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오버 타임 (Signal Over Time)

15화: 엇갈린 톱니바퀴의 조율
"강선우 선배가…… 진짜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요?"
하은의 메시지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그녀가 직접 목격한 'X'자 흉터를 가진 남자가 자신의 선배였고, 그가 자신을 향해 비릿하게 웃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선우는 그를 부정하고 있었다.
[ 네. 제 쪽의 2026년 기록이 실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원래는 범인이 아니었던 '디자인과 강선우'가 하은 씨의 증언 때문에 용의자가 되어버렸어요. 이건 범인이 노린 함정입니다. ]
선우는 차갑게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2026년의 그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었다. 그는 뒤틀린 역사의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 '조율자'의 위치에 서 있었다.
[ 범인은 하은 씨를 놓친 뒤, 하은 씨가 자신을 '보안 요원'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이용했어요. 그리고 자신과 체격이 비슷하고 이름까지 같은 그 선배를 타겟으로 삼아, 그에게 흉터를 '만들어' 주었거나 혹은 그를 협박해 대역으로 세운 겁니다. ]
[ 말도 안 돼…… 사람을 그렇게까지 이용한다고요? ]
[ 그놈은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압니다. 그리고 우리가 과거를 바꾸려 할 때마다 발생하는 '나비효과'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요. ]
선우는 모니터 옆에 놓인 반파된 플립폰을 응시했다. 이 폰은 이제 범인이 자신에게 보낸 '도전장'이었다. 범인은 선우가 과거를 바꾸면 바꿀수록 2026년의 자신이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 하은 씨, 무서운 이야기지만 잘 들으세요. 이제부터는 우리가 이기는 게 아니라, 범인이 '실수'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범인을 특정하려고 하면 할수록, 범인은 그 정보를 이용해 다른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 거예요. ]
[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해요? 경찰한테 그 선배가 범인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나요? ]
[ 아니요. 일단은 경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세요. 대신, 하은 씨는 그 선배가 아닌 '진짜 김진욱'의 흔적을 찾아야 합니다. '암스트롱 시큐리티'의 정규 직원이 아닌, 명단에도 없는 유령 직원을요. ]
선우는 2026년에서 '암스트롱 시큐리티'의 숨겨진 자금 흐름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도산한 업체의 뒤편에는 항상 말소되지 않은 검은 돈의 흐름이 있기 마련이었다.
[ 그리고 하은 씨. 한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
[ 뭐든요. ]
[ 우리가 나누는 이 대화,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마세요. 심지어 경찰에게도요. 범인이 우리 사이의 통신을 엿듣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
선우의 말에 하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의 방 안, 익숙한 가구들이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누군가 벽 너머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서늘한 감각.
[ 알겠어요. 선우 씨만 믿을게요. ]
[ 저도 하은 씨를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2년 뒤, 우리가 온전한 모습으로 재회할 수 있도록요. ]
선우는 메시지를 보내고 모니터를 껐다.
어두워진 방 안, 2026년의 선우는 홀로 생각에 잠겼다.
범인은 2026년에서 선우를 알고 있고, 2024년에서 하은을 노리고 있다.
이 지독한 대칭 관계를 깨뜨릴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범인이 예상하지 못한 '미래의 변수'를 투입하는 것.
선우는 책상 밑에 숨겨두었던 또 다른 낡은 노트북을 꺼냈다. 그것은 3년 전 부상을 입기 전, 그가 개발하던 미완성의 보안 해킹 툴이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네 과거를 해킹하겠어."
과거를 지키는 싸움은 끝났다.
이제는 과거를 공격하여 범인의 존재 기반을 무너뜨리는 사투가 시작될 차례였다.
2026년의 선우와 2024년의 하은.
두 시공간의 톱니바퀴가 거칠게 맞물리며, 운명의 제2라운드를 향해 회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