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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당한 김에 자수성가합니다2화

파혼당한 김에 자수성가합니다

파혼당한 김에 자수성가합니다

2화: 금화 열다섯 닢의 가게

임대 공고를 떼어 낸 뒤 레오나는 낡은 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

먼지 낀 창 너머로 벽돌 오븐이 보였다. 입구 쪽 바닥은 갈라졌고 천장 구석에는 물이 샌 자국이 어둡게 남아 있었다. 귀족 영애가 새 출발을 하기에는 누추했고 무일푼 사업자가 첫 점포를 열기에는 지나치게 비쌌다.

하지만 오븐이 있었다.

물을 끌어오는 세척대도 있었다. 창은 길 쪽으로 나 있었고 회색 골목은 하층 장사꾼과 중층 하녀들이 함께 오가는 길목이었다. 귀족 부인들이 직접 내려오지는 않아도 그들의 시녀와 하녀는 매일 지나갈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레오나는 공고 끝을 다시 펼쳤다.

보증금 금화 열다섯 닢. 월세 금화 세 닢. 시설 보수 임차인 부담. 상업 연합 승인 필요.

"장점은 네 개. 단점은 돈뿐."

돈이 가장 큰 단점이라는 점이 문제였지만 불가능은 아니었다.

공고 아래쪽에는 관리인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골목 끝 고물상. 레오나는 후드를 더 깊게 눌러쓰고 걸음을 옮겼다.

고물상은 문을 열기도 전부터 쇠 냄새가 났다. 부러진 촛대와 찌그러진 냄비가 벽을 따라 쌓여 있었고 안쪽 계산대에는 짧은 수염의 남자가 졸린 얼굴로 앉아 있었다.

"임대 공고를 보고 왔습니다."

남자의 눈이 레오나의 옷감과 장갑을 훑었다. 낡은 망토 아래로 드러난 드레스 자락은 아직 귀족가 물건이었다.

"아가씨가?"

"네."

"거긴 손볼 데가 많아. 보증금은 선불이고 월세도 첫 달 치를 같이 내야 해. 귀족 나리들이 가게놀이 하겠다고 왔다가 사흘 만에 도망가는 꼴을 많이 봤거든."

레오나는 계산대 위에 공고를 내려놓았다.

"공고에는 첫 달 월세 선불 조건이 없습니다."

남자의 눈썹이 들렸다.

"말로 설명한 조건이지."

"문서에 없는 조건은 설명이 아니라 추가 요구입니다. 추가 요구를 하실 거라면 보증금에서 누수 보수 비용을 공제하겠습니다."

"누수?"

"점포 안쪽 천장 동쪽 모서리. 물이 벽을 타고 내려온 흔적이 있습니다. 오븐 오른쪽 균열도 임차인이 사용하기 전부터 생긴 것이고요. 시설 보수를 임차인이 부담한다는 조항은 영업에 필요한 내부 손질을 뜻하지 건물 하자까지 떠안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남자는 졸린 눈을 완전히 떴다.

"이름이 뭐요?"

"레오나입니다."

벨아미라는 성은 붙이지 않았다. 이제 그 성은 계약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남자는 한참 레오나를 보다가 고개를 까딱였다.

"보렌이오. 집주인 대리인이지. 그렇게 따질 줄 알면 계약서는 읽을 줄 알겠군."

"읽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레오나는 금화 열다섯 닢을 꺼냈다.

주머니가 순식간에 가벼워졌다. 손바닥에 남은 금속의 무게가 줄어드는 순간 속이 서늘했지만 표정은 바꾸지 않았다. 사업의 첫 지출은 언제나 심장을 건드렸다. 그러나 문을 얻지 못하면 계산표도 장부도 시작되지 않았다.

보렌은 계약서를 가져왔다.

레오나는 문장을 하나씩 확인했다. 보증금. 월세. 임대 기간. 퇴거 조건. 오븐과 세척대는 기존 시설로 기록하게 했고 천장 누수는 임대인 책임 보수 항목으로 넣게 했다.

"상업 연합 승인은?"

보렌이 펜촉을 털며 물었다.

"받을 겁니다."

"못 받으면 문 못 열어."

"문을 열기 전에 받을 겁니다."

계약서 마지막에 레오나의 이름이 들어갔다. 성 없는 이름이었다. 보렌은 이상하다는 듯 보았지만 묻지는 않았다.

레오나는 열쇠를 받아 들었다.

작고 묵직한 쇠 열쇠였다. 황궁의 루비 반지보다 훨씬 싸구려였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이쪽이 더 가치 있었다.

상업 연합 외곽 사무소는 중층 시장 입구에 있었다.

레오나가 도착했을 때 이미 과일 장수와 천 파는 상인들이 줄을 서 있었다. 연합 본부가 귀족 상인들의 사교장이라면 이곳은 하층 장사꾼들이 벌금과 신고서를 처리하는 곳이었다.

벽에는 낡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신규 점포 신고. 폐점포 재개장. 식품 취급 위생 기준. 향유와 약초 원료 취급 제한.

레오나는 줄이 줄어드는 동안 안내문을 읽었다. 문구는 복잡했지만 결국 돈과 책임의 흐름이었다. 전생의 약관 검토와 마케팅 심의표를 떠올리자 어지러운 조항들이 계산 가능한 칸으로 정리되었다.

서기는 레오나의 신청서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

"향유와 과자? 같은 점포에서?"

"제조 구역을 분리하겠습니다. 세척대와 오븐이 있고 진열대는 따로 둘 예정입니다."

"예정은 허가 사유가 아니지요."

서기의 시선이 레오나의 얼굴에 닿았다. 알아보는 기색이 스쳤다.

"벨아미 백작가 영애 아니십니까?"

줄 뒤쪽에서 누군가 작게 웅성거렸다.

레오나는 신청서 위에 제명 문서를 올렸다.

"전 벨아미 백작가 사람입니다. 현재는 독립 사업자로 신청합니다."

서기는 문서를 보고도 입꼬리를 올렸다.

"독립 사업자라면 보증인이 필요합니다. 특히 향유를 취급하려면 귀족가 추천장이 있으면 빠르고요."

"추천장이 없으면요?"

"정식 심사까지 한 달. 심사 수수료 금화 다섯 닢. 위생 확인 비용 별도."

남은 돈을 생각하면 터무니없었다. 그러나 레오나는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벽의 안내문 한 줄을 떠올렸다.

"폐점포 재개장 조건부 시범 영업권을 신청하겠습니다."

서기의 표정이 굳었다.

"그건 규정상 가능하다는 뜻이지 누구에게나 내주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신청하는 겁니다. 거절하시려면 거절 사유를 문서로 주십시오. 제가 낸 신고서와 함께 보관하겠습니다."

서기의 깃펜이 멈췄다.

문서로 남는 순간 말로 흘릴 수 없었다. 그 정도는 귀족 사회나 상업 연합이나 다르지 않았다.

서기는 귀찮다는 듯 새 양식을 꺼냈다.

"열흘. 식품은 봉인된 과자류만. 향유는 피부에 직접 바르는 상품 판매 금지. 표본 배포와 주문 접수만 가능. 위생 검사관이 방문했을 때 제조 구역이 섞여 있으면 즉시 취소."

"수수료는요?"

"금화 두 닢."

레오나는 남은 주머니에서 금화 두 닢을 꺼냈다. 이제 정말로 손에 쥔 돈이 바닥을 보였다.

서기는 조건부 승인서를 밀어 주었다.

"열흘 안에 장부를 내십시오. 벨아미 이름은 여기서 통하지 않습니다."

"다행이군요."

레오나는 승인서를 접었다.

"저도 그 이름으로 장사할 생각이 없습니다."

사무소를 나온 뒤 레오나는 시장 골목 벽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남은 금화는 세 닢. 월세를 생각하면 사실상 없는 돈이었다. 재료를 사야 했고 간판도 달아야 했다. 천장 보수는 임대인 몫으로 돌렸지만 내부 청소와 진열대는 그녀 몫이었다.

레오나는 귀에 손을 올렸다.

작은 진주 귀걸이가 손끝에 닿았다.

어머니의 유품이었다. 원래의 레오나가 끝까지 숨겨 둔 물건. 팔아 버리기에는 마음 한쪽이 저렸다.

하지만 유품은 굶주림을 막아 주지 않았다. 사업은 감정이 아니라 현금 흐름으로 굴러갔다.

그래도 팔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사라진 물건은 추억이 아니라 손실로 남는다. 담보라면 되찾을 기한이 생겼다. 레오나는 기한이 있는 위험을 좋아했다. 숫자로 감시할 수 있었으니까.

그녀는 시장 뒤편 감정점으로 들어갔다.

점주는 마른 노파였다. 그녀는 진주를 빛에 비춰 보더니 짧게 말했다.

"금화 네 닢."

"여덟 닢 가치입니다."

"팔러 온 사람이 값 정하나?"

"헐값에 넘길 생각도 없습니다."

노파의 눈이 가늘어졌다.

"요 며칠 귀족가에서 쫓겨난 아가씨들이 물건을 들고 오는 일이 잦지. 급하면 가격은 내려가."

레오나는 진주 귀걸이를 다시 집었다.

"판매가 아니라 담보로 하겠습니다. 금화 다섯 닢. 보름 뒤 여섯 닢으로 상환하지 못하면 그때 소유권을 넘기지요."

"내가 왜 그런 번거로운 계약을 하지?"

레오나는 계산대 구석을 보았다. 유리병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장미 향유라는 표지가 붙은 병 안쪽에 탁한 침전물이 가라앉아 있었다.

"저 병 때문입니다."

노파가 손을 멈췄다.

"변색된 장미 향유. 라벤더와 싸구려 동물성 기름이 섞였고 보존 마석 가루가 너무 많이 들어갔습니다. 바르면 향은 오래가겠지만 피부가 붉어질 겁니다."

"네가 향유장이냐?"

"아직은 아닙니다."

레오나는 병목 가까이 손을 댔다. 탁한 기름 냄새 사이로 성분이 실처럼 풀렸다.

"하지만 팔리지 않는 이유는 압니다. 저걸 폐기하지 말고 금속 광택제로 돌리세요. 향은 약해지고 기름막은 남으니 촛대 닦는 데는 쓸 만합니다."

노파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웃었다.

"귀족 아가씨가 장사꾼 흉내를 잘 내는군."

"흉내로 보이면 돈을 빌려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노파는 새 계약지를 꺼냈다.

"이름."

"레오나."

"성은?"

"필요 없습니다."

노파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금화 다섯 닢과 함께 작은 쪽지를 밀었다.

"장미수는 남문 약초상 칼덴에게 가라. 정화 마석 가루는 조금만 사. 돈 없는 사람이 욕심내면 가루보다 빚이 먼저 늘어. 목수는 잭. 외상은 안 해도 작은 진열대는 싸게 고쳐 준다."

레오나는 쪽지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보름 뒤 여섯 닢으로 찾아가겠습니다."

"그 전에 망하면 귀걸이는 내 거다."

"망하지 않을 겁니다."

레오나는 감정점을 나와 다시 가게로 향했다. 품 안에는 계약서와 승인서와 원료상 이름이 들어 있었다. 주머니에는 금화 여덟 닢. 많지는 않아도 움직일 수 있는 돈이었다.

폐가게의 문을 처음 여는 순간 먼지가 햇빛 속에서 한꺼번에 일어났다.

레오나는 기침을 삼키며 창을 열었다. 낡은 나무 냄새와 묵은 설탕 냄새가 섞여 나왔다. 오븐 근처 바닥에는 예전 주인이 흘린 듯한 흰 가루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나쁘지 않네."

목소리가 빈 가게 안에서 작게 울렸다.

"정확히는 최악보다 조금 낫습니다."

문밖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레오나가 돌아보자 마르타가 서 있었다. 전날보다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손에는 작은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여긴 어떻게 알았나요?"

"새벽에 백작가 하인이 아가씨가 하층 상점가로 갔다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찾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마르타는 가게 안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여기서 지내실 겁니까?"

"지내는 게 아니라 벌 겁니다."

"저도 도울게요."

레오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동정은 고마웠지만 사업장에 동정만으로 사람을 들일 수는 없었다.

"마르타. 저는 이제 벨아미 가문의 아가씨가 아닙니다. 당신에게 명령할 권리가 없고 당신도 저를 따를 의무가 없어요."

"알아요."

"그러면 계약합시다. 숙식 제공. 첫 보름은 임금 대신 매출의 일 할. 청소와 손님 응대와 장부 보조. 위험하거나 불법인 일은 시키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근무 중 알게 된 제조법은 밖에서 말하지 않는 조건입니다."

마르타의 눈이 커졌다.

"저를 고용하시는 건가요?"

"공짜 충성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제대로 일하고 제대로 받는 쪽이 낫습니다."

마르타는 보따리를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계약하겠습니다."

레오나는 웃지 않으려 했지만 입가가 조금 풀렸다.

두 사람은 곧장 창문을 열고 바닥을 쓸었다. 먼지와 묵은 기름때가 한 겹씩 벗겨질수록 가게의 윤곽이 살아났다. 입구 오른쪽은 디저트 진열대가 될 자리였다. 안쪽 세척대 옆은 향유와 크림을 만들 작업대가 될 수 있었다.

"이름은 정하셨습니까?"

마르타가 걸레를 헹구며 물었다.

레오나는 낡은 간판이 있던 자리를 보았다.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 좋겠어요."

"다시 태어나다요?"

"르네상스."

낯선 발음이 먼지 낀 가게 안에 내려앉았다.

아직 간판도 없고 손님도 없고 자본도 부족했다. 그러나 이름이 생기는 순간 빈 점포는 조금 다른 얼굴을 했다.

레오나는 원료 목록을 적었다.

장미수. 흰 달맞이꽃 오일. 정화 마석 가루. 설탕. 달걀. 아몬드 가루를 대신할 수 있는 견과.

손끝이 종이 위를 지나가자 머릿속에서 배합이 떠올랐다. 너무 무거운 향유는 안 된다. 귀족 영애들이 몰래 써 보고 놀랄 만큼 가벼워야 했다. 동시에 하녀가 주머니에 숨겨 가져갈 수 있을 만큼 작아야 했다.

마르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팔릴까요?"

"팔리게 만들 겁니다."

레오나는 창밖 골목을 보았다. 장사꾼들이 하나둘 문을 열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녀를 보며 수군거렸고 누군가는 금방 시선을 거두었다.

좋았다.

소문이 시작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조건부 승인서를 작업대 위에 눌러 두었다.

열흘.

열흘 안에 팔릴 물건을 만들고 장부를 제출하고 상업 연합이 문을 닫을 명분을 없애야 했다.

레오나는 첫 원료 병을 열었다.

희미한 장미 향이 올라왔다. 그 아래에서 정화 마력이 작게 반짝였다.

"자."

그녀는 소매를 걷었다.

"이제 이 가게가 왜 금화 열다섯 닢보다 비싼지 증명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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