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오버 타임 (Signal Over Time)

7화: 가늘게 떨리는 선율
"오늘 점심은 뭐 먹었어요?"
하은의 메시지는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2024년 6월 초의 어느 화창한 날, 그녀는 학교 식당의 제육볶음이 너무 맵다며 투정을 부렸고, 선우는 2026년의 우중충한 반지하 방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답장을 보냈다.
[ 그냥 도시락 먹었습니다. 하은 씨, 오늘 날씨는 어때요? ]
[ 완전 좋아요! 미세먼지도 없고 하늘이 진짜 파래요. 선우 씨 있는 2026년은 어때요? 거긴 미래니까 미세먼지 해결됐으려나? ]
선우는 창살 너머로 보이는 잿빛 하늘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 아쉽지만 미래라고 다 좋은 건 아니네요. 오늘도 하늘은 뿌옇습니다. ]
[ 에이, 재미없어. 그래도 2년 뒤면 제가 27살이네요? 나 그때 뭐 하고 있어요? 진짜 작가 됐으려나? 아니면 디자인 회사 들어갔나? ]
선우의 손가락이 멈췄다. 2026년의 인터넷 기록 어디에도 그녀의 이름으로 된 디자인 작업물이나 입사 소식은 없었다. 대신 '실종', '수사 종결' 같은 단어들만이 그녀의 흔적을 대신하고 있었다.
[ 하은 씨는 분명히 멋진 디자이너가 되어 있을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
[ 와, 미래에서 온 확신! 기분 좋은데요? ]
하은은 밝게 대답했지만, 선우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는 틈틈이 2024년의 사건 기록을 뒤졌다. 첫 번째 피해자가 발생하기 전, 예고된 징후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는 경찰 내부 데이터나 기사화되지 않은 커뮤니티의 글들을 복구 프로그램을 돌려가며 찾아내기 시작했다. 선우의 천재적인 개발 실력은 이제 죽어가는 데이터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죽음을 막는 데 집중되고 있었다.
그러다 선우는 한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의 아카이브에서 기묘한 글 하나를 발견했다.
'방금 전부터 우리 집 창문에 누가 돌 던지는 것 같은데, 나가보니까 아무도 없음. 벌써 세 번째임. 무서워서 경찰 불렀는데 아무 흔적도 없대.'
작성일은 2024년 6월 10일. 하은이 살고 있는 시점에서 정확히 일주일 뒤였다. 작성자의 위치는 하은의 자취방에서 불과 두 블록 떨어진 구역이었다.
선우는 가슴이 철렁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살인마는 본 게임을 시작하기 전, 사냥감을 고르고 그 주변을 맴돌며 공포를 심는 '사전 작업'을 즐기는 타입이었다.
[ 하은 씨, 혹시 주변 친구들 중에 최근에 이상한 일을 겪었다는 사람 없습니까? 예를 들면 창문에 누가 돌을 던진다거나, 밤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거나 하는……. ]
[ 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디자인과 동기 중에 미진이라고 있는데, 어제 술 마시면서 그러더라고요. 며칠 전부터 누가 자기 집 창문에 자꾸 돌을 던지는 것 같다고. ]
선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타겟은 하은뿐만이 아니었다. 범인은 이미 캠퍼스 주변에서 먹잇감을 고르고 있었다.
[ 하은 씨, 잘 들으세요. 그 친구한테 절대 밤에 혼자 있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하은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창문 잠금장치 다시 한번 확인하고, 보조 잠금장치 사서 오늘 당장 설치하세요. ]
[ 선우 씨, 너무 진지하니까 좀 무서워요……. 알겠어요. 미진이한테도 말해 줄게요. ]
그날 밤, 선우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2026년의 그는 범인이 의뢰한 플립폰의 메인보드를 분해하며 그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데이터를 찾고 있었다.
범인은 왜 이 폰을 나에게 보냈을까. 단순히 과거를 바꾸는 즐거움을 보려고? 아니면 내가 과거를 바꾸면 자신의 현재가 어떻게 변하는지 실험하려는 걸까.
그때, 반파된 플립폰의 내부 회로에서 기묘한 노이즈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화면이 지직거리며 알 수 없는 문자열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하은과의 메신저 창이 아니었다.
기기 깊숙한 곳, 암호화된 폴더 하나가 강제로 해제되며 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다.
거친 숨소리, 그리고 어두운 지하실 같은 곳에서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 여자의 목소리.
"제발…… 살려주세요……."
선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영상 속에서 비친 여자의 얼굴은 하은의 친구, 미진이었다. 영상의 날짜는 2024년 6월 15일.
앞으로 5일 뒤였다.
선우는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아직 시간은 있다. 하지만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반드시 축복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실패했을 때 짊어져야 할 죄책감의 무게이기도 했다.
[ 하은 씨, 당장 대답해 주세요. 지금 미진 씨 어디 있습니까? ]
선우의 메시지가 2024년의 시공간을 가로질러 하은의 폰으로 전송되었다. 2년이라는 거대한 벽을 뚫고, 비극의 전주곡을 막기 위한 선우의 처절한 외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