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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10화

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10화: 첫 번째 단서

어둠은 빛을 집어삼키는 유충처럼 통로 곳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터벅, 터벅.

차가운 금속 바닥을 딛는 군화 소리가 적막한 사방으로 무겁게 울려 퍼졌다. 아르카디아의 보안 책임자, 강이안은 권총 레일거너의 손잡이를 단단히 쥔 채 전방을 주시했다. 전술 헬멧의 바이저 너머로 비치는 통로는 비현실적일 만큼 이질적였다.

"이상해요. 이 탑의 상층부는 분명 천 년 전 초기 루미나르 왕조의 마법사들이 축조한 석조 건축물이었는데……."

이안의 곁에서 걸음을 옮기던 마법사, 리아 벨렌이 작게 속삭였다. 그녀가 허공에 띄워 둔 푸른색 마나 전등이 사방을 흔들며 비추었다. 흔들리는 빛무리 속에서 드러난 돌벽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기묘한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리아의 말대로였다. 탑의 입구는 거친 화강암과 조잡하게 깎아 만든 돌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깊숙한 지하로 내려올수록, 부서진 돌 틈 사이로 드러난 것은 다름 아닌 짙은 회색의 금속 장갑판이었다. 그것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지각 변동을 견디며 돌처럼 굳어진 초합금의 표면이었다.

"이건 돌이 아니야."

이안이 멈춰 서서 손가락으로 장갑판의 표면을 쓸어내렸다. 차갑고 단단한 촉감. 그리고 먼지와 이끼 아래로 숨겨진, 기계로 정교하게 짜 맞추어진 이음새.

"탄소 나노튜브와 티타늄 합금을 극도로 압착한 복합 장갑이야. 이 행성의 원시적인 대장간 기술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오버 테크놀로지 성형물이지. 마치 전함의 장갑벽을 그대로 뜯어다가 기둥으로 세운 것 같아."

"탄소…… 뭐요? 이안, 당신들이 쓰는 언어는 매번 알아듣기가 힘들군요. 현자들의 고대 주문인가요?"

리아가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가늘게 뜨며 물었다. 이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르카디아 탐사대와 현지 원주민 사이의 언어 장벽은 대충 휴대용 통번역기로 해결하고 있었지만, 문명 수준에서 기인한 개념의 차이까지 메우기는 쉽지 않았다. 이 행성의 주민들에게 이 고도의 과학 문명 유적은 그저 '신들이 남긴 마법의 성소'일 뿐이었다.

"그냥 설명하기 어려운 고대 기술이라고 해 두지. 그것보다 주위 마나 흐름은 어때?"

"어둡고 무거워요. 마치 거대한 블랙홀이 주변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느낌이에요. 제 마법적 감각이 완전히 차단당하고 있어요. 이렇게 강력한 결계는 평생 본 적이 없어요."

리아가 제 가슴팍을 움켜쥐며 신음하듯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원인 모를 중압감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실제로 이안의 슈트에 장착된 환경 센서 역시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전자기 장벽의 밀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탑 자체가 외부와의 모든 통신과 전파를 차단하는 거대한 차폐벽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르카디아 본선과의 연결 신호도 이미 끊어진 지 오래였다.

그들은 먼지 쌓인 나선형 통로를 지나 마침내 지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했다.

그들 앞을 가로막은 것은 거대한 원형 격벽이었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문 표면에는 아무런 문양도, 열쇠구멍도 없었다. 오직 중심부에 검은색 유리처럼 매끄러운 사각형 패널만이 침묵 속에 존재할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이 문은 강력한 봉인 마법으로 닫혀 있는 게 분명해요. 왕국 최고의 대마법사들이 와서 해체 의식을 치러야 할 것 같은데……."

리아가 지팡이를 고쳐 잡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이안의 눈은 그 패널에서 떼어지지 않았다. 그 패널은 마법적 문양이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나 익숙한 정전식 터치스크린이자 바이오 센서였다.

이안은 홀린 듯이 제 붉은색 탐사대 제복의 소매를 걷어올렸다. 그리고 가죽 장갑을 벗은 뒤, 맨손을 그 검은 유리 패널 위에 얹었다.

"이안! 위험해요!"

리아가 기겁하며 외쳤다.

스스스스스─.

그러나 마법적 폭발이나 저주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검은 유리 패널 밑에서 은은한 녹색 레이저 빛이 뿜어져 나와 이안의 손바닥을 빠르게 스캔해 나갔다.

동시에, 수천 년간 침묵을 지켜온 지하 공간에 낮고 웅장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윙잉잉잉─.

발밑의 대지가 진동했다. 리아는 비명을 지르며 지팡이를 짚었고, 이안은 균형을 잡으며 격벽을 주시했다.

[생체 정보 스캔 완료.]
[승인 대상: 인간 (Homo Sapiens Sapiens) ─ 연방 탐사 규격에 따른 긴급 접근 권한 확인.]
[비상 전력을 가동합니다. 메인 프레임을 초기화합니다.]

스피커도 보이지 않는 벽면 곳곳에서 웅장하게 울려 퍼진 목소리. 그것은 인위적이고 차가운 기계 합성음이었다.

"어, 어떻게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 장치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거죠? 마법진도 없는데……!"

리아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금속 격벽이 좌우로 갈라졌다. 틈새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두 사람의 옷자락을 세차게 흔들었다. 먼지 냄새와 냉각제 냄새가 섞인, 수백만 년 동안 갇혀 있던 고대의 공기였다.

이안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격벽 너머에 펼쳐진 공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광활한 돔형 챔버였다.

사방의 벽면을 따라 촘촘히 박힌 수천 개의 서버 랙들이 기괴한 괴물들의 뼈대처럼 늘어서 있었다. 천장에서는 굵은 광케이블들이 뒤엉킨 덩굴처럼 내려와 바닥으로 향해 있었고, 그 모든 케이블이 꽂힌 중앙에는 푸른빛을 내뿜는 거대한 실린더 형태의 기계 장치─'메인 컴퓨터 코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게…… 이 탑의 심장인가요?"

리아가 조심스럽게 기계 장치로 다가갔다. 실린더 내부에서는 기포가 끓어오르듯 푸른빛의 냉각액이 순환하고 있었다.

이안은 콘솔로 추정되는 금속 패널 앞으로 나아갔다. 먼지가 두껍게 쌓인 패널을 쓸어내리자, 즉각적인 접촉식 인터페이스가 활성화되었다.

화면 위로 빛이 튀었다. 열화되고 손상된 흔적이 역력한 홀로그램 스크린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치지직, 지직.

화면이 맹렬하게 흔들리며 정체불명의 문자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 이 문자!"

리아가 갑자기 흥분하며 소리쳤다.

"이안, 이것 좀 보세요! 학회에서 기를 쓰고 발굴해 내던 고대 신들의 언어예요! 읽을 수는 없지만, 신화적인 유적에서 발견되는 문자 구조와 완벽히 일치해요!"

리아가 가리킨 홀로그램 화면 속의 문자들.

그러나 그 문자를 바라보는 이안의 눈동자는 격렬하게 지진을 일으켰다. 이안의 심장이 늑골을 부술 것처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등 뒤로 서늘한 소름이 돋아나 살을 에었다.

그것은 고대 신의 문자가 아니었다.

[SYSTEM WARNING: CORE TEMPERATURE CRITICAL]
[DATABASE RECOVERY MODE - 12.4% COMPLETE]
[PROJECT GAIA: RESTORATION IN PROGRESS]

영어였다.

그것도 아르카디아의 항성계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던, 인류가 모성 지구에서 사용하던 문자 체계와 완전히 동일한 영문 텍스트였다.

"이게…… 왜 여기에 있어?"

이안의 목소리가 모래바람처럼 쩍 갈라졌다.

"이안? 왜 그래요? 안색이 너무 나빠요."

리아가 그의 소매를 붙잡았지만 이안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손상된 데이터베이스 로그를 조작했다. 손 끝이 닿을 때마다 홀로그램 스크린이 기계적인 신호음을 내며 페이지를 넘겼다.

화면이 넘어가고, 하나의 동영상 로그 파일이 재생되었다.

화질은 극도로 손상되어 있었고 소리는 노이즈로 덮여 있었다. 하지만 화면 속에 나타난 인물의 모습은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흰색 연구 가운을 입은,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동양인 여성. 그녀의 가슴팍에는 뚜렷한 식별 배지가 부착되어 있었다.

[세계 재건 연구소 ─ 수석 연구원 이선아]

그녀는 고통과 절망이 가득한 표정으로 렌즈를 바라보며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음성은 자동 번역 시스템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이안의 귀에 직관적으로 꽂혔다.

여성이 울먹이며 카메라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치지지직─.

화면이 암전되었다.

동시에 화면 중앙에 행성의 3D 고저차 맵이 그려졌다.

해수면이 극도로 상승하고 지각 변동이 일어났지만, 그 윤곽선은 숨길 수 없이 명확했다. 한반도의 형태가 길게 일그러져 있었고, 동아시아 대륙의 절반이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었지만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제3행성.

그들이 머나먼 우주의 끝을 헤매며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돌아온 이곳은, 외계 행성이 아니었다.

시간의 왜곡 혹은 공간의 굴절로 인해 수천만 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마주하게 된, 인류의 잃어버린 모성.

지구(Earth)의 초극단적 미래였다.

"이안? 무슨 말인지 설명해 줘요. 저 여자분이 말하는 고대어는 대체 무슨 뜻인가요? 저 둥근 구체 모양의 지도는 뭐고……."

리아의 불안 섞인 음성이 귓가를 맴돌았다.

하지만 이안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가 디디고 서 있는 이 마법의 탑, 하늘을 나는 거대한 드래곤, 손 끝에서 불꽃을 피워내는 이 행성의 마법사들.

그 모든 '마법'이라는 경이의 실체는, 멸망한 인류가 남긴 통제 불능의 과학이 빚어낸 끔찍하고도 찬란한 시체 유해에 불과했던 것이다.

우리가 새로 개척해야 할 행성이라고 믿었던 곳이.

결국은 우리가 파괴하고 버려두었던 고향이었다니.

"……우리는 처음부터 갈 곳이 없었던 거군."

허탈함과 절망이 섞인 이안의 나직한 중얼거림이, 차갑게 식어버린 기계 더미 사이로 흩어졌다.

머리 위의 먼지 덮인 코어 터미널은, 그저 오랜 기다림을 끝내고 찾아온 주인을 환영하듯 여전히 푸른빛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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