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의 망자를 달래는 안식 장례지도사

3화: 탐욕스러운 성직자의 위선
묘역 입구의 경계종이 다시 울렸다.
바스토의 손은 토비의 관 뚜껑 위에서 굳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관 안에서 희미하게 번지던 푸른빛은 이름표 아래로 잦아들었다. 제7구역을 짓누르던 울음소리도 거짓말처럼 낮아져 있었다.
그 고요를 검은 마차의 바퀴 소리가 찢었다.
“빌어먹을. 성당 감찰단이야.”
바스토가 낮게 욕을 씹었다.
하진은 시신 처리실 문 너머를 보았다. 검은 말 두 필은 눈가에 은색 가리개를 쓰고 있었다. 마차 문에는 태양을 감싼 창 문장이 박혀 있었다. 성스러운 문장이라기보다 채무 문서에 찍힌 차가운 인장 같았다.
마차 문이 열렸다.
흰 법복 위에 검은 망토를 걸친 사내가 먼저 내려섰다. 손가락마다 은반지를 끼고 있었고 목에는 성당 정화관의 푸른 끈이 걸려 있었다. 그 뒤로 철갑을 입은 성당 기사 둘이 발을 맞추었다.
사내는 묘역의 악취가 역겹다는 듯 손수건을 코밑에 댔다.
“서부 공공 묘역 책임자 바스토.”
목소리는 낮고 매끄러웠다.
“무허가 정화 의식과 미승인 유해 반환 준비 혐의로 감찰한다. 방금 이 구역에서 성당에 보고되지 않은 정화 반응이 확인되었다. 관을 열어라.”
바스토가 하진을 돌아보았다.
하진은 관 앞에 한 걸음 나섰다.
“망자의 관은 감찰 편의를 위해 함부로 열 수 없습니다.”
성당 기사 갈렌의 손이 검 손잡이에 닿았다.
사내의 눈썹이 천천히 올라갔다.
“시신 처리사가 사제 앞에서 예법을 논하는군.”
“예법이 아니라 기본 절차입니다. 유해가 안정되었는지 보시려면 관 주변의 오염 반응부터 확인하십시오. 제7구역의 잔류 안개도 줄었습니다.”
“네가 정화를 했다는 뜻인가.”
“안식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 말에 사내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안식이라. 성당 허가 없는 자가 망자에게 안식을 약속하다니 아주 편리한 이단 문구군.”
바스토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모르덴 사제님. 저놈이 오늘 좀 이상하긴 합니다. 그래도 구울은 안 일어났습니다. 묘역에도 피해는 없습니다.”
“피해는 성당이 판단한다.”
모르덴은 장갑 낀 손을 들었다.
“갈렌 경. 관을 열어라.”
기사가 다가오는 순간 하진은 관 앞을 가로막았다.
“이 유해는 이름과 유품을 안치한 뒤 안정되었습니다. 강제로 열면 남은 혼백의 흔적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흔들리는지 보아야겠지.”
모르덴이 웃었다.
하진의 가슴 안쪽에서 따뜻한 성력이 작게 맥박쳤다.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는 손을 올리지 않았다. 망자의 존엄을 지키는 일은 소리를 높이는 일보다 먼저 절차를 지키는 일이었다.
“관을 열기 전에 측정석을 쓰십시오.”
하진이 말했다.
“성당이 진짜 정화를 확인하러 왔다면 그 순서가 맞습니다.”
모르덴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때 마차 뒤편에서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성당 기사 하나가 누더기를 입은 여자와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끌고 들어왔다. 여자는 품에 낡은 동전 주머니를 안고 있었다. 아이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모르덴이 그들을 시신 처리실 앞에 세웠다.
“마침 좋은 증인이 있군. 네 남편의 유해가 오늘 이 묘역으로 온다 했지.”
여자가 고개를 숙였다.
“예. 사제님.”
“외곽 수로에서 회수된 시신은 구울 후보 등급이다. 특별 정화 예식과 면벌부가 필요하다. 비용은 은화 스무 닢.”
여자의 어깨가 무너졌다.
“모은 것이 이것뿐입니다. 남편이 수레에 깔려 죽고 장례비를 마련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동전 주머니가 열렸다.
녹슨 동전 몇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돌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묘하게 오래 울렸다.
모르덴은 동전을 내려다보지도 않았다.
“부족하다. 성당은 자선을 베풀 수 있으나 죄의 면제는 장부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족분은 노동 계약으로 대신한다. 딸아이는 성당 세탁소에 보내라. 열 해면 갚을 수 있다.”
아이가 소리 없이 울었다.
성당 기사가 얇은 각인 칼을 꺼냈다. 칼등에는 작은 룬이 박혀 있었다. 피 한 방울만 묻히면 노동 계약이 살갗에 새겨지는 도구라고 하진의 낯선 기억이 알려 주었다.
“손목을 내밀어라.”
여자가 울면서 손을 뻗었다.
하진은 칼날 앞을 막았다.
“그 손목은 장례 비용을 보증하는 도장이 아닙니다.”
갈렌의 눈이 차갑게 좁아졌다.
“비켜라.”
“망자의 가족을 빚으로 묶는 것이 정화입니까.”
모르덴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가난한 자는 죽음마저 값싸게 여기려 한다. 우리가 질서를 세우지 않으면 저들의 시신이 성벽 안을 기어 다닌다.”
“두려움을 이용해 값을 올리는 것뿐입니다.”
처리사들이 숨을 삼켰다.
그들은 성당의 방식이 어떤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성당 도장이 없으면 유해는 소각장으로 가고 유족은 죄인 취급을 받았다. 묘역 사람들도 그 권한 앞에서는 고개를 숙였다.
바스토가 하진의 팔을 잡으려다 멈췄다.
그의 시선은 토비의 관과 유족 모녀 사이를 오갔다.
모르덴은 허리춤에서 검은 돌을 꺼냈다. 손바닥만 한 정화석이었다. 돌 안쪽에는 탁한 흰빛이 갇힌 듯 흔들렸다.
“성당의 정화석은 거짓을 가리지 않는다. 무허가 성력은 오염과 다르지 않다. 네 잡술이 진짜라면 여기서 드러나겠지.”
그가 정화석을 토비의 관 가까이 가져갔다.
하진은 숨을 멈추었다.
정화석의 흰빛이 잠시 밝아졌다. 그러나 곧 돌 안쪽에서 검은 실금 같은 그림자가 퍼졌다. 억지로 눌러 둔 오염을 만났을 때처럼 빛이 탁하게 떨렸다.
모르덴의 눈가가 아주 작게 흔들렸다.
반대로 관 위에 놓인 천 사이에서는 토비의 이름표가 희미한 푸른빛을 냈다. 빛은 작았지만 맑았다. 마치 조용한 물 위에 새벽이 비치는 것 같았다.
서기 로만이 장부를 안은 채 중얼거렸다.
“제7구역 오염 표식이 줄었습니다. 장부의 기록과 다릅니다. 울음소리도 멎었습니다.”
“입 닥쳐라.”
모르덴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하진은 관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억누른 정화는 공포를 없애지 못합니다. 뚜껑을 덮어 두는 일일 뿐입니다. 이 아이는 이름을 되찾고 두려움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래서 떠났습니다.”
“시신 처리사가 영혼을 말하는군.”
“저는 시신을 다룹니다. 그래서 압니다. 망자의 몸에 남은 흔적을 지우기 전에 읽어야 합니다. 상처와 물건과 이름은 죽은 사람의 마지막 언어입니다.”
갈렌이 하진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 순간 바스토가 도끼 자루로 기사의 팔목을 가로막았다.
시신 처리실 안이 얼어붙었다.
바스토 본인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늦게 깨달은 얼굴이었다. 그래도 도끼 자루를 내리지 않았다.
“사제님. 관은 건드리지 마십시오.”
모르덴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묘역 책임자가 시신 처리사의 잡술에 기대겠다는 뜻인가.”
바스토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저놈이 미쳐 날뛴 건 맞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7구역이 조용해졌습니다. 십이 년 동안 처음입니다. 확인할 거면 관을 열지 말고 구역을 보십시오.”
갈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바스토의 손도 떨렸다.
하진은 그 떨림을 보았다. 바스토는 선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었다. 아직도 처벌을 두려워했고 성당을 겁냈다. 그래도 방금 닫힌 관 하나를 다시 헤집는 일만은 막고 있었다.
그 작은 변화가 하진에게는 충분했다.
모르덴은 정화석을 거두었다.
“좋다. 그렇다면 증명해 보아라.”
그가 마차 뒤편을 가리켰다.
성당 기사들이 운반대 하나를 끌고 들어왔다. 낡은 천에 싸인 시신이었다. 천 아래에서 손가락 하나가 뒤틀린 채 튀어나와 있었다. 손톱 밑이 검고 손목 주변의 핏줄은 먹물처럼 부풀어 있었다.
유족 여자가 숨을 삼켰다.
“여보…….”
아이가 어머니 뒤로 숨었다.
모르덴은 유족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외곽 수로에서 회수한 남자다. 비용은 부족하다. 성당 방식으로 정화하면 봉인할 수 있다. 네 안식이라는 것이 진짜라면 이 유해 앞에서 보여라.”
하진은 운반대를 보았다.
천 아래의 가슴이 아주 작게 부풀었다 꺼졌다. 살아 있는 숨이 아니었다. 원한이 육신을 밀어 올리는 움직임이었다. 이미 오염은 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망자를 시험대에 올리지 마십시오.”
“시험대가 아니다. 감찰이다.”
모르덴은 값싼 성수병을 열었다. 향은 강했지만 밑바닥에는 오래된 쇠 냄새가 섞여 있었다.
“성당 장부에 등록되지 않은 장례가 진짜라면 이 자리에서 증명해라. 실패하면 네 손을 묶고 관 속의 아이도 다시 검사하겠다.”
하진의 눈빛이 굳었다.
모르덴은 성수를 시신의 얼굴 위에 쏟았다.
치익.
검은 김이 솟았다. 시신의 손가락이 벌레처럼 오그라들더니 운반대 가장자리를 긁었다. 목 안쪽에서 젖은 돌이 갈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여자가 비명을 삼키며 주저앉았다.
“멈추십시오. 지금 원한을 누르고 있습니다.”
하진이 말했다.
“정화다.”
“아닙니다. 봉인입니다. 봉인은 더 세게 터집니다.”
천 아래에서 턱이 덜컥 움직였다.
바스토가 본능적으로 도끼를 들려 했다. 그러다 하진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로만! 장부 뒤져! 이름부터 찾아!”
로만이 창백한 얼굴로 장부를 펼쳤다.
하진은 처리사들에게 짧게 지시했다.
“물. 삶은 천. 허브 증류액. 참숯 가루. 아무도 유해를 자르지 마십시오.”
처리사들이 흩어졌다.
갈렌이 비웃었다.
“구울 앞에서 천이나 찾는군.”
하진은 운반대 앞에 무릎을 낮추었다. 검은 맥이 시신의 목을 타고 올라왔다. 손톱이 나무를 파고들며 긴 자국을 남겼다.
모르덴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보아라. 이것이 허가 없는 자가 망자에게 손댄 결과다.”
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시신의 뒤틀린 손을 보았다. 손바닥 한가운데에는 오래된 밧줄 굳은살이 있었다. 수레를 끌던 사람의 손이었다. 손목 안쪽에는 아이가 그린 듯한 작은 꽃 문양이 먹으로 남아 있었다.
하진은 그 흔적을 향해 낮게 말했다.
“아직 듣고 계시다면 붙잡으십시오. 당신의 이름을 찾겠습니다.”
시신의 손톱이 다시 나무를 긁었다.
묘역의 밤공기가 썩은 마력으로 끓기 시작했다. 성당의 흰 성수가 검게 변해 바닥으로 흘렀고 유족 모녀의 울음이 그 위에 떨렸다.
하진은 한 손을 운반대 가장자리에 올렸다.
“이분은 괴물이 아닙니다. 아직 보내지 못한 사람입니다.”
시신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