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임에서 마왕까지: 던전 마스터

8화 말락정의 첫 명령
쿵.
철각 모서리가 낮게 울었다.
고블린들이 먼저 무너졌다. 발을 움직인 것이 아니라 몸을 낮췄다. 다친 동료를 끌던 두 마리는 팔을 놓지 못했고 나를 따라 움직이던 가장 작은 고블린은 목을 움츠렸다.
나는 금속 고리를 감싼 채 몸을 납작하게 폈다.
도망가야 한다.
그런데 어디로.
말라붙은 캠프의 좁은 틈은 박쥐형 포식자가 들어오기 어렵다. 물 냄새도 약하게 난다. 하지만 고블린 무리 전체가 한꺼번에 밀려 들어가기에는 좁았다. 앞에서 엉키면 뒤는 그대로 잡힌다.
쿵.
어둠에서 긴 팔이 나왔다.
팔이라기보다 쇠꼬챙이에 마른 근육을 감은 것 같았다. 손가락은 네 개였고 손목에는 녹슨 사슬이 살점 안쪽까지 파묻혀 있었다. 사슬은 바닥을 끌며 철각을 긁었다.
그 긁힘이 고블린들의 등 상처와 같은 방향을 만들었다.
저거다.
[위협 분석.]
[중형 지성형 추정.]
[녹슨 사슬. 강제 견인 흔적.]
[권장 행동: 즉시 이탈.]
"알아."
하지만 나 혼자 이탈하면 무리는 흩어진다. 흩어진 무리는 잡힌다. 고블린들이 나를 믿어서가 아니었다. 공포가 너무 커서 각자 움직이려 했고 그래서 더 느려졌다.
나는 고리를 눌렀다.
통.
짧게.
정지.
가장 작은 고블린이 떨리는 목으로 따라 했다.
"그르."
소리는 망가졌지만 충분했다. 앞줄 몇 마리가 멈췄다. 뒤쪽이 앞줄 등에 부딪혔고 무리는 한 덩어리로 굳었다.
이제 움직여야 한다.
나는 부패 억제 점액을 아주 얇게 흘렸다. 말라붙은 캠프 뒤쪽의 틈까지 이어지는 선이었다. 냄새는 약하지만 고블린 코에는 닿을 것이다.
통.
길게.
스르르.
피난.
가장 작은 고블린이 선을 보았다. 코를 낮추고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다친 고블린의 팔을 잡은 둘을 밀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슬 달린 손이 바닥을 쓸며 다가오자 뒤쪽 고블린 하나가 비명을 삼켰다. 그제야 앞줄이 움직였다. 걷는다기보다 미끄러지고 기었다.
문제는 다친 고블린이었다.
봉합막은 붙어 있었지만 바닥에 끌면 찢어진다. 끌고 가는 둘도 그것을 알았다. 팔을 잡았다가 놓고 다시 잡았다. 무리는 앞뒤로 눌렸고 철각 감시자의 사슬은 더 가까워졌다.
나는 몸 일부를 길게 늘렸다.
떼어 낼 수는 없었다. 핵에서 너무 멀어지면 유지가 되지 않는다. 대신 얇은 받침막을 바닥에 폈다. 가죽 섬유를 섞고 뱀늪 철가루를 미량 흩뿌렸다. 매끈하면서도 쉽게 찢어지지 않는 막.
다친 고블린 아래로 밀어 넣었다.
[임시 구조 형성.]
[점액 받침막.]
[소모 증가.]
고블린 둘이 망설였다.
나는 공격하지 않았다. 먹지도 않았다. 막 가장자리를 둥글게 말고 더 낮췄다. 작은 고블린이 먼저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내 점액에 닿자 몸이 움찔했다.
나도 움찔했다.
뜨겁고 거친 체온이 얇은 막을 타고 지나갔다. 그것은 먹이의 온도였고 동시에 살아 있는 동료를 놓치지 않으려는 손의 온도였다.
작은 고블린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르."
짧게.
다른 둘이 받침막 가장자리를 잡았다. 다친 고블린은 막 위에서 흔들렸다. 봉합한 상처가 다시 벌어질 듯 검은 냄새를 냈지만 체액은 쏟아지지 않았다.
됐다.
쿵.
사슬이 날아왔다.
금속 고리가 있던 바닥이 터졌다. 녹가루와 돌 부스러기가 내 몸 위로 쏟아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리를 놓고 옆으로 눌어붙었다. 사슬 끝의 갈고리가 고블린 하나의 발목 앞을 긁고 지나갔다.
그 고블린이 굳었다.
움직여.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점액막 안의 공기 방울을 몰았다. 박쥐형 포식자의 공명낭을 흉내 낸 아주 약한 진동이었다. 금속 고리는 떨어져 있었지만 내 표면에도 떨림은 만들 수 있었다.
투욱.
짧게.
드르르.
길게.
피난.
가장 작은 고블린이 이번에는 더 크게 목을 울렸다.
"그르르!"
멈춰 있던 고블린이 튀듯 움직였다. 갈고리가 허공을 찍었다. 사슬 달린 존재가 어둠에서 몸을 드러냈다.
굽은 어깨.
쇠못이 박힌 목.
얼굴 절반을 덮은 철각 조각.
눈은 탁했지만 사슬은 살아 있는 촉수처럼 바닥을 더듬었다.
[대상 분석 불완전.]
[임시 명칭: 철각 감시자.]
[감지 방식: 지면 진동 및 사슬 접촉 의존.]
시야가 약하다.
나는 고리를 향해 몸을 뻗었다. 사슬이 다시 날아왔다. 피하면 고블린이 맞는다. 맞으면 나는 찢어진다.
계산은 짧았다.
나는 녹막 외피를 몸 가장자리에 세웠다. 단단하다고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갈고리가 스치자 외피가 바로 갈라졌다. 하지만 방향을 조금 비틀었다.
캉!
사슬이 금속 고리를 때렸다.
맑은 울림이 터졌다.
박쥐형 포식자를 흔들었던 소리와 닮은 울림이었다. 철각 감시자가 몸을 비틀었다. 사슬이 허공에서 꼬이고 바닥을 더듬던 손가락이 엉뚱한 곳을 긁었다.
지금.
통.
짧게.
스르르.
길게.
피난.
마지막 고블린들이 틈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다친 고블린을 실은 받침막도 끌려갔다. 내 몸의 일부가 통로 가장자리에 걸려 찢겼다. 뭔가가 뜯겨 나가는 감각에 핵이 흔들렸다.
[생명 의존률 18%.]
[안정도 31%.]
[표면 결손 발생.]
아프다.
그런데 안쪽에서 작은 손들이 받침막을 놓지 않았다. 고블린들이 나를 끌어당긴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만든 막을 끝까지 붙잡았을 뿐이다. 덕분에 다친 고블린이 틈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는 마지막으로 몸을 납작하게 접고 좁은 틈으로 스며들었다.
사슬이 뒤를 찍었다.
돌가루가 내 뒤를 덮었다.
안쪽은 낮았다. 천 조각과 부서진 나무, 오래된 물방울 냄새가 있었다. 완전한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그래도 철각 감시자는 들어오지 못했다. 손가락 네 개가 틈 앞을 긁고 사슬이 벽을 때렸다.
쿵.
쿵.
고블린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무리 한가운데에서 다친 고블린이 약하게 떨었다. 봉합막은 버티고 있었다.
나는 먼저 입구 쪽에 몸을 넓혔다.
문을 막는다는 생각은 우스웠다. 나는 문도 아니고 벽도 아니었다. 철각 감시자가 사슬을 밀어 넣으면 한 번에 찢길 것이다. 그래도 틈 바닥에 점액을 얇게 펴자 사슬이 들어올 각도는 조금 줄어들었다.
고블린 몇 마리가 뒤로 물러났다.
그들에게 내 점액은 아직 상처를 막은 물질이면서 동시에 몸을 녹일지도 모르는 낯선 살이었다. 가까운 곳에 있을수록 두려워하는 냄새가 짙어졌다.
나는 더 다가가지 않았다.
대신 입구 앞에 흘러내린 녹가루를 점액 표면에 묻혔다. 녹막 외피를 세우는 것보다 훨씬 얇았다. 방패가 아니라 미끄러운 막 위에 뿌린 거친 모래에 가까웠다.
철각 감시자의 사슬이 다시 틈 안으로 밀려왔다.
찌이익.
사슬 끝이 점액막을 긁었다. 녹가루가 사슬 마디 사이에 끼고 울림이 흐트러졌다. 감시자의 손가락이 틈 바깥을 더듬었다. 안쪽까지 들어오지는 못했다.
[임시 차단막 형성.]
[방어 효율 낮음.]
[반복 충격 시 붕괴 예상.]
낮아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대피처 안쪽으로 감각을 보냈다. 천 조각은 거의 썩어 있었고 부서진 나무에는 오래된 곰팡이가 말라붙어 있었다. 영양분은 적었다. 물방울 냄새는 더 안쪽 갈라진 벽에서 났다. 아주 느리게 떨어지는 물이었다.
고블린들은 그 냄새를 나보다 먼저 맡았다.
가장 어린 것들이 안쪽으로 기어가려 했다. 하지만 앞줄의 늙어 보이는 고블린 하나가 팔을 벌려 막았다. 물이 있다는 것은 길이 더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길이 더 있으면 다른 포식자가 있을 수도 있다.
하늘이었을 때의 나는 그런 조심성을 고블린에게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 조심성에 기대야 했다.
다친 고블린이 낮게 울었다.
봉합막 안쪽의 균사 냄새가 다시 올라왔다. 피는 막았지만 썩음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넣은 부패 억제 점액은 시간을 벌 뿐이다. 물이 있어도 먹이가 없으면 이 무리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먹이.
그 단어가 떠오르자 고블린 몇 마리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그들도 굶주렸다. 나도 굶주렸다. 같은 공간에 갇힌 굶주린 생명들은 오래 서로를 봐 줄 수 없다.
나는 다친 고블린 쪽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받침막 끝에 남은 점액을 아주 조금 접어 고블린들이 앉은 곳과 나 사이에 선을 그었다.
짧은 선.
넘지 말라는 뜻.
그 의미가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가장 작은 고블린이 그 선을 내려다보더니 자신의 손가락으로 바닥을 긁었다. 내 선과 비슷한 방향이었다. 뒤쪽 고블린 하나가 앞으로 나오려다 멈췄다.
복종이 아니다.
약속에 더 가까웠다.
가장 작은 고블린이 내 앞에 앉았다.
한쪽 귀가 찢어진 얼굴이 여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그래도 돌은 들지 않았다.
"말락."
낯선 울림이었다.
말인지 이름인지 신호인지 알 수 없었다. 고블린 몇 마리가 같은 소리를 아주 낮게 따라 했다.
"말락."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몸 안의 공기 방울을 아주 약하게 울렸다.
통.
짧게.
정지.
스르르.
길게.
피난.
그들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그들의 소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틈 안쪽에서 무리가 더 이상 나를 찌르지 않았다.
밖에서는 철각 감시자가 사슬을 끌었다.
멀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기다리는 소리였다.
나는 좁은 대피처 안의 물 냄새와 천 조각을 느꼈다. 먹이는 거의 없고 내 몸은 더 작아졌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가 만든 첫 명령은 무리를 움직였다.
그리고 그 명령 때문에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