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의 망자를 달래는 안식 장례지도사

4화: 가짜 성력과 진짜 안식
시신의 입이 벌어지자 처리실의 촛불이 한꺼번에 기울었다.
검은 맥이 턱에서 목으로 번졌다. 운반대의 나무판이 삐걱거렸고 천 아래의 손이 갈고리처럼 휘었다. 검게 들뜬 손톱이 나무를 긁을 때마다 유족 모녀의 어깨가 움찔했다.
“뒤로 물러나십시오.”
하진이 모녀 앞을 막아섰다.
갈렌은 검을 뽑았다. 칼날에 새겨진 성당의 푸른 문양이 촛불을 받아 번들거렸다.
“이미 구울화가 시작됐다. 목부터 끊어야 한다.”
“아직 아닙니다.”
하진은 시신의 손목을 보았다. 검은 핏줄 사이로 오래된 밧줄 굳은살이 남아 있었다. 젖은 천에서는 수로의 녹조 냄새와 등잔 기름 냄새가 났다.
시신은 누군가를 해치려고 손을 들지 않았다. 손가락 끝은 계속해서 운반대 한쪽을 더듬고 있었다. 잃어버린 것을 찾듯 같은 자리를 긁었다.
“로만. 인계 장부에서 외곽 수로 유해의 이름을 찾으십시오. 바스토 씨는 세척수와 삶은 천을 부탁합니다. 참숯 가루와 허브 증류액도요.”
바스토가 눈을 크게 떴다.
“구울 앞에서 빨래를 하겠다는 건가?”
“살아 있을 때의 상처도 젖은 채로 두면 곪습니다. 죽은 뒤에 남은 오염도 같습니다. 자르기 전에 무엇이 붙어 있는지 먼저 씻어 봐야 합니다.”
모르덴이 차갑게 웃었다.
“시신 처리사의 살림 지식으로 성당의 정화를 대신하겠다는 말인가.”
하진은 대답 대신 운반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손톱이 나무를 긁는 소리가 가까워졌지만 그는 천을 걷어내지 않았다.
“이분은 괴물이 아닙니다. 아직 가족을 두고 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아이 미아가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아빠예요?”
엘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검은 성수에 젖은 천 아래에서 남편의 얼굴 윤곽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남편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수문으로 내려가던 뒷모습이었다. 이제 그 얼굴을 보려면 성당 기사들이 검을 먼저 들이댈 것 같았다.
로만이 장부를 넘기다가 숨을 들이켰다.
“세딘. 남쪽 수문 수리공입니다. 사흘 전 밤에 물레방아 축이 부러졌고 수로로 떨어졌습니다. 유해 회수 표식은 성당에서 찍었는데 사고 경위는 비어 있습니다.”
그는 장부의 빈칸을 손끝으로 짚었다.
“정화 비용란만 채워져 있습니다.”
모르덴의 눈길이 로만에게 향했다. 로만은 입을 다물었지만 장부는 닫지 않았다.
하진은 엘라를 보았다.
“세딘 씨가 물에 들어가기 전 무엇을 하려 했습니까?”
엘라의 눈이 시신의 손으로 향했다.
“딸아이의 나무 새 장식이 수문 아래로 떠내려갔어요. 생일 선물이라고 직접 깎아 줬는데 미아가 떨어뜨렸어요. 그 사람은 손전등도 없이 내려갔어요. 곧 돌아온다고 했는데…….”
미아가 울음을 삼켰다.
“아빠는 내가 울면 날개가 젖는다고 했어.”
운반대가 크게 들썩였다.
갈렌의 검이 내려오려는 순간 바스토가 도끼 자루를 앞으로 내밀었다.
“아직 이름을 불렀잖아.”
“책임자가 위험을 막는 법도 잊었나?”
“내가 책임진다.”
바스토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도끼 자루는 물러나지 않았다. 뒤에 선 처리사들도 겁에 질린 얼굴로 물통을 내려놓지 못했다.
하진은 세딘의 굳은 손을 마른 천으로 감쌌다.
“세딘 씨. 미아의 나무 새를 찾으러 가셨군요. 엘라 씨와 미아가 여기 있습니다. 들리면 손을 멈추십시오.”
검은 손가락이 운반대를 파고들다 멎었다.
그 짧은 틈에 바스토가 물통을 끌고 왔다. 처리사들은 삶은 천과 작은 유리병을 곁에 놓았다.
모르덴이 손바닥의 정화석을 들어 올렸다.
“가족 타령으로는 오염을 지울 수 없다. 비켜라.”
하진은 정화석을 바라보았다. 토비의 관 앞에서 탁해졌던 흰빛이 돌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빛은 맑지 않았다. 눌러 담긴 재처럼 바닥에서 검은 가루가 일었다.
“그 돌은 오염을 지운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과 마력을 한데 눌러 뒀습니다. 지금 그 압력이 몸을 찢고 나오는 겁니다.”
“감히 성당의 성물을 모욕해?”
“성물이라면 망자를 더 아프게 해서는 안 됩니다.”
모르덴이 정화석을 시신의 가슴 위로 내리찍으려 했다.
하진이 손목을 붙잡았다.
눈앞에서 푸른빛과 탁한 흰빛이 부딪혔다. 정화석 안쪽의 검은 실금이 넓어졌고 세딘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천 아래에서 튀어나온 발뒤꿈치가 운반대를 세 번 두드렸다.
“놓아라!”
갈렌이 하진의 어깨를 밀쳤다.
하진은 바닥에 한쪽 무릎을 짚었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가슴속의 성력이 뜨거워졌다. 그것은 힘으로 밀어붙이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어두운 물속에서 손을 잃어버린 누군가의 공포와 닿아 있었다.
그 공포 속에는 자신의 숨이 끊기는 순간보다 물가에 남겨 둔 두 사람의 얼굴이 더 선명했다.
“세딘 씨는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닙니다.”
하진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자신 때문에 두 사람이 빚에 묶일까 봐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엘라의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모르덴이 비웃었다.
“죽은 자의 속마음까지 읽는다는 소리인가.”
“아뇨. 당신들이 방금 계약을 강요했으니까요. 세딘 씨가 들었다면 그걸 두고 갈 수 없었겠죠.”
하진은 바스토에게 고개를 돌렸다.
“정화석을 치워 주십시오. 먼저 성수와 오염을 씻어 내야 합니다.”
바스토가 순간 망설였다. 모르덴을 거스르면 묘역의 허가가 끊길 수도 있었다. 그는 토비의 관 위에 놓였던 이름표를 떠올렸는지 이를 악물었다.
“갈렌 경. 검은 넣으십시오. 적어도 저 돌이 멀쩡한 정화는 아니란 건 봤습니다.”
바스토는 도끼 자루로 모르덴의 손을 밀어냈다. 정화석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진은 따뜻한 물에 허브 증류액을 세 방울 섞었다. 먼저 성수가 엉긴 목과 손목을 충분히 적셨다. 그 뒤 참숯 가루를 검게 부풀어 오른 핏줄 위에 가볍게 뿌렸다.
가루가 탁한 물을 먹어 들어가자 작은 기포가 일었다. 하진은 삶은 천으로 거품을 한 번만 걷었다. 상처를 문질러 지우려 들면 남은 혼백도 함께 흔들린다는 감각이 손끝에 전해졌다.
“세게 문지르지 마십시오.”
하진이 처리사들에게 말했다.
“상처는 지우는 게 아니라 덮어 주는 겁니다. 물이 검어지면 새 물을 쓰고 천은 한 번 쓴 자리를 다시 쓰지 마십시오.”
처리사 하나가 떨리는 손으로 새 천을 건넸다. 다른 이는 물통을 붙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유해를 향해 칼을 들지 않았다.
로만은 장부를 끌어안은 채 물었다.
“정말 이걸로 멈춥니까?”
“혼자서는 안 됩니다. 가족이 마지막 말을 해 줘야 합니다.”
엘라는 한 발도 움직이지 못했다.
“저 사람은 내가 장례비를 못 낸다고 화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돈 때문에 시신도 보지 못하게 둘 뻔했어요. 미아 손목에 계약을 새기게 둘 뻔했어요.”
“그건 엘라 씨 잘못이 아닙니다.”
하진은 물에 젖은 세딘의 주머니를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손가락으로 안감을 더듬자 손바닥만 한 나무 조각이 천 사이에서 떨어졌다.
미아가 울음을 멈췄다.
“새다.”
아이가 떨리는 손으로 조각을 가리켰다. 한쪽 날개가 깨진 작은 나무 새였다. 물을 오래 먹어 나뭇결은 부풀어 있었지만 몸통에 새긴 미아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았다.
“아빠가 찾았어. 아빠가 약속 지켰어.”
미아는 엘라의 손을 놓고 운반대 가까이 다가갔다. 하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는 나무 새를 두 손으로 받았다.
“아빠. 나 이제 안 울게. 엄마랑 같이 있을게. 그러니까 춥지 않은 데로 가.”
엘라도 세딘의 손등 위에 손을 얹었다. 검은 기운이 남아 있어 차가웠지만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았다.
“당신 몫까지 빚을 갚겠다고 말하지 않을게요. 우리를 위해 돌아오려고만 하지 마요. 미아가 새를 받았으니 이제 쉬어요.”
세딘의 손가락이 나무판에서 떨어졌다.
검은 맥이 천천히 옅어졌다. 시신의 억지로 벌어진 입도 닫혔다. 처리실에 퍼졌던 수로의 찬 냄새가 비가 지난 뒤의 흙 냄새처럼 희미해졌다.
하진은 이름표에 세딘의 이름을 적어 가슴 위에 올렸다. 깨끗한 천으로 상처를 덮고 미아가 쥔 나무 새 옆에 작은 등불을 켰다.
“세딘 씨.”
그가 낮게 불렀다.
“당신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제 가족이 남은 길을 걷게 두십시오.”
따뜻한 빛이 하진의 손끝에서 번졌다. 빛은 상처를 덮은 천을 지나 세딘의 가슴에 잠겼다.
하진의 머릿속으로 차가운 물과 부서지는 수문 그리고 아이의 울음이 스쳤다. 그 사이로 나무 새를 움켜쥔 손의 감각이 남았다.
미안함이 아니라 안도감이 마지막에 남았다.
푸른빛이 조용히 꺼졌다.
세딘의 몸에서 썩은 냄새가 빠져나갔다. 처리실의 창문 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촛불을 바로 세웠다. 유해의 가슴은 더는 들썩이지 않았다.
로만이 떨리는 손으로 측정석을 들었다.
“오염 수치가 내려갔습니다. 성당 정화 전보다도 낮습니다.”
그는 장부의 빈칸 아래에 수치를 적었다. 정화 전에는 붉은 선을 넘었던 눈금이 이제는 희미한 푸른 선 아래에 멈춰 있었다.
“제7구역의 기록도 같은 방향입니다. 이건 우연이라고 쓰기 어렵습니다.”
바닥의 정화석에서 쩍 하는 소리가 났다. 검은 실금이 돌 한가운데를 가르고 탁한 흰빛이 꺼졌다.
모르덴의 표정이 굳었다.
“우연이다. 유해가 완전히 안정됐는지는 성당이 판단한다.”
“판단하십시오.”
하진이 말했다.
“다만 유족 손목에 칼을 대기 전에 장부와 측정석을 먼저 보십시오.”
바스토가 바닥에 떨어진 각인 칼을 주워 엘라에게 내밀었다.
“이건 필요 없습니다. 장례는 묘역에서 치르죠. 비용도 지금은 받지 않겠습니다.”
“그러다 성당이 묘역을…….”
엘라가 말을 잇지 못했다.
바스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겁이 납니다. 그렇다고 아이 손목에 빚을 새긴 뒤에 편히 잠들 수는 없잖습니까.”
그는 각인 칼을 모르덴의 발치에 내려놓았다.
“이건 당신들이 가져가시오. 묘역의 장부에는 오늘 계약이 없었던 걸로 남깁니다.”
처리사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7구역도 그렇고 이쪽도 그렇고 관을 열지 않아도 확인할 방법이 있잖습니까.”
다른 이들이 작은 목소리로 동의했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아까까지 처리실을 채웠던 침묵과는 달랐다.
모르덴은 그 소리를 모두 들었다.
“좋다. 오늘 일은 기록하겠다. 무허가 안식 의식과 성물 훼손 혐의까지 더해서.”
그가 갈렌에게 손짓했다.
“다음 감찰은 내가 아니라 더 높은 곳에서 올 것이다.”
검은 마차가 묘역 밖으로 사라진 뒤에도 바스토는 한동안 문을 바라봤다.
“겁나는 건 여전하군.”
그가 중얼거렸다.
하진은 세딘의 관을 준비하는 처리사들을 보았다. 엘라는 미아와 함께 깨끗한 천 가장자리를 잡고 있었다. 미아는 나무 새를 가슴에 꼭 안은 채 아버지의 이름표를 바라봤다.
“그래도 오늘은 관을 지켰습니다.”
바스토는 대답 대신 세척수 통을 들어 옮겼다.
새벽빛이 옅게 번질 무렵 묘역 입구의 경계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검은 마차가 아니었다.
안개 너머에 멈춘 흰 마차의 문에는 왕궁 봉인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