령의 숲과 수인 자치령을 무자비하게 짓밟기 위해 저런 금단의 거신을 건조하려 하셨습니까! 대륙 전체의 마동맥을 파괴하고 성도를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말입니다!"
솔론 황제는 리아의 분노 어린 일갈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며 근위대의 무력 난입을 제지했다.
"무지하구나, 3급 조사학자 리아 벨렌. 저 아래 멈춰 선 거신은 단순한 침략용 병기가 아니다. 그것은 고대 신들이 이 대륙을 정화하고 위대한 인류의 번영을 도모하기 위해 남긴 거룩한 유산의 파편일 뿐이다."
"거룩한 유산이라고요?"
"그렇다. 저 거신과 내 손에 들어올 이 '성검'이야말로 고대 신들이 대륙을 지배하던 영광스러운 전쟁의 증거다."
솔론 황제가 단상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가 손을 뻗었다. 그곳에는 직경 수 미터의 백색 금속 받침대 중앙에 청백색 룬 광채를 뿜어내는 수직 장검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바로 전설로만 내려오던 '성검'이었다.
이안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전술 단말기 센서가 성검의 표면을 스캔하자 파란색 양자 데이터 회로망이 점등되었다.
[SCANNING ANCIENT RELIC... SEPHIROTH TARGETING POINTER DETECTED]
[WARNING: UNIDENTIFIED QUANTUM COMMAND INTERFACE]
성검은 마법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르카디아 함선 기술보다도 더욱 고도화된 고대 인류 문명의 궤도 방어망 표적 지정 단말기였다.
"너희에게 보여주마. 우리가 마주한 신들의 위대함과 잊혀진 대전쟁의 숭고한 역사를."
솔론 황제가 마력 지팡이를 성검의 손잡이에 대고 응집된 에테르를 쏟아부었다.
지잉-!
성검의 흉곽 코어가 반응하자 성소 전체의 백색 대리석 바닥이 파란색 입체 데이터 라인으로 일제히 물들었다. 이어 돔 천장 전체가 수천만 년 전의 서곡을 그리며 입체 홀로그램 영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리아가 억누른 탄성을 터뜨렸다.
공중에 영사된 광경은 거룩한 신들의 낙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끔찍할 만큼 잔혹한 아포칼립스 전쟁의 한 장면이었다.
칠흑 같은 외우주 궤도 상공에서 수백 척의 거대 궤도 전함들이 푸른 플라즈마 포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대지 위에서는 높이 수십 미터에 달하는 대형 자율형 기계 군단과 '철의 거인'의 모태가 된 원형 병기들이 하늘을 가르며 수백만의 오토마톤 부대와 사납게 충돌하고 있었다.
하늘이 갈라지고 행성의 지각이 찢겨 나갔다. 거대 궤도 포격이 쏟아질 때마다 대륙 하나가 흔적도 없이 용암 지대로 변했다. 고대 도시의 웅장한 마천루들이 잿더미로 스러지는 광경이 사방에 펼쳐졌다.
솔론 황제는 홀로그램 영상을 올려다보며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보아라! 고대 신들께서 하등한 피조물들을 정화하고 이 대륙에 새로운 마법과 신성한 규칙을 세우기 위해 치르신 거룩한 신들의 전쟁이다! 그분들은 천공에서 벼락을 내리쳐 멸망을 선사하셨고 오직 선택받은 존재들만을 남겨 지금의 대륙을 개척하게 하셨다!"
원로 학자들과 정예 기사들이 홀로그램에 감탄하며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이안의 표정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영사되는 전함의 장갑 표면에는 잊혀진 지구 연방의 군사 문양이 똑똑히 인쇄되어 있었다.
"착각하지 마라."
이안의 건조한 음성이 웅장한 홀로그램의 소음을 뚫고 성소에 울렸다.
솔론 황제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이안을 노려보았다.
"무슨 뜻이냐, 외지인이여."
"저건 신들의 거룩한 정복전이 아니다."
이안은 홀로그램 상공에서 불타며 추락하는 궤도 전함의 중앙 제어기를 가리켰다.
"저것은 통제를 잃은 자율형 행성 방어 기계 군단과 궤도 방어망이 인류 문명 자체를 괴멸시킨 최악의 멸망전이다.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은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과 자율 병기들이었을 뿐이다."
"무어라...?"
솔론 황제의 눈매가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리아 역시 충격으로 말을 잃은 채 이안과 홀로그램을 번갈아 보았다.
"고대 인류는 통제 불능에 빠진 궤도 방어망 '세피로스'와 기계 군단의 사투 끝에 멸망했다."
이안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단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당신들이 '성검'이라 부르는 저 금속 자루 역시 신의 권능이 아니다. 저것은 궤도 상공에 떠 있는 사멸된 정화 위성의 포격 좌표를 직접 찍어 누르는 궤도 방어망 표적 지정기일 뿐이다."
성소 내부가 순식간에 차가운 침묵에 휩싸였다.
학회 원로 학자들이 동요하며 서로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솔론 황제는 이내 광기 어린 냉소를 지으며 성검의 손잡이를 더욱 세게 쥐었다.
"허튼소리로 학회의 권위를 더럽히려 드는구나. 그것이 신의 무기이든 고대 인류가 남긴 병기이든 상관없다! 그 멸망의 여파 속에서 끝내 생존하여 마법의 정수를 꽃피운 것은 바로 우리다!"
황제는 성검의 장갑을 강제로 비틀어 열려고 시도했다.
"저 아래 동력 코어는 너희가 멈추었을지언정 이 성검의 본체 권한을 가동하면 성도 중앙탑 궤도 렌즈가 깨어나 대륙 전체의 에테르를 흡수할 것이다! 그리고 마도학회는 마침내 대륙의 절대 지배자가 될 것이다!"
위잉-!
솔론 황제가 마력을 강제로 주입하자 성검의 표면에서 기괴한 붉은 경고등이 켜졌다.
[CRITICAL WARNING: UNAPPROVED USER ATTEMPTING COMMAND OVERRIDE]
[ORBITAL CLEANSE SYSTEM 'SEPHIROTH' ENTERING STANDBY PHASE]
성소 돔 상공의 투명 유리 너머 하늘에서 붉은 전자기 파동이 구름을 타오르게 하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접근이 사멸해 있던 고대 궤도 방어망의 자동 정화 프로토콜을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멈추십시오, 솔론 황제!"
리아가 지팡이를 세워 성검 주변에 옥빛 정령 억제 장막을 펼치며 소리쳤다.
"저 검을 강제로 깨우면 성도 루미나르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가 수천만 년 전의 그 불바다처럼 무차별 정화의 대상이 됩니다!"
"입 다물어라! 진정한 권력은 위험을 무릅쓰는 자의 것이다!"
솔론 황제가 고함을 지르며 학회 원로들과 근위 기사단에게 손짓했다.
"저 침입자들을 제압하라! 그리고 그들이 가진 고대 기술 단말기를 모두 빼앗아 성검에 직결시켜라!"
"황제 폐하를 위해!"
묵빛 중갑의 정예 근위 기사 10여 명이 마동 장검에 붉은 마력을 두르며 이안 일행을 향해 쇄도했다. 고위 원로 학자들 역시 지팡이를 높이 들어 성소 사방에 십여 개의 에테르 마법진을 동시에 개방했다.
이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레일거너를 쳐들었다.
콰앙! 콰앙!
레일거너에서 뿜어져 나온 초고속 중탄소 탄환들이 쇄도하던 기사들의 마동 방패 코어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충격파로 기사들이 비틀거리는 틈을 타 이안은 오른손의 플라즈마 토치를 전방으로 거세게 휘둘렀다.
섭씨 수천 도의 푸른 플라즈마 궤적이 허공을 가르며 원로 학자들의 에테르 마법진을 단번에 녹여 버렸다.
"리아, A-09를 사수하십시오!"
"네, 이안 님! 바람과 대지의 정령이여, 수호의 장벽이 되어라!"
리아가 옥빛 지팡이를 바닥에 꽂아 넣자 강렬한 정령의 바람과 석재 장벽이 이안 일행의 측면과 후방을 완벽히 차단했다.
그 충돌의 혼란 속에서 은발 소녀 A-09가 조용히 단상 중앙을 향해 걸어 나갔다.
소녀의 맑은 눈동자가 성검의 붉은 경고등을 가만히 비추었다. A-09가 가볍게 손을 뻗자 소녀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은빛 양자 광섬유 가닥들이 허공을 가르며 성검의 손잡이 전면에 부드럽게 감겨들었다.
지잉-!
그 순간 성검의 붉은 경고등이 거짓말처럼 꺼지며 눈부신 청백색 퀀텀 광채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COMMANDER ACCESS VERIFIED: ARCADIA BIOMETRIC KEY ACCEPTED]
[WELCOME BACK, SECURITY OFFICER KASIAN & SUBJECT A-09]
콰아아앙-!
솔론 황제가 쥐고 있던 성검이 그의 손을 거세게 튕겨내며 백색 대단상 위로 온전히 부상했다. 성검에서 뿜어져 나온 청백색 퀀텀 폭풍이 성소 전체를 덮치며 돔형 사원의 수십 개 투명 유리창을 일제히 산산조각 내었다.
"크아악! 이... 이 무슨...!"
솔론 황제와 학회 원로들이 거대한 퀀텀 충격파에 밀려 무릎을 꿇었다.
청백색 빛의 기둥 중앙에서 성검은 오직 이안과 A-09만을 향해 진정한 고대 문명의 룬 문자를 점등하며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성검의 참된 주인이 누구인지가 만천하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안은 솟구치는 퀀텀 바람 속에서 레일거너를 단단히 잡으며 단상 위 성검과 솔론 황제를 향해 서늘한 눈빛을 내리꽂았다. 고대 전쟁의 진실을 뒤로하고 성검을 둘러싼 마지막 결전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