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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萬神)의 영도자 : 귀신 부리는 소년4화

만신(萬神)의 영도자 : 귀신 부리는 소년

만신(萬神)의 영도자

4화: 교실에 들어온 입

작업실 천장에 붙은 형광등이 한 번 더 깜빡였다.

강은우는 벽의 서울 지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장례식장과 병원 사이에 꽂힌 붉은 핀들은 낯선 곳이었다. 마지막 하나만 달랐다. 매일 아침 버스를 내려 걷던 길. 운동장 옆의 오래된 본관. 은우가 다니는 학교였다.

"우리 학교에 뭘 심었다는 거예요?"

최태훈은 지도 아래에 붙은 얇은 도면을 떼어 냈다. 학교 급식실과 배수관 위치가 거칠게 표시된 종이였다. 붉은 선 하나가 급식실 뒤편에서 본관 복도까지 뻗어 있었다.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네 집에서 나온 부적 잔흔과 같은 기운이 이 배수 라인에서 잡혔다. 며칠 전부터다."

"그걸 알고도 이제 말해요?"

"네가 깨기 전에는 잡귀 몇 마리 정도였다. 오늘 새벽 표식이 네 냄새를 맡았다. 이제는 달라진다."

은우는 주머니 속 영패 조각을 세게 쥐었다. 명신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손바닥 상처가 욱신거렸다. 그놈들이 학교까지 손을 뻗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가야겠네요."

"혼자 들어가서 검부터 부르겠다면 안 된다."

"제 학교예요."

"그래서 더 안 된다. 학교는 사람 냄새가 진하다. 겁먹는 애 하나만 있어도 잡귀가 거기 붙는다. 네가 분노하면 놈은 두 개를 한꺼번에 먹어."

태훈은 작업대 위의 방울을 들어 은우에게 내밀었다. 할머니의 손때가 남은 놋쇠 표면이 희미하게 빛났다.

"오늘은 이걸 들고 다녀. 울리면 귀물만 찾지 말고 먼저 사람을 봐. 누가 겁먹고 있는지."

은우는 방울을 받지 않았다.

"그게 무슨 규칙인데요."

"두 번째 규칙이다. 사람보다 먼저 귀물을 보지 마라."

은우는 태훈의 얼굴을 노려봤다. 말이 너무 쉬웠다. 할머니가 죽어 가는 모습을 본 사람에게 사람부터 보라니. 하지만 방울을 잡는 손끝이 떨리는 것을 태훈도 백호령도 모를 리 없었다.

[사냥은 짐승의 발자국이 아니라 바람을 읽는 데서 시작한다.]

백호령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알았어요. 수업 끝날 때까지만 보고 있을게요."

"수업을 들으라는 뜻은 아니다. 이상하면 바로 나와."

"그럼 아저씨는요?"

"급식실 쪽부터 본다. 네가 친구들 앞에서 검을 꺼내는 것보단 낫겠지."

은우는 대답 대신 방울을 주머니에 넣었다. 태훈의 말이 맞는다는 사실이 더 짜증 났다.

학교 정문 앞은 평소처럼 시끄러웠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무리 지어 웃고 뛰었다. 교문 옆 분식차에서는 튀김 기름 냄새가 났고 운동장에서는 축구공이 철망을 때렸다. 은우는 그 풍경이 이상하게 멀게 느껴졌다.

영안으로 보면 웃음소리 사이마다 가느다란 회색 실이 얽혀 있었다. 시험 걱정, 부모에게 혼난 기억, 친구에게 읽히지 않은 메시지. 사람들 위에 잠깐 걸렸다가 사라지는 감정의 흔적이었다.

그 실들 사이로 검은 물방울 하나가 기어가고 있었다.

은우는 멈칫했다.

검은 물방울은 본관 벽을 타고 올라가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다. 백호령의 숨결이 등 뒤를 스쳤다.

[저것은 배고프다.]

"알아."

은우는 방울을 쥔 채 교실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반장이 출석부를 들고 이름을 불렀다. 몇몇 애가 은우 쪽을 힐끗 봤다. 장례를 치르고 며칠 비운 탓이었다.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괜찮냐고 물었지만 은우는 듣지 못한 척 자리에 앉았다.

창가 맨 뒤 자리의 윤서현이 눈에 들어왔다.

서현은 늘 말이 많은 편이었다. 장례를 치른다는 말을 듣고도 다른 애들처럼 어색한 위로를 보내는 대신 수업 필기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 준 아이였다. 그런데 오늘은 책상에 엎드린 채 손가락으로 공책 귀퉁이만 뜯고 있었다. 입술은 파랗고 목덜미에는 잠을 못 잔 사람처럼 푸른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은우의 주머니에서 방울이 아주 작게 울렸다.

딸랑.

서현이 고개를 들었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왜 봐?"

날이 선 목소리였다.

"안 봤어."

"봤잖아."

은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서현의 책상 아래에서 검은 습기가 손가락처럼 꿈틀거렸다. 습기는 서현의 운동화 끈을 핥다가 책상 다리 쪽으로 숨었다.

수업이 시작되자 선생의 목소리가 칠판을 긁는 분필 소리와 섞였다. 은우는 교과서를 펴 놓고도 한 글자도 읽지 못했다. 창문 유리에 비친 교실 안에는 학생들보다 검은 흔적이 더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허약했다. 말 한마디와 햇빛에도 흐트러질 먼지 같은 것들.

서현의 발밑에 붙은 것만 달랐다.

그것은 가끔씩 고개를 들었다. 입이 없는 얼굴에 작은 구멍들이 여러 개 열렸다 닫혔다. 구멍은 서현의 입술 움직임을 따라 했다.

‘괜찮아.’

‘아무 일 아니야.’

소리는 나지 않았는데 은우의 귀에는 또렷이 들렸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서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방도 두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평소라면 화장실에 갈 방향이 아니었다. 급식실과 연결된 뒤편 복도였다.

은우의 방울이 이번에는 세 번 울렸다.

딸랑. 딸랑. 딸랑.

은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은우. 어디 가?"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은우는 문을 닫을 새도 없이 복도로 나왔다. 빈 복도 끝에서 서현의 뒷모습이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검은 습기가 그녀의 발목을 감싼 채 아래로 끌었다.

"윤서현!"

서현은 멈추지 않았다.

급식실 뒤편 복도는 낮에도 어두웠다. 환기창 너머로 조리실의 소음이 웅웅거렸고 바닥에는 물기가 길게 남아 있었다. 서현은 배수구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거기서 뭐 해?"

은우가 다가가자 서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너도 들었어?"

"뭘."

"복도에서 누가 계속 울어. 내 목소리로."

서현은 손을 폈다. 손바닥 위에 검은 플라스틱 조각 하나가 놓여 있었다. 학교 명찰의 모서리처럼 보이는 조각에는 이름 대신 검은 우산 문양이 찍혀 있었다.

은우의 숨이 멎었다.

배수구 안에서 물이 부글거렸다.

"그거 어디서 났어?"

"사물함에 있었어. 버리려고 했는데 자꾸 내 이름을 불러."

검은 조각이 서현의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그 아래로 물기 어린 입들이 돋아났다. 입들은 서현의 목소리로 흐느꼈다.

"은우야. 나 무서워."

은우의 몸이 굳었다.

그 목소리는 서현의 것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숨이 갈라지는 순간만큼은 할머니의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베어라.]

백호령의 포효가 가슴을 밀어 올렸다.

[저것이 네 앞의 사람을 먹기 전에.]

은우는 영패 조각을 꺼냈다. 순백의 빛이 손등을 타고 올랐다. 검을 부르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수구와 복도 바닥을 통째로 갈라 버리면 저 입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서현의 발이 배수구 위에 있었다.

그리고 입들은 은우의 손에서 피어나는 빛을 보고 더 크게 벌어졌다.

"백호 계열."

"찾았다."

"화내."

검은 입들이 한꺼번에 웃었다. 서현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은우는 검을 완성하지 못한 채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서현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놓아. 안에 누가 있어."

"없어."

"있어. 우리 할머니가 불러."

은우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 말 한마디에 눈앞이 하얘졌다. 할머니가 여기에 있을 리 없었다. 알면서도 심장이 멋대로 뛰었다.

복도 반대편 문이 열렸다.

최태훈이 부적이 감긴 쇠말뚝을 바닥에 박았다.

쾅!

복도 양쪽 벽에 붉은 선이 번졌다. 조리실 쪽 소음이 뚝 끊겼다. 태훈은 은우를 보지 않고 배수구를 노려봤다.

"핵은 명찰 조각이다. 바닥을 베면 애 발목도 같이 날아간다."

"알아요."

"그럼 사람부터 떼어 내."

서현의 팔을 붙잡은 은우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울지도 못한 채 배수구만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입들이 그 발목을 더듬으며 속삭였다.

"네가 죽였어."

"이번에도 늦어."

은우는 이를 악물었다.

"서현아."

대답이 없었다.

"내 말 들어. 눈 감아."

"안에 할머니가 있어."

"그건 네 할머니 아니야."

은우는 한 번 숨을 고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낮췄다.

"네 이름 세 번 말해. 윤서현이라고. 크게."

서현의 눈가가 떨렸다. 검은 입들이 그녀의 입을 대신해 울음을 냈다.

"못 해."

"할 수 있어. 지금 네가 무서운 거 알아. 그래서 네 이름부터 불러."

은우는 주머니에서 방울을 꺼내 서현의 쥔 손 위에 올렸다. 방울이 그의 손바닥 위에서 차갑게 떨렸다.

딸랑.

서현의 입술이 움직였다.

"윤서현."

입들이 비명을 질렀다. 배수구 물이 복도 바닥으로 튀었다.

"한 번 더."

"윤서현."

검은 조각의 우산 문양이 갈라졌다. 태훈이 두 번째 쇠말뚝을 박았다. 붉은 선이 배수구를 감싸며 입들의 길을 막았다.

"마지막이다!"

은우가 외쳤다.

"윤서현!"

서현이 울먹이며 자기 이름을 외쳤다.

그 순간 은우는 검을 불렀다.

백호참마검은 전처럼 거칠게 터져 나오지 않았다. 손바닥에서 나온 흰 빛이 방울 소리를 따라 얇은 선이 되었다. 은우는 서현의 손을 피해 검끝을 명찰 조각에만 댔다.

"끊어."

검은 우산 문양이 반으로 갈라졌다.

입들은 복도 전체를 긁는 비명을 토했다. 물기와 검은 습기가 배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마지막 입 하나가 은우의 손목을 향해 튀어 올랐지만 태훈의 부적 줄에 닿자 재가 되어 흩어졌다.

복도에 조리실 소음이 다시 밀려 들어왔다.

서현의 무릎이 풀렸다. 은우는 그녀를 붙잡아 벽 쪽으로 옮겼다. 서현은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방울을 내려다봤다.

"내가 왜 여기 있어?"

"어지러워 보여서 데려왔어."

은우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지금 말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서현이 아무것도 모른 채 교실로 돌아가는 편이 적어도 오늘은 더 안전했다.

태훈은 복도 끝에서 검은 조각의 재를 작은 봉투에 담았다. 그의 표정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이건 학교 안에서 생긴 게 아니다."

"그럼요?"

"급식 납품 상자에 붙어 들어왔겠지. 조리실 뒤에 명신 계열 식자재 회사 마크가 있었다."

은우는 다시 서현을 봤다. 서현은 아무것도 모른 채 관자놀이를 눌렀다. 교실로 돌아가면 친구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떠들 것이다. 그 속에 이런 조각이 또 섞여 있을지도 몰랐다.

"학교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마요."

태훈이 은우를 돌아봤다.

"안 한다. 다만 오늘부터 혼자 다니지 마."

"아저씨가 매일 학교에 따라오게요?"

"네가 살아남을 생각이 있다면 방법은 찾는다."

은우는 깨진 명찰 조각이 든 봉투를 바라봤다. 방울은 더는 울지 않았다. 그런데 손바닥에 남은 차가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명신은 자신을 찾고 있었다.

이제는 자기만 피해 다니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학교 건너편 옥상에서 검은 우산의 남자는 작은 녹음기를 켰다.

지직거리는 잡음 뒤로 늙고 다정한 여자의 목소리가 흘렀다.

“은우야. 혼자 가지 마라.”

남자는 녹음기를 끄고 희미하게 웃었다.

"다음에는 입이 아니라 목소리를 보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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