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5화

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5화: 불편한 동거의 막이 오르다

"……저기, 도하 씨?"

모니터 화면에 '성공적으로 등록되었습니다'라는 팝업창이 뜬 것을 확인한 세아가 슬금슬금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네이비 수트 핏을 뽐내며 좁은 방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도하의 얼굴은 몹시 피곤해 보였다. 당연했다. 소설 속 세계에서 밤을 새우고 현실로 강제 소환당하자마자 라면 한 그릇을 비우고 원고 수정 투쟁(?)까지 벌였으니.

"원고는 보냈고, 소설 속 당신은 공식적으로 '잠적 휴가 중'이 됐는데……."

세아는 도하의 눈치를 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이제 당신은 어떻게 되는 거지? 소설로 다시 돌아가는 방법이라든가, 아는 거 없어요?"
"내가 알 리가 있나.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온 괴상한 인력에 이끌려 정신을 차려보니 이 조잡한 곳이었는데."

도하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침대 모퉁이에 겨우 걸터앉았다. 침대 매트리스가 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삐걱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도하의 눈썹이 다시 한번 꿈틀했다.

"매트리스 상태가 이게 무슨…… 스프링이 내 척추의 배열을 실시간으로 바꾸고 있는 기분이군."
"야, 강도하! 너 진짜 말끝마다 조잡하다, 조악하다 무시할래? 내 침대가 어때서! 나름 인터넷 쇼핑몰에서 평점 4.5점짜리 가성비 최고 제품이거든?!"
"가성비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이미 훌륭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도하는 차갑게 쏘아붙이고는 타이바를 거칠게 풀어 좌식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셔츠 깃을 단추 한두 개쯤 풀자, 소설 속에서 '치명적인 쇄골 라인'이라고 적었던 그대로의 선이 드러났다. 세아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다가 뺨이 화끈거려 고개를 돌렸다.

'자중하자, 윤세아. 저 남자는 네가 창조한 괴물이자 상상 속의 인물일 뿐이야. 비록 얼굴이 인터내셔널 프리미엄급이긴 하지만…….'

그때 세아의 낡은 스마트폰이 다시 한번 징 소리를 냈다. 편집자 미소 씨의 톡이었다.

[미소 편집자님: 작가님! 방금 올리신 22화 모니터링했어요. 갑자기 도하 사장님이 과로로 쓰러졌다가 10분 만에 인공호흡도 거부하고 비밀 휴가를 떠나다니요? ㅋㅋㅋ 조금 당황스럽긴 한데, 오히려 독자들이 '사장님 성격 진짜 칼 같다', '역시 워커홀릭'이라면서 난리 났어요! 댓글 반응 폭발입니다. 휴방 위기 넘겨주셔서 감사해요 유유]

세아는 톡 내용을 확인하고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도하가 물었다.

"그 무례한 편집자라는 인간인가?"
"무례하긴요, 제 밥줄을 쥐고 계신 생명줄 같은 분이에요. 그나저나 도하 씨 의견대로 키스신 빼고 완벽주의자 성향을 살렸더니 독자들 반응이 좋대요. 거 봐요, 내가 글은 좀 쓴다니까?"

세아가 엣헤헤 웃으며 칭찬을 갈구하듯 쳐다보자, 도하는 기가 막힌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내 인생을 쥐락펴락하는 창조주치고는 참 소박한 반응이군. 칭찬이라도 바라는 건가?"
"치…… 됐거든요."

세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바닥에 널브러진 양은냄비를 싱크대로 옮겼다. 시계는 이미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팽팽했던 긴장감이 풀리자 꼬박 사흘을 밤샘한 세아의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눈꺼풀이 스르륵 내려앉는 걸 간신히 버티며 세아가 선언했다.

"일단 너무 늦었으니까 잠은 자야겠어요. 다른 해결책은 날이 밝으면 생각하기로 하고."
"잠? 어디서 말이지?"

도하가 방 안을 휘둘러보았다. 이 방에 존재하는 누울 곳이라곤 도하가 걸터앉아 있는 싱글 침대 하나가 전부였다.

"당연히 내가 침대에서 자고, 도하 씨가 바닥에서 자야죠. 여기는 내 집이니까요!"
"하. 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온돌바닥이나 딱딱한 곳에서 자본 적이 없다. 불면증이 심해서 최고급 구스 이불과 매트리스가 아니면 잠들지 못해."
"여긴 현실이에요, 사장님! 구스 같은 소리 하네. 싫으면 저기 문 열고 나가서 길바닥에서 주무시든가요. 아, 돈 없어서 호텔도 못 가시겠네?"

세아의 촌철살인 같은 다그침에 도하는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물었다. 지갑에는 블랙카드가 가득했지만, 현실 세계의 포스기나 ATM기가 소설 속 가상의 은행 네트워크를 인식할 리 만무했다. 결국 완벽한 능력남 강도하는 현실 세계에서 완벽한 '무일푼 백수'에 불과했다.

"……불공평하군. 내 지위를 이렇게 바닥으로 떨어뜨리다니."
"그러게 누가 모니터 찢고 나오래요?"

세아는 이불장 속에서 오래된 여름용 얇은 이불 한 채를 꺼내 바닥에 툭 던져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익숙하게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불 끕니다. 매너 수면 해요, 우리."

탁. 불이 꺼지고 옥탑방에는 짙은 어둠과 함께 묘한 정적이 찾아왔다.

세아는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리며 눈만 빼꼼 내밀었다. 낯선 남자와 한 방에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소설 속 남주인공이라 해도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도하 역시 그 시선을 알아챈 듯 바닥 이불의 가장자리로 몸을 물리고, 손바닥을 보이듯 가볍게 들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 당신이 허락하지 않은 선은 넘지 않는다."

그 말투가 너무 당연하고 단호해서, 세아의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 풀렸다.

바닥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수트 바지가 구겨지는 소리, 한숨을 깊게 내쉬는 소리, 그리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뒤척이는 소리까지. 세아는 이불 속에서 눈을 깜빡였다. 바로 1미터도 안 되는 바닥에 자신이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고 상상했던 완벽한 이상형이 찌푸린 얼굴로 누워 있다고 생각하니, 쏟아지던 잠이 한순간에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윤세아."

어둠을 뚫고 도하의 닻을 내린 듯한 저음이 들려왔다.

"……왜요. 잠 안 와요?"
"춥군. 이 이불이라는 천 조각은 보온 기능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세아는 픽 웃음이 나왔다. 소설 속에서 늘 강인하고 완벽하게만 그렸던 남주인공이, 현실의 작은 추위와 불편함에 투덜대는 모습이 어쩐지 인간적이고…… 꽤 귀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참고 자요. 내일부터는 아주 스파르타식 현실 적응기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세아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끝으로, 두 사람의 기묘하고도 아슬아슬한 첫날밤이 깊어갔다. 문밖에서는 서울의 차가운 새벽바람이 옥탑방 문을 덜컹이며 두 사람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했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