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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17화

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17화: 엘프의 경계

융합로 환풍 챔버를 나선 삼인의 발걸음은 지하 깊은 곳으로 통하는 고대 티타늄 교각으로 이어졌다.

공중 중간에 붕 떠 있는 티타늄 합금 교각 아래로는 칠흑 같은 가스 배출구가 수직으로 아득히 뚫려 있었다. 30초마다 웅웅거리는 전자기 맥동음이 교각 바닥을 가볍게 울렸고 교각 끝단에는 최심부 코어로 들어가는 육중한 아치형 장갑문이 버티고 서 있었다.

[SECTOR 01: INNER CORE GATEWAY & ANCIENT CONDUIT BRIDGE]

[ATMOSPHERIC PRESSURE: STABLE / MANA INTERFERENCE: EXTREME]

[AUXILIARY CORE OVERHEAT: CRITICAL WARP 87%]

이안은 허리춤의 전술 단말기를 고쳐 잡고 교각 정면의 어둠을 주시했다. 레일거너 전면의 열화상 및 적외선 파형 스캐너가 실시간으로 교각 주변 공기를 훑어내렸다.

단말기 스크린 위로 기묘한 전자기 왜곡 파형이 어지럽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이안 님, 전방의 공기가 이상합니다."

뒤를 따르던 리아가 지팡이를 나직하게 쥐며 멈춰 섰다. 리아의 손끝에서 피어난 얇은 마력 섬광이 허공에서 불규칙하게 굴절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단순한 굴절이 아닙니다. 고대 정령 마력을 이용해 광학적 시야와 열 반응을 동시에 감추는 고위 은폐 결계입니다."

"내 단말기 스캐너에도 이상 징후가 잡히고 있습니다."

이안이 단말기 버튼을 조작하자 스크린 위에 12개의 희미한 생체 반응 궤적이 붉은점 형태로 떠올랐다.

[ALERT: OPTICAL REFRACTION DETECTED]

[TARGET COUNT: 12 / ENTITY TYPE: UNKNOWN BIOLOGICAL]

교각 좌우의 금속 아치 구조물 위와 천장 배선관 그늘 속에 누군가가 숨어 있었다. 그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이안 일행의 동선을 완벽하게 조준하고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마도학회 특무대와는 마력 파형이 다릅니다. 이 서늘하고 오붓한 바람 기운은..."

리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콰아아앙!

칠흑 같은 허공에서 청백색으로 빛나는 정령 화살 한 줄기가 번개처럼 쏘아져 내려왔다.

화살은 이안의 전술 부츠 바로 앞 10센티미터 바닥재에 정확히 꽂혔다. 초고도 압축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깃이 강철 바닥을 뚫고 들어가며 눈부신 에테르 불꽃을 튀겼다.

"거기까지다, 침입자들."

머리 위 금속 아치 상단에서 서늘하고 울림이 깊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치지직-

허공을 가로막고 있던 투명한 결계가 물결처럼 흩어지면서 티타늄 구조물 위로 길쭉한 귀와 날렵한 은빛 가죽 갑주를 입은 십여 명의 궁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손에는 푸른 정령 에너지가 깃든 고대 장궁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선두에 선 엘프 파수대장 칼렌(Caelen)이 차가운 눈빛으로 이안 일행을 내려다보며 장궁의 시위를 고쳐 잡았다.

"이곳은 성도 마도학회와 고대 정령 수호대가 맺은 맹약에 따라 봉인된 신의 성소다. 성소의 거룩한 마동맥을 더럽히고 침입한 이방인들이여, 즉시 무기를 버리고 뒤로 물러서라."

리아가 깜짝 놀라며 지팡이를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고대 엘프 수호대...! 어째서 당신들이 성도 마도학회의 지하 통로를 지키고 있는 겁니까?"

칼렌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답했다.

"우리는 마도학회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대지의 마동맥을 유지하고 신의 축복을 보전하는 거룩한 코어를 수호할 뿐이다. 마도학회 관재관들이 경고하길, 거친 이방인들이 고대 유물을 파괴하고 성도를 파멸로 몰아넣으려 지하로 침투했다 들었다."

"거짓입니다!"

리아가 목소리를 높이며 앞으로 나섰다.

"마도학회 상층부는 신의 축복이라는 명목으로 성소의 동력 코어에 무단으로 구멍을 뚫어 마력을 쥐어짜 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행하는 것은 수호가 아니라 거대한 파멸을 부르는 범죄입니다!"

칼렌의 눈동자가 차갑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장궁의 시위를 놓지 않았다.

"수백 년 동안 성소를 수호해 온 우리의 맹약은 한낱 이방인의 말 한마디로 흔들리지 않는다. 더 이상 접근한다면 대지의 정령이 너희를 꿰뚫을 것이다."


팽팽한 긴장감이 교각 전체를 짓눌렀다. 엘프 궁수 12명의 정령 화살이 일제히 이안의 가슴과 머리를 향해 빛을 모았다.

이안은 레일거너의 총구를 천천히 바닥으로 내렸다. 지금 섣부르게 비살상 탄환을 발사한다면 좁은 교각 위에서 치명적인 유혈 충돌이 일어날 뿐이었다.

"리아, 장막을 거두지 말고 대기하세요."

이안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한 뒤 옆에 서 있던 은발 소녀 A-09를 바라보았다.

"A-09. 손을 내게 다오."

소녀 A-09는 은색 나비 펜던트를 쥔 채 조용히 이안의 전술 장갑 위에 작은 손을 올렸다. 이안은 전술 단말기의 메인 케이블을 A-09의 펜던트 하단 접촉 포트에 결합하고 단말기 출력을 광학 프로젝트 투사 모드로 전환했다.

"칼렌 대장이라고 했나."

이안이 머리 위의 엘프 파수대장을 직시하며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당신들이 맹약을 믿는다면, 이 함선의 진짜 주인이 남긴 정식 시스템 기록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치이잉-

이안의 단말기와 A-09의 생체 양자 광섬유 머리카락이 동시에 웅장한 청색 빛을 불꽃처럼 피워 올렸다. 머리카락 끝에서 뿜어져 나온 광학 신호가 허공에 거대한 입체 홀로그램 스크린을 선연하게 펼쳐냈다.

그곳에는 고대 아르카디아 개척선의 관제 화면과, 마도학회가 강제로 뚫어놓은 마동 추출관의 3차원 투시도가 붉게 점멸하고 있었다.

[ARCADIA MAIN LOG: CRITICAL OVERHEAT WARNING]

[UNAUTHORIZED MANA SIPHONING DETECTED: CONDUIT LINE 01 TO 08]

[CURRENT WARP LEVEL: 87% / ESTIMATED EXPLOSION: 71 HOURS 42 MINUTES]

교각 벽면 전체가 붉은 경고등으로 물들었고 고대 인류 표음식 발음과 현지 언어가 섞인 시스템 경고 방송이 아치형 천장을 울렸다.

"경고. 보조 융합로 임계 과부하 87% 도달. 비인가 마동 추출관 연결로 인해 열각 억제 불능. 71시간 이내 마동관 미차단 시 함선 AI 세라프의 지표 정화 프로토콜 자동 가동."

칼렌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셔나갔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엘프 대원들 역시 당황한 기색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저 붉은 문자는..."

"성소의 핵심 벽면에 각인되어 있던 고대 신들의 언어다!"

리아가 단호하게 덧붙였다.

"당신들이 '신의 은혜'라 믿고 수호하던 마력의 정체는 융합로가 과부하되어 뿜어내는 치명적인 폐열 에너지입니다! 마도학회는 당신들의 순수한 맹약을 이용해 이 아래에서 세계를 멸망시킬 시한폭탄을 돌리고 있었던 겁니다!"


소녀 A-09가 은발을 휘날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소녀의 맑은 눈동자가 칼렌을 향했다.

"수호자... 속았어요. 융합로가... 비명을 지르고 있어요. 70시간 뒤면... 숲도, 대지도... 전부 잿더미가 돼요."

소녀의 은발에서 피어난 양자 광섬유의 푸른 빛무리가 교각 전체를 따스하게 감쌌다. 그 빛무리가 칼렌의 정령 장궁에 닿자 장궁 끝에 깃들어 있던 정령 마력이 마동 추출관의 흉포한 오염 궤적을 인지하고 이리저리 떨리기 시작했다.

칼렌은 떨리는 손으로 장궁을 내렸다.

"정령들이... 공포에 질려 울부짖고 있다. 저 소녀가 뿜어내는 빛은 진짜 대지의 근원 마력과 통하고 있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후방 지하 정비 계단 너머에서 거친 마력 충격파가 터져 나오며 붉은 로브를 입은 마도학회 특무대와 감시관이 교각 입구로 들이닥쳤다.

"칼렌 대장! 무엇을 머뭇거리고 있나!"

붉은 로브의 감시관이 지팡이를 들고 소리쳤다.

"저 침입자놈들이 성소의 마력을 더럽히기 위해 거짓 환영을 만들어 엘프들을 현혹하고 있다! 맹약에 따라 즉시 저들을 쏘아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왕국 학회와의 계약은 파기될 것이다!"

감시관의 협박에 엘프 대원들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경직되었다.

칼렌은 감시관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는 맹목적인 복종 대신, 속았다는 깊은 분노와 수호자로서의 서늘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계약이라 했나?"

칼렌이 장궁의 시위를 틀어잡으며 전방이 아닌 뒤따라온 마도학회 감시관과 특무대를 향해 돌아섰다.

"우리가 수호해 온 것은 당신들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거짓 탑이 아니다. 우리는 대지와 이 세계의 생명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슈아아악!

칼렌이 쏘아낸 거대한 푸른 정령 화살이 마도학회 특무대의 발밑 티타늄 바닥에 강렬하게 꽂혔다.

화살이 꽂힌 자리를 중심으로 찬란한 푸른 정령 결계 선이 굵게 그어졌다.

[ELVEN BOUNDARY: NO TRESPASSING]

"이 선은 우리 엘프 파수대의 경계다!"

칼렌이 감시관을 향해 장궁을 겨누며 일갈했다.

"단 한 걸음이라도 이 경계를 넘어선다면, 마도학회 특무대라 할지라도 정령의 분노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마도학회 감시관은 당황하여 지팡이를 뒤로 물렸다. 엘프 파수대원 12명이 일제히 마도학회 특무대를 향해 정령 화살을 겨누며 단단한 인간 장벽을 형성했다.


칼렌은 이안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방인... 아니, 고대 성소의 보안관이여."

칼렌이 손짓하자 최심부 코어로 향하는 거대한 아치형 장갑문이 중저음과 함께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도학회의 간사한 무리들은 우리가 뒤에서 완벽하게 막아서겠다. 저 게이트 너머 최심부 코어로 들어가 파멸의 마동관을 차단하라."

"고맙다, 칼렌 대장."

이안이 굳은 눈빛으로 고개를 숙인 뒤 레일거너를 고쳐 잡았다. 리아 역시 엘프 파수대를 향해 감사의 마법 인사를 건넸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소녀 A-09의 은발이 환하게 빛나며 최심부 게이트 너머의 칠흑 같은 어둠을 비추었다.

문 너머에는 수천만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아르카디아 메인 코어의 거대한 푸른 융합로와 공중에 아지랑이처럼 떠오른 메인 AI 세라프의 거신 형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안, 리아, A-09 삼인은 주저 없이 문 너머 본선의 심장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티타늄 격벽이 닫히며 회차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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