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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오버 타임2화

시그널 오버 타임 (Signal Over Time)

시그널 오버 타임

2화: 기묘한 대화, 어긋난 요일

[ 자긴 뭘 자요, 오늘 축제 주점 마지막 날이라 서빙하느라 영혼까지 털렸구만. 지금 과제실에서 밤새우고 있어요. 선우 씨야말로 과제 안 해요? ]

모니터 화면에 깜빡이는 윤하은의 메시지를 바라보며 선우는 헛웃음을 삼켰다. 디자인과 강선우라는 녀석은 평소에 후배에게 얼마나 장난을 치고 다녔길래, 생판 남인 자신이 아니라고 선을 그어도 이렇게 굳게 믿고 있는 걸까.

손가락 마디가 찌릿하게 저려와 선우는 왼손을 가볍게 털었다. 은둔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누군가와 이렇게 실시간으로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비록 오인 전송으로 시작된 기이한 통신 오류였지만, 밤샘 작업의 무료함을 달래기엔 나쁘지 않은 해프닝이었다.

선우는 키보드 위에 오른손을 올렸다.

[ 디자인과 강선우 씨가 평소에 신용이 참 없었나 봅니다. 몇 번을 말하지만 저는 기계공학과 학번 출신이고, 나이도 그쪽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그리고 축제 주점은 지난주에 이미 다 철거한 걸로 아는데, 밤샘 과제를 너무 열심히 하셔서 날짜 감각이 어떻게 된 거 아닙니까? 오늘 일요일 새벽이에요. ]

엔터 키를 누르자 대화창 옆에 붙어 있던 작은 표식이 즉시 사라졌다.

같은 시각, 2024년 5월 31일 금요일 새벽 2시 20분.
한국대학교 조형예술관 4층 대학원 실기실. 하은은 모니터 가득 띄워진 타이포그래피 시안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책상 위에서 진동하는 플립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확인한 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

"기계과? 일요일 새벽?"

하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방귀를 꼈다. 낮에 학과 사무실 앞에서 마주쳤을 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서늘하게 지나치더니, 모바일 너머에서는 아주 작정을 하고 콘셉트를 잡고 연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학과 단톡방에 등록된 계정으로 직접 메시지를 보낸 것인데 기계과니 학번이니 하는 변명이 통할 리 없었다.

하은은 괘씸한 마음에 옆에 놓인 과제용 노트북의 시계를 확인했다. 화면 우측 하단에는 [ AM 02:22 / 2024-05-31 (금) ]이라고 명확하게 찍혀 있었다.

[ 아, 예. 그러시겠죠. 학과 단톡방에 버젓이 있는 계정인데 기계과 유령이라도 되시나 봐요? 그리고 일요일은 무슨 일요일이에요. 오늘 금요일 새벽이거든요? 주점 끝나고 치우느라 기껏 고생한 사람 바보 만들지 마세요. 선배 지금 취했죠? ]

다다닥, 신경질적으로 키패드를 두드리는 하은의 손길에 심술이 묻어났다.

한편, 2026년의 반지하 방.
선우는 모니터에 도착한 하은의 메시지를 읽고 미간을 찌푸렸다. '금요일 새벽'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확신에 차 있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흐리고 밤샘을 한다고 해서 목요일 밤과 금요일 밤을 헷갈릴 수는 있어도, 주말이 다 지나간 일요일 새벽을 금요일이라고 우기는 것은 평범한 착각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었다.

"이 사람, 진짜 상태가 안 좋은 건가?"

선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업용 컴퓨터의 시계와 책상 위의 메인 스마트폰 화면을 교차로 확인했다.

[ 2026년 5월 31일 일요일 AM 02:23 ]

어디를 보아도 날짜는 일요일이었다. 2026년 5월 31일은 명백한 일요일이었다. 선우의 가슴 한구석에서 정체모를 이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장난이라고 치기에는 상대방의 반응이 너무나 즉각적이었고 가식이 없었다.

그때, 선우의 시선이 책상 위 바이패스 선에 연결된 반파된 플립폰으로 향했다. 뒤틀린 힌지, 진흙과 검붉은 얼룩이 묻은 2023년형 모델. 문득 기계적인 타임라인이 머릿속에서 엉키기 시작했다. 2023년형 모델이 이렇게 심하게 노후화되고 부서진 채 자신에게 수리 의뢰로 들어오려면 최소한 1~2년의 세월은 흘러야 정상이었다. 만약 이 폰이 정말로 2024년 어딘가에서 실시간으로 신호를 송수신하고 있는 것이라면?

선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타자를 쳤다. 이번에는 장난기를 완전히 지워낸 문장이었다.

[ 윤하은 씨. 하나만 묻겠습니다. 지금 본인이 2024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니면 제 폰을 해킹해서 정교한 장난을 치고 있는 겁니까? ]

[ 네? 무슨 소리예요? 장난은 선배가 먼저 시작했잖아요. 2024년이 아니면 지금이 몇 년도라는 거예요? ]

하은의 답장은 1분도 되지 않아 돌아왔다. 대화의 핀트가 완전히 어긋나고 있었다. 선우는 심장이 가쁘게 뛰는 것을 느끼며 서브 모니터 화면을 노려보았다.

[ 지금은 2026년입니다. 5월 31일 일요일 새벽이고요. 하은 씨가 무슨 이유로 2024년 금요일이라고 주장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컴퓨터와 이 부서진 플립폰의 시스템 시계는 2026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

텍스트가 전송되고 나서, 메신저 창에는 한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2024년의 하은은 과제실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폰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2026년이라니. 상대방이 던지는 농담의 수위가 상식을 넘어서고 있었다. 타임슬립 영화라도 찍자는 건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저편에서 서늘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화면 너머의 '강선우'는 평소 자신이 알던 무뚝뚝하고 칠칠치 못하던 과 선배의 말투와는 확연히 달랐다. 지나치게 차분하고, 정돈되어 있으며, 어딘가 깊은 피로감이 묻어나는 문체.

하은은 충동적으로 실기실 창문을 열었다.
화아악, 하며 차가운 빗줄기와 함께 밤공기가 밀려들었다. 저 멀리 한국대 후문 골목길의 황색 가로등이 빗속에서 외롭게 빛나고 있었다. 하은은 폰을 들어 그 가로등 풍경을 촬영했다. 그리고 메신저 창에 사진을 첨부해 전송했다.

[ 선배가 진짜 유령이든 미래 사람이든 상관없는데요, 적당히 하세요. 지금 우리 학교 후문 가로등 밑에 비 쏟아지는 거 보이시죠? 내가 지금 여기서 밤을 새우고 있다고요. ]

2026년의 선우는 메신저 창에 툭 떨어진 사진을 더블클릭했다.
다운로드된 사진을 확인한 순간, 선우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것은 선우의 반지하 방 창문 바로 앞에 있는, 매일같이 보던 한국대 후문 골목길의 가로등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사진 속 황색 가로등 밑에는 작은 나무로 짜인 고양이 급식소 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주변은 깨끗했다. 하지만 지금 선우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을 때, 실제 2026년의 그 가로등 밑에는 나무 상자 따위는 없었다. 그 자리에는 불법 투기된 커다란 폐매트리스가 빗물에 젖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 나무 급식소 상자는 선우가 기억하기로 정확히 2년 전, 구청 민원으로 인해 철거되었던 동네의 명물이었다.

"말도 안 돼……."

선우는 핀셋을 쥔 왼손을 바르르 떨었다. 사진 속 풍경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조작된 그래픽이 아닌, 완벽한 2년 전 과거의 조각이었다.

창밖의 거센 빗소리가 두 시공간을 메우며 격렬하게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은 자신들을 가로지른 2년이라는 보이지 않는 잔인한 시차의 존재를, 아주 어렴풋이, 그러나 소름 끼치도록 생생하게 직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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