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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망자를 달래는 안식 장례지도사1화

이계의 망자를 달래는 안식 장례지도사

이계의 망자를 달래는 안식 장례지도사

시놉시스

대한민국 최고의 장례지도사 윤하진, 과로사 후 죽은 자들이 언데드로 부활하는 이계의 공공 묘역 시신 처리사로 깨어난다. 시신을 난도질해 태워버리는 야만의 시대, 현대의 엠바밍 복원 기술과 혼백을 달래는 성력을 융합한 이계 최초의 '안식 장례'로 세상을 정화하고 구원하는 전문가 판타지.

1화: 시신 처리사의 눈물과 첫 번째 복원

“상주님, 이제 고인을 편히 보내주실 시간입니다.”

윤하진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던 유가족들은 하진의 정중한 안내에 따라 관 속의 고인을 내려다보았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얼굴 절반이 훼손되었던 고인은, 하진의 열여섯 시간에 걸친 미세 복원 작업 덕분에 생전의 평온했던 미소를 고스란히 되찾아 있었다.

기적을 목격한 듯한 유가족들의 안도와 감사 섞인 눈물. 그것이 장례지도사 윤하진이 평생을 바쳐 추구해 온 유일한 보람이었다.

‘망자의 존엄을 지키는 것. 그것이 산 자들을 치유하는 길이다.’

그 신념 하나로 삼 일을 밤낮없이 합동 장례식장을 지켰다.

전국을 뒤흔든 대형 화재 참사 희생자 수십 명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하진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염습실과 안치실을 오갔다. 그리고 마지막 고인의 관 뚜껑이 닫히는 순간.

쿵.

가슴을 짓누르는 지독한 압박감과 함께 하진의 시야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것이 과로사구나.

어렴풋한 자각 속에서 하진의 의식은 암전 속으로 가라앉았다.


“야! 이 새끼 꾀병 부리는 것 좀 보소? 야, 하진! 일어나, 이 멍청아!”

귓가를 때리는 거친 고함에 하진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지독한 두통과 함께 코를 찌르는 악취가 밀려왔다. 피비린내와 살 썩는 냄새, 그리고 곰팡이 냄새가 뒤엉킨 끔찍한 냄새였다.

“하, 헉……!”

하진은 숨을 헐떡이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핏기 없이 창백하고 때가 잔뜩 낀 손. 현대식 소독 장갑은 온데간데없고, 손톱 밑에는 검붉은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몸에 걸친 것은 실밥이 다 풀어진 낡고 지저분한 삼베 비슷한 겉옷이었다.

“일어났으면 얼른 톱 들어! 저기 서부 전선에서 실려 온 것들, 해가 지기 전에 썰어발겨야 할 거 아냐!”

턱수염이 지저분하게 자란 덩치 큰 사내가 하진의 어깨를 툭 쳤다. 그의 손에는 녹이 슬어 시커먼 톱과 커다란 도끼가 들려 있었다.

그 순간, 낯선 기억들이 하진의 머릿속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루미나스 제국…… 서부 공공 묘역.’

이곳은 마물이 날뛰고, 죽은 자들이 안식을 찾지 못하면 지독한 잔류 마력에 오염되어 괴물(언데드)로 각성하는 저주받은 세계였다.

이 몸의 이름 역시 ‘하진’.

가족도 연고도 없이, 죽은 이들의 시신이 언데드로 깨어나지 못하도록 사지를 자르고 훼손하여 소각장으로 넘기는 공공 묘역의 가장 비천한 ‘시신 처리사’였다.

“뭐 하고 멍하니 있어? 저놈, 벌써 눈꺼풀이 들썩이잖아!”

덩치 큰 사내, 바스토가 턱짓으로 방 한가운데의 작업대를 가리켰다.

나무로 짜인 투박한 작업대 위에는 한 소년의 시신이 누워 있었다.

가슴팍은 둥글고 날카로운 마수의 발톱에 파헤쳐져 갈비뼈가 훤히 들여다보였고, 오른쪽 팔꿈치 아래는 끔찍하게 뜯겨 나가 있었다. 앳된 얼굴은 고통과 공포로 일그러져 굳어 있었고, 상처 주변의 핏줄들은 거뭇하게 변색되어 요동치고 있었다.

시신 안의 오염된 마력이 육신을 괴물로 바꾸기 직전의 징후였다.

“쯧, 불쌍하지만 별수 없지. 구울로 깨어나기 전에 다리 힘줄부터 자르고 목을 쳐라. 그래야 소각로에 처넣기 편하니까.”

바스토가 무심하게 톱을 내밀었다.

하진은 톱을 받아들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전직 장례지도사로서, 시신을 단순한 고깃덩어리 취급하며 난도질하려는 이 광경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야만이었다.

“……꼭 이래야만 합니까?”

하진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어엉? 뭔 소리야? 저놈 그냥 두면 10분 뒤에 구울로 벌떡 일어나서 우리 목을 물어뜯을 텐데? 너 미쳤냐?”

바스토가 미간을 찌푸렸다.

“망자도 인간입니다.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병사 아닙니까. 그런데 마지막 길마저 이렇게 짐승처럼 난도질해서 잿더미로 만들어야 한단 말입니까?”

“하! 이 새끼가 진짜 돌았나. 야, 하진. 우리가 안 썰어발기면 저놈이 우릴 썬다니까? 묘역의 규칙을 몰라? 시신은 파괴하는 게 유일한 예방책이야!”

주변의 다른 시신 처리사들도 하진을 미친놈 보듯 쳐다보았다.

하지만 하진의 전문적인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아니야. 이 시신의 마력이 오염된 건, 끔찍한 원한과 공포를 품은 채 죽어서 혼백이 육신에 갇혔기 때문이야. 게다가 상처가 벌어진 채 방치되어 마력 순환이 엉망이 된 상태다. 이걸 단정하게 수습하고 안식을 주면, 굳이 훼손하지 않아도 성불할 수 있어.’

현대에서 수천 구의 시신을 다루며 터득한 직관이 외치고 있었다. 죽은 자의 혼은 육신의 마지막 대접에 반응한다.

하진은 바스토가 내민 톱을 쳐내고, 작업대 앞으로 걸어갔다.

“내가 하겠습니다.”

“뭘 해?”

“이 소년이 편히 눈을 감게 만들겠습니다. 난도질하지 않고도, 얌전하게 안식에 들도록 말입니다.”

“미친 소리 하지 마! 당장 도끼 안 들어?”

바스토가 소리를 지르며 다가왔다.

하지만 하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묘역 한구석의 도구 선반으로 향했다. 낡은 상자 안에서 굵은 바늘과 질긴 삼실, 그리고 시신 소독용으로 쓰이던 독한 포이즌 허브 증류액과 참숯 가루를 꺼냈다.

그는 작업대 위에 누워있는 소년 병사의 앞에 섰다.

두려움에 떨며 죽어간 소년의 동공.

하진은 차분하게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생전 염습을 시작하기 전 항상 바치던 묵념이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혼이시여. 부디 공포를 거두고 편히 쉬소서.”

짧은 기도가 끝남과 동시에, 하진의 손놀림이 극도로 빨라졌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인 이계의 몸은 생각보다 민첩했다. 하진은 증류액을 깨끗한 천에 적셔 소년의 가슴에 벌어진 끔찍한 상처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피비린내와 거무스름한 타락 마력의 잔재가 허브 향과 알코올 성분에 씻겨 내려갔다.

“미친 짓이야! 저놈, 구울이 되면 제일 먼저 널 찢어 죽일 거다!”

바스토가 경고했지만, 차마 다가오지는 못했다. 소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진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날카로운 바늘에 삼실을 꿰어, 파헤쳐진 가슴의 갈비뼈 안쪽 장기들을 정돈했다. 그리고 찢어진 피부 조직을 한 땀 한 땀 정밀하게 꿰매기 시작했다.

봉합(Suturing).

현대 엠바밍의 핵심 기술 중 하나였다. 거친 삼실이었지만 하진의 섬세한 손길을 거치자, 너덜너덜했던 상처가 마치 마법처럼 하나로 맞물리며 단정하게 봉합되었다.

상처가 닫히자, 소년의 육신 곳곳으로 제멋대로 날뛰며 검게 뿜어 나오던 오염된 마력이 비로소 한 방향으로 흐름을 잡기 시작했다.

‘됐다. 물길을 잡았으니 이제 영혼의 상처를 달래야 해.’

하진은 뜯겨 나간 오른쪽 팔꿈치 아랫부분에 참숯 가루와 정화 허브를 섞어 채워 넣고, 깨끗한 무명천으로 단단히 감싸 미관상 온전한 팔의 형태를 복원했다.

마지막으로,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던 소년의 얼굴을 만졌다.

하진은 검지와 중지를 사용해 소년의 감기지 못한 눈꺼풀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리고 측두부의 근육을 가볍게 마사지하여 사후 강직으로 굳어지려던 턱관절을 풀고, 일그러진 입술을 단정하게 다물려 주었다.

그 경건하고도 숭고한 손길에, 주변에서 도끼를 쥐고 숨죽이고 있던 시신 처리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평생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그들에게 시신이란 언데드가 되기 전에 치워야 할 역겨운 쓰레기이자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하진이 행하고 있는 의식은, 마치 신성한 신전의 고위 사제가 행하는 엄숙한 세례식과도 같았다.

“어……?”

바스토가 도끼를 든 손의 힘을 슬며시 풀었다.

소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고, 죽은 자 특유의 차분하고 온화한 안색이 나타나고 있었다. 요동치던 검은 핏줄들이 서서히 옅어지더니 살갗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때였다.

하진의 귓가에 정체불명의 투명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딩-.

[이계 최초의 ‘안식 장례(Resting Funeral)’가 거행되었습니다.]
[망자의 혼백이 육신의 존엄을 되찾고 안식을 얻었습니다.]
[오염 등급: 하(下) - 성공적으로 정화되었습니다.]

동시에 소년의 시신 가슴팍에서 따스하고 은은한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은 오염된 마력이 아니었다. 신전의 성수보다 더 맑고 순수한 안식의 성력(聖力)이었다.

빛의 무리가 소년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일그러졌던 소년의 입꼬리가 마지막 순간, 미세하게 호선을 그리며 편안한 미소로 바뀌었다.

“성, 성불이다……!”

한 서기 처리사가 주저앉으며 비명을 질렀다.

성직자들의 비싼 기도가 없으면 절대로 불가능하다던 영혼의 구원이, 일개 시신 처리사의 손끝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푸른 빛줄기 중 하나가 하진의 가슴속으로 쏙 스며들었다.

[망자 ‘토비’(제국 7군단 징집병)가 고마움을 표하며 영혼의 유산을 상속합니다.]
[특수 재능: ‘제국 군용 검술(초급)’을 획득하였습니다.]
[기초 성력(聖力)이 개화합니다.]

머릿속이 맑아지며, 검을 쥐는 법과 신체의 균형을 잡는 기묘한 지식이 뇌리에 각인되었다. 몸 안에 미약하지만 따뜻한 기운이 휘도는 것이 느껴졌다.

하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작업대 위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시신은 이제 언데드가 될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그저 깊은 잠에 빠진 듯한 순수한 유해로 변해 있었다.

“바스토 님.”

하진이 땀을 닦으며 사내를 돌아보았다.

“어, 어? 으응?”

바스토는 넋이 나간 채 도끼를 떨어뜨렸다.

“이 아이는 이제 언데드가 되지 않습니다. 난도질할 필요도 없습니다. 깨끗한 관에 모셔 유족들에게 돌려보내 주십시오.”

바스토는 마른침을 삼키며 소년의 평온한 얼굴과 하진의 차분한 눈빛을 번갈아 보았다.

공포와 비명이 가득하던 지옥 같은 시신 처리실에, 난생처음으로 은은한 안식의 허브 향과 고요함이 내려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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