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48화: 외전 - 세상에 공개된 로맨스
강남의 한 고급 호텔 연회장. K-스마트의 창립 기념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수많은 정·재계 인사들과 미디어가 주목하는 가운데, 도하가 단상에 올랐다.
평소라면 차가운 기술적 전망만 내놓았을 그였지만, 오늘의 기조연설은 조금 특별했다.
"K-스마트가 오늘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기술력이 좋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가장 절망적이었던 순간, 저의 존재 가치를 믿어주고 제 서사를 완성해 준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하의 시선이 연회장 구석, 쑥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세아를 향했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제 삶의 진정한 창조주이자 동반자인 윤세아 작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장내에 술렁임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카메라 플래시가 세아를 향해 쏟아졌고, 도하는 단상에서 내려와 직접 세아에게 다가갔다. 그는 세아의 손을 잡고 모든 사람 앞에서 당당히 그녀의 옆에 섰다.
"와, 정말 작가님이셨어? 대박!"
"두 사람 정말 소설 같은 로맨스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지만, 세아는 이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도하의 따뜻한 손바닥이 전해주는 용기가 그녀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파티가 무르익을 무렵, 두 사람은 잠시 소란스러운 연회장을 빠져나와 호텔 옥상 정원으로 향했다.
"너무 화려하게 데뷔시킨 거 아니에요? 나 이제 시장 보러 가기도 힘들겠네."
세아가 가볍게 투정을 부리자, 도하가 그녀의 손에 끼워진 커플링을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당신이 시장 보러 갈 땐 내가 항상 같이 갈 거니까 걱정 마. 그리고…… 이제는 숨길 필요가 없잖아. 우리가 어떻게 만났든, 지금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온 세상이 다 아니까."
도하는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세아의 신작 제목인 '나의 주인공은 퇴사 중'이 각인된 만년필이 들어 있었다.
"이건 뭐예요? 웬 만년필?"
"이제 내 서사는 당신의 노트북이 아니라, 이 펜으로 직접 써 내려가 달라는 뜻이야. 우리가 함께할 현실의 일기장들을 말이지."
세아는 만년필의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며 도하를 껴안았다.
"도하 씨, 그거 알아요? 소설 속 강도하는 프러포즈할 때 헬기 띄우고 건물 전체에 전광판 이벤트 하는 화려한 남자였는데."
"현실의 강도하는 실속파라 말이야. 그런 겉치레보다는 당신 손끝에 남을 진짜 온기가 더 중요하거든."
도하가 세아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하지만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헬기 부를까?"
"됐거든요! 이 사장님아!"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밤하늘로 흩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탄생 배경을 가진 남주인공과, 그를 세상 밖으로 불러낸 작가의 사랑은 이제 숨겨야 할 비밀이 아니라 함께 책임질 현실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