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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7화

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7화: 가짜 신분 제조 작전

양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든 대기업 사장과 추리닝 차림의 웹소설 작가. 이 기묘한 조합의 쇼핑은 시장 상인들의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끝이 났다. 옥탑방으로 돌아오는 길, 도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비닐봉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묵묵히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옥탑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도하는 손에 쥐고 있던 봉지들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자신의 길고 곧은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봉지 손잡이에 눌려 붉게 선이 가 있는 손바닥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내 비서가 이 모습을 봤다면 당장 기절했겠군."
"정 실장님은 걱정 마세요. 소설 속에서는 지금 비밀 휴가 중이라 아주 편하게 쉬고 계실 테니까."

세아는 능숙하게 감자를 깎으며 대꾸했다. 도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방 한구석에 놓인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거울 속에는 무릎이 튀어나온 회색 추리닝을 입은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눈 밑의 작은 점과 날카로운 눈빛은 여전히 오만한 사장님의 그것이었다.

"윤세아. 언제까지 이렇게 유령처럼 살 수는 없다. 현실 세계에서 내가 움직이려면 합법적인 신분이 필요해."
"신분이요? 아…… 맞다."

세아는 감자를 깎던 손을 멈췄다.

현실 세계는 소설 속 세계보다 훨씬 깐깐하고 삭막한 곳이었다. 거소증이 없으면 핸드폰 개통은커녕, 편의점 아르바이트조차 할 수 없다. 게다가 불시 검문이라도 걸리는 날에는 신원미상자로 유치장 신세를 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도하 씨는 대한민국 행정 시스템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잖아요. 지문 등록도 안 되어 있을 테고……."
"그러니 창조주인 당신이 해결해야지. 소설 속 설정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내 가짜 신분 하나쯤 만드는 건 일도 아니지 않나?"

도하가 성큼 다가와 세아의 책상 의자에 걸터앉으며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의 눈빛에는 사업가 특유의 치밀함과 추진력이 빛나고 있었다.

"지난번에 내가 쓰러진 서사를 고쳐서 현실의 내 상태를 바꿨던 것처럼, 소설에 내 신분 배경을 추가해 봐. 예를 들면…… '강도하는 사실 현실 세계에 숨겨둔 가짜 신분이 있었다' 같은 식으로."
"와, 도하 씨. 머리 진짜 좋네요? 역시 K-스마트 사장님다워."

세아는 감탄하며 얼른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한글 프로그램을 켜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 순간, 세아의 얼굴이 이내 시무룩해졌다.

"……안 돼요. 안 돼."
"왜 안 되지?"
"웹소설은 개연성이 생명이라고요! 갑자기 현대 로맨스 소설 남주인공이 '사실 나는 다른 차원의 현실 세계에 가짜 신분증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쓰면 독자들이 '작가가 미쳤나? 로맨스 쓰라니까 웬 차원이동 장르물을 찍고 있네' 하면서 별점 테러를 날릴 걸요? 원작의 룰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움직여야 해요."

도하의 미간이 다시 좁혀졌다. 소설 속에서는 결단력 있는 비즈니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던 그였지만, 문학적 개연성과 독자의 반응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는 그 역시 초보자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아무 문장이나 현실이 되는 게 아니에요. 등록된 글, 그리고 독자들이 '그럴듯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글. 그 두 가지가 맞아야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도하는 그 말을 오래 곱씹듯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럼 독자들이 납득할 만한 합법적인 우회로는 없나?"
"음…… 잠시만요."

세아는 턱을 괴고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탁탁 두드리던 세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 있다! 소설 속에서 도하 씨가 예전에 외국에서 오래 살다 왔다는 설정이 있잖아요. 그리고 워낙 비밀주의라 사생활이 베일에 싸여 있다는 설정도 있고!"
"그렇지. 언론에 노출되는 걸 꺼리는 편이니까."
"그러면 이걸 역이용하는 거예요. 소설 속에서 도하 씨가 비밀리에 한국의 어떤 독가촌이나 시골에 '가명'으로 땅과 신분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음 화에 슬쩍 집어넣는 거죠. 독자들은 '와, 우리 사장님 역시 철두철미해!'라고 생각할 테고, 그 설정이 현실로 구현되면……!"

도하는 세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짝이는 그녀의 갈색 눈동자가 꽤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꽤 훌륭한 기획이군. 윤 작가, 당장 집필을 시작하지."
"어라? 방금 나보고 윤 작가라고 했어요?"

세아가 놀라 묻자, 도하는 짐짓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내 신분 보장이 걸린 일이다. 투자할 가치가 있는 파트너에게 예우를 갖추는 건 당연한 처사지."

말은 차갑게 했지만 도하의 귓가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 세아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자신이 만든 완벽한 남주인공에게 '윤 작가'라는 인정을 받다니. 가슴 깊은 곳에서 묘한 간지러움과 함께, 다음 화를 향한 창작의 욕구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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