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39화: 일상의 복원, 그리고 균열
백도훈 구속 이후 일주일이 흘렀다. K-미디어 그룹의 주가는 연일 하락세를 이어갔고, 그 반사 이익으로 도하의 'K-스마트'는 혁신적인 보안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업계의 새로운 총아로 떠올랐다.
도하는 이제 '강진우'라는 현실의 가짜 신분이 아닌, '강도하'라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걸고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세아가 소설 속에서 부여했던 그의 천재적인 경영 능력은 현실의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수사기관은 백도훈이 조작해 둔 데이터와 고발장을 하나씩 회수했고, K-스마트 내부 서버에는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강도하의 임원 기록과 지분 신탁 자료가 복원되었다. 세아는 그것이 완전한 행정 절차라기보다, 독자들의 납득과 백도훈의 자백이 현실에 붙인 임시 봉합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적어도 지금은, 세상이 그를 강도하라고 부르고 있었다.
"대표님, 이번 스타트업 포럼 기조연설 원고입니다. 확인 부탁드려요."
"음, 3페이지의 기술 보안 파트가 너무 보수적이군. 좀 더 과감하게 수정해."
도하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며 미소 씨와 대화를 나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옥탑방에 숨어 지내는 유령이 아니었다. 번듯한 사무실과 직원을 둔, 현실 세계의 진짜 '사장님'이었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복구 뒤에, 세아만이 아는 불안함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 현재 원작 서사의 상태: '종결 지향(Terminal-Oriented)']
[※ 현실 동기화율: 95% (안정적이나 정체 중)]
세아는 작업실에서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소설 작가로서의 직감이 계속해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이야기가 정점에 달하고 갈등이 해소될수록, 소설의 시스템은 도하를 현실에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된 데이터'로 간주해 보관함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윤 작가님! 오늘 저녁에 도하 씨랑 같이 축하 파티하기로 한 거 잊지 않으셨죠?"
미소 씨의 목소리에 세아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식사는 강남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이루어졌다. 도하가 세아를 위해 특별히 예약한 곳이었다. 근사한 정장 차림의 도하는 이제 누가 봐도 완벽한 현실의 성공한 남성이었다.
"와, 정말 꿈만 같아요. 사장님이 이렇게 현실에서 멋지게 재기하시다니!"
미소 씨가 샴페인 잔을 들어 올렸다. 세아도 잔을 마주치며 웃었지만, 문득 도하의 잔을 든 오른손을 본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투명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찰나의 순간, 도하의 손가락 마디가 프레임이 끊긴 동영상처럼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위치가 어긋나 보였다가 돌아왔다. 주변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도하 씨?"
세아가 다급하게 그의 손을 잡았다.
"왜 그러나, 윤 작가? 샴페인이 맛이 없나?"
도하는 아무렇지 않게 되물었다. 잡힌 손은 여전히 따뜻하고 단단했다. 하지만 세아는 보았다. 도하의 눈동자 속에서 아주 잠깐, 시스템의 붉은 경고등이 비쳤다 사라지는 것을.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세아는 내내 침묵했다.
"윤 작가. 아까 레스토랑에서 본 것 때문인가?"
도하가 먼저 말을 건넸다. 그는 운전대를 잡은 채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당신도 알고 있었어요?"
"숨기려 했지만, 작가의 눈은 속일 수 없군. 백도훈의 서버를 파괴하면서 얻은 '현실의 육체'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야. 그건 일종의…… 대출 같은 거지. 빌런을 물리치기 위해 시스템이 잠시 빌려준 힘."
도하가 차를 갓길에 세웠다. 그는 세아를 향해 몸을 돌려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이야기가 결말로 향할수록, 대출받은 힘은 회수될 거다. 소설의 법칙은 냉정하니까. 주인공은 엔딩과 함께 책장 속으로 돌아가야 하지."
"싫어요. 그런 엔딩 안 써요."
세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엔딩을 안 쓰면요? 평생 연재 중단 상태로 두면, 당신도 평생 내 옆에 있을 수 있잖아요."
"연재 중단은 '휴재'와 달라, 세아. 작가가 글을 쓰지 않으면 소설 속 세계는 얼어붙고 사라진다. 나 역시 정지된 데이터로 남게 되겠지. 그건 죽음보다 더한 고문이야."
도하의 말에 세아는 무너져 내렸다. 쓰면 사라지고, 쓰지 않으면 죽는다. 창조주인 세아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지독하리만치 잔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