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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35화

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35화: 창조주의 무기

백도훈의 사무실로 향하기 전, 세아는 땀에 젖은 손으로 낡은 설정 노트를 뒤졌다.

"분명히 있을 거야. 내가 그 인간을 모델로 데이비드를 만들었을 때, 가장 증오했던 그 부분을 설정에 넣었어."

세아의 손가락이 '데이비드 블랙 - 인물 심화 분석' 페이지에서 멈췄다.

[데이비드의 치명적 결함: 그는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지만, 결코 타인을 믿지 못한다. 특히 자신이 '가짜'라는 사실이 탄로 나는 것을 죽음보다 두려워한다. 그의 모든 권력은 '완벽함'이라는 가면 위에 세워져 있다.]

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백도훈은 지금 소설의 시스템을 이용해 현실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이야기의 흐름을 흡수했다는 건 그 역시 소설 속 캐릭터의 '약점'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 작가님, 정말 가실 거예요? 위험해요!

미소 씨의 걱정 어린 문자가 도착했지만, 세아는 대답 대신 가방 속에 노트북과 도하의 넥타이핀을 챙겨 넣었다.

"도하 씨가 나를 구하러 옥탑방에 떨어진 것처럼, 이번엔 내가 그를 구하러 갈 차례야."

서울 한복판, 거대한 유리 성벽처럼 솟아오른 K-미디어 그룹 본사 건물을 올려다보며 세아는 심호흡을 했다. 안내 데스크를 지나 엘리트들로 가득한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세아는 마치 자신이 쓴 소설 속의 적진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최상층 본부장실. 묵직한 마호가니 문이 열리자, 지독하리만치 차가운 공기가 세아를 맞이했다.

"생각보다 일찍 왔군. 마감 시간을 잘 지키는 작가는 언제나 환영이지."

백도훈은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을 등진 채 앉아 있었다. 그의 발치에는 최첨단 서버들이 웅웅거리며 돌아가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도하의 홀로그램이 푸른 사슬에 묶인 채 고통스럽게 일렁이고 있었다.

"도하 씨!"

세아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려 했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혀 튕겨 나갔다.

— 세…… 아…… 오지…… 마…….

도하의 목소리가 깨진 유리 조각처럼 날카롭게 들려왔다. 그의 몸은 이제 거의 투명해져서 배경인 서버 랙의 불빛들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자, 윤 작가. 이제 거래를 시작할까?"

백도훈이 책상 위에 고급 태블릿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퍼펙트 라이프>의 최종화 편집 창이 열려 있었다.

"이곳에 적어. '데이비드 블랙은 강도하의 모든 자산과 존재 기반을 합법적으로 승계하며, 강도하는 시스템 오류로 인해 영원히 소멸한다. 그리고 원작자 윤세아는 이 모든 사실을 잊고 백도훈의 충직한 어시스턴트로 남는다'라고."

"……당신, 정말 미쳤구나."

"미친 게 아니라 진화한 거지. 잉크 속에서만 살던 악당이 진짜 세상의 신이 된 기분을 네가 알까?"

백도훈이 아무리 시스템을 장악했다 해도, 최종 문장을 현실에 박아 넣으려면 원작자의 문장과 독자의 납득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세아를 없애지 못했다. 그녀의 손으로 패배를 승인받아야만, 빼앗은 승리가 '개연성'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백도훈이 세아의 턱을 거칠게 치켜올렸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소설 속 데이비드가 가졌던 그 끝없는 탐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어서 써. 네 손가락 끝에 저놈의 목숨이 달려 있으니까."

세아는 떨리는 손으로 태블릿의 펜을 잡았다. 백도훈은 승리감에 취해 세아의 어깨 너머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세아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화면 한쪽에는 방금 백도훈이 직접 설정한 권한 문구가 작게 떠 있었다. [윤세아: 어시스턴트 초대 대기 중]. 세아는 그 단어를 보는 순간, 그가 스스로 열어둔 문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래, 당신은 완벽함을 원하겠지. 하지만 내가 쓴 데이비드는…… 절대로 완벽해질 수 없어.'

세아는 백도훈이 불러준 문장 대신, 전혀 다른 문장의 첫머리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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