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임에서 마왕까지: 던전 마스터

10화: 최하층의 작은 군
딸.
벽 안쪽에서 다시 울렸다.
사슬 소리가 아니었다. 사슬은 긁고 찍고 끌었다. 저 소리는 얇았다. 물방울 하나가 금속 끝을 일정하게 건드릴 때 나는 소리였다.
딸.
간격이 바뀌었다.
내 진동이 닿은 뒤였다.
나는 물길 안쪽으로 뻗은 점액 실을 거두지 않았다. 거두면 지금의 물은 지킬 수 있다. 더 밀어 넣으면 통로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실이 길어질수록 핵에서 멀어지는 부분은 차갑게 굳었고 오염 균사가 묻은 벽이 점액을 갉아먹었다.
[점액 실 확장.]
[핵 안정도 저하 가능.]
[권장: 회수.]
회수하면 아무것도 모른다.
고블린들이 물 냄새에 몸을 숙였다. 가장 작은 고블린이 내 선 앞에 앉아 있었다. 그놈의 찢어진 귀가 떨렸다. 다른 고블린 하나가 손을 뻗자 그놈이 손목을 밀었다.
"말락."
낮고 짧았다.
무리는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 굶주린 손끝은 계속 움직였다. 그래도 선을 넘지는 않았다. 선이 무슨 뜻인지 알아서가 아니었다. 선을 넘은 다음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서였다.
지금은 그 정도면 된다.
나는 실 끝에 공기 방울을 하나 달았다. 너무 큰 방울은 터지고 너무 작은 방울은 울리지 않는다. 몸 안의 빈 곳을 긁어 아주 작은 떨림을 보냈다.
툭.
진동은 물길을 따라 사라졌다.
잠깐 뒤 금속음이 돌아왔다.
딸.
대답처럼 들렸다.
실 끝이 녹슨 격자를 만졌다. 격자는 좁은 수로 안쪽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문이라기보다 오래전에 박아 둔 거름망 같았다. 물은 그 틈을 지나왔고 작은 균사 조각들은 격자에 걸려 썩었다.
그 뒤에 빈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생체 진동이 있었다.
아주 작고 빠른 진동. 물벌레처럼 마디가 많은 것들. 천장 쪽에서 떨리는 얇은 막. 그리고 나와 닮았지만 훨씬 흐린 점액 덩이의 미세한 움직임.
먹을 수 있다.
그 생각은 망설임보다 빨랐다.
지금 내 몸은 말라 있었다. 표면 결손은 닫히다 말았고 검은 오염 줄기는 아직 가장자리에서 따로 묶여 있었다. 저 안의 약한 것들을 전부 삼키면 생명 의존률은 조금 더 올라갈 것이다. 박쥐 새끼의 막은 초음 진동을 줄 수 있고 물벌레의 껍질은 미량 영양분이 된다. 작은 슬라임은 나와 맞는 점액이다.
너무 알맞았다.
그래서 멈췄다.
알맞은 먹이를 모두 먹으면 다음 위협 앞에서 나 혼자 남는다. 철각 감시자의 사슬은 아직 바깥에 있고 나는 그것을 부술 수 없다. 혼자 강해지는 속도보다 같이 시간을 버는 속도가 지금은 더 빠르다.
나는 격자 축에 점액을 밀어 넣었다.
녹가루를 섞고 물때를 불렸다. 축이 조금씩 헐거워졌다. 바깥에서 사슬이 입구를 다시 긁었다. 고블린들의 등이 솟았다.
툭. 툭. 툭.
낮게.
엎드려.
가장 작은 고블린이 먼저 바닥에 붙었다. 다친 고블린 옆의 둘도 늦게 따라 했다. 엎드린다는 뜻을 이해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작은 놈이 사는 행동을 먼저 했고 나머지가 그 행동을 빌렸다.
나는 격자를 흔들었다.
겟.
작은 금속음이 물길을 타고 튀었다. 격자 한쪽이 벌어지고 차가운 냄새가 새어 나왔다. 젖은 돌. 오래된 물때. 회백색 균사. 얇은 털. 그리고 낮은 점액 냄새.
고블린들의 목울대가 동시에 움직였다.
나도 움직이고 싶었다.
하지만 먼저 길을 넓혔다. 핵을 밀어 넣지는 않았다. 점액 실 여러 갈래를 격자 틈에 걸고 천천히 잡아당겼다. 녹슨 축이 더 휘었다. 물길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넓어졌다.
고블린이 들어갈 수는 없다.
나는 들어갈 수 있다.
들어가면 나만 먹을 수 있다.
나는 몸을 낮게 펼쳐 수로 아래쪽에 얇은 경사면을 만들었다. 물이 대피처 안으로 조금 더 흘렀고 고블린들이 물줄기 앞에 몰렸다.
툭.
정지.
"말락."
가장 작은 고블린이 따라 울렸다.
이번에는 앞줄이 멈췄다.
나는 첫 물방울을 다친 고블린에게 밀었다. 두 번째는 물줄기 아래에 놓인 작은 홈에 모았다. 세 번째는 내 표면을 적셨다. 아까보다 적은 양이었지만 표면의 뜨거운 통증이 조금 내려갔다.
[수분 확보.]
[표면 결손 완화.]
[핵 안정도 30%.]
숫자는 안정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빚이었다. 격자를 열기 위해 뻗은 실이 그만큼 내 몸을 끌고 있었다.
나는 수로 안쪽으로 몸 일부를 밀어 넣었다.
저수 공간은 생각보다 작았다. 낮은 돌천장 아래에 얕은 물이 고여 있었고 벽에는 회백색 균사가 얇게 번졌다. 물벌레 여섯 마리가 물때 밑으로 숨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작은 공기 방울이 올라왔다.
천장에는 박쥐 새끼 둘이 붙어 있었다.
날개는 찢어졌고 몸은 말라 있었다. 그래도 귀는 살아 있었다. 내가 보낸 가느다란 진동에 둘 중 하나가 몸을 떨었다. 떨림은 천장을 타고 돌아와 내 표면에 닿았다.
공간의 높이.
균열의 방향.
사슬이 들어올 수 있는 각도.
먹이보다 정보가 먼저 들어왔다.
물가에는 작은 슬라임 두 덩이가 있었다. 거의 투명했고 핵이라 부르기에도 약한 점 하나가 각각 가운데서 떨렸다. 그들은 나를 보자 물속으로 숨으려 했다. 느렸다. 너무 느렸다.
고블린 하나가 그 순간을 보았다.
굶주림은 생각보다 빨랐다.
그놈이 격자 틈 앞으로 몸을 던졌다. 팔은 물벌레를 향했다. 나는 몸을 뻗어 팔목을 감았다. 부러뜨릴 수 있었다. 그 살을 녹이면 지금 필요한 단백질을 얻을 수도 있었다.
대신 바닥에 붙였다.
고블린이 비명을 삼켰다.
다른 고블린들이 이를 드러냈다. 가장 작은 고블린도 한순간 나를 보았다. 그 눈에는 감사가 없었다. 겁과 계산만 있었다.
좋다.
계산할 수 있으면 규칙도 남는다.
나는 길게 울렸다.
드르르.
차례.
뜻은 전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몸으로 보였다. 저수 공간 벽에서 균사 군락을 조금 떼어 냈다. 검은 오염 줄기를 따로 감싸 벽 틈으로 밀어 넣고 회백색 부스러기만 물가에 놓았다.
작은 조각 하나는 다친 고블린 앞.
다음 조각은 격자 안쪽 물가.
작은 슬라임 두 덩이가 숨어 있는 곳이었다.
그 다음은 고블린 무리 앞.
마지막은 내 쪽.
공평하지 않았다. 강한 순서도 아니었다. 지금 죽으면 모두를 위험하게 만드는 순서였다. 다친 고블린이 죽으면 무리는 흔들린다. 작은 슬라임이 죽으면 물막을 잃는다. 고블린들이 미치면 격자는 전쟁터가 된다. 내가 무너지면 선은 사라진다.
고블린 하나가 다시 으르렁거렸다.
나는 그 앞에 선을 그었다.
짧게.
먹는 곳.
나는 두 번째 선을 물가에 그었다.
쉬는 곳.
세 번째 선은 입구와 사슬이 들어오는 방향 사이에 그었다.
바라보는 곳.
가장 작은 고블린이 선을 보았다. 그러더니 자기 손톱으로 첫 선을 다시 긁었다. 삐뚤고 거칠었다. 그래도 같은 방향이었다.
"말락."
무리의 손이 늦어졌다.
작은 슬라임 하나가 물속에서 올라왔다. 내 진동을 아주 약하게 흉내 냈다.
툭.
물방울 하나가 흔들렸다.
나는 그쪽으로 점액을 펼치지 않았다. 삼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려면 가까이 가지 않는 편이 더 낫다. 대신 균사 조각을 물결에 태워 밀었다. 작은 슬라임이 조각을 감쌌다. 먹는 속도는 느렸지만 오염되지 않은 쪽만 잡았다.
배울 수 있다.
그때 바깥에서 사슬 소리가 끊겼다.
멈춤은 더 위험했다.
철각 감시자가 소리를 들은 것이다. 격자가 벌어진 소리. 물이 바뀐 소리. 굶주린 것들이 한곳에 모인 소리.
나는 박쥐 새끼에게 가느다란 진동을 보냈다.
찌르륵.
내 몸으로 만든 소리는 거칠었다. 그래도 박쥐 새끼 하나가 천장에 붙은 발을 바꾸었다. 그 떨림이 돌아왔다. 오른쪽 위. 낮게 들어오다가 중간에서 꺾인다.
사슬의 각도였다.
나는 고블린들 앞에서 세 번 울렸다.
툭. 툭. 툭.
엎드려.
가장 작은 고블린이 엎드렸다. 이번에는 둘이 거의 동시에 따라 했다. 다친 고블린 옆의 하나는 부서진 나무 조각을 끌어 입구 쪽으로 밀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사슬이 들어오는 쪽에 뭔가를 놓으면 살아남는다는 것을 방금 배운 것이다.
작은 슬라임 둘은 물가에서 떨었다.
나는 낮고 긴 진동을 물막 쪽으로 보냈다.
드르르.
밀어.
뜻은 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점액이 물을 미는 모양은 보였을 것이다. 작은 슬라임 둘이 몸을 넓혔다. 아주 얇은 물막이 수로 앞에 생겼다.
사슬이 들어왔다.
물막은 바로 찢겼다.
그래도 첫 울림을 바꿨다. 쇠끝이 물을 때리고 방향을 잃는 찰나에 나는 녹가루 점액을 사슬 마디 사이에 발랐다. 사슬은 저수 공간 가운데를 향하지 못하고 벽을 긁었다.
쾅.
돌가루가 떨어졌다.
박쥐 새끼가 천장에서 떨어질 듯 흔들렸다. 나는 그 아래에 얇은 점액막을 펼쳤다. 박쥐 새끼는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다시 몸을 떨었다.
왼쪽.
나는 고블린들이 밀어 둔 나무 조각 쪽으로 점액을 보냈다. 고블린 둘이 그 움직임을 보고 나무를 더 밀었다. 사슬이 나무를 찢으며 지나갔지만 속도가 줄었다.
그 사이 물벌레들이 움직였다.
도망이 아니었다. 물때 아래로 파고들며 얇은 회백색 균사 줄기를 드러냈다. 그 길은 저수 공간 깊은 벽까지 이어졌다. 먹이 길이면서 숨을 길이었다.
작은 것들이 각자 살 방법을 안다.
다만 따로 있으면 잡아먹힌다.
나는 사슬 끝에 검은 오염 균사를 아주 조금 묻혔다. 먹지 않고 따로 격리해 둔 것. 썩은 냄새가 사슬을 따라 퍼졌다. 철각 감시자의 손이 바깥에서 멈췄다. 먹이 냄새가 아니라 부패 냄새였다.
사슬이 한 번 더 벽을 찍었다.
이번에는 저수 공간 밖이었다.
[공동 방어 성공.]
[생명 의존률 20%.]
[핵 안정도 29%.]
[오염 성분 격리 부담 증가.]
회복이라고 부르기에는 초라했다.
숫자는 겨우 하나 올랐고 안정도는 떨어졌다. 혼자 먹었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약한 슬라임 둘을 삼키고 박쥐 새끼의 막을 녹이고 물벌레를 긁어 모았다면 표면 결손은 더 닫혔을 것이다.
하지만 사슬을 속인 것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고블린은 낮게 엎드리는 법을 배웠다. 박쥐 새끼는 각도를 돌려주었다. 작은 슬라임은 찢기는 물막을 만들었다. 물벌레는 균사 길을 드러냈다.
최하층의 것들.
각자 혼자라면 먹이였다.
함께 있어도 아직 강하지 않았다. 그저 죽는 순서를 조금 늦출 수 있을 뿐이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그 조금이었다.
가장 작은 고블린이 저수 공간 입구에 섰다. 그는 내 선을 보았고 고블린들을 보았고 물가의 작은 슬라임을 보았다. 손톱이 다시 바닥을 긁었다.
짧은 선.
삐뚤어진 선.
내 선 옆에 놓인 두 번째 선.
"말락."
이번에는 나를 부르는 소리만은 아니었다. 멈추라는 뜻만도 아니었다. 물 앞에서 서로 덮치지 말라는 아주 작은 규칙처럼 들렸다.
나는 대답 대신 물가에 몸을 낮게 펼쳤다.
먹는 곳.
쉬는 곳.
바라보는 곳.
세 선은 우스울 만큼 약했다. 고블린 하나가 미쳐 날뛰면 지워진다. 철각 감시자의 사슬이 정확히 들어오면 찢어진다. 내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면 가장 먼저 내가 깨뜨릴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은 남아 있었다.
사슬이 다시 바깥을 긁었다.
아무도 바로 뛰지 않았다.
그때 저수 공간 가장 깊은 벽에서 물때 한 겹이 벗겨졌다. 물벌레들이 드러낸 균사 길 끝이었다. 회백색 막 아래에 오래된 긁힘이 있었다.
짧은 선.
긴 선.
다시 짧은 선.
불규칙한 상처가 아니었다. 일정한 간격이 있었고 방향이 있었다. 내가 방금 만든 진동 신호와 닮았다. 고블린의 손톱 자국과도 닮았다. 오래전에 누군가 이곳에서 살아남으려고 같은 일을 했다는 흔적처럼 보였다.
나는 그 앞에서 멈췄다.
내가 만든 첫 군은 너무 작았다.
그런데 이 자리는 처음부터 비어 있던 곳이 아니었다.
나는 아주 작게 울렸다.
툭.
벽은 늦게 대답했다.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