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40화: 마음의 좌표
"쓰지 않으면 죽고, 쓰면 사라진다니…… 그런 게 어디 있어!"
옥탑방으로 돌아온 세아는 노트북을 바닥으로 밀쳐버릴 듯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도하는 조용히 다가가 바닥에 떨어진 마우스를 주워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것이 당신이 만든 세계의 문법이다, 윤 작가. 질서가 없으면 이야기는 존재할 수 없지."
"내가 만든 질서라면 내가 바꿀 수도 있어야 하잖아요! 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건데!"
세아는 도하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툭툭 쳤다. 분노보다는 슬픔이 섞인, 무력한 몸짓이었다. 도하는 세아의 작은 주먹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그녀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바꿀 수 있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단순한 '수정'이 아니라, 새로운 '법칙'이 필요해. 시스템조차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개연성 말이야."
도하의 품 안에서 세아는 흐느꼈다. 그의 심장 박동은 여전히 선명했지만, 세아는 알고 있었다. 이 박동 소리가 소설의 '마침표'와 함께 멈추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날 밤, 세아는 잠들지 못하고 옛날 일기장들을 뒤졌다. 그녀가 웹소설 작가를 꿈꾸며 처음으로 '강도하'라는 캐릭터를 그렸던 중학생 시절의 낙서부터, 무명 시절의 고단함을 위로해주던 도하의 대사들까지.
세아에게 도하는 단순히 '돈을 벌어다 주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는 세아의 가장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을 지탱해 준 유일한 친구이자, 완벽한 이상형이었으며, 이제는 목숨보다 소중한 연인이었다.
[강도하(남, 28세): 그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절망의 끝에서도 그는 항상 길을 찾아낸다. 왜냐하면, 그를 만든 작가가 그러하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다.]
세아는 자신이 쓴 초창기 설정 문구를 보고 멍하니 멈춰 섰다.
"포기하지 않는다……."
세아는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소설의 관리자 페이지가 아닌, 시스템의 '근원 코드'가 담긴 기록 텍스트를 열었다. 그곳에는 도하의 신체 데이터와 성격, 그리고 그를 현실로 불러냈던 그날 밤의 '오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세아는 그 기록들 사이에 한 문장을 삽입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설의 줄거리를 바꾸는 문장이 아니었다. 작가로서 캐릭터에게 부여하는 마지막 '자유 의지'에 대한 선언이었다.
[작가는 캐릭터에게 생명을 부여할 수 있지만, 그 생명을 완성하는 것은 캐릭터 자신의 선택이다. 강도하는 더 이상 작가의 펜 끝에 움직이는 인형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현실의 '사랑'에서 찾았으며, 이는 소설의 엔딩을 초월하는 독립적인 서사다.]
타닥-.
엔터 키를 누르는 순간, 노트북 화면이 눈부신 백색광으로 가득 찼다.
[※ 시스템 경고: 원작의 논리 구조를 파괴하는 '메타 서사(Meta-narrative)'가 감지되었습니다.]
[※ 경고: 이 작업을 계속할 경우, 작가의 현실 세계 기억 일부가 서사의 대가로 소멸할 수 있습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 안내: 소멸 대상은 강도하와 현실에서 함께 보낸 기억에 한정됩니다. 감정의 잔향과 타인이 보유한 기록, 독자의 증언은 삭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세아의 손이 멈칫했다. 도하를 현실에 남기는 대가가 자신의 기억이라니. 그와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들, 그를 처음 만났던 설렘, 그와 나누었던 키스의 감각…… 이 모든 것을 잊게 된다면, 그가 현실에 남는다 해도 과연 의미가 있을까?
세아는 뒤에서 자고 있는 도하의 평온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없어. 당신이 이 하늘 아래에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 확실하다면…… 나는 몇 번이고 다시 당신과 사랑에 빠질 테니까."
세아는 망설임 없이 'Y' 키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