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오버 타임 (Signal Over Time)

17화: 검은 시계줄의 그림자
"당신 누구야? 대체 어떻게 내 번호를 알고 있는 거지?"
선우는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보냈지만, 상대방은 읽음 표시만 뜬 채 묵묵부답이었다. 창밖의 그림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선우는 현관문을 걸어 잠그고 가구들을 밀어 문을 막았다.
2026년의 범인은 과거가 바뀌면서 발생한 '새로운 기억'에 적응한 듯 보였다. 하은을 납치하는 데 성공했던 원래의 기억과, 하은을 놓치고 도망쳤던 새로운 기억. 두 기억의 충돌은 살인마를 더욱 미치고 흉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 선우 씨, 왜 답장이 없어요? 무서워요. ]
하은의 메시지가 오자 선우는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 미안합니다. 잠시 일이 있었어요. 하은 씨, 지금 경찰서에 요청해서 '암스트롱 시큐리티'의 최근 1년간 퇴사자 명단을 확보해 달라고 하세요. ]
[ 퇴사자 명단요? ]
[ 네. 범인은 하은 씨를 노리기 전부터 학교 보안을 담당하며 지형지물을 익혔을 겁니다. 하지만 범행 직전이나 직후에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일을 그만뒀을 가능성이 커요. ]
선우는 2026년의 폐기된 데이터 서버를 해킹했다. 이미 사라진 업체였지만, 고용노동부의 전산망 구석에는 당시의 4대 보험 가입 이력이 남아 있을 터였다.
밤샘 작업 끝에 선우는 한 명의 이름을 찾아냈다.
'김진욱. 2024년 6월 16일 퇴사.'
하은이 호텔에서 탈출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역시 이놈이었어."
선우는 김진욱의 주민등록번호를 추적해 그의 거주지를 확인했다. 2024년 당시 그는 한국대학교 정문 앞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었다.
[ 하은 씨, 범인의 이름은 김진욱입니다. 6월 16일에 퇴사한 요원이에요. 지금 당장 경찰에게 이 이름을 전달하세요! ]
[ 김진욱…… 알겠어요! 지금 바로 형사님께 말씀드릴게요. ]
하은이 형사에게 달려가는 동안, 선우는 2026년의 지도를 켰다. 김진욱이 살았던 고시원은 지금은 카페로 바뀌어 있었다. 선우는 카페의 위치를 확인하러 밖으로 나가려다 멈칫했다.
문밖에서 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스윽, 스윽-.
무언가 무거운 것을 끄는 소리. 선우는 숨을 죽이고 현관문 외시경(Door hole)을 통해 밖을 보았다.
어두운 복도, 낡은 검은색 가죽 시계줄을 손목에 찬 남자가 바닥에 붉은색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다. 시계줄에는 톱니바퀴 같은 문양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페인트로 그려진 것은 기묘한 모양의 'X'자였다.
범인은 2026년의 선우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과거의 김진욱이 하은을 놓친 대가로, 현재의 선우가 피의 표식을 받게 될 것이라고.
"그만해! 이 새끼야!"
선우가 문을 발로 차며 소리쳤지만, 복도에는 차가운 정적만이 감돌았다. 남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바닥의 페인트는 아직 마르지 않은 채 기괴한 광택을 내뿜고 있었다.
선우는 깨달았다.
범인은 이제 과거의 하은보다, 자신과 하은을 잇고 있는 '미래의 선우'를 제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 하은 씨, 경찰들이 김진욱을 찾았나요? ]
[ 선우 씨…… 형사님들이 그 고시원에 갔는데, 이미 짐 싸서 도망갔대요. 방 안에는 제 사진들이 벽 가득 붙어 있었다고…… 저 너무 무서워요. ]
하은의 비명 섞인 메시지가 선우의 가슴을 찔렀다.
범인은 2024년과 2026년에서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두 시공간을 피로 물들이려는 살인마의 광기가, 이제 선우의 방문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운명의 톱니바퀴는 이제 멈출 수 없는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