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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던전이 열렸다6화

우리 학교에 던전이 열렸다

우리 학교에 던전이 열렸다

6화: 셔터 뒤의 배식표

셔터 바깥에서 발톱이 금속을 긁었다.

끼이이익.

매점 안의 숨소리가 한꺼번에 낮아졌다. 방금 전까지 물을 달라며 웅성대던 학생들도 입을 막았다.

김한결은 간이 절단창을 들고 셔터를 노려봤다.

바깥의 놈은 고블린처럼 덤벼들지 않았다.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긁고 멈추고 숨을 들이마셨다.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는 짐승처럼.

"소리 내지 마."

한결이 낮게 말했다.

박태식이 냉장고 앞에서 멈춰 섰다. 그의 손은 아직 이온 음료 병에 닿아 있었다. 등록된 병은 진열대에 붙은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 굶어 죽기 전에 물부터 나눠야지."

목소리는 작았지만 날이 서 있었다.

이수진이 바로 대답했다.

"나눌 거야. 기준부터 세우고."

"기준 좋아하네. 목마른 순서가 기준 아니냐?"

몇 명이 박태식 쪽을 봤다. 공포가 조금 잦아들자 배고픔과 갈증이 얼굴 위로 올라왔다.

오순덕 아주머니가 계산대 옆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다 뜯으면 끝이야. 매점에 물건 많아 보여도 저 인원 며칠 못 먹어."

"며칠?"

박태식이 헛웃음을 냈다.

"아줌마. 우리 지금 몇 시간 뒤도 모르는데 며칠 걱정해?"

그 말에 매점 안이 다시 흔들렸다.

한결도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며칠 뒤보다 지금 목이 타는 게 먼저였다.

하지만 지금 뜯기 시작하면 다음 순간부터는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다.

한결의 시야에 진열대 목록이 떠올랐다.

[진열대 일괄 등록 유지 중]
[음료 진열대 / 빵 진열대 / 과자 진열대]
[추가 등록 가능 대상: 생수 묶음, 삼각김밥 박스, 커피 분말, 박하 사탕 통]

한결은 냉장고 아래쪽을 봤다. 깨진 플라스틱 박스 뒤에 작은 생수 묶음이 있었다.

"수진아."

"말해."

"사람을 이름으로 줄 세우지 마. 상태로 나눠. 부상자, 탈진한 사람, 움직일 수 있는 사람."

수진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부상자는 셋. 탈진은 다섯 정도. 나머지는 움직일 수 있어."

"선생님."

독사가 고개를 들었다.

"벽 쪽으로 셋씩 앉혀 주세요. 큰소리 내면 배식 멈춘다고 말해 주세요."

"알았다."

독사는 출석부도 없는 손을 들어 학생들을 움직였다.

"부상자는 계산대 앞. 어지러운 사람은 냉장고 반대쪽 벽. 멀쩡한 놈들은 셔터에서 두 걸음 뒤. 움직여."

평소라면 반발했을 말투였다. 지금은 짧아서 통했다.

한결은 생수 묶음과 이온 음료 일부를 선택했다.

[조합 제작 후보]
[생수 + 이온 음료]
[결과: 공용 수분 팩]
[제작 비용: 40포인트]

"공용?"

한결은 선택했다.

물병 몇 개와 이온 음료가 희미한 빛으로 풀렸다. 손안에 납작한 투명 팩 세 개가 나타났다.

[공용 수분 팩]
[등급: 하급]
[효과: 여러 명이 나누어 마실 수 있는 수분 보급품]
[권장 사용 인원: 5명]

수진이 숨을 삼켰다.

"하나로 다섯?"

"많이 마시는 게 아니라 버티는 용도야."

한결은 팩 하나를 수진에게 넘겼다.

"부상자 쪽부터. 한 모금씩만."

수진은 바로 받아 들었다.

"아름아. 네가 옆에서 봐줘. 한 번에 들이켜면 뺏어."

한아름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첫 학생이 팩을 입에 댔다. 수진이 바로 손목을 잡았다.

"거기까지."

"조금만 더."

"다음 사람."

원망 섞인 눈빛이 수진에게 꽂혔다. 아름은 다음 학생의 어깨를 붙잡고 낮게 말했다.

"마시면 좀 나아져. 대신 네 뒤에도 사람 있어."

한결은 크림빵과 삼각김밥 박스를 등록했다.

[조합 제작 후보]
[크림빵 + 삼각김밥]
[결과: 압축 열량 바]
[제작 비용: 55포인트]

그는 곧바로 만들었다.

빵 봉지와 삼각김밥 몇 개가 빛으로 풀리더니 손바닥 길이의 막대 여섯 개로 바뀌었다.

[압축 열량 바]
[등급: 하급]
[효과: 공복으로 인한 어지럼과 체력 저하를 완화합니다.]
[주의: 강화 식량이 아니며 근력 상승 효과는 없습니다.]

한결은 일부러 마지막 문구를 크게 읽었다.

"힘 세지는 거 아니야. 배고파서 쓰러지는 것만 막아."

박태식이 코웃음을 쳤다.

"그럼 나는 더 받아야겠네. 난 몸 써야 하잖아."

"몸 쓸 사람은 더 필요하지."

한결이 말했다.

박태식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럼."

"대신 셔터 앞 방어조로 들어가. 먹는 만큼 움직여."

표정이 바로 굳었다.

박태식이 한결 앞으로 다가왔다.

"너 지금 나한테 시키는 거냐?"

"네가 제일 힘 세잖아."

"그래서 내가 네 말 들어야 돼?"

셔터 바깥에서 다시 킁 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굳었다.

박태식만 한결을 노려보고 있었다.

수진이 끼어들려 하자 한결은 손을 살짝 들었다.

"네가 힘으로 냉장고 뜯으면 다 따라 뜯어. 그러면 오늘 밤도 못 버텨."

"네가 다 쥐고 있는 건 괜찮고?"

"아니."

한결은 압축 열량 바 하나를 반으로 갈랐다.

"그래서 기록하고 나눠. 네 몫도 있다. 내 몫도 똑같고."

그는 반 조각 하나를 자기 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방어조. 이만큼."

수진이 과자 박스 뒷면을 찢어 펜을 들었다.

"기록할게. 부상, 탈진, 방어, 대기."

독사가 낮게 덧붙였다.

"새치기하면 다음 순서 맨 뒤다."

몇 명이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손을 뻗지는 않았다.

박태식은 달랐다.

"웃기지 마."

그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

냉장고가 아니었다. 그는 계산대 뒤쪽 창고 박스 더미로 향했다. 아직 일괄 등록하지 못한 박스들이었다. 오순덕 아주머니가 놀라 손을 뻗었다.

"거긴 건드리지 마!"

박태식이 박스테이프를 뜯었다.

찌이익.

그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울렸다.

셔터 바깥의 발톱이 멈췄다.

한결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등록 가능 대상: 창고 보관 박스 7개]
[일괄 등록 가능]

"등록."

박스 더미에 희미한 빛이 번졌다. 박태식이 뚜껑을 열어젖히려 했지만 박스는 바닥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또 이거냐?"

"조용히 해."

한결이 속삭였다.

바깥에서 킁 하는 숨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박태식도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끼이익.

발톱 하나가 셔터 틈 아래로 들어왔다. 금속을 가볍게 누르는 것만으로도 셔터가 안쪽으로 떨렸다.

[경고: 보급 구역 셔터 외부 압력 증가]
[폐쇄 기능 손상률 18%]

한결은 입술을 깨물었다.

싸우면 안 된다.

저건 고블린과 다르다. 셔터가 무너지면 절단창 하나로 막을 수 없다.

냄새.

한결은 박하 사탕 통과 커피 분말을 봤다. 민트 향 유인 구슬이 발톱 괴물을 떼어낸 적이 있었다. 커피는 향이 강했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조합 제작 후보]
[박하 사탕 + 커피 분말 + 박스테이프]
[결과: 쓴향 유인 파우치]
[제작 비용: 35포인트]

"민수야."

"어."

"셔터 아래 과자 봉지 치워. 소리 나지 않게."

민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 발톱 있는데?"

"그래서 조용히."

민수는 욕을 삼킨 얼굴로 바닥에 엎드렸다. 과자 봉지를 하나씩 옆으로 밀었다.

한결은 제작을 선택했다.

손안에 작은 검은 주머니가 생겼다. 틈에서 민트와 탄 커피 냄새가 동시에 올라왔다.

[쓴향 유인 파우치]
[효과: 강한 쓴향과 박하 향을 확산해 후각에 민감한 대상을 유도합니다.]
[주의: 가까운 대상에게 먼저 반응합니다.]

한결은 숨을 멈췄다.

"태식아."

박태식이 대답하지 않았다.

"셔터 잡아. 흔들리면 안 돼."

"왜 내가?"

수진이 낮게 말했다.

"힘 쓰겠다며."

박태식의 턱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는 욕을 삼키고 셔터 옆으로 갔다. 두 손으로 진열대를 눌렀다.

"놓치면 너 때문이야."

"알아."

한결은 몸을 낮췄다.

발톱이 셔터 아래 틈에서 움직였다. 한결은 파우치를 바닥에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튕겼다.

또르르.

파우치가 셔터 틈을 빠져나갔다.

발톱이 멈췄다.

한결은 심장이 목까지 올라오는 걸 느꼈다.

바깥에서 거친 숨이 들렸다. 킁. 킁. 검은 발톱이 파우치 쪽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너무 가까웠다.

그때 박태식이 진열대를 꽉 눌렀다.

한결은 간이 절단창 끝으로 파우치를 한 번 더 밀었다.

톡.

파우치가 복도 쪽으로 더 굴러갔다.

다음 순간, 바깥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몸을 돌렸다.

쿵.

발소리가 셔터 앞에서 멀어졌다.

쿵.

한 번 더.

끼이익.

이번에는 셔터가 아니라 복도 반대쪽 벽을 긁는 소리였다.

매점 안의 공기가 조금 풀렸다. 누군가 울음을 터뜨리려 하자 아름이 바로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아직."

한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릎에 힘이 없었다.

[보급 구역 셔터 외부 압력 감소]
[폐쇄 기능 손상률 18% 유지]

박태식이 진열대에서 손을 뗐다.

"그 냄새 주머니 하나로 보낸 거냐?"

"잠깐 떼어낸 거야. 보낸 게 아니라."

"말은."

박태식은 비웃으려다 말았다. 손바닥에 피가 배어 있었다.

수진이 그 손을 보고 말했다.

"방어조 명단에 넣을게."

"마음대로 해."

"배식은 같은 기준이야."

박태식은 한참 수진을 노려봤다. 그러다 압축 열량 바 반 조각을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

"이걸로 배가 차면 내가 사람이 아니지."

"사람이라서 그걸로 버티는 거야."

아름의 말이었다.

박태식은 대꾸하지 못했다.

배식은 느리게 진행됐다. 공용 수분 팩은 다섯 명씩 돌았고 압축 열량 바는 부상자와 방어조에게 먼저 나갔다. 수진은 찢어진 과자 박스 뒷면에 표시를 적었다.

부상.

탈진.

방어.

대기.

한결의 이름도 방어 옆에 들어갔다. 완전히 납득한 건 아니었지만 손이 먼저 나가는 사람은 줄었다.

독사는 셔터 앞 학생들을 교대로 바꾸었다. 오순덕 아주머니는 창고문 쪽을 확인했다.

한결은 남은 포인트와 등록 목록을 확인했다. 숫자가 머릿속에서 헝클어졌다. 변환하면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변환할 때마다 포인트가 줄고 포인트가 바닥나면 매점은 그냥 좁은 방이 된다.

수진이 옆에 앉았다.

"얼마나 버틸 수 있어?"

"몰라."

"대충."

"조용히만 있으면 오늘 밤은 버틸지도 몰라. 계속 사람이 오면 못 버티고."

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밖에 있는 애들이 여기로 몰려오면 안 돼. 동시에 흩어져 있으면 죽어."

"둘 다 못 하겠다는 말이네."

"그래서 방송실이 필요해."

한결은 수진을 봤다.

수진의 목소리는 낮았다.

"학교 전체에 말해야 해. 뛰지 말고 소리 내지 말고 가까운 교실을 막고 기다리라고."

"방송실이 멀어."

"2층 중앙. 지금은 전부 멀어."

그때 매점 벽에 붙은 안내판이 지지직거렸다.

원래는 행사 포스터와 분실물 안내가 붙어 있던 자리였다. 종이 위로 검은 문장이 떠올랐다.

[중앙 통제 구역]
[방송실]

한결은 마른침을 삼켰다.

던전은 늘 필요한 길을 보여줬다.

셔터 바깥 멀리서 발톱이 다시 바닥을 긁었다.

아직 돌아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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