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萬神)의 영도자 : 귀신 부리는 소년

2화: 장례식장에 우는 방울
할머니의 장례식장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향 냄새와 국화 냄새가 빈소 안에 눌어붙어 있었다. 강은우는 상복 소매 끝을 움켜쥔 채 영정 아래에 앉아 있었다. 영정 속 박 신방은 평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더 잔인했다.
문상객은 많지 않았다. 살아 있을 때 할머니를 찾아와 울고 빌던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녀의 마지막 앞에 오래 남는 이는 드물었다. 몇몇은 은우의 눈을 피했다. 몇몇은 부적이라도 붙은 것처럼 빈소 문턱을 넘자마자 서둘러 돌아섰다.
은우는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알았다.
빈소 벽에는 산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손자국들이 붙어 있었다. 장례식장 냉장고에서 아직 떠나지 못한 혼들이 복도를 기어 다녔다. 흰 형광등 위에는 입만 찢어진 그림자들이 매달려 은우를 내려다봤다.
무당의 손자가 신을 받았다.
저 아이 눈이 완전히 열렸다.
먹을 수 있을까.
"그만해."
은우가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장례지도사가 놀라 돌아봤지만 은우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손바닥 안에는 할머니가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낡은 방울이 있었다.
딸랑.
흔들지도 않았는데 방울이 울렸다.
천장에 매달린 것들이 일제히 고개를 꺾었다. 은우의 가슴 안쪽에서 백호령의 기운이 거칠게 꿈틀댔다. 뜨겁고 사나운 숨결이 갈비뼈 사이를 긁었다.
[떨지 마라.]
목소리는 귓가가 아니라 뼛속에서 울렸다.
[네가 흔들리면 잡귀가 더 몰린다.]
"지금은 조용히 해."
은우는 방울을 꽉 쥐었다. 손바닥이 아플 만큼 힘을 주자 작은 소리가 멎었다. 그러나 속삭임은 멎지 않았다.
화장이 끝난 뒤 은우는 유골함을 품에 안고 장례식장을 나섰다. 새벽빛이 도로 위에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사람들은 출근길을 서둘렀고 버스는 정류장에 멈췄다 떠났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움직였다.
은우에게만 모든 것이 멈춰 있었다.
골목으로 접어들자 그림자들이 전봇대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평소라면 눈을 피하고 지나쳤을 잡귀들이 한 걸음씩 가까워졌다. 그들은 유골함이 아니라 은우의 가슴을 보고 있었다. 계약의 흔적이 그들에게는 피 냄새처럼 선명한 모양이었다.
"살려낼 수 있잖아."
은우는 멈춰 서서 허공에 대고 말했다.
"신령이면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나한테 검도 줬잖아. 그럼 할머니도 돌려놔."
[죽은 자의 길을 거꾸로 걷게 하는 것은 내 권능이 아니다.]
백호령의 대답은 낮고 단단했다.
[네 조모는 자기 끝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너를 숨겼고 마지막까지 버텼다.]
"알고 있었다고?"
은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말 안 했는데."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골목의 가로등 하나가 퍽 터졌다. 유리 조각이 바닥에 흩어지고 어둠이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은우는 유골함을 끌어안고 이를 악물었다.
집 현관문에는 노란 출입 금지 테이프가 남아 있었다. 사고 현장이라는 글자가 바람에 흔들렸다. 은우는 한참 동안 문 앞에 서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정말로 돌아갈 곳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딸랑.
방울이 다시 울렸다.
은우는 테이프를 뜯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피 냄새와 탄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 부서진 가구들은 치워졌지만 벽 한가운데에는 검게 그을린 자국이 있었다. 악귀가 갈라졌던 자리였다.
할머니의 신당이 있던 작은 방은 더 처참했다. 영패는 산산조각 난 채 낮은 상 위에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조각 사이에 붉은 실로 묶인 종이 한 장이 끼어 있었다.
은우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펼쳤다.
글씨는 할머니의 것이었다.
은우야. 네가 이것을 읽는다면 나는 네 곁에 없을 것이다. 네 탓이 아니다. 도망쳐도 된다. 다만 혼자 도망치지는 마라. 청계천 세운교 아래, 최태훈을 찾아가라. 그는 빚을 갚아야 하는 사람이다.
"최태훈?"
[철 냄새가 나는 사내다.]
백호령이 말했다.
[네 조모가 오래전 살려둔 목숨이지.]
"왜 이제 말해."
[네가 들을 귀가 없었다.]
은우는 종이를 구겼다가 다시 폈다. 할머니의 마지막 부탁이었다. 그렇다고 모르는 어른을 무작정 믿을 수는 없었다. 귀신만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아니었다. 산 사람도 충분히 잔인했다.
그때 창밖에서 비명이 터졌다.
은우는 반사적으로 거실 창문으로 달려갔다. 골목 아래에 배달 오토바이가 넘어져 있었다. 헬멧을 쓴 남자가 바닥을 기며 도망치고 그 뒤의 어둠이 끈적하게 부풀어 올랐다.
유황 냄새.
비린내.
은우의 가슴이 타는 듯 뜨거워졌다.
살귀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몸은 검에 갈라졌지만 찌꺼기가 골목의 잡귀들을 먹어 다시 형체를 만들고 있었다. 검은 진흙 같은 팔이 배달원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도망쳐도 된다.
할머니의 글씨가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은우가 외면하면 저 사람은 죽는다. 할머니가 평생 해온 일은 그런 외면의 반대편에 있었다.
"젠장."
은우는 영패 조각 몇 개를 주머니에 쓸어 넣고 계단으로 뛰쳐나갔다.
골목에 닿자마자 사기가 목을 조였다. 살귀의 잔재는 아직 완전한 몸을 이루지 못한 채 찢어진 입으로 웃고 있었다. 수십 개의 작은 눈이 검은 진흙 속에서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맑은 피다. 그 피를 내놓아라."
은우는 오른손을 뻗었다. 주머니의 영패 조각들이 튀어나오듯 날아와 손아귀에 모였다. 순백의 빛이 검의 형태를 만들었다. 그러나 검신은 물결처럼 흔들렸고 손잡이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크윽!"
검이 은우의 손바닥을 베었다. 피가 흘러내리자 살귀의 잔재가 더 크게 웃었다.
[호흡을 다스려라. 네 분노는 칼이 아니라 먹잇감이다.]
"방법이나 말해!"
[베기 전에 묶어라.]
은우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살귀가 먼저 움직였다. 검은 팔이 채찍처럼 날아와 은우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몸이 벽에 부딪히고 숨이 끊겼다. 배달원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은우는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검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달려들었다. 순백의 빛이 골목을 갈랐다. 그러나 검기는 살귀의 어깨를 얕게 스쳤을 뿐이었다. 남은 사기가 수십 가닥의 촉수처럼 흩어져 은우의 팔과 목을 감았다.
"네 영패 조각. 네 피. 네 눈. 모두 가져가겠다."
목이 졸렸다. 발끝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시야가 검게 좁아졌다.
그 순간 골목 바닥에 쇠말뚝 하나가 박혔다.
쾅!
말뚝에 감긴 붉은 부적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살귀의 잔재가 괴성을 질렀다. 은우를 묶고 있던 사기가 풀리고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학생."
낮고 거친 목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검 들고 폼 잡을 거면 발부터 고정해."
골목 입구에 거대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야상 점퍼 아래로 단단한 어깨가 드러났다. 한 손에는 부적이 감긴 군용 나이프가 들려 있었다. 그는 은우를 보지도 않고 두 번째 말뚝을 던졌다.
쾅!
말뚝이 살귀의 왼쪽을 꿰뚫었다. 세 번째 말뚝은 퇴로를 막았다. 붉은 부적들이 동시에 타오르며 골목 바닥에 희미한 선을 만들었다.
"최태훈."
남자가 짧게 말했다.
"박 신방 어르신이 보내서 왔다."
은우는 피 묻은 입술을 닦으며 그를 노려봤다.
"너무 늦게 온 것 같은데요."
태훈의 얼굴이 잠깐 굳었다. 변명은 없었다. 그는 나이프를 역수로 쥐고 살귀에게 달려들었다. 움직임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부적이 스친 자리마다 검은 살점이 타들어 갔다.
"마무리는 네가 해라."
"내가요?"
"저건 네 냄새를 물었다. 네가 끊지 않으면 계속 따라온다."
은우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손안의 검은 아직 흔들렸다. 하지만 방금 전과는 달랐다. 태훈이 박아 넣은 말뚝들이 살귀의 움직임을 붙잡고 있었다.
묶어라.
은우는 검을 아래로 내렸다. 베겠다는 생각을 지웠다. 대신 골목 바닥에 흐르는 빛을 보았다. 말뚝과 말뚝 사이로 하얀 선이 이어져 있었다. 은우는 본능적으로 그 선 위에 검끝을 올렸다.
"백호령."
[불러라.]
"저것을 내 앞에 무릎 꿇려."
순백의 호랑이가 포효했다. 빛의 선이 사슬처럼 솟아올라 살귀의 잔재를 휘감았다. 검은 진흙이 바닥으로 끌려 내려갔다. 수십 개의 눈이 처음으로 공포를 드러냈다.
은우는 검을 들어 올렸다.
"할머니한테 남은 것까지 넘보지 마."
검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허공을 가르지 않았다. 하얀 검날이 살귀의 핵을 정확히 꿰뚫었다. 검은 진흙이 불타오르고 수십 개의 입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이내 골목에는 탄 재와 젖은 흙냄새만 남았다.
배달원은 기절했지만 숨은 쉬고 있었다.
은우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손끝이 떨렸다. 태훈이 다가와 은우 앞에 쪼그려 앉았다.
"강은우. 맞지?"
"아저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박 신방 어르신이 네 사진을 보낸 적이 있다. 웃는 사진은 아니더라."
은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태훈은 품에서 작은 금속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검게 탄 손톱 같은 조각이 들어 있었다.
"네 집을 습격한 놈에게서 떨어진 흔적이다. 자연히 생긴 살귀가 아니야. 누가 먹이고 키워서 보냈다."
"누가요?"
"그걸 찾는 중이다. 그래서 네가 필요하고 너도 내가 필요하다."
은우는 태훈의 눈을 바라봤다. 거짓말을 하는 눈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말하는 눈도 아니었다.
"할머니는 왜 아저씨를 믿었죠?"
태훈은 잠시 침묵했다.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서 어르신이 대신 피를 흘렸다. 그 빚을 아직 못 갚았다."
은우는 방울을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에 파고들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였다면 조금 전 이름 모를 배달원 하나도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루만 따라갈게요."
은우가 말했다.
"아저씨가 이상한 짓 하면 바로 도망칠 겁니다."
"그 정도면 충분해."
태훈이 일어섰다.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골목 끝 빌딩 옥상에서 검은 우산 하나가 접혔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휴대전화에 대고 낮게 말했다.
"시료가 깨어났습니다. 백호 계열입니다. 예정보다 빠르지만 회수는 가능합니다."
남자는 골목 아래의 은우를 마지막으로 내려다보았다.
"다음 먹이를 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