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 던전이 열렸다

5화: 셔터 앞의 전교 회장
"문 열어!"
셔터 바깥의 목소리는 한 명이 아니었다.
금속판을 두드리는 손도 여러 개였다. 진열대에 쌓아 밀어 둔 과자 봉지가 얇게 떨렸고, 매점 안 학생들은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 그들이 두드리던 문이었다.
그런데 안쪽으로 들어온 순간, 문 바깥의 사람들은 또 다른 위험이 되었다.
김한결은 간이 절단창을 고쳐 쥐었다. 손잡이를 감싼 박스테이프가 땀에 젖어 미끄러웠다.
"조용히 해요!"
바깥에서 여학생 목소리가 들렸다. 울음이 섞여 있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다.
"안쪽에 한아름 있어? 김한결도 같이 있어?"
한아름이 숨을 삼켰다.
"수진이?"
독사가 바로 손을 들었다.
"아는 사람이야?"
"전교 회장. 이수진."
그 이름에 옆 반 학생 몇 명이 고개를 들었다. 기대가 번지는 속도는 빨랐다. 하지만 한결은 바로 셔터를 열지 않았다.
셔터 아래쪽에는 고블린이 긁어 놓은 피와 검은 재가 묻어 있었다. 바깥에 사람이 있다는 건, 그 사람들을 쫓아온 것도 있다는 뜻이었다.
"몇 명이에요?"
한결이 물었다.
바깥이 잠깐 조용해졌다. 곧 같은 목소리가 답했다.
"열둘. 부상자 셋. 뒤에 고블린 둘 이상. 큰 발소리도 2층 쪽에서 내려오고 있어."
살려 달라는 말보다 숫자가 먼저 나왔다.
한결은 그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겁을 안 먹은 게 아니었다. 겁먹은 사람들을 데리고 움직이려면, 저렇게 말해야 한다는 걸 아는 목소리였다.
오순덕 아주머니가 피 묻은 앞치마를 움켜쥐었다.
"다 열면 안 된다. 한 번에 밀고 들어오면 여기 다 무너져."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바깥에서 누군가 울었다.
"제발요. 우리 여기 있으면 죽어요."
한결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교실 문을 막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문밖에도 누군가 있었을 수 있다. 생각을 오래 하면 손이 굳는다.
"이수진."
"말해."
"셔터는 허리 높이까지만 열 수 있어. 한 명씩 낮게 들어와야 해요. 뛰면 안 되고, 밀면 바로 닫을 겁니다."
"알겠어. 부상자 먼저. 그다음 작은 애들. 태식아, 너는 뒤로 가."
"뭐?"
굵은 남자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내가 여기까지 길 텄는데 왜 뒤야?"
"네가 앞에서 밀면 부상자 깔려."
말이 끝나자마자 바깥에서 욕설이 났다. 한결은 박태식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괜히 길을 비키게 만들던 3학년.
힘은 있을 것이다.
그 힘이 지금 어느 쪽으로 튈지가 문제였다.
한결은 셔터 손잡이에 손을 댔다.
[보급 구역 셔터]
[부분 개방 유지 가능]
[추가 소모 비용: 없음]
[주의: 외부 충격 누적 시 폐쇄 기능 손상 가능]
"민수야, 진열대 조금만 빼. 선생님은 들어오는 애들 바로 왼쪽으로 보내 주세요. 아름아, 숨 무너지는 애들 잡아."
"알았어."
민수가 진열대를 잡았다.
"야, 근데 저 밖에 있는 애들 다 들어오면 우리 먹을 건?"
대답하기 전에 셔터 밖에서 비명이 났다.
"와요!"
한결은 손잡이를 끌어올렸다.
철컥.
셔터가 조금 더 올라갔다.
바깥 복도는 피와 발자국으로 엉망이었다. 교복 치마 끝이 찢어진 여학생 하나가 몸을 낮춰 들어왔다. 발목을 제대로 딛지 못해 안으로 굴러 떨어졌다.
아름이 바로 붙잡았다.
"이쪽. 괜찮아. 숨 맞춰. 하나, 둘."
다음은 안경이 깨진 남학생이었다. 그 뒤로 작은 체구의 2학년 둘이 거의 기어 들어왔다. 독사는 들어오는 학생들의 어깨를 잡아 왼쪽 벽으로 밀어 붙였다.
"서 있지 마! 안으로 붙어!"
셔터 틈 너머, 복도 끝에서 고블린 둘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아직 모습이 보이지 않는 무거운 발소리가 있었다.
쿵.
쿵.
"빨리!"
누군가 앞사람의 등을 밀었다. 들어오던 학생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밀지 마!"
바깥의 여학생이 소리쳤다.
그때 한결은 그녀를 봤다.
이수진은 셔터 바로 바깥에 서 있었다. 한 손에는 부러진 대걸레 자루를 들고, 다른 손으로 학생들의 어깨를 낮추고 있었다. 얼굴에는 먼지가 묻었지만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다음. 고개 숙여. 들어가면 오른쪽 말고 왼쪽. 거기 막히면 뒤에 다 죽어."
명령이 짧았다.
그래서 통했다.
고블린이 가까워졌다. 한결은 셔터 틈으로 간이 절단창을 내질렀다. 커터칼날이 복도 바닥을 긁고 놈의 발목 옆을 스쳤다.
고블린이 멈칫했다.
"키엑!"
민수가 진열대 너머에서 음료수 박스를 던졌다. 박스가 셔터 틈을 넘어가 고블린의 무릎에 맞았다.
"나이스."
"나이스고 뭐고 팔 빠지겠다!"
학생들이 계속 들어왔다.
마지막 셋이 남았을 때, 굵은 팔이 셔터 아래를 붙잡았다.
박태식이었다.
그는 허리를 숙이는 대신 셔터를 힘으로 들어 올리려 했다. 어깨가 셔터를 밀어붙이자 금속판이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이거 더 올려! 답답하게 뭐 하냐!"
[경고: 외부 강제 개방 압력]
[폐쇄 기능 손상률 12%]
"손 떼!"
한결이 소리쳤다.
"네가 뭔데 명령이야?"
박태식이 셔터 아래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바로 뒤에서 고블린이 단검을 들고 뛰어왔다.
수진이 대걸레 자루로 박태식의 어깨를 내리쳤다.
"숙이라고 했지!"
박태식의 몸이 억지로 낮아졌다. 그 순간 한결이 그의 교복 뒷덜미를 잡아 안으로 끌어당겼다.
무거웠다. 팔이 찢어질 것 같았다.
고블린의 단검이 셔터 아래를 스쳤다.
챙!
간이 절단창 끝이 단검을 밀어냈다. 한결은 온몸으로 버텼다. 손목이 저렸다.
수진이 마지막 학생을 안으로 밀어 넣고 몸을 낮췄다.
"닫아!"
한결과 민수, 독사가 동시에 진열대를 밀었다. 셔터가 내려앉으며 고블린의 손가락을 찍었다.
"키아악!"
진열대가 다시 셔터 앞을 막았다.
매점 안은 순식간에 좁아졌다.
열두 명이 추가로 들어오자 숨 쉴 공간부터 달라졌다. 누군가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고, 누군가는 진열대 위 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박태식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물."
그는 냉장고 쪽으로 걸어갔다.
독사가 앞을 막았다.
"멈춰."
"목마르다고요. 여기 매점이잖아."
"부상자 먼저다."
"아, 선생님. 지금도 출석부 들고 계신 줄 알아요?"
박태식의 손이 이온 음료로 뻗었다.
한결의 시야에 창이 떠올랐다.
[진열대 일괄 등록 가능]
[대상: 음료 진열대 / 빵 진열대 / 과자 진열대]
한결은 망설이지 않았다.
"등록."
진열대 위 물건들이 희미한 빛에 감싸였다.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박태식이 이온 음료를 잡아당기는 순간, 병이 진열대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박태식이 힘을 줬다. 플라스틱 병이 찌그러졌지만 빠지지 않았다.
매점 안 시선이 한결에게 꽂혔다.
한결은 목이 말랐다. 혀가 입천장에 붙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말했다.
"지금부터 매점 물건은 함부로 못 가져가."
"네 거냐?"
"아니."
한결은 박태식을 똑바로 봤다.
"그래서 더 함부로 못 가져가."
박태식의 눈매가 험해졌다. 민수가 슬쩍 한결 옆으로 붙었다.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물러서지 않는다는 뜻은 됐다.
이수진이 둘 사이로 들어왔다.
"싸울 시간 없어. 부상자부터 처리해."
"너도 명령질이냐?"
"응. 지금은."
박태식이 헛웃음을 뱉었다.
한결은 초코우유와 이온 음료 일부를 선택했다.
[초코우유 -> 하급 체력 회복 포션]
[이온 음료 -> 하급 수분 회복 포션]
[변환 수량: 2]
[소모 포인트: 90]
손안에 작은 병 두 개가 나타났다. 하나는 초코우유 팩처럼 갈색빛이 돌았고, 다른 하나는 푸른빛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수진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게 네 능력이야?"
"매점 물건만."
"한계는?"
"지금 말할 시간 없어."
"그러면 최소한 기록은 해야 해. 몇 개가 있고, 누구에게 썼는지."
한결은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방금 문을 열어 살려 놓자마자 장부 이야기인가 싶었다.
하지만 수진의 시선은 빵이 아니라 부상자에게 가 있었다.
"그래야 다음에 빼앗기지 않아."
그 말은 맞았다.
한결은 회복 포션을 발목 다친 학생에게 건넸다.
"조금씩 마셔. 한 번에 다 마시지 말고."
오순덕 아주머니가 옆에서 학생의 바지를 걷었다. 퉁퉁 부은 발목에 검은 멍이 퍼져 있었다. 포션을 마시자 학생의 떨림이 조금 잦아들었다.
작은 탄성이 퍼졌다.
그 탄성은 곧 굶주린 시선으로 바뀌었다.
음식이 있고, 물이 있고, 누군가는 그것을 약으로 바꿀 수 있다.
그 사실은 희망이면서 동시에 위험이었다.
수진이 낮게 말했다.
"김한결. 네가 물건을 움직일 수 있다면, 네가 통제해야 해. 대신 기준은 공개해야 하고."
"공개하면 다들 납득해?"
"아니."
수진은 바로 대답했다.
"그래도 숨기는 것보단 오래 버텨."
한결은 대답하지 못했다.
박태식이 찌그러진 이온 음료 병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진열대에 붙어 있었다.
"좋네. 한 사람이 다 쥐고 있으면."
아름이 작게 숨을 들이켰다. 독사가 박태식을 노려봤지만, 매점 안 학생들 중 몇 명은 같은 생각을 하는 얼굴이었다.
한결은 그 시선을 느꼈다.
고블린보다 더 오래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시선이었다.
그때 매점 바깥이 조용해졌다.
너무 조용했다.
고블린의 웃음도, 학생들의 흐느낌도 잠깐 멎었다.
쿵.
멀리서 무거운 발소리가 났다.
쿵.
조금 더 가까워졌다.
셔터 너머 복도 바닥을 무언가 긴 것이 긁었다.
끼이이익.
한결은 3학년 5반 문밖에서 이름표를 긁던 소리를 떠올렸다.
수진도 눈치를 챘는지 대걸레 자루를 다시 쥐었다.
"저건 고블린 아니지?"
"아니야."
한결은 간이 절단창을 들어 올렸다.
박태식이 낮게 욕을 뱉었다.
"그럼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 거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셔터 바깥에서 긴 발톱이 금속을 천천히 긁었다.
이번에는 문을 열어 달라는 소리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