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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요괴 계약자8화

백야의 요괴 계약자

백야의 요괴 계약자

8화: 그림자의 역습

따뜻한 머그잔에서 피어오르는 온기가 민우의 창백한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지하 북카페의 구석진 테이블. 주황빛 스탠드 조명 아래에서 민우는 탁자 위에 놓인 이태민의 철제 펜던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황동과 철이 조잡하게 얽힌 표면에는 여전히 정령청의 1차 추적을 차단하려는 주술적 장치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백랑, 이 펜던트의 발신 장치를 개조해서 역으로 정령청의 코를 꿸 수 있겠어?"

그의 발밑, 짙은 그늘 속에서 백랑의 비웃음 섞인 음성이 뇌리로 스며들었다.

[흥, 인간 사냥개 놈들의 장난감을 주무르는 것쯤이야 내게는 일도 아니지. 하지만 네놈의 그 보잘것없는 영력으로 주술 주파수를 조작하는 것은 꽤나 정밀한 제어가 필요할 텐데. 삐끗하는 순간 정령청 본부로 다이렉트 경보가 울리고, 사냥개들이 이 카페 문을 부수고 들이닥칠 게다.]

"상관없어. 내 영혼의 그릇은 벽루귀의 귀석을 정화하면서 한 단계 더 넓어졌으니까."

민우는 눈가에 서늘한 푸른빛의 영안(靈眼)을 켜고, 펜던트 내부의 기어와 마력 매듭을 깊숙이 투시했다.

그의 시야 속에서 복잡하게 얽힌 황동 기어들 사이로 가느다란 마력의 실타래가 어지럽게 흐르고 있었다. 민우는 손가락 끝에서 정제된 영력을 자아내어 펜던트의 핵심 주술 선로인 '백호-03' 각인으로 밀어 넣었다.

차갑고 거친 영적 반발력이 손가락을 태울 듯이 치솟았지만, 민우는 미간을 좁히며 이빨을 악물고 영력을 밀어붙였다. 영력을 실처럼 가늘게 쪼개어 보안 장치의 틈새로 파고들게 한 뒤, 마력의 흐름을 억지로 비틀었다.

발신 주파수의 출력 방향을 남서쪽, 즉 유동 인구가 수만 명에 달하는 홍대입구역 번화가 광장 방향으로 완전히 고정시켰다.

탁, 드르륵.

어느 순간 펜던트 내부의 황동 태엽이 부드럽게 돌아가며, 펜던트가 가짜 신호를 내뿜기 시작했다. 정령청의 추적 팀원들은 이제 민우가 홍대입구역 한복판에서 도주 중이라고 판단하고 그쪽으로 포위망을 좁힐 터였다.

"이걸로 정령청의 수사팀은 몇 시간 동안 바보가 되겠지. 남은 건 흑영이다."

민우가 머그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플백을 어깨에 고쳐 매자, 그림자 속에서 백랑이 꼬리를 치며 물었다.

[낙인의 한기 한계 시간은 이제 5시간도 남지 않았다. 그 영혼 없는 그림자 벌레를 어디서 사냥할 셈이냐?]

"어둡고, 넓고, 내 마음대로 빛을 통제할 수 있는 곳."

민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번뜩였다.

"신촌역 뒤편에 리모델링 공사 문제로 몇 년째 폐쇄된 지하 쇼핑상가가 있어. 그곳이 녀석의 무덤이 될 거다."


회색 콘크리트 가벽에 붙은 노란색 '진입 금지' 표지판을 넘어, 민우는 눅눅한 먼지 냄새가 가득한 지하 통로로 발을 내디뎠다.

오래된 석고보드가 썩어 들어가는 퀴퀴한 냄새와 녹슨 철근의 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천장에는 마감 처리가 되지 않은 전선들이 뱀 타래처럼 엉킨 채 늘어져 있었고, 바닥에는 깨진 유리가 자갈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외부의 아침 빛은 이 지하 깊숙한 곳까지 전혀 닿지 못해, 사방이 지독한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민우는 상가 중앙의 광장 구역에 도착했다. 사방이 굵은 시멘트 기둥들로 받쳐진 널찍한 홀이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영안의 시야로 주변을 탐색한 뒤, 구석에 방치된 공사용 대형 배전반으로 다가갔다. 먼지가 두껍게 쌓인 철제 문을 열자, 고압 전류가 흐르는 굵은 케이블과 공사용 대형 할로겐 조명으로 연결된 전원 스위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민우는 단자들을 확인하고 스위치를 올릴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광장 한가운데로 걸어 나와 더플백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백랑, 준비해."

[흐흐, 드디어 그 귀찮은 결빙을 걷어내는군. 녀석의 대가리를 밟을 생각에 벌써부터 턱뼈가 다 쑤시는구나.]

민우는 가슴속에 꽁꽁 묶어두었던 백랑의 한기 마력을 서서히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전신을 옥죄던 얼음장 같은 고통이 사라지면서, 발바닥 아래 얼어붙어 있던 그림자가 빠르게 녹아내렸다. 차갑게 굳어 있던 흑영의 검붉은 낙인이 온기를 되찾자마자 미친 듯이 박동하며 사방으로 기괴한 파동을 뿜어냈다.

낙인이 해제된 것이다.

스우우우…….

낙인이 활성화되자마자, 광장 사방에 깔려 있던 어둠의 두께가 비정상적으로 짙어지기 시작했다. 지하상가의 벽면과 기둥 틈새에 고여 있던 음지들이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꿈틀거리며 중앙의 민우를 향해 흘러들어왔다.

"찾았다…… 기어코 쥐구멍을 팠구나, 영리한 필멸자 놈."

콘크리트 기둥 뒤의 짙은 어둠 속에서, 흑영이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며 걸어 나왔다. 연기처럼 흩어지는 검은 실루엣 사이로 날카롭게 빛나는 두 개의 붉은 안광이 민우의 목덜미를 사정없이 훑었다.

"스스로 햇빛이 닿지 않는 지하 세계로 기어 들어오다니. 제 무덤을 제 손으로 파는 격이로군. 여기서 네놈의 맑은 그릇과 저 오만한 늑대의 대가리를 씹어 삼켜주마!"

"무덤이 될지, 사냥터가 될지는 끝을 봐야 아는 법이지."

민우가 비스듬하게 서서 오른손의 계약 인장에 힘을 주었다.

쉬이이익!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흑영의 신체가 바닥의 그림자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었다. 이내 민우의 등 뒤에 드리워진 짙은 기둥 그림자 속에서, 날카로운 어둠의 칼날 세 개가 튀어나와 그의 목을 향해 호선을 그리며 쇄도했다.

민우는 영안을 극도로 개방해 어둠 속 마력의 궤적을 읽고 있었다. 녀석이 튀어나오기 직전, 그림자가 붉게 충혈되는 찰나를 포착한 민우는 상체를 바닥으로 기울이며 가볍게 굴렀다.

콰아아앙!

어둠의 칼날이 콘크리트 바닥을 강타하며 깊은 균열을 냈다. 튀어 오른 돌가루가 민우의 뺨을 스치며 미세한 상처를 남겼다.

"도망치는 솜씨 하나는 기특하구나!"

흑영의 기괴한 목소리가 광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녀석은 사방의 음지를 징검다리 삼아, 순간적으로 공간을 도약하며 민우의 사각지대를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왼쪽, 오른쪽, 하늘, 바닥.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검은 가시들과 참격의 폭풍 속에서 민우는 백랑의 순발력을 빌려 간신히 몸을 피했다.

어둠의 채찍이 스칠 때마다 셔츠 깃이 찢겨 나가고 피부 위로 붉은 선혈이 베어 나왔지만, 소년의 눈빛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백랑, 지금이다!"

민우의 외침과 함께, 그는 구석의 배전반을 향해 몸을 날려 주먹으로 스위치를 내리쳤다.

쿠르릉! 콰아악!

지하상가 천장에 매달려 있던 대형 공사용 할로겐램프 네 개가 일시에 작동하며, 눈이 멀 것 같은 백색 광원들을 광장 사방으로 쏟아냈다. 평당 수천 와트에 달하는 초고광도 야간 작업용 조명이었다.

"아아아악! 이 하찮은 빛 따위가!"

갑작스러운 강렬한 빛의 세례에 흑영의 신체가 크게 흔들리며 비명을 질렀다. 연기처럼 흩어지던 검은 형체가 빛에 닿아 지글지글 끓어오르며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흑영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녀석은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광장 중앙에 우뚝 솟은 두꺼운 사각 시멘트 기둥들의 등 뒤로 몸을 밀어 넣었다. 강렬한 할로겐 불빛이 비치자, 기둥들의 등 뒤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짙고 긴 칠흑 같은 그림자들이 바닥에 깊게 깔렸다.

"어리석도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더욱 짙고 단단해지는 법! 이 어둠의 장막이 존재하는 한, 나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흑영이 기둥 그림자 속에서 몸을 추스르며 기괴하게 웃어댔다. 녀석의 말대로, 강렬한 광원 때문에 생긴 짙은 그림자 속에서 흑영의 영력은 오히려 더 단단하게 응축되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

민우가 가볍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내가 백랑을 데려온 거다."

[얼어붙어라, 하찮은 어둠의 파편아!]

백랑의 포효와 함께, 광장의 대기 전체가 극도로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악!

민우가 미리 주변의 콘크리트 기둥과 벽면에 서리게 했던 미세한 수분들이 백랑의 절대 영도에 가까운 마력과 반응하여, 순간적으로 거대하고 투명한 얼음 거울—빙경(氷鏡)들로 급격하게 팽창했다. 사방의 기둥 사이와 가벽 표면에 수십 개의 거대한 얼음 반사판들이 돋아난 것이다.

"이, 이게 무슨……?!"

흑영의 붉은 안광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할로겐램프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빛줄기들이 사방의 빙경들에 부딪혔다. 그리고 그 빙경의 매끄러운 표면에서 튕겨 나간 빛들이 다시 맞은편의 얼음 거울로, 그리고 바닥의 은빛 서리로 끊임없이 교차하며 굴절되었다.

빛의 무한 난반사.

광장 내부의 단 하나의 음지도 허용하지 않는 완전한 광학적 포위망이 형성되었다. 사각 기둥 뒤에 드리워져 있던 짙은 그림자들마저 사방에서 꺾여 들어오는 빛의 그물에 찢겨 나가며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아아아아아악! 몸이…… 내 어둠이 녹아내린다!"

기둥 뒤에 숨어 있던 흑영이 완전한 백색의 공간 속으로 강제 노출되었다.

빛의 그물에 갇힌 흑영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녀석은 도망칠 그림자를 찾아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었으나, 사방을 메운 얼음 거울들이 빛을 사정없이 반사해 그림자가 생길 틈 자체를 주지 않았다.

결국 흑영의 거대한 형체는 빛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점차 수축하더니, 마침내 광장 한가운데에 주먹만 한 크기의 검붉은 액체 덩어리—흑영의 령격 핵심(core)으로 뭉쳐 바닥에서 파르르 떨었다.


민우는 령격 압축을 해제하고 차분한 걸음으로 흑영의 핵심 앞으로 다가갔다.

오른손등의 황금빛 인장이 눈부시게 박동하고 있었고, 그의 발밑에서는 백랑의 한기가 뿜어져 나와 흑영의 핵심 주변을 얼려 탈출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선택해라, 흑영."

민우의 목소리는 지하상가의 한기보다 더 서늘했다.

"이대로 백랑의 입속으로 들어가 녀석의 성장을 돕는 거름이 될 것인지. 아니면 내 영혼 아래 굴복해 두 번째 계약 요괴가 될 것인지."

[크윽…… 하찮은 필멸자 놈이 감히 대요괴를 협박하는 거냐……! 내가 사라질지언정 네놈에게 고개를 숙일 리가……!]

검붉은 구체가 기괴하게 요동치며 이빨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네가 들어가서 상대해야 할 내 영혼의 안쪽이 어떤지 직접 확인해 봐라."

민우가 흑영의 핵심 위에 오른손을 얹고, 자신의 영혼 그릇의 장막을 일시적으로 개방했다.

웅웅웅웅!

그 찰나의 순간, 흑영의 영적 의식 속으로 기괴할 정도로 거대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의 공간이 밀려 들어갔다.

그 끝없는 아라바스터 빛깔의 정신 세계 한가운데에는, 전설의 대요괴 백랑이 거대한 황금빛 쇠사슬에 묶인 채 서늘한 적안(赤眼)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쇠사슬이 흔들릴 때마다 차가운 영혼의 진동이 흑영의 령격을 산산조각 낼 것처럼 강타했다.

인간의 그릇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신(神)의 영역에 발을 걸친 듯한 무한한 깊이의 영혼.

흑영의 붉은 눈빛이 난생처음으로 겪는 시원(始原)적인 공포로 물들었다. 이 그릇 속에서는 자신 같은 음지의 요괴 따위는 흔적도 없이 정화되어 사라지거나, 영원히 갇혀 부려질 수밖에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굴복하겠다. 계약자여."

결국 흑영은 파르르 떨며 힘을 잃고 납작하게 엎드렸다.

민우의 입꼬리가 만족스럽게 올라갔다.

"좋아. 계약을 성립한다."

오른손등의 황금빛 인장이 다시 한번 폭발적인 빛을 뿜어내며, 흑영의 검붉은 핵심을 빨아들였다.

화아아악!

민우의 왼팔 전완부를 타고 차갑고 끈적한 어둠의 기운이 뱀처럼 감겨 올라갔다. 이내 그의 왼팔 피부 위에 정교하고 날카로운 검은 그림자 문양의 인장—두 번째 예속 계약의 주박이 선명하게 아로새겨졌다.

동시에, 민우의 뇌리로 흑영의 모든 능력과 시야가 완벽하게 전송되었다.

자신의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늘리고, 그림자가 닿는 곳이라면 물리적인 거리와 장벽을 무시하고 은밀하게 도약할 수 있는 암살자의 힘. 그리고 흑영의 감각을 통해 주위를 360도로 읽어내는 그림자 인지력까지.

"이것이 흑영의 힘인가."

민우가 주먹을 쥐었다 펴자, 발밑의 그림자가 그의 의지에 따라 송곳처럼 날카롭게 솟구쳤다가 이내 고요히 스러졌다.

[흥, 두 마리째로군. 점점 네놈의 그릇이 주술사 놈들의 사슬보다 더 튼튼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구나.]

백랑이 콧방귀를 꼈지만, 녀석의 음성에는 묘한 만족감이 어려 있었다.

민우는 깨진 할로겐 조명의 전원을 차단하고, 널브러진 폐자재들 사이로 몸을 돌렸다.

멀리 홍대입구역 광장에서는 정령청의 특수 수사팀 요원들이 가짜 신호를 쫓아 헛걸음질을 하며 당황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민우는 흑영의 힘을 사용해 자신의 존재감을 그림자 너머로 완전히 숨긴 채, 어두운 지하 계단을 올라 차가운 도심의 거리로 다시 발을 내디뎠다. 두 마리의 상급 요괴를 거느린 최초의 인간 계약자. 소년의 그림자는 이제 그 어떤 빛보다 더 깊고 어두운 힘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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