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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오버 타임11화

시그널 오버 타임 (Signal Over Time)

시그널 오버 타임

11화: 봉쇄된 안식처

호텔 12층의 커튼 사이로 2024년의 서울 야경이 펼쳐졌다. 하은은 침대 끝에 걸터앉아 손에 든 플립폰을 꽉 움켜쥐었다. 창밖은 화려했지만, 굳게 잠긴 객실 문 너머의 복도는 죽음처럼 고요했다.

[ 선우 씨, 거기 있어요? ]

[ 네, 여기 있습니다. 하은 씨, 미진 씨는요? ]

[ 방금 잠들었어요. 너무 울어서 기운이 다 빠졌나 봐요. 선우 씨…… 아까 그 비명 소리, 정말 미진이가 죽을 뻔했던 소리였겠죠? ]

선우는 2026년의 어두운 반지하 방에서 하은의 메시지를 읽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전 자신의 문 앞까지 찾아왔던 범인의 발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 네. 원래의 기록대로라면 미진 씨는 오늘 밤 실종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은 씨가 제 말을 믿어준 덕분에 역사가 바뀌었어요. ]

[ 역사가 바뀌면…… 선우 씨한테는 어떤 일이 생기나요? 아까 선우 씨 쪽으로 누가 찾아온 것 같던데, 괜찮은 거예요? ]

하은의 걱정 어린 물음에 선우는 현관문 밑에 버려진 '수리 중인 물건, 어디까지 고쳤습니까?'라는 쪽지를 떠올렸다. 범인은 2026년에서 선우가 과거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추격전이 아니었다. 시공간을 가로질러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지독하게 불공평한 게임이었다.

[ 전 괜찮습니다. 이곳의 보안을 강화해 뒀으니 걱정 마세요. 그보다 하은 씨, 지금 호텔 객실 문 잠금장치 다시 한번 확인하세요. ]

[ 이미 다 잠갔어요. 카드키 말고 수동 잠금 고리까지요. ]

[ 좋습니다. 하은 씨, 지금 하은 씨가 있는 2024년의 인터넷으로 '한국대학교 보안 업체' 이름을 검색해 보세요. ]

하은은 의아해하며 검색창을 켰다.

[ 검색했어요. '암스트롱 시큐리티'라고 나오네요. 우리 학교랑 근처 자취방들 다 여기서 관리해요. ]

[ 그 업체 직원들 중에, 혹시 평소에 하은 씨나 미진 씨를 유독 유심히 보던 사람이 있었습니까? ]

선우는 2026년의 아카이브에서 범인의 정체를 추려내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범인은 경찰의 눈을 피하는 법을 잘 알았고, 대학가 골목길의 사각지대를 꿰뚫고 있었다. 그것은 보안 시스템 내부에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지식이었다.

[ 글쎄요…… 보안 요원들이 워낙 많아서. 아! ]

하은의 메시지가 멈췄다.

[ 왜요? 생각난 게 있습니까? ]

[ 지난주에 자취방 복도 가로등이 나갔을 때, 수리하러 온 요원이 있었어요. 근데 그 사람, 가로등만 고치고 가는 게 아니라 한참 동안 제 방 창문을 쳐다보고 있었거든요. 제가 무서워서 커튼을 치니까 그제야 가더라고요. ]

선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 그 사람 얼굴 기억나요? 특징이라도. ]

[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은 잘 안 보였는데…… 왼쪽 손목에 좀 특이한 검은색 가죽 시계줄을 차고 있었어요. 톱니바퀴 같은 문양이 음각으로 새겨진 거였는데, 꽤 낡아 보였어요. ]

검은색 가죽 시계줄. 톱니바퀴 문양.
선우는 즉시 2026년의 데이터베이스에서 해당 키워드를 검색했다. 하지만 '암스트롱 시큐리티'는 이미 2025년에 도산하여 사라진 업체였고, 직원 명단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선우의 서브 모니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가짜 GPS 신호를 추적하던 범인의 위치 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 하은 씨, 지금 당장 화장실로 들어가세요! ]

[ 네? 갑자기 왜요? ]

[ 가짜 위치 정보가 뚫렸습니다. 범인이 하은 씨가 호텔에 있다는 걸 눈치챘어요. 지금 2026년의 그놈이 하은 씨의 진짜 위치 로그를 강제로 동기화시키고 있습니다! ]

선우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미친 듯이 춤을 췄다. 범인은 선우가 설치한 '고스트 라우터'를 우회하여, 2026년에서 선우가 보고 있는 진짜 데이터를 역으로 해킹해 들어오고 있었다.

[ 선우 씨! 복도에서 소리가 들려요! ]

하은의 메시지가 전송됨과 동시에, 호텔 객실 문밖에서 낯선 소음이 들려왔다.

철커덕.

마스터키가 도어락을 인식하는 소리였다.

[ 선우 씨, 누가 문을 열려고 해요! 잠금 고리 때문에 문이 다 열리지는 않는데, 틈 사이로 누군가 보고 있어요! ]

선우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2026년의 범인은 2년 전의 자신에게 하은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가이드하고 있었다.

"이 개새끼가……."

선우는 절규하며 플립폰의 과부하 회로를 강제로 차단하기 위해 핀셋을 집어 들었다. 하은을 지키기 위한 안식처는, 이제 가장 위험한 밀실이 되어버렸다.
과거와 미래의 범인이 합작하여 하은을 덮치려 하고 있었다.
시공간을 초월한 살의가, 호텔 1204호의 문틈 사이로 차갑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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