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임에서 마왕까지: 던전 마스터

9화: 숨은 샘의 협상
사슬은 멀어지지 않았다.
틈 바깥에서 녹슨 금속이 돌을 긁었다. 한 번 긁고 멈춘 뒤 다시 같은 자리를 더듬었다. 철각 감시자는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대신 기다렸다. 굶주린 것들이 지칠 때까지 입구를 막는 법을 아는 듯했다.
고블린들은 그 소리만으로도 몸을 접었다.
가장 작은 고블린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찢어진 귀가 계속 떨렸다. 그놈은 내가 그어 둔 짧은 선을 보고 다시 내 표면을 보았다.
"말락."
낮은 울림이었다.
이름인지 신호인지 아직 모른다. 나를 부르는 말일 수도 있고 멈추라는 뜻일 수도 있다. 고블린 몇 마리가 그 소리에 움직임을 늦췄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대답 대신 몸 안의 공기 방울을 아주 약하게 밀었다.
툭.
정지.
가장 작은 고블린이 목을 눌렀다.
"그르."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무리의 앞줄이 멈췄다. 그들이 나를 이해해서가 아니었다. 공포 속에서 붙잡을 수 있는 패턴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대피처 안은 너무 좁았다.
낮은 천장에 낡은 천 조각이 붙어 있었고 부서진 나무는 오래전에 말라 갈라졌다. 벽 한쪽에서는 물방울 냄새가 났다. 아주 약했다. 하지만 고블린들의 목울대가 그쪽으로 움직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물.
회복.
그리고 먹이.
내 핵은 가장 정직하게 계산했다. 다친 고블린의 봉합막은 버티고 있었지만 그 안쪽에서 회색 균사 냄새가 다시 올라왔다. 물이 없으면 막이 마르고 막이 마르면 상처가 열린다.
그런데 나도 말라 가고 있었다.
[생명 의존률 18%.]
[핵 안정도 31%.]
[표면 결손 및 오염 성분 격리 지속.]
나는 고블린들과 나 사이에 선을 하나 더 그었다.
짧고 얇은 선.
넘지 말라는 뜻이었다.
고블린 하나가 배고픔에 못 이겨 손을 뻗었다. 손톱 끝이 선 위를 스쳤다. 나는 덮치지 않았다. 대신 점액 가장자리를 살짝 부풀려 선을 더 진하게 만들었다.
가장 작은 고블린이 그 손목을 밀었다.
"말락."
이번에는 조금 날카로웠다. 손을 뻗던 고블린이 이를 드러냈지만 뒤로 물러났다. 복종은 아니었다. 겁과 굶주림이 같은 자리에 묶인 것뿐이었다.
그 정도면 지금은 충분했다.
나는 물 냄새가 나는 벽으로 몸을 낮췄다.
갈라진 틈은 고블린 손가락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할 만큼 좁았다. 안쪽에서 차가운 공기가 아주 약하게 흘렀다. 자연 균열이 아니었다. 벽 안쪽에 얕은 홈이 파여 있었고 물은 그 홈을 따라 새어 나왔다.
누군가 만든 길이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 홈이 물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핵을 가까이 밀지 않았다. 빠져나오지 못하면 끝이다. 대신 점액 실을 아주 얇게 뽑았다. 거미다리 도마뱀의 강모 구조를 흉내 낸 점착막을 실 끝에 섞었다. 말라붙은 돌가루가 실에 달라붙고 곧바로 무게가 늘었다.
끊어질 것 같았다.
나는 실을 더 가늘게 만들었다. 얇아질수록 유지가 어려웠지만 틈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차가운 물방울 하나가 실 끝을 때렸다.
살 것 같았다.
그대로 빨아들이고 싶었다. 한 방울이라도 내 안으로 끌어오면 표면의 뜨거운 통증이 줄어들 것이다. 봉합막을 유지하느라 줄어든 점액도 조금은 돌아올 것이다.
뒤에서 다친 고블린이 떨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짧은 떨림이었다. 먹이로 보이면 아주 약한 먹이였다. 하지만 끌고 온 고블린 둘이 그 옆에서 팔을 놓지 않았다.
나는 물방울을 삼키지 않았다.
점액 실을 바닥으로 낮춰 작은 홈을 만들었다. 물은 내 몸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표면을 타고 흘렀다. 한 방울이 두 방울이 되고 얇은 물줄기가 되었다.
고블린들이 한꺼번에 앞으로 숙였다.
툭.
나는 짧게 울렸다.
가장 작은 고블린이 거의 동시에 따라 했다.
"그르."
물러서지는 않았다. 하지만 뛰어들지도 않았다. 나는 물줄기 끝을 다친 고블린 입가로 밀었다. 끌고 온 둘 중 하나가 돌을 들었다가 물 냄새를 맡고 멈췄다.
다친 고블린의 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물방울이 들어갔다.
목의 떨림이 한 박자 길어졌다. 죽음이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한 걸음 늦어진 것뿐이었다.
그 다음은 먹이였다.
벽 안쪽 홈을 따라 마른 균사 덩어리가 걸려 있었다. 부서진 나무 조각과 엉켰고 검은 실 같은 오염 균사가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냄새는 형편없었다. 그래도 영양분이 아예 없는 천 조각보다는 나았다.
나는 균사 끝에 점액을 묻혔다.
[대상 분석.]
[마른 균사 덩어리. 저영양.]
[오염 균사 혼재.]
[분리 섭취 권장.]
권장은 쉽다.
분리는 어려웠다.
검은 균사는 건드리면 축축한 썩은 냄새를 냈다. 회백색 부스러기는 말라 부서졌고 내 점액에 닿자 가루처럼 흩어졌다. 나는 혀도 손도 없었다. 몸 가장자리로 냄새와 진동과 질감을 나누며 조금씩 떼어 내야 했다.
고블린 하나가 더 참지 못했다.
그놈은 앞으로 튀어나와 균사 덩어리를 움켜쥐려 했다. 말라붙은 손가락이 내 점액 위를 찍었다. 뜨거운 통증이 번졌지만 나는 덮치지 않았다.
덮치면 이긴다.
적어도 그 한 마리는 먹을 수 있다.
그러면 나머지는 흩어지고 다친 고블린은 죽고 철각 감시자는 기다리던 먹이를 얻는다. 계산은 그렇게 끝났다.
나는 균사 덩어리를 둘로 나눴다.
검은 균사를 떼어 낸 아주 작은 조각은 다친 고블린 옆으로 밀었다. 조금 큰 조각은 내 쪽에 남겼다. 공평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먼저 분리하지 않으면 모두가 오염된 것을 먹는다.
고블린들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나는 긴 진동을 냈다.
드르르.
차례.
그 뜻이 제대로 전해졌을 리 없다. 그런데 가장 작은 고블린이 내 앞에 서더니 자기 손가락으로 바닥을 긁었다. 내 선과 균사 조각 사이에 짧은 홈을 하나 더 냈다.
먼저.
다음.
그 정도의 순서였다.
나는 두 번째 균사 조각을 분리했다. 이번에는 내 쪽으로 당기지 않고 고블린 무리 앞에 밀었다. 굶주린 손들이 달려들려 했다. 가장 작은 고블린이 목을 더 세게 울렸다.
"말락."
몇 마리가 멈췄다. 멈추지 못한 하나는 늙어 보이는 고블린에게 어깨를 맞고 뒤로 넘어졌다. 무리는 여전히 위험했다. 하지만 선을 밟고 넘지는 않았다.
나는 남은 회백색 균사를 삼켰다.
맛은 먼지와 썩은 나무에 가까웠다. 그래도 안쪽에서 아주 약한 열이 돌았다. 표면 결손이 조금 닫혔다. 오염된 검은 줄기는 따로 감싸 벽 틈 가장자리로 밀었다.
[저영양 흡수.]
[생명 의존률 19%.]
[오염 성분 격리 부담 유지.]
겨우 1%.
웃음이 나올 뻔했다. 입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바깥에서 사슬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기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쇠끝이 틈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내가 입구에 펴 둔 점액 차단막이 길게 찢겼다. 녹가루가 튀고 고블린들이 비명을 삼켰다.
흩어지려 한다.
나는 몸 안의 공기 방울을 한곳에 모았다. 찢어진 진동막이 욱신거렸다. 그래도 울려야 했다.
툭. 툭. 툭.
낮게.
가장 작은 고블린이 즉시 엎드렸다. 다친 고블린 옆의 둘도 몸을 낮췄다. 늦게 반응한 고블린 하나의 머리 위로 사슬이 지나갔다. 쇠끝이 벽을 찍었다.
쾅.
돌가루가 떨어졌다.
철각 감시자는 보지 못한다. 그러나 바닥과 사슬이 닿는 곳은 안다. 나는 찢어진 차단막 위로 녹가루를 끌어 모았다. 점액에 녹을 섞고 사슬 마디 사이로 얇게 밀어 넣었다.
방패가 아니다.
소리를 흐리는 먼지다.
사슬이 다시 움직이자 울림이 둔해졌다. 감시자의 손이 바깥에서 엉뚱한 벽을 더듬었다. 손가락 네 개가 틈 입구를 긁었지만 안쪽까지 닿지는 않았다.
[임시 차단막 손상.]
[녹가루 간섭 효과 확인.]
[반복 사용 시 표면 마모 가속.]
알아.
모르는 게 아니라 버틸 방법이 이것뿐이다.
나는 고블린들이 엎드린 자리를 확인했다. 그들은 내 명령을 따른 것이 아니었다. 가장 작은 고블린이 먼저 엎드렸고 나머지는 그 동작을 따라 했다. 그래도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행동은 다음 규칙이 된다.
그때 물 냄새가 나는 벽 안쪽에서 다른 울림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사슬의 반향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사슬은 무겁고 불규칙했다. 바깥에서 긁고 찍고 끌었다. 그런데 벽 안쪽의 울림은 얇았다. 아주 작은 금속 조각이 일정한 간격으로 흔들리는 소리였다.
딸.
잠깐 쉬고.
딸.
나는 몸을 낮췄다.
물은 자연 샘이 아니었다. 인공 홈을 타고 새어 나왔다. 홈이 있다면 끝이 있다. 끝에 금속 울림이 있다면 문이거나 장치일 수 있다. 아니면 또 다른 덫일 수도 있다.
고블린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듯했다. 아니면 물과 굶주림 때문에 구분하지 못했다. 가장 작은 고블린만이 내 표면의 떨림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 앞에 세 번째 선을 그었다.
이번 선은 금지가 아니었다.
물줄기에서 벽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 고블린 손가락보다 좁고 내 점액 실만 들어갈 수 있는 길.
가장 작은 고블린이 선을 따라 벽을 보았다. 그러고는 아주 낮게 말했다.
"말락."
이번에는 묻는 소리 같았다.
나는 짧게 울렸다.
툭.
정지.
그리고 물 냄새가 흐르는 벽 안쪽으로 긴 진동을 보냈다.
드르르.
피난과 닮았지만 끝을 조금 다르게 끊었다. 멀리 가라는 뜻이 아니었다. 안을 보라는 뜻에 가까웠다.
찾아라.
내가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벽 안쪽의 얇은 금속 울림이 다시 돌아왔다.
딸.
딸.
이번에는 간격이 바뀌었다.
내 진동을 들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