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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34화

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34화: 현실의 악마

세아의 손이 눈에 띄게 떨렸다. 모니터 속 사진을 확대하고 또 확대했다.

날카로운 턱선,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오만한 눈빛, 그리고 왼쪽 입가에 살짝 패인 흉터까지. 소설 속 '데이비드 블랙'의 외형 묘사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남자. 하지만 사진 밑에 적힌 이름은 데이비드 블랙이 아니었다.

[K-미디어 그룹 전략기획실 본부장 - 백도훈]

"백도훈……?"

세아는 기억을 더듬었다. 3년 전, 자신이 지망생이던 시절 원고를 들고 찾아갔던 그 매니지먼트사의 실소유주이자, 업계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던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세아의 시놉시스를 보고 "이런 쓰레기 같은 감성으론 평생 데뷔 못 한다"며 면전에서 원고를 찢어 발겼던 사람이었다. 세아는 그날의 수치심과 분노를 담아, 훗날 <퍼펙트 라이프>를 쓸 때 그를 모델로 한 최악의 악당 '데이비드 블랙'을 창조해 낸 것이었다.

"그럼…… 소설 속 데이비드가 현실로 나온 게 아니라, 현실의 백도훈이 소설 속 데이비드와 동기화된 거야?"

충격적인 가설이었다. 도하는 소설에서 현실로 튀어나왔지만, 빌런인 데이비드는 반대로 현실의 실존 인물이 소설의 설정을 역으로 흡수해 괴물이 되어버린 꼴이었다. 백도훈은 소설 속 데이비드의 '자본력'과 '악랄한 책략'을 현실의 기업 운영에 그대로 대입하며 세력을 불려온 것이 분명했다. 도서관에서 팩스턴 기사를 보았을 때 스쳐 간 그 차가운 웃음의 주인도, 이제야 선명하게 백도훈의 얼굴과 겹쳐졌다.

[※ 알림: 빌런 백도훈(데이비드 블랙)이 '원작자'의 존재를 감지했습니다.]
[※ 위험도: 측정 불가 - 현실의 권력이 소설의 시스템을 역해킹 중입니다.]

"어……?"

노트북 화면에 갑자기 웹캠 표시등이 빨간색으로 점멸했다. 누군가 세아의 컴퓨터를 원격으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신호였다.

세아는 반사적으로 노트북을 덮으려 했지만, 화면에는 이미 화상 채팅 창이 강제로 띄워져 있었다. 그 안에는 사진 속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었지만, 훨씬 더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백도훈이 앉아 있었다.

— 오랜만이군, 윤세아 작가. 아니, '달콤살벌'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

백도훈의 목소리는 소설 속 데이비드의 대사와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았다.

"당신…… 당신이 어떻게 내 컴퓨터를……!"

— 내 이름을 그렇게 멋대로 갖다 쓰고, 소설 속에서 나를 비참하게 죽이려고 계획하다니. 무례하더군. 하지만 덕분에 재미있는 장난감을 하나 얻었지. 그 '강도하'라는 놈 말이야.

백도훈이 와인 잔을 흔들며 비열하게 웃었다.

— 그놈, 지금 내가 만든 가상 감옥에서 아주 고통받고 있어. 이야기의 흐름을 조금만 비틀었더니, 자기가 사람인지 데이터인지도 구분 못 하더군. 불쌍하지 않나?

"도하 씨 건드리지 마!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 사람? 아니, 난 이제 신이야. 당신이 써 내려가는 그 소설의 시스템을 내가 완전히 장악했거든. 이제부터 <퍼펙트 라이프>의 결말은 내가 쓴다. 강도하는 소설 속에서 영원히 소멸하고, 나는 현실의 왕이 되는 결말로.

백도훈의 눈빛이 광기로 번뜩였다.

— 살리고 싶으면, 오늘 밤 내 사무실로 와. 당신이 쓴 '마지막 원고'를 들고 말이야. 물론, 내가 원하는 내용으로 수정된 원고여야겠지.

툭-.

화면이 검게 꺼졌다. 세아는 온몸이 얼어붙은 채 텅 빈 모니터를 응시했다.

이제 싸움은 소설 속 주식 전쟁이 아니었다. 현실의 괴물이 된 악당과의 정면승부였다. 세아는 책상 옆에 놓인 도하의 넥타이핀을 꽉 쥐었다. 그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만졌던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세아의 무너져가던 용기를 다시금 일깨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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