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의 망자를 달래는 안식 장례지도사

2화: 안식 장례의 첫 성불
바스토가 떨어뜨린 도끼가 바닥을 굴렀다.
철과 돌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시신 처리실의 고요를 깨웠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작업대 위의 소년 병사는 방금 전까지 구울로 일어날 듯 손가락을 떨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깊은 잠에 든 사람처럼 조용했다.
하진은 소년의 눈꺼풀이 다시 벌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관을 준비해 주십시오.”
“관?”
바스토가 얼빠진 얼굴로 되물었다.
“저 아이는 더 이상 언데드가 되지 않습니다. 깨끗하게 씻기고 싸서 유족에게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건 성당 도장이 있어야 하는 절차야. 공공 묘역 시신 처리사 따위가 마음대로 할 일이 아니라고.”
하진은 대답 대신 소년의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손바닥에는 흙과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손가락 끝은 아직도 전장의 추위를 기억하는 듯 뻣뻣했다.
“도장이 없으면 사람으로 대하지 않아도 됩니까?”
바스토의 입술이 굳었다.
뒤쪽에서 다른 처리사가 도끼를 주워 들었다.
“혹시 모르잖아. 그냥 목만 쳐서 확인하자. 얼굴은 남겨 둘 수 있으면 남겨 두고.”
그가 작업대에 다가오는 순간 하진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 새로 각인된 검술의 감각이 발바닥과 허리를 동시에 밀었다. 하진은 한 발을 비껴 디디며 처리사의 손목을 잡아 돌렸다.
도끼가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처리사가 비명을 삼키며 물러났다.
하진 자신도 놀랐다. 검을 쥔 것도 아닌데 상대의 중심이 어디 있는지 보였다. 토비라는 이름이 머릿속에서 작게 울렸다.
“더는 이 아이에게 손대지 마십시오.”
말은 낮았지만 시신 처리실 안의 누구도 대꾸하지 못했다.
바스토가 이를 악물었다.
“네가 책임질 거냐? 이놈이 다시 꿈틀대면? 성당 놈들이 무허가 장례라고 우리 목을 치겠다고 하면?”
“책임지겠습니다.”
하진은 작업대 아래에 놓인 피 묻은 물통을 보았다.
“깨끗한 물과 삶은 천이 필요합니다. 쓰지 않는 관도 가져와 주십시오. 허브 증류액도 더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 아이의 소지품을 찾아야 합니다.”
“소지품?”
“이름을 불러 줘야 합니다. 망자는 물건이 아닙니다. 떠나는 길에는 자기 이름이 필요합니다.”
바스토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려다 멈췄다. 시신 처리실 밖에서 매일 밤 들리던 울음소리가 낮게 가라앉고 있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가 숨을 죽인 채 다음 손길을 기다리는 소리였다.
“로만! 기록장 가져와. 저 소년이 어느 부대에서 왔는지 찾아!”
바스토가 결국 소리쳤다.
깨끗한 물이라고 해 봐야 녹슨 양동이에 담긴 우물물이 전부였다.
하진은 물을 끓인 뒤 허브 증류액 몇 방울을 섞었다. 독한 냄새가 올라왔지만 피비린내보다는 나았다. 그는 천을 적셔 소년의 얼굴부터 닦았다.
이마의 흙, 눈가에 말라붙은 피, 입가에 굳은 검은 침전물이 천에 묻어났다.
“그걸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닦냐.”
누군가 중얼거렸다.
하진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얼굴을 보는 일이니까요.”
그 말에 처리사들이 잠잠해졌다.
하진은 소년의 목과 어깨를 차례로 닦아냈다. 찢긴 군복 아래 드러난 팔도 닦았다. 뜯긴 팔꿈치 아래는 무명천을 여러 겹 접어 형태를 잡았다. 전쟁터에서 회수된 시신이라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묶여 있던 끈을 풀어 새 매듭을 만들었다.
사후 강직이 심한 손가락은 억지로 펴지 않았다. 따뜻한 천을 덮어 굳은 관절을 조금씩 풀었다. 손톱 밑의 흙을 빼내자 손이 앳되게 보였다.
“나이가 얼마 안 됐겠군.”
바스토의 목소리가 거칠게 낮아졌다.
“열여섯에서 열일곱쯤일 겁니다.”
“제국은 어린놈들도 끌고 가지. 마수에게 물려 죽으면 운이 좋은 편이고 죽어서도 여기 오면 우리가 다시 자르지.”
하진은 바스토를 바라보았다.
“그래서라도 한 번은 사람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때 서기 로만이 낡은 장부와 작은 가죽 주머니를 들고 들어왔다.
“제국 7군단 징집병 토비. 성은 없고 남부 갈대촌 출신. 회수품은 이게 전부입니다.”
주머니 안에는 반쯤 부러진 목각 부적과 얇은 금속 이름표가 들어 있었다. 이름표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토비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하진은 이름표를 깨끗이 닦아 소년의 가슴 위에 올렸다.
“토비.”
그가 이름을 부르자 작업대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차갑고 끈적한 기운이 얇게 떨리더니 소년의 봉합된 가슴 위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일어났다. 빛 속에서 어린 병사의 형상이 고개를 들었다. 완전한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다. 흔들리는 물그림자처럼 흐릿했다.
처리사들이 동시에 물러났다.
바스토만이 도끼 없이 그 자리에 버텼다.
‘무서워하지 마라.’
목소리는 귀가 아니라 가슴 안쪽에서 들렸다.
하진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토비. 네 마지막 길을 정리하고 있다.”
‘나 도망치고 싶었어요. 검도 제대로 못 배웠는데 앞줄에 세워졌어요. 엄마한테 돌아간다고 했는데.’
소년의 형상은 울고 있었다. 눈물은 없었지만 빛이 잘게 흩어졌다.
하진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는 수많은 유족의 울음을 들었다. 그러나 죽은 이가 직접 남긴 두려움은 처음이었다.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은 죄가 아니다.”
하진은 낮게 말했다.
“무서웠는데도 네 몸은 전장에서 돌아왔다. 이제 더 싸우지 않아도 된다. 네 이름을 내가 기억하겠다. 네 부적도 함께 모시겠다.”
토비의 빛이 흔들렸다.
하진은 낡은 목각 부적을 무명천으로 감싸 이름표 옆에 놓았다. 그리고 소년의 군복 조각 중 비교적 깨끗한 부분을 잘라 가슴 위를 덮었다. 완전한 수의가 없으니 이 세계의 병사에게 남은 가장 깨끗한 옷이었다.
“토비. 편히 쉬어라.”
하진이 두 손을 모았다.
시신 처리실의 바닥에 깔린 검은 얼룩들이 푸른빛에 밀려 희미해졌다. 소년의 시신에서 작은 빛가루가 피어올랐다. 처음에는 가슴에서 시작된 빛이 손끝과 얼굴로 번졌다. 그 빛은 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라 새벽 안개처럼 부드러웠다.
토비의 혼백이 하진을 보았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아저씨라는 말에 하진은 짧게 숨을 삼켰다.
‘검을 쥐는 법밖에 못 드려요. 그래도 다치지 마세요.’
빛이 하진의 손목으로 스며들었다.
[망자 토비의 안식 장례가 완결되었습니다.]
[망자의 유산이 안정적으로 상속됩니다.]
[제국 군용 검술 초급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안식 성력의 흐름이 제7구역에 닿았습니다.]
하진은 손끝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검의 궤적, 방패 뒤에서 숨을 고르는 법, 발목을 잃지 않는 보폭이 또렷해졌다. 소년이 짧은 군 생활 동안 붙잡고 있었던 생존의 감각이었다.
그 감각이 선물처럼 남았다는 사실이 하진의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고맙다.”
하진은 빈 작업대가 아니라 이제 평온해진 유해를 향해 말했다.
관은 낡았다.
뚜껑 한쪽이 갈라져 있고 내부에는 오래된 흙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래도 하진은 깨끗한 천으로 안쪽을 닦고 참숯 가루를 얇게 뿌렸다. 남은 허브를 모서리에 묶어 넣자 썩은 냄새가 조금 가셨다.
처리사들은 말없이 토비의 유해를 옮겼다.
처음에는 손끝만 대던 사내들이 어느 순간 양팔과 어깨를 조심스럽게 받쳤다.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다른 누군가는 토비의 발끝이 관에 부딪히지 않게 천을 접어 넣었다.
바스토는 그 광경을 굳은 얼굴로 지켜보았다.
“내가 이 일을 십이 년 했다.”
그가 말했다.
“밤마다 제7구역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무서웠고 나중에는 지겨웠다. 소각장을 더 달구면 조용해질 줄 알았는데 한 번도 안 멎었어.”
바스토는 시신 처리실 밖의 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들어왔다.
하진은 바람 속에 섞인 소리를 들었다. 늘 깔려 있던 신음과 긁는 소리가 사라지고 있었다. 제7구역 쪽 검은 안개가 풀리며 묘비 사이로 희미한 달빛이 떨어졌다.
처리사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무도 농담하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이 자르고 태워 온 것이 괴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들과 형제였음을 본 얼굴이었다.
바스토가 하진 옆에 섰다.
“진짜로 조용해졌군.”
“완전히 정화된 건 아닙니다. 토비가 있던 자리가 잠잠해진 겁니다.”
“그게 그거지. 우리한테는 기적이야.”
바스토는 거친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좋다. 오늘 들어온 시신 중에 아직 칼 안 댄 놈들은 네가 먼저 본다. 단 하루다. 문제 생기면 네 목부터 내놓는 거야.”
“하루면 충분합니다.”
“말은 잘해.”
바스토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 웃음에는 처음의 조롱이 없었다.
그때 묘역 입구 쪽에서 종소리가 났다.
묘역의 낡은 경계종이었다. 방문객이 있을 때만 울리는 소리라고 하진의 기억이 알려 주었다.
로만이 창가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았다.
“검은 마차입니다. 성당 문장이 찍혀 있습니다.”
바스토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빌어먹을. 왜 하필 지금이야.”
하진은 관 뚜껑을 조용히 덮었다.
토비의 이름표가 마지막 푸른빛을 내며 관 안에서 잠잠해졌다.
문밖에서 쇠장식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서부 공공 묘역 책임자는 즉시 나오라. 무허가 정화 의식에 대한 감찰이다.”
바스토가 하진을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 기적이라 부르던 빛이 이제는 죄목이 되어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