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萬神)의 영도자 : 귀신 부리는 소년

3화: 세운교 아래의 작업실
구급차 소리가 골목 밖에서 가까워졌다.
강은우는 기절한 배달원의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도 발을 떼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살귀의 찌꺼기가 저 사람의 발목을 물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모르는 척 사라지라는 말이 쉽게 들릴 리 없었다.
"놔두고 가자고요?"
최태훈은 대답 대신 바닥에 박힌 쇠말뚝을 뽑았다. 부적이 타고 남은 재가 검은 선처럼 흩어졌다. 그는 군용 나이프 끝으로 골목 벽을 긁어 이상한 문양을 지웠다.
"살아 있다. 구급대가 데려갈 거다."
"저 사람이 뭘 봤다고 말하면요."
"말 못 한다. 대부분은 기억이 끊긴다. 기억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태훈의 말은 차가웠다. 은우는 그 차가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골목 밖에서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선택지는 사라졌다.
태훈은 배달원의 손목에 작은 부적 조각을 끼워 넣었다. 부적은 살짝 빛나더니 피부에 스며들 듯 사라졌다.
"병원 가기 전까지 숨이 흐트러지지 않게 붙잡는 거다."
"퇴마사면 사람도 살리는 겁니까?"
"아니. 죽지 않게 버티게 할 뿐이다."
그 말에 은우는 할머니의 차가운 손을 떠올렸다. 죽은 자를 되돌릴 수 없다는 백호령의 말도 함께 떠올랐다. 가슴 안쪽이 다시 뜨거워졌다.
[그 열을 검으로 흘리지 마라.]
백호령의 목소리가 뼛속에서 울렸다.
[네 분노는 아직 네 것이 아니다. 귀물이 먼저 맡는다.]
"시끄러워."
은우가 낮게 중얼거렸다. 태훈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골목 안쪽으로 걸었다.
"따라와. 경찰한테 설명하고 싶으면 남고."
은우는 이를 악문 채 발을 옮겼다. 등 뒤에서 구급대원의 외침이 터졌다. 세상은 뒤늦게 사건을 발견했고 은우는 그 현장 밖으로 밀려났다.
청계천은 새벽빛 아래 푸르게 식어 있었다.
세운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낡고 축축했다. 전자상가의 셔터들은 모두 내려가 있었고 간판 몇 개만 희미하게 깜빡였다. 물 냄새와 녹슨 철 냄새가 뒤섞였다. 은우의 눈에는 다리 밑 콘크리트 틈마다 오래된 손자국들이 보였다.
손자국들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여기가 작업실이라고요?"
"입구다."
태훈은 계단 아래 벽면의 배전함을 열었다. 녹슨 스위치들 사이에 붉은 실이 감긴 작은 놋쇠 고리가 숨어 있었다. 태훈이 고리를 세 번 두드리자 벽 너머에서 쇠사슬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콘크리트 벽 일부가 안쪽으로 밀렸다.
은우는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이런 게 왜 청계천 밑에 있어요?"
"서울 밑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방이 많다."
"대답이 그게 다예요?"
"살아남는 데 필요한 대답은 그 정도다."
작업실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천장은 낮았지만 벽마다 부적과 지도, 오래된 신문 스크랩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한쪽에는 쇠말뚝과 군용 나이프, 소금 봉지와 독한 술병이 정리되어 있었다. 다른 한쪽 냉장고에는 검은 유리병들이 줄지어 들어 있었다.
은우는 냉장고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유리병 속마다 뭔가가 꿈틀거렸다. 머리카락 같은 것, 탄 손톱 같은 것, 작은 눈알처럼 보이는 것들이 기름진 액체 속에서 천천히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토할 것 같으면 저쪽."
태훈이 턱짓했다.
"누가 이런 걸 모아요?"
"살아남은 놈이 증거를 모은다."
은우는 그 말을 곧장 이해하지 못했다. 태훈은 금속 상자를 작업대 위에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은우가 골목에서 봤던 검게 탄 손톱 조각이 들어 있었다.
"네 집에서 나온 흔적이다."
은우의 손이 굳었다.
"그걸 왜 아저씨가 갖고 있어요."
"박 신방 어르신이 쓰러진 뒤 현장에 제일 먼저 간 게 나였다. 늦었다. 그래도 남은 건 챙겼다."
태훈은 변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은우는 작업대 모서리를 움켜쥐었다.
"할머니가 죽을 때 아저씨는 어디 있었는데요."
태훈의 눈이 잠깐 어두워졌다.
"다른 현장."
"편하네요. 빚졌다면서요. 그런데 제일 필요할 때 없었잖아요."
작업실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은우의 주머니 속 영패 조각이 떨렸다. 냉장고 안 병들이 동시에 벽을 두드리듯 작은 소리를 냈다.
딸랑.
방울이 울렸다.
태훈은 은우를 똑바로 봤다.
"그 말은 맞다. 그래서 네 앞에 있는 거다. 변명하려고 온 게 아니다."
은우는 더 몰아붙이지 못했다. 태훈이 상자 옆에 낡은 부적 한 장을 펼쳤다. 부적의 가장자리는 검게 타 있었고 중앙에는 낯선 문양이 찍혀 있었다.
"이 살귀는 자연히 생긴 놈이 아니다. 원래라면 골목 잡귀 몇 마리를 먹고 끝났을 찌꺼기가 네 집까지 찾아왔다. 먹이를 받았고 방향을 받았다."
"누가요."
"명신."
처음 듣는 이름인데도 이상하게 귀에 걸렸다. 은우는 입속으로 그 두 글자를 굴렸다.
"회사 이름 같은데."
"겉으로는 회사가 맞다. 건설도 하고 장례도 하고 병원도 갖고 있다. 뒤로는 이런 걸 기른다."
태훈은 손톱 조각을 집게로 들어 올렸다. 검은 표면 안쪽에 붉은 실핏줄 같은 빛이 지나갔다.
"시료처럼."
은우는 장례식장 밖에서 느꼈던 차가운 시선을 떠올렸다. 그때는 슬픔에 짓눌려 지나쳤지만 이제는 목덜미에 남은 손자국처럼 선명했다.
"그럼 지금 당장 그 명신인지 뭔지 찾아가면 되잖아요."
"가서 뭘 할 건데."
"벤다."
태훈은 짧게 숨을 내뱉었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너무 많이 잃은 사람이 날것의 말을 들었을 때 나오는 지친 숨이었다.
"방금 골목에서 네 손 베인 거 봤다. 검 하나 제대로 못 잡는 애가 대기업 지하에 들어가면 칼 뽑기 전에 사라진다."
"애 취급하지 마요."
"애 맞다. 그리고 살아 있어야 복수도 한다."
은우는 대꾸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손바닥의 상처가 욱신거렸다. 백호참마검이 자신의 분노에 흔들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저 사내의 말이 틀리지 않다.]
백호령이 낮게 말했다.
[사냥꾼은 먹잇감을 좇기 전에 바람을 읽는다.]
"다들 말은 잘하네."
은우는 방울을 작업대 위에 내려놓았다. 방울은 굴러가지 않고 한 지점에서 멈췄다. 그 아래로 아주 옅은 흰 빛이 번졌다.
태훈의 표정이 바뀌었다.
"어르신 방울이 반응하는군."
"왜요."
"작업실 결계 안에서 저절로 울리면 둘 중 하나다. 안에 죽은 게 말을 걸거나 밖에서 산 게 길을 묻는 거."
그 순간 배수구 쪽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똑.
똑.
은우는 고개를 돌렸다. 바닥 배수구의 쇠망 사이로 검은 물이 스며 나왔다. 물은 바닥에 닿자마자 작은 입으로 갈라졌다. 입은 하나가 아니었다. 콩알만 한 검은 입들이 수십 개씩 돋아나며 같은 말을 속삭였다.
"찾았다."
"찾았다."
"백호 계열."
은우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태훈이 작업대 아래에서 말뚝 두 개를 꺼냈다.
"움직이지 마."
"저것도 명신이 보낸 거예요?"
"공격용이면 벌써 물었겠지. 표식이다."
검은 입들이 배수구 밖으로 기어 나왔다. 작은 혀들이 바닥을 핥으며 은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은우의 손은 이미 영패 조각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럼 베면 되잖아요."
"베면 표식이 터진다. 네 위치가 더 크게 열린다."
"그럼 어쩌라고요."
"묶고 혀만 끊어."
은우는 이를 악물었다. 말은 쉬웠다. 하지만 몸은 이미 검을 불러 내려치고 싶어 했다. 할머니의 목소리를 훔쳐 갈지도 모르는 놈들. 할머니를 죽인 것과 이어진 놈들. 그런 것들을 살려둔다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거칠어졌다.
딸랑.
방울이 울렸다.
은우는 숨을 들이마셨다. 태훈이 오른쪽 말뚝을 박았다.
쾅!
검은 입들이 일제히 찢어지듯 웃었다. 은우는 백호참마검을 불렀다. 이번에는 검을 위로 들지 않았다. 말뚝 사이로 생긴 붉은 선 위에 검끝을 낮게 댔다.
[베려 하지 말고 끊어라.]
백호령의 포효가 안쪽에서 낮게 울렸다.
은우는 검끝을 옆으로 그었다. 순백의 빛이 얇은 실처럼 바닥을 훑었다. 검은 입들이 달려들었지만 말뚝의 선에 막혀 튕겨 나갔다. 은우는 그중 가장 긴 혀 하나를 보았다. 혀 끝에 검은 우산 모양의 얼룩이 있었다.
"너희가 보낸 거냐."
대답 대신 입들이 웃었다.
은우는 검끝을 꺾었다. 흰 빛이 혀만 잘라냈다. 입들은 비명을 지르며 검은 물로 무너졌다. 배수구 안쪽에서 누군가의 숨소리 같은 것이 짧게 끊겼다.
작업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은우는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손은 떨렸지만 검은 이번에는 그의 살을 베지 않았다.
태훈이 말뚝을 뽑으며 말했다.
"첫 규칙. 모르면 베지 마라."
"아까는 마무리하라면서요."
"그때는 묶어뒀고 핵이 보였다. 지금은 혀만 보였다."
은우는 검을 거두었다. 방울은 아직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명신이 내가 여기 있는 걸 알아요?"
"정확한 위치는 놓쳤을 거다. 대신 네 냄새는 더 확실히 맡았겠지."
"그럼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하루다. 네가 하루 따라온다고 했으니까."
태훈은 벽에 붙은 서울 지도를 바라봤다. 지도 위에는 붉은 핀들이 여러 개 꽂혀 있었다. 장례식장, 병원, 재개발 구역, 학교 주변. 은우의 시선이 마지막 핀에 멈췄다.
"저건 왜 학교예요."
태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은우가 한 걸음 다가섰다.
"우리 학교예요?"
그때 작업실 천장 형광등이 짧게 깜빡였다. 백호령의 낮은 으르렁거림이 은우의 등골을 훑었다.
멀리 떨어진 빌딩 옥상에서 검은 우산의 남자는 끊어진 표식의 잔향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생각보다 빨리 배웁니다."
휴대전화 너머에서 희미한 잡음이 흘렀다.
남자는 청계천 쪽이 아니라 아직 아침도 오지 않은 학교 방향을 바라봤다.
"그럼 먹이를 학교로 보내겠습니다. 열린 눈은 또래들 사이에서 제일 잘 흔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