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41화: 지워지는 조각들
다음 날 아침, 세아는 지독한 두통과 함께 눈을 떴다. 머릿속이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몽롱했다.
"윤 작가, 일어났나?"
주방에서 들려오는 도하의 목소리에 세아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앞치마를 두르고 토스트를 굽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 분명히 익숙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인데,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서늘했다.
"……도하 씨?"
"그래. 왜 그렇게 멍하니 보지? 아직 잠이 안 깼나?"
도하가 접시를 들고 다가와 세아의 이마를 짚었다. 그의 손길은 따뜻했다. 하지만 세아의 머릿속에서 아주 짧은 기억의 파편 하나가 모래알처럼 빠져나갔다.
'우리가…… 어제 뭘 먹었더라?'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히 도하와 함께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했던 것 같은데, 메뉴가 무엇이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도하 씨, 우리 어제…… 스테이크 먹었나요?"
"스테이크는 그 전날 축하 자리였지. 어제는 백도훈의 일로 바빠서 제대로 밥도 못 먹고 옥탑방에서 짜장 라면 끓여 먹었잖아."
도하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세아의 코끝을 톡 쳤다. 세아는 당황했다.
'아니야, 분명히 샴페인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는데……. 날짜가 뒤섞이고 있어.'
세아는 책상으로 달려가 노트북을 켰다. 어젯밤 자신이 입력했던 '메타 서사' 기록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화면에는 어젯밤의 기록 대신 하얀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 진행 상황: 메모리 스왑(Memory Swap) 진행률 12%]
"메모리 스왑……."
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도하의 존재를 고정하기 위해 내놓은 대가—기억—가 현실에서 서서히 인출되고 있는 것이었다.
오후가 되자 증상은 더 심해졌다. 세아는 작업실 구석에 놓인 낡은 곰 인형을 보고 미소 씨에게 물었다.
"미소 씨, 이 인형 누구 거예요? 여기 왜 있지?"
"작가님, 무슨 소리예요? 그거 저번 주에 도하 씨가 인형 뽑기에서 10번 만에 뽑아준 거잖아요. 작가님이 너무 좋아해서 이름까지 '도곰이'라고 지어놓고선!"
미소 씨가 황당한 듯 웃었지만, 세아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10번 만에 성공하고 아이처럼 기뻐하던 도하의 얼굴, 인형을 안겨주며 쑥스럽게 웃던 그의 표정. 그 소중한 순간들이 세아의 세계에서 영원히 삭제되어 있었다.
세아는 서둘러 메모장을 꺼내 현재 기억하고 있는 도하와의 추억들을 적기 시작했다.
- 옥탑방에 처음 떨어진 날.
- 같이 마감하며 마셨던 커피.
- 백도훈의 사무실에서 나를 구해준 순간.
- ……
하지만 4번을 적으려던 세아의 펜끝이 허공에서 멈췄다. 분명히 더 많았는데. 가슴은 벅차게 뛰고 있는데, 머릿속에 남은 장면이 없었다.
"윤 작가."
어느새 다가온 도하가 세아의 어깨를 짚었다. 그의 눈에는 세아의 고통이 고스란히 읽히고 있었다. 그는 세아가 적고 있는 메모장을 보더니, 말없이 그녀의 손에서 펜을 뺏어 들었다.
"잊어도 괜찮다. 내가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도하의 목소리는 단단했지만, 그의 손등에는 다시금 미세한 노이즈가 발생하고 있었다. 세아의 기억이 사라질수록 도하의 신체는 현실에 더 단단히 고정되고 있었지만, 그 대가로 두 사람이 공유하던 '역사'는 반쪽짜리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