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 던전이 열렸다

3화: 복도로 나가는 법
긁.
긁.
문밖에서 이름표를 긁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고블린의 웃음소리와는 달랐다. 놈들은 굶주린 개처럼 달려들고, 문을 치고, 틈만 보이면 손을 밀어 넣었다. 그런데 지금 문밖의 무언가는 천천히 확인하고 있었다.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것처럼.
김한결은 책상 다리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손바닥에 박힌 나무 가시가 더 깊이 파고들었다. 아팠지만 놓을 수 없었다.
"움직이지 마."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교실 안의 아이들이 숨을 삼켰다. 누군가 훌쩍이는 소리를 내자, 독사가 바로 손짓했다.
"입 막아. 지금은 울어도 소리 내면 안 된다."
그때 문틈 아래로 그림자가 스쳤다.
손이었다. 아니, 손이라고 부르기엔 손가락이 너무 길었다. 검은 발톱 같은 것이 문 아래를 천천히 긁더니, 킁, 하는 낮은 숨소리가 따라붙었다.
민수가 창백한 얼굴로 속삭였다.
"저거 고블린 아니지?"
"아니야."
한결은 가방을 더듬었다.
남은 매점 물건은 하나.
박하 사탕 봉지.
손끝이 봉지에 닿는 순간,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등록 가능 대상: 박하 사탕]
[변환 후보: 호흡 안정 사탕]
[변환 후보: 민트 향 유인 구슬]
공격용은 아니었다.
한결은 이를 악물었다. 화염 폭발탄도 없고, 크림빵도 없다. 방금 전처럼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 문밖에 있는 게 고블린보다 크다면, 책상 다리 하나로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싸우지 않아야 했다.
쾅!
문이 안쪽으로 휘었다.
책상 더미가 밀리며 쇠다리가 비명을 질렀다. 아이들이 동시에 움찔했다. 문틈으로 길고 검은 발톱 하나가 들어와 이름표를 건드렸다.
3학년 5반.
하얀 플라스틱 위에 검은 선이 더 깊게 그어졌다.
"한결아."
민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어떻게 해?"
한결은 박하 사탕을 등록했다. 봉지가 빛처럼 사라지고 손바닥 위에 작은 구슬 세 개가 떨어졌다. 투명한 표면 안쪽에서 초록빛이 희미하게 돌았다.
싸한 민트 향이 코끝을 찔렀다.
[민트 향 유인 구슬]
[효과: 강한 향을 짧은 시간 확산시켜 후각에 민감한 대상을 끌어들입니다.]
"저게 냄새를 맡고 있어."
"뭐?"
"냄새랑 소리에 반응하는 것 같아. 문앞에서 떼어낼 거야."
민수가 눈을 크게 떴다.
"실패하면?"
"그럼 문 부서져."
한결은 일부러 더 말하지 않았다.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책상 잡아. 내가 굴리는 순간 흔들릴 수 있어."
민수와 남학생 둘이 책상 더미에 어깨를 붙였다. 독사는 뒤쪽 학생들을 낮은 자세로 물렸다. 누군가는 떨리는 손으로 입을 막았고, 누군가는 눈을 감았다.
한결은 바닥에 엎드렸다.
문 아래 틈은 손가락 두 개 정도였다. 구슬 하나가 간신히 빠져나갈 넓이. 그 너머로 검은 발톱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숨을 멈추고 구슬을 튕겼다.
또르르르.
작은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들렸다.
구슬은 문틈을 빠져나가 복도 바닥을 굴렀다. 한결은 그대로 굳었다. 심장 소리 때문에 괴물이 알아차릴 것 같았다.
킁.
문밖의 숨소리가 멈췄다.
다음 순간, 쿵, 하고 무거운 발소리가 옆으로 움직였다.
킁. 킁.
발소리는 복도 오른쪽으로 천천히 멀어졌다. 한결은 그제야 숨을 들이켰다. 폐가 따끔거렸다.
하지만 안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복도 저편에서 고블린의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키히히히."
아이들 얼굴이 다시 무너졌다.
"지금 나가야 해."
한결이 말했다.
앞자리 여학생이 고개를 저었다.
"밖에 저런 게 있는데 어떻게 나가?"
"여기 남아도 다시 와. 다음엔 못 막아."
그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한결은 스마트폰을 켰다. 화면에 금이 가 있었지만 작동은 했다.
[김한결: 아름아. 문 열 준비해. 우리 나간다.]
답장은 바로 왔다.
[한아름: 지금? 복도에 괴물 있어.]
[김한결: 알아. 저거 잠깐 떼어냈어. 옆 반까지 갈 거야.]
잠깐 뒤, 다시 메시지가 왔다.
[한아름: 알았어. 안쪽 바리케이드 풀게. 뛰어오면 바로 열게.]
한결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옆 반으로 간다. 뛰되 소리 지르지 마. 넘어지면 주변 사람이 바로 끌어줘."
독사가 뒤에서 말을 받았다.
"들었지? 순서대로 움직여. 먼저 나간 애들이 문 앞에서 멈추면 뒤가 다 죽는다. 정신 차려."
책상 더미를 치우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커튼 끈은 엉켜 있었고, 책상 다리는 문틈에 박혀 빠지지 않았다. 그 사이 복도 오른쪽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계속 멀어졌다.
한결은 남은 구슬 하나를 내려다보다가, 다른 변환을 선택했다.
손안에 흰 사탕 하나가 생겼다.
[호흡 안정 사탕]
[효과: 짧은 시간 공포로 인한 과호흡과 손떨림을 완화합니다.]
그는 포장도 없는 사탕을 입에 넣었다.
차가운 맛이 혀를 때렸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매웠다. 하지만 떨리던 숨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문이 열렸다.
복도의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젖은 흙, 오래된 피, 타버린 플라스틱. 형광등은 절반이 꺼져 있었고, 벽에는 보라색 이끼가 핏줄처럼 번져 있었다. 사물함 몇 개는 안쪽에서 터진 것처럼 찌그러져 있었다.
오른쪽, 민트 구슬이 굴러간 방향 끝에 긴 그림자가 보였다.
자세히 볼 틈은 없었다.
왼쪽에는 고블린 두 마리가 있었다. 놈들은 바닥에 엎드려 무언가를 핥다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키엑?"
한결은 먼저 뛰었다.
"가!"
3학년 5반 아이들이 복도로 쏟아졌다. 옆 반 문까지는 몇 미터뿐이었다. 그런데 그 몇 미터가 운동장 한 바퀴처럼 멀었다.
고블린 하나가 벽을 타듯 달려왔다.
한결은 책상 다리를 휘둘렀다. 빗맞았다. 놈의 단검이 팔을 스쳤다. 교복 소매가 찢기고 뜨거운 통증이 올라왔다.
"한결아!"
문 안쪽에서 한아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열고 있어!"
안쪽에서 책상이 밀리는 소리가 났다. 문은 아직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만큼만 열렸다.
민수가 자기 가방을 고블린에게 던졌다.
"이거나 먹어!"
가방이 놈의 얼굴을 덮었다. 한결은 그 틈에 어깨로 들이받았다. 고블린이 사물함에 부딪히며 괴성을 질렀다.
두 번째 고블린은 뒤쪽 학생들에게 달려들었다.
"숙여!"
독사가 빗자루를 길게 뻗었다. 제대로 된 기술은 아니었다. 그래도 놈의 발에 걸렸다. 고블린이 휘청거리는 순간, 뒤쪽 학생 둘이 의자를 밀어 넣었다.
한결은 남은 민트 향 유인 구슬을 복도 반대편으로 던졌다.
쩡.
구슬이 바닥에 깨지며 향이 퍼졌다. 고블린의 시선이 흔들렸다. 오른쪽 복도 끝에서 무거운 발소리도 다시 방향을 틀었다.
시간을 벌었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들어와!"
옆 반 문이 활짝 열렸다.
한아름이 문틈에 서 있었다.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빨리!"
한결은 학생들을 밀어 넣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누가 넘어지자 아름이 바로 팔을 잡아당겼다.
민수가 마지막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첫 번째 고블린이 가방을 찢고 튀어나왔다. 단검이 민수의 등에 닿기 직전이었다.
한결은 책상 다리를 던졌다.
퍽!
정확히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놈의 손목을 쳤다. 단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민수야!"
"알아!"
민수가 거의 구르듯 안으로 들어갔다.
한결도 뒤따라 몸을 던졌다. 바로 뒤에서 고블린의 손이 교복 자락을 움켜쥐었다. 아름이가 한결의 팔을 잡아당겼고, 독사가 안쪽에서 문을 밀었다.
쾅!
문이 닫혔다.
고블린의 단검이 문짝에 박혔다가 빠졌다.
아이들이 책상을 밀어붙였다. 옆 반 학생들까지 달려들어 바리케이드를 다시 쌓았다. 몇 초 뒤, 복도에서는 고블린의 울음소리와 더 무거운 발소리가 뒤섞였다.
그러다 갑자기 뚝 끊겼다.
무언가가 고블린을 낚아챈 것처럼.
교실 안은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한아름이 먼저 한결의 팔을 붙잡았다.
"피 나잖아."
"스친 거야."
"스친 거치고는 손이 떨리는데."
"사탕 먹어서 이 정도야."
"무슨 사탕?"
한결은 대답하려다 멈췄다. 옆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몰려 있었다. 지금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옆 반도 멀쩡하지 않았다.
창문 하나가 깨져 있었고, 교탁 앞에는 검은 재가 조금 남아 있었다. 사물함 앞에 쌓인 책상들은 안쪽으로 움푹 패여 있었다.
한아름이 짧게 말했다.
"하나 들어왔었어. 애들이 같이 밀어서 창문 쪽으로 몰았고, 갑자기 재처럼 흩어졌어. 왜 그런지는 몰라."
한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가 죽으면 재가 된다. 그 정도만 확인했다.
"여기도 오래 못 버텨."
"알아."
아름은 바로 대답했다.
"근데 어디로 가?"
"매점."
옆 반 학생들이 술렁였다.
"매점? 지금 이 상황에?"
"먹을 거 가지러 가자는 게 아니야."
한결은 숨을 골랐다.
"내 능력은 매점 물건이 있어야 제대로 써. 지금은 거의 바닥났고. 매점에 가면 싸울 방법이 생길 수도 있어."
전부 말한 건 아니었다. 포인트, 인벤토리, 던전 코인. 설명할 게 너무 많았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설득이 아니라 이동이었다.
독사가 나섰다.
"부상자 있는 반?"
옆 반 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발목을 접질린 학생이 울면서 앉아 있었다.
"둘이 부축해. 뛰는 애들, 절대 앞질러 가지 마. 한결이가 길 알고 있으니까 한결이 앞, 내가 뒤다."
한아름은 떨고 있는 여학생 옆에 앉았다.
"울어도 돼. 대신 소리만 작게. 숨은 나랑 맞춰. 하나, 둘. 다시."
한결은 그 모습을 잠깐 보았다.
아름이는 겁이 없는 게 아니었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의 호흡부터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한결은 더 오래 멈춰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문틈으로 복도를 확인했다.
매점은 본관 1층 중앙 계단 옆. 3층에서 내려가려면 왼쪽 복도 끝 계단을 지나야 했다. 평소라면 1분도 안 걸릴 길이었다.
지금은 그 1분이 목숨값이었다.
그때 복도 벽의 층별 안내판이 지지직거렸다.
원래 적혀 있던 '급식실', '교무실', '매점' 글자 위로 흐릿한 문장이 떠올랐다.
[보급 구역 방향]
[1층 매점]
한결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던전도 매점을 알고 있었다.
그게 좋은 뜻인지, 함정이라는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간다."
한결은 책상 다리 대신 바닥에 떨어진 빗자루 자루를 집어 들었다. 부러진 끝이 날카로웠다.
문을 열자 복도는 더 조용해져 있었다.
그 조용함이 더 무서웠다.
한결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쾅.
아래층에서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쾅.
한 번 더.
소리는 계단 아래, 매점 방향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매점 셔터를 안쪽에서 두드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