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46화: 외전 - 옥탑방의 사장님은 연애 중
"아니, 강 사장님! 거기 계단 조심하시라니까요!"
세아의 비명 섞인 외침에도 불구하고, 도하는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든 채 옥탑방의 가파른 철제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왔다. 최고급 세단을 몰고 다니는 CEO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의 그는 그저 여자친구의 저녁 찬거리를 챙기는 극성스러운 애인이었다.
"이 정도 계단은 운동 삼아 오르기에 딱 좋군. 윤 작가야말로 마감하느라 운동 부족이니 나중에 나랑 같이 조깅이라도 해야겠어."
"조깅은 무슨…… 아, 저건 또 뭐예요? 갈비?"
"단백질 보충은 필수다. 이번에 새로 구상한다는 소설, 주인공이 운동을 아주 잘하는 설정이라며? 모델 노릇 하려면 나도 체력 관리를 해야지."
도하가 냉장고를 채우는 모습에 세아는 픽 웃음이 났다.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한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 모든 기억이 완벽하게 돌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도하와 함께 있으면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그를 알아보고 반응했다.
"저기요, 강도하 씨. 이제 우리 집 그만 오고 당신 그 넓은 펜트하우스로 좀 가시죠? 나 마감해야 한다고요."
"싫은데. 난 이 좁은 옥탑방의 와이파이가 제일 잘 터지거든. 무엇보다 이곳엔 내 전속 작가가 있고."
도하는 세아의 의자 뒤에 서서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주물러주었다.
"윤 작가, 요즘은 손등에 노이즈 안 생기나?"
"네. 아주 깨끗해요. 시스템도 이제 포기했나 봐요. 우리가 너무 끈질기게 붙어 있으니까."
세아가 자신의 손을 펴 보이며 웃었다. 이제 그녀의 손은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현실의 일부였다. 도하의 존재 역시 현실 세계의 데이터베이스에 완벽하게 안착하여, 이제는 그 누구도 그가 소설 속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다행이군. 내 심장 소리도 확인해 보겠나?"
도하가 세아의 손을 끌어 자신의 왼쪽 가슴에 갖다 댔다. 쿵, 쿵, 쿵. 규칙적이고 힘찬 고동이 세아의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합격이에요. 아주 튼튼하네요."
세아가 고개를 들어 도하를 바라보았다. 도하는 장난기 어린 표정을 거두고 진지한 눈빛으로 세아와 시선을 맞췄다.
"세아. 소설 속의 강도하는 당신이 만든 완벽한 남자였지만, 지금의 나는 결점도 많고 서툰 진짜 남자다. 그래도 괜찮겠나?"
"완벽한 남자보다, 내 짜장 라면을 같이 먹어주는 서툰 남자가 훨씬 더 매력적인 거 몰라요?"
세아가 까치발을 들어 도하의 목에 팔을 감았다. 도하는 기다렸다는 듯 세아의 허리를 감싸 안아 끌어당겼다.
옥탑방의 창밖으로 서울의 화려한 밤경치가 펼쳐져 있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서로의 눈동자 속에 비친 서로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사랑해요, 나의 주인공."
"나도 사랑한다, 나의 창조주."
두 사람의 입술이 부드럽게 맞물렸다. 더 이상 시스템의 경고음도, 투명해지는 몸에 대한 공포도 없는, 완벽하게 단단하고 뜨거운 현실의 키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