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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오버 타임12화

시그널 오버 타임 (Signal Over Time)

시그널 오버 타임

12화: 문틈 너머의 시선

"보안 점검 나왔습니다. 잠시 문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했다. 하은은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숨을 죽였다. 문틈으로 들어온 그 남자의 시선이, 반쯤 열린 현관문 너머에서 자신을 찾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내렸다.

[ 선우 씨! 문밖에서 보안 요원이라고 말해요! 아까 말한 그 업체 사람 같아요! ]

2026년의 선우는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드렸다. 범인은 2026년에서 선우의 방을 엿본 뒤, 과거의 자신에게 하은의 위치를 정확히 전달한 것이 분명했다. 시공간의 시차를 이용한 잔혹한 협공이었다.

[ 하은 씨, 절대 대답하지 마세요! 그리고 화장실 문 잠그세요. 지금 당장요! ]

선우는 2026년의 아카이브에서 범인의 실수를 찾으려 노력했다. 범인이 '암스트롱 시큐리티'의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다면, 호텔의 보안 시스템은 이미 그의 손바닥 안이었다.

"뭐라도 있어, 반드시 빈틈이 있을 거야."

선우는 2024년 당시 호텔의 소방 점검 기록을 강제로 해킹해 들어갔다. 그러다 발견했다. 해당 호텔은 당시 노후화된 소방 설비 때문에 '오작동'이 잦았고, 특히 화재 감지기가 울리면 모든 객실의 도어락이 안전을 위해 자동으로 해제되는 취약점이 있었다.

범인은 그 점을 노리고 일부러 소방 벨을 울리려 할 것이다.

[ 하은 씨, 곧 호텔 전체에 화재 경보가 울릴 겁니다. 범인이 문을 열기 위해 꾸민 짓이에요. 경보가 울리면 문이 자동으로 열릴 텐데, 그때가 기회입니다. ]

[ 기회라니요? 더 위험해지는 거 아니에요? ]

[ 아니요. 경보가 울리면 호텔 직원들과 다른 투숙객들이 복도로 쏟아져 나올 겁니다. 범인도 사람들 눈앞에서 하은 씨를 납치할 수는 없어요. 소란을 틈타 무조건 비상계단으로 뛰세요! ]

잠시 후, 선우의 예언대로 호텔 복도에 귀를 찢는 듯한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비비비빅-! 비비비빅-!

"화재 발생! 화재 발생! 투숙객 여러분은 즉시 비상계단을 통해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철컥.

하은의 방 현관문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문밖의 남자는 당황한 듯 잠시 멈칫했다. 복도 여기저기서 투숙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튀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지금입니다, 하은 씨! 뛰세요! ]

하은은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현관문이 완전히 열려 있었고, 그 너머 복도에는 검은색 보안 요원 복장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지만, 하은은 보았다. 그의 왼쪽 손목에서 번뜩이는 톱니바퀴 문양의 검은색 가죽 시계줄을.

"거기 서!"

남자가 손을 뻗었지만, 하은은 이미 복도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몸을 던졌다.

"불이야! 도와주세요!"

하은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비상계단을 향해 질주했다. 사람들의 비명과 경보음이 뒤섞인 아수라장 속에서, 남자의 서늘한 시선이 하은의 뒷모습을 쫓았다.

2026년의 선우는 모니터 화면이 노이즈로 가득 차는 것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하은의 폰이 급격하게 이동하면서 신호가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 하은 씨, 정문으로 나가지 마세요! 범인이 차를 대기시켜 놨을지 모릅니다. 지하 주차장을 통해 옆 건물 상가로 넘어가세요! ]

하은은 선우의 지시에 따라 지하로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선우의 문장만이 그녀의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가까스로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24시간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간 하은은 그제야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 선우 씨…… 저 살았어요. 저 살았다고요…… ]

선우는 그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2026년의 반지하 방 창밖에서는, 여전히 검은 그림자가 선우의 창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과거의 하은은 살았지만, 미래의 범인은 여전히 자유로웠다.
그리고 범인은 이제, 자신의 범행을 방해하는 '미래의 목소리'가 누구인지 완전히 알아버렸다.

"찾았다, 강선우."

어둠 속에서 범인의 낮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제 전쟁터는 2024년의 호텔 복도에서, 2026년의 낡은 반지하 방으로 옮겨오고 있었다.
시공간을 사이에 둔 지독한 추격전이 비린내 나는 살의와 함께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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