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29화: 0.1밀리미터의 연출
방 안의 공기가 서서히 달아올랐다. 테이블 너머로 세아의 뺨을 감싼 도하의 손가락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했다. 엄지손가락으로 세아의 뺨을 살며시 쓸어내리는 촉감에 세아는 숨을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진우 씨…… 아니, 도하 씨."
"지금은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내 진짜 심장을 뛰게 만든 건 이 세계의 당신뿐이니까."
도하는 상체를 천천히 기울였다. 낡은 좌식 테이블이 두 사람의 물리적인 거리를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 공간조차 무의미해질 만큼 두 사람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0.1밀리미터의 틈새마저 지워버릴 듯 다가오는 도하의 숨결에서 은은한 커피 향이 풍겼다.
세아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매일 밤 모니터 앞에서 '그는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머금었다' 같은 문장들을 수백 번씩 두드렸지만, 정작 제 입술에 닿는 생생한 텐션과 뜨거운 온기는 어떤 텍스트로도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마침내 두 사람의 입술이 부드럽게 맞닿았다.
처음에는 깃털처럼 가볍고 조심스러운 탐색이었다. 하지만 도하가 이내 테이블 위를 짚고 일어나 침대 쪽으로 세아의 몸을 부드럽게 밀어붙이면서 깊어졌다. 도하의 커다란 손이 세아의 뒷머리를 감싸 안아 지탱해 주었고, 세아는 자연스럽게 그의 단단한 어깨를 붙잡았다.
소설 속 매정한 강도하 사장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하게 다정하고 밀도 높은 키스였다. 옥탑방의 창문을 때리는 늦은 밤의 바람 소리도, 불빛이 깜빡이는 모니터의 존재도 모두 연기처럼 사라지고 오직 서로의 체온만이 세상의 유일한 이정표가 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 세아는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도하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도하의 심장 역시 세아의 것만큼이나 터질 듯이 쿵쾅거리고 있는 것이 귓가에 생생하게 들렸다.
"윤 작가."
"……네."
"이 감정도 당신의 '연출' 중 일부인가?"
도하가 낮게 웅얼거리며 세아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쓸어 넘겼다. 세아는 그의 품에 안긴 채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요…… 이건 내 손가락이 쓴 게 아니에요. 내 마음에 멋대로 돋아난 오류예요."
"마음에 드는 오류군. 수정할 필요가 전혀 없겠어."
도하는 만족스러운 듯 세아를 제 품에 더 꽉 끌어안았다.
그렇게 달콤한 여운에 젖어 있던 바로 그 순간, 책상 위에 켜져 있던 세아의 노트북 모니터가 지지직거리며 푸른빛을 격렬하게 뿜어내기 시작했다. 주총장에서 보았던 시스템 창의 경고등 같은 붉은 글씨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 원작 서사 간섭 경고 : 빌런 '데이비드 블랙'의 현실 자본 침식도가 70%를 돌파했습니다. 원작의 해피엔딩 루트가 위협받고 있으며, 남주인공의 현실 세계 체류 한계 시간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
세아가 깜짝 놀라 도하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모니터의 붉은 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서늘하게 비추고 있었다. 주총은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악당 역시 순순히 물러서지 않고 현실 세계의 어두운 이면을 통해 더 거대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명백한 위험 신호였다.