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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38화

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38화: 폭풍 뒤의 정적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강남 한복판의 밤공기를 갈랐다. K-미디어 그룹 건물 앞에서 수많은 기자가 플래시를 터뜨리는 가운데, 수갑을 찬 백도훈이 수사관들에 의해 끌려 나왔다. 한때 업계를 호령하던 그의 오만한 얼굴은 이제 비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건물 건너편, 어두운 골목길 그늘에서 세아와 도하는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정말 끝난 걸까요?"

세아가 나직하게 물었다. 도하는 세아의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의 백도훈은 법의 심판을 받을 거다. 그리고 그가 뺏어갔던 이야기의 흐름들도…… 일단은 제자리를 찾은 것 같군."

도하가 자신의 손을 펴 보였다. 가로등 불빛 아래 비친 그의 손은 이제 더 이상 투명하게 비치지 않았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의 온기가 세아의 어깨너머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가요. 우리 집으로."

세아의 말에 도하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집이라…… 그 좁고 믹스커피 향이 진동하는 옥탑방이 이렇게 그리울 줄은 몰랐군."

두 사람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소설 속 억만장자 사장과 잘나가는 작가가 아니라, 그저 고된 하루를 끝내고 귀가하는 평범한 연인들처럼.

옥탑방으로 돌아오는 길, 시장 골목의 떡볶이 냄새와 밤공기의 선선함이 두 사람을 반겼다. 옥탑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까 검찰 수사관들이 헤집어 놓은 잔해들이 보였지만 세아는 상관없었다. 그곳에는 다시 도하가 서 있었으니까.

세아는 서둘러 물을 끓여 믹스커피 두 잔을 탔다. 평소라면 도하가 "건강에 좋지 않다"며 타박했을 테지만, 오늘 그는 말없이 노란색 종이컵을 받아 들었다.

"고마워요, 윤 작가. 나를 찾아내 줘서."

"당연한 일을 한 거예요. 당신은 내가 만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주인공이니까."

세아는 도하의 맞은편에 앉아 그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혹시라도 어디가 또 흐릿해지지는 않았는지, 눈가에 노이즈가 끼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려는 듯이.

"왜 그렇게 보지? 내가 또 사라질 것 같나?"

"……조금요. 사실 무서워요. 백도훈은 잡혔지만, 당신이 이 세계에 남게 된 '이유'가 아직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았잖아요. 소설은 언젠가 완결이 날 텐데……."

도하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창밖의 서울 야경을 바라보았다.

"백도훈의 서버에서 탈출할 때, 잠시 보였어. 이 세계를 지탱하는 '거대한 톱니바퀴' 같은 것들이."

"톱니바퀴요?"

"그래. 백도훈은 그 톱니바퀴 사이에 모래를 끼워 넣어 나를 파멸시키려 했지. 하지만 그 모래를 치웠다고 해서 톱니바퀴가 멈추는 건 아니야. 소설의 '로그'는 여전히 흐르고 있어. 그리고 그 로그는…… 머지않아 '엔딩'이라는 벽에 부딪히게 되겠지."

도하가 세아의 손을 덮어 잡았다.

"윤 작가. 소설의 마지막 화를 쓸 때, 나를 위해 너무 무리하지 마. 당신의 삶이 소설에 잠식당하는 건 내가 원하는 결말이 아니니까."

"아니요, 난 포기 안 해요."

세아는 도하의 손을 꽉 맞잡았다.

"백도훈을 이긴 것처럼, 소설의 엔딩도 내가 이길 거예요. 당신을 현실의 '진짜 사람'으로 확정 짓는 문장을 찾아낼 테니까."

하지만 그 결연한 다짐과는 달리, 세아의 노트북 화면 구석에서는 작게, 아주 작게 새로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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