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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21화

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21화: 왕국 루미나르

[LOCATION: LUMINAR KINGDOM - CAPITAL LUMINAR / UPPER TERRACE]

[TIME: EARLY MORNING / ETHER SURGE WARNING IN EFFECT]

빛의 전송 관로를 관통하는 감각은 길지 않았다.

전신을 아우르던 아득한 공간 왜곡과 에테르 수평선이 거두어지자 삼인의 발밑에 단단하고 평평한 석조 바닥이 닿았다.

이안은 내리꽂히는 밝은 햇살에 시야를 적응시키며 손으로 눈가를 살짝 가렸다. 레일거너의 경계 자세는 여전히 흐트러짐이 없었다. 리아 역시 지팡이를 다잡은 채 가볍게 호흡을 다듬었고 A-09 소녀는 후드를 깊게 눌러쓴 채 사방의 전자기 스펙트럼을 스캔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덩굴과 이끼에 덮인 오래된 백색 대리석 감시탑 내부였다. 석조 아치문 너머로 뿜어져 나오는 바람에는 지하의 텁텁한 흙냄새가 아닌 맑고 청량한 아침 공기와 꽃향기가 실려 오고 있었다.

"여기가... 지상 성도 루미나르입니까?"

이안의 질문에 리아가 석조 아치문 밖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네. 왕국 루미나르의 수도이자 대륙 마도 문명의 중심지인 성도 루미나르입니다."

아치문 밖으로 걸어 나간 삼인의 눈앞에 거대하고 웅장한 천공 마법 도시의 전경이 압도적으로 펼쳐졌다.

구름 위로 우뚝 솟은 수십 개의 순백색 부유탑들이 허공에 떠 있고 그 사이를 푸른 빛무리를 뿜어내는 공중 마법정선들이 부드럽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도시 전체를 굽어보는 바닥은 정교하게 세공된 백색 대리석과 룬 문자가 새겨진 아케이드로 가득했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이 도시 전체의 에테르 결정을 반사하며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하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고대의 멸망한 흔적들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지상 판타지 왕국의 화려한 미장센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미장센을 감상할 여유는 길지 않았다.

위잉-! 콰르르릉-!

도시 상공을 천천히 순항하던 수십 개의 거대한 공중 마법정선들이 일제히 붉은 비상 마법 원진을 발산하며 혼란스럽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케이드 거리마다 깔려 있던 에테르 가스등과 마도 구동식 분수대들의 푸른 빛이 위태롭게 깜빡거리더니 둔탁한 소리를 내며 하나둘 꺼졌다.

지하 최심부 통제실에서 이안과 케일럼이 메인 코어의 에테르 추출량을 60% 이상 강제로 차단했던 여파였다.

"경보! 성도 지하 마동 가이아 관로에 Class-3 급 마동 저하가 발생했다! 모든 공중 감시선은 1호 비상 배전에 진입하라!"

상공의 마도학회 집행선에서 확성 마법 진형을 통해 울려 퍼지는 중후한 경고음이 성도 전체를 짓눌렀다.

이안은 전술 단말기의 화면을 확인하며 이마를 지푸렸다.

"지하에서 메인 코어 수확을 억제한 파동이 지상 성도 전체의 마력망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마도학회가 즉각 비상 경계령을 발령했군요."

"이곳 외곽 감시탑도 곧 학회 특무대의 수색 범위에 들어올 것입니다. 서둘러 인파가 많은 중앙 대광장 쪽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리아의 말에 이안은 레일거너를 긴 방수포 방주에 은밀히 감싸 짊어졌고 A-09는 은발 양자 광섬유가 드러나지 않도록 갈색 로브 후드를 깊숙이 내렸다.

삼인은 신분을 은폐한 채 고대 감시탑을 나와 성도 중앙 대광장을 향해 신속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성도 중앙 대광장은 수천 명의 인파와 각지에서 모여든 상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풍성한 로브를 입은 귀족 마법사들부터 정령 문양을 새긴 수인 상인들, 룬 문자가 새겨진 지팡이를 판매하는 연금술사들까지 다양했다. 거리 전체가 마치 거대한 마법 축제의 현장처럼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인파 속을 천천히 지나가는 이안의 눈에는 화려함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실체가 명확히 포착되었다.

광장 중앙의 거대한 중앙 분수대 주위에는 칠흑 같은 묵빛 갑주를 입은 마도학회 집행 기사들과 학회 직속 마도관들이 장검과 스태프를 든 채 삼삼오오 조를 이루어 시민들을 위압적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저들이 마도학회 집행 기사단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왕칙을 수행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성도 학회 거장들의 지시만을 받는 사설 군대지요."

리아가 씁쓸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설명했다.

"왕국의 국왕이나 귀족원조차 마도학회의 에테르 공급을 인질로 잡혀 있어 학회의 독단을 막지 못합니다. 이 도시의 화려함은 대지 깊은 곳을 쥐어짜 낸 마력 위에 서 있는 사상누각일 뿐입니다."

바로 그때 광장 한구석에서 거친 호통 소리와 함께 쇳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이건 내 가문의 대대로 내려온 정령 마력 결정이오! 어찌하여 학회가 이걸 무단으로 압수한다는 말이오!"

"시끄럽다! 지옥의 마동 장애로 인해 성도 중앙탑의 에테르 배전이 위급하다! 왕령에 따라 성도 내 모든 민간 마력 수용체는 학회 중앙 징집소로 귀속된다!"

검은 갑주의 집행관 한 명이 나이 든 수인 상인의 멱살을 잡은 채 가슴에 차고 있던 붉은 마력 결정을 거칠게 뜯어내고 있었다. 상인의 어린 딸이 울부짖으며 집행관의 갑옷을 잡고 애원했지만 집행관은 차가운 눈빛으로 마법 지팡이를 들었다.

"학회의 명령에 불복하는 자는 마동 모독죄로 처형한다!"

집행관의 지팡이 끝에서 붉은 에테르 방전이 불꽃을 튀기며 당장이라도 억울한 시민을 내리칠 기세를 보였다.

구경꾼들은 학회의 무자비함에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감히 나서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마도학회의 수탈과 독재가 성도 주민들의 삶을 정면으로 짓누르고 있는 참혹한 현장이었다.

이안의 눈매가 서늘하게 좁아졌다.

"리아, 이 도시의 학회 집행관들은 전력 장비의 통제권마저 무력으로 갈취하는군요."

"상층부의 거장들이 지상 중앙탑에 마력을 쏟아붓느라 민간의 에테르까지 마구잡이로 수탈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요!"

리아가 분노로 지팡이를 쥐려 하자 이안이 그녀의 어깨를 조용히 누르며 나섰다.

"잠깐. 정령 마법을 직접 쓰면 리아 씨의 신원이 즉시 드러납니다. 제 방식으로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이안은 전술 단말기의 초지향성 마이크로 EMP 펄스 모드를 결합했다.

[TARGET LOCK: ENFORCER ETHEREAL STAFF #01, #02]

[FREQUENCY: HIGH-POWER PULSE OVERLOAD / NON-LETHAL DISRUPT]

집행관이 마법 지팡이를 높이 들어 상인을 내리치려는 순간이었다.

이안이 품속의 스위치를 가볍게 눌렀다.

피융-!

눈에 보이지 않는 고주파 전자기 펄스 파동이 집행관의 마법 지팡이에 정밀하게 집속되어 쏘아졌다.

지팡이 내부를 흐르던 붉은 에테르 마동 회로가 순간적으로 4,000헤르츠의 역방향 파동에 휩쓸리며 극심한 과부하 반응을 일으켰다.

콰지직-!

"으아악! 지팡이가...!"

집행관이 비명을 지르며 지팡이를 놓쳐버렸다. 붉은 불꽃을 피우던 마법 지팡이의 룬 문자 코어가 까맣게 타들어 가며 매캐한 연기와 함께 스파크를 내뿜었다. 옆에 서 있던 다른 집행관의 에테르 시위 역시 피용하는 소리와 함께 마동이 쇄결되어 멍하게 구슬만을 바라보았다.

"뭐, 뭐야! 마법 회로가 붕괴했다! 원거리 마도 공격인가?!"

집행관들이 당황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이안은 리아에게 눈짓을 보냈다.

리아는 즉시 부드러운 바람의 정령 마력을 사용하여 상인과 그의 딸을 감싸 안고 인파 속 뒤편 골목으로 안전하게 이동시켰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자애로우신 여행자님!"

상인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고 리아는 나직하게 주머니에 은화를 쥐여주며 말했다.

"서둘러 성도 외곽으로 피하십시오. 마도학회의 징집령이 더 거세질 것입니다."

A-09 소녀는 골목 어귀에서 집행 기사단의 통신 신호를 정밀 스캔하며 이안에게 나직하게 보고했다.

"집행 기사들의 마도 통신... 중앙탑 상층부 징집 명령이 끊이지 않고 있어요. 도시 전체의 에테르를 중앙탑으로 집결시키고 있어요."

이안은 무력화된 집행관들이 고함을 지르며 광장을 수색하는 모습을 뒤로한 채 팀원들을 이끌고 광장을 빠져나와 성도 북쪽 외곽의 고지대 전망대로 향했다.


성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외곽 고지대 언덕에 오르자 성도의 전체 윤곽과 중앙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백색 탑—마도학회 본부 중앙탑(GRAND SPIRE)이 웅장한 모습으로 시야에 들어왔다.

수백 미터 높이의 중앙탑 정상부는 짙은 환영 마법 구름과 이중 에테르 방어 장막에 둘러싸여 일반인의 눈에는 그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저곳이 바로 마도학회의 최심부이자 모든 에테르 수탈의 중심인 성도 중앙탑입니다."

리아가 탑을 바라보며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케일럼 학자님의 말에 따르면 저 탑의 정상부에서 마도학회 거장들이 고대의 병기 '철의 거인'을 몰래 건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안은 전술 단말기의 광학 망원 렌즈를 조준하고 고주파 스펙트럼 스캔 버튼을 눌렀다.

단말기 화면의 스펙트럼 필터가 이중 환영 장막의 마력을 단계적으로 제거하자 구름 너머 중앙탑 정상부의 참혹하고 거대한 실체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OPTICAL SCAN: GRAND SPIRE UPPER DECK]

[OBJECT IDENTIFIED: ANCIENT MECHA TITAN SKELETON / MASS: 12,000 TON]

[POWER CELL: ARCADIA-CLASS HYBRID FUSION CORE FRAME (RECONSTRUCTED)]

이안의 눈동자가 차갑게 굳어졌다.

망원 렌즈에 포착된 것은 단순한 판타지의 마법 구조물이 아니었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둔탁한 고대 티타늄 흉곽 골격과 거대한 동력 관로 그리고 가슴 중앙에 장착된 아르카디아 개척선 규격의 초고압 융합로 마운트 프레임이 조립되고 있는 거대한 강철 거인의 형상이었다.

마도학회 거장들은 지각 아래의 에테르를 쥐어짜 내어 고대 인류 문명의 거대 기계 병기 설계도를 복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것이... '철의 거인'이군요."

이안의 나직한 혼잣말에 A-09 소녀가 가슴을 꼭 쥐며 눈을 감았다.

"느껴져요... 저 강철 거인의 가슴속에... 아르카디아의 고대 파편 코드가 기생해 있어요. 오빠... 저 거인이 눈을 뜨면... 이 대륙뿐만 아니라 하늘 전체가 불바다가 될 거예요."

리아 역시 스크린의 강철 거신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학회의 탐욕이 결국 대륙을 파멸로 끌고 가고 있군요. 무슨 수가 있어도 중앙탑에 침투하여 저 거인의 완성을 막아야 합니다."

이안은 광학 스캔 데이터를 전술 단말기에 저장하며 레일거너의 조준 밸런스를 정비했다.

1부 '별의 끝'에서 마주했던 고대의 미스터리는 마침내 지상 루미나르 왕국에서 마도학회의 거대한 야욕과 부딪치며 새로운 2부 '신화의 대륙'의 성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우리의 다음 목표는 성도 중앙탑 내부로 침투하여 마도학회의 기밀 기록을 확보하고 '철의 거인'의 동력 회로를 완벽히 쇄결하는 것입니다."

이안의 결연한 목소리에 리아와 A-09가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햇살이 부서지는 성도 루미나르의 푸른 하늘 아래 세 명의 개척자와 조력자들은 중앙탑을 향해 힘찬 첫발을 디디며 지상에서의 새로운 투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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